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24화 (22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24화>

“네, 상해 쪽이란 말씀이시죠!? 네, 네! 알겠습니다!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정소라 중위는 중국계 공방 주인의 전화를 받고 얼굴이 환해졌다.

붉은 화살의 출처가 상해, 삼합회란 증거를 잡았다!

마침내 타격대 출동의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정소라 중위는 바로 명령했다.

“전원 진압 장비 착용한다!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도록!”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대기 중이던 3개 소대 병력이 진압용 탄성 방패와 고무탄을 장비하기 시작했다.

정소라 중위는 바로 몸을 돌려 김 중령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노크 후 들어간 사무실.

정소라 중위는 경례 후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방금 확실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붉은 화살의 출처는 상해 삼합회입니다! 삼합회가 무력화된 지금. 바로 범인들을 체포해야 합니다! 타격대 출동명령 내려 주십시오!”

김 중령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 그 소문? 칠성파, 삼합회, 야쿠자. 한·중·일 세 조직이 연합해서 시청 공고문을 뗐다는 그 소문 말이지? 붉은 화살이 그 증거고?”

“…….”

정소라 중위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분노한 헌터들은 이 소문에 선동됐을지 몰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칠성파, 삼합회, 야쿠자.

하나같이 규모가 상당한 조직들이다.

이들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시청 공고문을 떼는 장난을 친단 말인가?

이런 장난을 치다가 헌터부, 아니 대형 길드에 찍히기라도 하면 한국 헌터 업계에 아예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득 없이 위험만 있는 일이었다.

“…….”

기세등등하게 달려왔던 정소라 중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정 중위 자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문이지?”

김 중령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정소라 중위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그 소문은 우선 넘어가고. 타격대를 출동시켜 삼합회 간부를 체포하자고?”

“네! 지금 삼합회는 멀쩡한 헌터가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난 상황입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면…….”

김 중령은 말을 끊고 툭 던지듯 물었다.

“그 계획 치안청 수석 보안관하고 이야기는 됐나?”

“……바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김 중령의 반문.

“연락해서 뭐라고 할 건데? ‘삼합회가 의심스럽습니다! 타격대로 밀어 버려야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려고?”

“…….”

“균열, 던전, 마경을 강행 정찰, 돌파하는 타격대가 거점 도시에 출동하면. 수석 보안관이 아주 좋아하겠다? 그렇지 정 중위?”

“…….”

“아예 시청으로 타격대를 출동시키는 건 어때? 신동대문의 수사, 기소권은 수석 보안관에게 있으니까. 그 사람을 잡아 오면 일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잖아?”

“…….”

정소라 중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김 중령은 또라이 상관이지만 지금 하는 말은 모두 정론이었다.

특임대 타격대는 가장 위험한 균열, 마경, 던전으로 최초 진입해 강행 돌파, 좌표와 몬스터 제원을 따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지금 타격대 대원중에는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복무한 1세대 헌터들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제대만 하면 대형 길드에서 임원으로 모셔갈 실력자들.

그런데도 이들은 게이트 전쟁 때부터 수십 년 동안 마수와 몬스터, 괴수와의 싸움에 모든걸 바치고 있었다.

그런 만큼 특임대 타격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게이트 거점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수석 보안관이 특임대 타격대의 출동을 용납할 리 없었다.

“…….”

정소라 중위는 상관에게 단 한마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김 중령이 침묵하는 정소라 중위를 한참 동안 보다가 돌연 진지한 얼굴로 명령했다.

“타격대 준비시키게.”

“네!? 그게 무슨……?”

정소라 중위가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탕-

김 중령은 책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정소라 중위!”

“네! 중위 정소라!”

김 중령은 차려자세를 취한 정소라 중위에게 명령을 쏟아 냈다.

“타격대 출동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타격대 출동 준비시키고. 진압 병력을 준비한다!”

“삼합회는 나중 문제다! 우리의 목표는 광장이다!”

“광장이라면?”

정소라 중위는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했다.

김 중령은 창밖 시청 건물을 가리켰다.

“방금 수석 보안관에게 연락이 왔다. 칠성파, 야쿠자 놈들이 광장에서 해명한다고 한다.”

“이런 미친……!”

정소라 중위가 경악하는 순간.

“그래 미쳤지!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거다!”

김 중령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벼락같이 물었다.

“정소라 중위! 우리 헌터 부대의 존재 의의는!?”

헌터 부대의 전신은 게이트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지켰던 부대다.

낙동강 뒤에 있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수십만의 병력이 갈려 나가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를 몇 번이나 잡아낸 부대!

게이트 전쟁이 끝나고 시대가 변했어도.

그때 만들어진 복무 신조는 여전히 헌터 부대에 남아 있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

정소라 중위는 반사적으로 외쳤고.

김 중령은 바짝 군기가 든 정소라 중위에게 명령했다.

“삼합회는 나중 문제다! 광장에서 일어날 소요사태에서 시민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내가 모든걸 책임지겠다. 바로 타격대 준비하도록!”

“충성!”

정소라 중위는 절도있게 경례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 순간 정소라 중위의 가슴은 격동하고 있었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타격대를 출동시키겠다는 김 중령!

‘내가 김 중령님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   *   *

김 중령은 닫힌 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정소라 중위. 역시 훌륭해. 군인의 귀감이야.”

치안청의 수석 보안관이 타격대 출동을 요청하는 바람에 일이 쉽게 풀렸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정소라 중위는 그동안의 의심을 버리고 완전히 넘어왔다.

역시 가슴속에 신념이 끓어오르는 젊은 장교는 다루기 쉽다.

그들의 가슴속 신념을 슬쩍 자극하기만 하면 알아서 생각대로 움직여 주니까.

김 중령은 몸을 일으켜 창밖으로 펼쳐진 광장을 바라봤다.

휑했던 광장에는 어느새 인파가 몰리고 있다.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의 해명을 들으러 모이는 헌터들이다.

칠성 길드의 마혁진.

무슨 생각으로 광장에서 해명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온건한 시나리오에서 과격한 시나리오까지 후환을 끊어 낼 준비는 끝났다.

-타격대에 연행되어 던전 구치소 수감 후 던전 노역형.

-타격대에 연행 중에 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마탄에 사망.

조폭이라면 이를 가는 판검사와 보안관들은 많았다.

게다가 이곳의 수석 보안관은 거친 타격대 출동을 요청할 정도로 시민 안전에 민감했다.

조폭을 제물 삼아 도시의 불만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이야기가 어떤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든 이번 사건은 조용히 묻힐 것이다.

칠성파 마혁진이 대중 앞에 몸을 드러내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그러게 처신을 잘했어야지.”

김 중령은 웃으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서랍에 가득한 서류철에서 내키는 대로 하나를 뽑아 펼친다.

“음 다음에는 이 녀석에게 상납을 받아볼까?”

칠성 길드의 마혁진을 잘라 내도 헌터 부대에 줄을 대려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게이트 전쟁의 선봉에서 갈려 나가던 헌터 부대에도 마침내 좋은 날이 찾아왔다.

아쉬운 것은 하나, 이 좋은 날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갑자기 발생한 서울 사태로 정신없이 움직이던 박찬석 준장이 헌터 부대로 돌아오고 있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예비역 장성까지 특별 고문으로 함께 온다고 한다.

이미 1차 작전지역인 도토리 숲 정찰은 끝난 상황.

이제 곧 도로망 건설을 위해서 숲과 산, 야전에서 매일 구르는 빡빡한 날들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전에 합당한 보상을 챙기는 게 당연했다.

“하- 적당히 쉬엄쉬엄 좀 하시지. 뭐 그리 열심이신지.”

탁-

서류철을 접은 김 중령이 피식 웃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부드러운 일 처리를 위해서 미리미리 기름칠할 곳에 연락을 돌려야 했다.

김 중령은 전화를 걸며 서랍에서 나무 열매 하나를 꺼내 부서트렸다.

꽈드득-

나무 열매 가루를 입에 털어 넣는 순간.

입안에 퍼져 나가는 씁쓸한 맛과 몸에 돌아오는 기이한 활력!

“하- 신기하단 말야?”

김 중령은 도토리 숲을 정찰한 타격대가 가져온 나무열매를 자세히 살폈다.

평범한 도토리와 똑같이 생긴 열매.

그런데 이 열매를 먹는 순간 눈이 밝아지고 머리 회전이 몇 배로 빨라진다.

마치 노화마저 역행한다는 최고등급 각성자가 된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하나둘 먹다 보니 이제 남은 건 세 개뿐이다.

그러나 김 중령은 걱정하지 않았다.

겉모양은 보통의 도토리와 똑같이 생겼으니 적당히 다른 도토리를 채워 넣으면 된다.

김 중령은 피식 웃으며 남은 세 개의 도토리를 꺼내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 또한 합당한 보상이었으니까.

*   *   *

“칠성 길드, 규슈 연합이라고?”

“맞아. 걔네들이 칠성파, 규슈 야쿠자의 위장 길드라네.”

“그러니까 걔들이 광장에서 해명한다고?”

“그렇다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광장으로 가잖아?”

대화를 나누며 광장으로 가던 헌터들의 눈에 문득 띄는 게 있었다.

“야, 저거 괜찮을 거 같지 않냐?”

한 헌터가 가리킨 곳에는 수북이 쌓인 가면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할로윈 가면, 지금 상황에 안성맞춤인 상품이다!

솔깃한 표정이 된 헌터들은 할로윈 가면을 사서 썼다.

할로윈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헌터들이 서로를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마음 놓고 아작을 내줄 수 있겠다.”

“흐흐흐- 다른 애들도 다 비슷한 생각일 거야.”

이들 말대로였다.

어느새 오후 1시가 넘어간 광장에는 할로윈 가면을 쓴 수많은 헌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에는 가면을 파는 장사꾼뿐만 아니라 먹거리와 음료수, 코스튬용 동물 귀와 꼬리, 장식을 파는 장사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수많은 인파에 모여들고, 광장에 접한 건물의 창과 테라스에도 구경꾼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느새 신동대문의 광장은 축제 현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축제와 다른 것이 있었다.

“튼튼한 대나무 몽둥이 팝니다! 엄청 아프고 기절하지 않아서 오래 때릴 수 있습니다!”

“특제 최루 용액 있어요! 눈에 맞으면 헌터라도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물총 사세요! 최루 용액을 10미터가 넘게 쏠 수 있습니다!”

“추적 가루 준비하세요! 끝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들고나온 장사꾼들이었다.

천문석은 장사꾼에게 대나무 몽둥이를 사는 헌터들을 보며 웃었다.

역시 장사꾼들은 움직임이 빠르다.

돈 벌 기회가 보이자 바로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었다.

대나무 몽둥이, 최루 용액.

축제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쁘지 않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들에게는 안성맞춤인 물건들이니까.

“……이거 괜찮을까요?”

이때 혼란스러운 광장을 보던 최설이 망설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원래 마지막은 화려할수록 좋은 거야.”

이때 칠성파 비밀 창고로 다가오는 장갑 SUV 한대가 보였다.

비밀 창고 문이 열리고 장갑 SUV가 들어가고 잠시 후.

줄줄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 행렬.

장갑 버스 5대와 장갑 SUV 3대.

천문석은 직감했다.

규슈 야쿠자가 도착했다!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

피날레의 두 주인공이 대기실에 도착했다!

천문석은 지금 창고 안 모습이 눈에 선했다.

두 주인공은 지금 어리둥절할 것이다.

삼합회를 통해 전해진 이세기의 협상 제의에 한곳에 모였는데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해명의 소문이 퍼지고 있었으니까.

칠성파와 야쿠자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테지만, 누가 범인인지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삼합회, 칠성파, 야쿠자. 그리고 이세기.

그 누구도 이런 짓을 해서 얻을 이득이 없으니까.

천문석은 미소 지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계획.’

이 계획을 처음 생각한 자신조차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다.

그러나 신동대문 전체가 들썩이는 지금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마지막을 장식할 시간이었다.

삼합회는 이미 아작났고, 칠성파와 야쿠자 두 주인공은 무대에 오를 준비를 끝냈다.

관중, 수많은 헌터들도 가면 뒤로 은밀한 기대를 숨긴 채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마치 축제라도 열린 듯 기묘한 열기에 휩싸인 광장!

천문석의 예리한 감각에는 이 열기 뒤에 숨겨진 열망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제물(祭物)!

광장에 모인 헌터 대중들은 새로운 제물을 갈망하고 있었다!

대중의 갈망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계획을 세운 자신의 의무!

천문석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바짝 긴장한 최설이 침을 삼키며 말할 때.

천문석은 대답했다.

“시간이 어중간한 게. 지금이 딱 좋다.”

천문석은 비밀 창고를 바라봤다.

이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때였다!

관중과 주인공 모두가 하나로 구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엉망진창, 정신없고, 화려한 난장판을 만든다!

그리고 그 난장판 최후의 승자는 관중, 수많은 헌터들과 자신이다!

천문석은 자신 있었다.

무공을 모르던 전생의 돌멩이 시절부터 난장판 개싸움은 자신의 특기 중의 특기였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