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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14화 (21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14화>

“야, 일어나! 다 왔어!”

밤새 운전한 엠마가 뒷좌석에 잠든 천문석을 깨우는 순간.

차르르르-

쇳소리를 불쑥 튀어나오는 새하얀 뱀!

으아앗-

엠마가 기겁할 때.

촤르르륵-

강철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머리를 든 뱀이 단숨에 빨려 들어갔다.

“아, 미안. 풀려났네.”

어느새 일어난 천문석이 새하얀 뱀, 강철 구렁이를 팔에 감고 있었다.

“야! 너 그 뱀 마수! 계속 팔에 감고 있을 거야!?”

엠마가 소리 지르자,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녀석 엄청 쓸모 많아. 방패, 밧줄, 채찍, 무기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엠마가 외치는 순간 운전석 창문에서 툭 튀어나오는 구렁이 머리!

히이익!

엠마가 새된 비명을 지를 때, 천문석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깜짝 놀라게 하기! 어때 놀랐지!? 흐흐흐-.”

“……시바. 시바…….”

엠마는 이를 갈았으나 천문석 부사장을 제지할 힘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소심하게 저항했다.

“이제 곧 신동대문이다! 그 마수 어디 안전 상자에라도 넣어! 팔에 감고 있지 말고! 너 벌금 먹는다!”

“아, 그러잖아도 이거. 어제 헌터들에게 물어봤는데. 그냥 감고 다녀도 괜찮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마수를 팔에 감고 다녀도 된다고?”

“어제 교두보 출발하면서 들었는데. 강철 구렁이를 무기를 쓰는 1세대 헌터가 이미 있었다네?”

“…….”

“그 1세대 헌터 때문에 특별법이 있어서. 시청에 가서 허가만 받으면 된다더라. 마법 각인 새기면 서울에서도 영치할 의무도 없고! 와- 역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니까. 누가 뱀을 무기로 쓸 생각을 했을까? 이런 기발한 발상을 한 헌터가 이미 있었다니……!”

“…….”

엠마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눈앞의 천문석이 좀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한국 헌터 업계 전체가 좀 맛이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이 박히지 않는 강철 구렁이.

이런 마수를 무기로 쓰는 걸 허가해 주다니!

‘정신 나간 헌터 업계 놈들!’

엠마가 내심 분통을 터트릴 때.

바앙-

짧은 경적이 들려왔다.

구으으응-

그리고 아직 어둑한 도로를 달려오는 장갑 SUV 무리가 보였다.

“이 시간에 웬 장갑 SUV야?”

“그러게 말야. 아직 해가 뜨지 않았잖아? 오늘은 성문이 일찍 열었나?”

천문석과 엠마가 의아해할 때.

장갑 SUV는 빠른 속도로 화물차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차량의 창에서 한 헌터가 불쑥 몸을 내밀었다.

“거기! 화물차 친구들! 어디서 오는 길이야!”

천문석도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대답했다.

“고블린 사냥터에서 오는데. 지금 신동대문 성문 열렸냐?”

“그것 봐! 내가 그럴 거 같다고 했지! 당장 차 돌려!”

헌터는 차를 두들기며 외쳤고, 장갑 SUV는 곧 180도 회전해 화물차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창밖으로 몸을 내민 헌터는 천문석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어이 친구. 이거 받아!”

반사적으로 잡는 순간, 바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석!

아니, 왜 갑자기 마석을 던져?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마석을 던진 헌터는 질문을 쏟아 냈다.

“……고블린 평야에 몬스터 웨이브 일어났다는데 맞냐? 사냥 교두보 만들었어? 인명 피해는? 전황은? 웨이브 규모는 얼마나 되냐……?”

마석이 질문 값이구나!

천문석은 질문 값부터 치르는 예의 바른 헌터에게 성실하게 대답했다.

“몬스터 웨이브 일어난 거 맞다. 강변에 교두보 만들고 강에 뗏목과 바지선으로 캠프 만들었고. 아직 큰 인명 피해는 없어! 웨이브 규모는…… 최소 10만은 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전황이라기에는 아직 본격적인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우와아아아-

빠아앙, 빵, 빵-

장갑 SUV에서 헌터들의 환호성과 경적이 터져 나왔다.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속도 올려 급하다! 고맙다! 친구!”

장갑 SUV가 급가속해서 회전하더니 화물차를 스쳐 지나갔다.

“야, 야! 지금 신동대문 성문 열렸냐니까? 너희 거기서 오는 길이야?”

천문석이 다급히 묻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던 헌터가 대답했다.

“……신동대문 성문은 아직 안 열렸어! 다행히도 말이지! 하하하- 우리는 신서울에서 오던 중이다. 아! 그리고 너희들 성문 열려도 이쪽으로는 들어가기 힘들 거야! 우회해서 남문으로…….”

헌터의 외침은 곧 사라지고, 장갑 SUV는 다른 차량을 쫓아 빠르게 멀어졌다.

“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 일어났다는데 왜 저렇게 좋아해?”

엠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천문석도 영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웨이브가 좋은가 보지. 그보다 꽁돈 생겼다. 하하하-.”

천문석은 이름 모를 헌터가 던져 준 마석을 쓱쓱 닦아서 잡낭에 넣었다.

역시 헌터들은 손이 크다!

몇 마디 이야기 값으로 마석을 던져 주다니!

그리고 30분 후 신동대문 성문이 보였다.

마침 시간은 성문 개방시간!

“바로 들어가면 되겠다. 흐아아-.”

엠마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순간.

구으으응-

기계 작동음이 울려 퍼지고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컥- 어, 저게 다 뭐야!?”

엠마가 하품을 하다말고 당황할 때.

“……이래서 우회하란 거였구나.”

천문석은 방금 만난 헌터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히이이응-

부으으으응-

끼익, 끼익, 끼이익-

마차와 수레, 장갑 SUV, 장갑 버스, 개조 자전거…….

엄청난 양의 운송 수단과 그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헌터들이 성문에서 쏟아져 나왔다!

수문을 연 댐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과 헌터들!

어느새 천문석이 탄 화물차는 신동대문에서 쏟아지는 차량 행렬에 멈췄고, 주위를 지나가는 헌터들은 다급하게 외쳤다.

“대박? 대박!?”

“고블린 평야!?”

“몬스터 웨이브!?”

“수십만. 진짜냐!?”

“교두보! 사냥 교두보!?”

……

사방에서 쏟아지는 목소리가 뒤섞여 단편적으로 들리는 단어 들.

그러나 상기된 얼굴의 헌터들의 외침에는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아니. 몬스터 웨이브 일어났는데. 다들 왜 좋아해? 한국은 원래 그런 거야?”

엠마가 고개를 저을 때, 천문석은 눈앞의 상황과 좀 전의 상황이 겹쳐졌다.

경적까지 울리며 신나게 달려가던 장갑 SUV 5대.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곳으로 앞다퉈 달려가는 헌터들.

순간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재앙인 이유는 그 결집한 힘을 막아 내는 게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집한 힘, 예봉을 꺾을 이들이 신동대문에 오고 있었다.

연합 레이드 팀!

주위를 달리는 헌터들의 생각이 읽혔다.

예봉을 꺾는다면 몬스터 웨이브는 더는 재앙이 아니다.

잡기 쉽도록 평지에 모인 사냥감이나 마찬가지다.

주위의 헌터들은 재앙과 처절하게 싸우기 위해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잘 차려진 밥상을 향해서 숟가락을 들고 달려가는 것이다!

문득 들려온 단어 대로 대박의 기회다!

이때 어젯밤의 기억이 생각난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지선과 뗏목으로 환하게 밝혀진 강!

동료들을 구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바지선과 뗏목을 몰고 오는 헌터들의 행동에 감동했는데…….

그 이타적 행동에는 경제적 유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

천문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탄식했다.

“하- 시바…… 내 감동!”

그러나 어이없어하는 건 잠시.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주위에 보이는 헌터 대다수가 한국계!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 헌터들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4 드론, 벙커링, 전진 게이트가 괜히 한국에서 유행한 게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국 헌터들은 밤새 사냥팀을 꾸려서 성문이 열리자마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와- 이런 미친 경쟁의 민족이라니!”

역시, 한국 사람들은 대박의 냄새를 미친 듯이 잘 맡았다!

자신이 괜히 건물주가 되기 힘든 게 아니었다.

문득 불안해진 천문석은 엠마를 봤다.

“엠마?”

“왜?”

“내가 이 경쟁에 미친 사람들을 뚫고 ‘건물주‘가 될 수 있을까?”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엠마는 천문석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진짜 걱정을 하는지 어두워진 천문석의 얼굴,

왼쪽 팔에는 차르, 차르르- 쇳소리를 내는 마수 뱀을 둘둘 감고 있고.

허리춤에는 강화 해머, 나뭇가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리볼버가 줄줄이 달려 있다.

모습만 보면 그냥 초짜 헌터다.

그러나 엠마는 천문석의 진가를 몇 번이나 봤다.

천문석은 마수와 몬스터가 뒤엉킨 난장판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빠져나왔다.

그것도 자신과 다른 수십 명의 헌터들까지 구해서!

천문석은 재수가 더럽게 없다는 것만 빼면, 엠마가 직접 본 헌터 중에 가장 강한 헌터였다.

‘그런 능력을 갖추고서는 꿈이…… 건물주라고!?’

어이없어진 엠마는 바로 물었다.

“한국에서는 ‘건물주‘가 무슨 다른 은어로 쓰이냐?”

“건물주가 건물주지. 무슨 은어? 건물 주인. 집, 상가 세주는 사람이 건물주지.”

“…….”

엠마는 한참 동안 조수석의 천문석을 바라봤다.

“엠마 어때? 네가 보기에는 내가 저 경쟁에 미친 사람들이랑 경쟁해서 건물주가 될 수 있을까? 어서 빨리 객관적인 시선에서 좀 말해 봐!”

‘이런 미친 새끼! 진짜 건물주를 하려는 거였어!?’

목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삼킨 엠마는 느낀 대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에는 너도 이 사람들 못지않다.”

천문석과 엠마는 30분 동안 도로에 갇혀 있다가 겨우 신동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   *

신동대문 시가지.

화물차로 도로를 지나며 천문석은 감탄했다.

수많은 헌터들이 빠져나갔는데도 신동대문의 도로와 광장, 술집, 인력사무소는 여전히 헌터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천문석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지금 신동대문에서는 ‘몬스터 웨이브’에 버금가는 ‘휴먼 웨이브’가 일어나고 있었다!

1차 휴먼 웨이브, 한국계 헌터들이 주축이 된 사냥팀은 이미 출발했고.

2차 휴먼 웨이브, 한발 늦은 헌터들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광경.

혼자 길을 걷는 헌터를 향해 먹잇감을 노리듯 사방에서 달려오는 베테랑 헌터들!

‘어, 어!’하는 사이에 재빨리 헌터를 고용하고 수레와 마차에 던져 넣는다.

곳곳에 있는 공터, 주차장마다 헌터들이 가득 탄 수레와 마차, 장갑 차량이 뒤섞여 있었다.

이 모든 차량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고블린 평야로 출발할 차량이었다.

그리고 차량이 너무 많아 기어가듯 움직이는 도로.

대다수는 수레나 마차였지만, 마력 엔진 차량도 적지 않았다.

더럽게 비싼 정제 마석을 연료로 사용하는 장갑 SUV, 장갑 버스, 무장 트레일러들이 줄줄이 도로를 이동하고 있었다.

“아니 마력 엔진 차량이 이렇게 흔한 거였어?”

자신도 모르게 말한 천문석은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각종 알바를 끝내고 옥탑방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에 가득한 자동차, 주위 어디에서나 보이는 아파트.

수많은 자동차와 아파트를 볼때 느꼈던 감각이 다시 느껴졌다.

거리에는 이렇게 많은 자동차와 아파트가 있는데 내 건 없다는 소외감!

천문석이 다시 한 번 소외감을 느낄 때.

광장 방향에서 문득 들려오는 대화.

“……2차 선발대 출발 허가 언제 난다고?”

“이제 곧 시청 게시판에 공고문 붙을 거 같던데?”

“이번에도 선착순이래?”

“그런가 보더라고…….”

……

2차 선발대?

천문석이 대화하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하- 겨우 길 열리네.”

구으으으응-

엠마가 운전하는 화물차가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천문석은 방금 들은 대화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2차 선발대, 선착순이란 말이지?”

그리고 개인 주차 구역에 도착한 화물차.

“엠마 그럼. 뒷정리 잘 부탁한다. 난 정의 구현하러 갈게.”

천문석은 장비를 확인한 후 화물차에서 내렸다.

“바로 시작하려고? 너 괜찮겠냐?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하지?”

이제는 완전히 동료가 된 엠마에게 웃으며 대답한다.

“오는 동안 나는 계속 잤잖아. 밤새 운전하느라 피곤하겠다. 올라가서 쉬어.”

천문석은 몸을 돌리려다가 문득 든 생각에 엠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야, 이번엔 또 뭐야? 이번엔 나는 빼줘.”

기겁하는 엠마의 어깨에 놓이는 손.

천문석은 텔레비전에서 본 부하 직원을 격려하는 직장 상사 말투로 말했다.

“엠마 사원. 이번 일 아주 잘했다! 돌아가면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대리 특진을 추진하도록 하겠다!”

“…….”

말없이 천문석을 바라보는 엠마.

“명함도 파줄게. 엠마 파리킨슈 대리. 어때 근사하지?”

“…….”

“……회식도 할까?”

“…….”

“뭐 혹시 원하는 거라도?”

엠마는 단호히 말했다.

“내가 호텔 방에서 나올 때까지. 이번엔 나한테 연락하지 마라. 내가 보기에 너 진짜 운이 없어. 옮을까 봐 무섭다.”

“무슨 소리!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데! 이거 안보이냐?”

천문석은 즉각 잡낭에서 마석을 꺼내 보여 줬다.

하아-

엠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일이 끝날 때까지는 긴급 사태 아니면 연락하지 마라.”

“…….”

“아무 사건·사고 없이 좀 지루하게 있는 게 엠마 사원의 소원입니다. 부.사.장.님!”

그러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마음.

“혹시 부르면 어떡할 건데?”

천문석이 은근슬쩍 묻는 순간.

엠마는 미소 지었다.

강변 교두보에서 천문석이 베테랑 헌터들과 이야기할 때, 엠마도 다른 베테랑 헌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몇몇 헌터들이 마법의 단어라며 가르쳐 준 게 있었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관…….”

엠마가 외웠던 단어를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번개같이 몸을 돌려 달려갔다.

“엠마 사원! 푹 쉬어! 일 끝나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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