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13화>
“살펴 가십시오! 최 선생님!”
삼합회의 최 선생은 칠성 길드 헌터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 무표정했던 최 선생, 최평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최평은 조수석의 비서에게 물었다.
“상해 와는 연락이 됐나?”
비서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피고 대답했다.
“나오시기 직전에 연락됐습니다! 어젯밤 기습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피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경상자가…….”
최평은 기가 막혔다.
남중국의 삼합회가 한 신생 길드와 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게 벌써 2주 전이다.
신생 길드가 겁도 없이 남중국의 헌터 군벌들과 깊게 이어진 삼합회를 치다니!
아무리 지금 남중국이 마경에서 쏟아진 거대 괴수와 마수들로 엉망이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멍청한 신생 길드는 박살 나고, 소속 헌터들은 소리 없이 묻힐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샤먼과 푸저우, 원저우에 있는 지단과의 연락이 끊기고 어젯밤 상해 본단마저 기습 공격을 받았다.
최평은 피해 상황을 전하는 부하의 말을 잘랐다.
“여전히 헌터 군벌의 도움은 없다고 하나!?”
최평의 물음에 굳은 얼굴로 대답하는 비서.
“그쪽은 천검의 뒤를 따라 마경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최평의 얼굴이 굳었다.
천검(天劍)!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천검.
그는 누군가 붙인 천검(天劍)이란 말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나타나, 한 자루 검으로 거대 괴수를 몇이나 쓰러트린 천외천의 각성자!
최평이 자리를 비운 지금 남중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천검이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를 쓰러트리고 마경에 길을 뚫으면, 그 뒤를 헌터 군벌의 부대가 쏟아져 들어가 마경을 정리한다.
천검은 서로 견제하느라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헌터 군벌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어, 십 년이 넘게 방치된 남중국의 마경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소식들.
최평은 문득 물었다.
“지금 천검 밑으로 몇이나 모였지? 셋인가?”
“……둘이 더 넘어갔습니다.”
“……!”
최평은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하나하나가 자신의 세력권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 헌터 군벌들.
헌터 군벌들은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숙이는 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벌써 다섯이 넘는 헌터 군벌들이 스스로 숙이고 천검 밑으로 모였다!
다섯!
남중국에 깔린 헌터 군벌 수에 비하면 적은 수다.
그러나 오만한 헌터 군벌이 천검에게 숙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군웅할 거 전란의 시대.
아무 힘이 없던 황제가 대륙 통일의 상징, 대의명분이 되듯.
천검은 하나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최평은 직감했다.
다섯은 물꼬를 틔웠을 뿐이다.
모여드는 헌터 군벌의 수는 더 늘어날 테고, 누구나 대세가 결정됐음을 깨달았을 때.
분열되었던 남중국의 성과 도시, 헌터 군벌은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분열된 남중국의 통합은 10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 한 명의 각성자.
천검이라는 천외천의 각성자가 등장하며 남중국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었다.
최평은 직감했다.
이제 곧 남중국의 패권은 천검이란 천외천의 각성자에게 넘어간다!
돈과 마력 무구, 아이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안겨 주고 절대 권력자가 될 천검의 작은 환심이라도 사야 했다!
그러나 남중국 삼합회를 총괄하는 상해 본단은 신생 길드와의 분쟁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
게다가 자신은 한국의 게이트 너머 거점도시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문득 생각했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신동대문에 공을 들였다.
세계 최고의 헌터업 인프라를 가진 한국은 일반 헌터, 중소규모 길드나 헌터팀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대형 길드는 한국 헌터 업계의 단단한 진입장벽 때문에 진출해 기반을 닦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신동대문에 들인 인력과 자금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리고 이 일이 성공했을 때, 상해 군벌에서 받기로 한 대가가 엄청났다.
한국의 게이트 거점도시에 기반을 만들고 1세대 헌터들이 만든 대형 길드와 관계(關係)를 만드는 것에 성공하면 상해 군벌은 엄청난 특혜를 부여하기로 약속했다.
최평은 이미 상해 군벌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대형 길드보다 대형 길드를 만든 1세대 헌터들이 더 중요하다.
1세대 헌터들은 헌터 부대 특임대를 만들어 낸 한 헌터와 게이트 전쟁에서 같이 싸웠다.
불리한 전황을 몇 번이나 뒤집으며 끝까지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내고 서울 수복 작전마저 성공시킨 전설적인 헌터.
역대 최고의 커맨더 검은 폭풍!
상해 군벌은 1세대 헌터들을 통해 검은 폭풍과 끈을 이으려 하고 있었다.
대형 길드 – 1세대 헌터 – 검은 폭풍.
검은 폭풍은 상해 군벌에서 몇 단계를 걸쳐서라도 끈을 이으려 할 만큼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헌터였다.
그러나 한국의 1세대 헌터들은 만나기조차 쉽지 않고 함께 일을 하려면, 그들의 인정하는 사람의 소개나 비슷한 격을 갖춰야 했다.
신동대문에 만들 기반은 1세대 헌터들과 연결하기 위해 필수였다.
지금으로서는 천검과 신동대문의 기반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할까.”
최평은 가장 빠른 해결방법을 생각했다.
1. 신생 길드와 화평을 맺는다.
2. 삼합회의 모든 힘을 모아 천검에게 줄을 댄다.
3. 신생 길드는 신동대문 일이 끝난 후 상해 군벌의 힘으로 처리한다.
간단한 해결책.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화평을 제안해 삼합회의 체면을 손상시켜야 했다.
체면, 위신에 한번 금이 가면 다시 회복하는데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평소의 최평이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선택지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 지형이 변하는 급변기.
이런 시기에 실기하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최평은 마음의 결심을 하고 비서에게 물었다.
“그 신생 길드…… 이름이 뭐라고 했지?”
비서는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확인하더니 대답했다.
“‘철검장‘이란 길드 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드장은 스스로를 ‘단혈철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 *
규슈 야쿠자의 대리인 후세 케이코 변호사는 장갑 SUV를 타고 위장회사의 안전가옥으로 이동 중이었다.
야쿠자 변호사는 위장 신분.
후세 케이코 변호사의 진짜 신분은 일본 내각정보실 국내 3부 팀장이었다.
후세는 장갑 SUV 안에서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았다.
“……가고시마의 ‘나찰승’은 사쓰마, 아마쿠사시를 지나 나가사키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나찰승이 원하는 것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나?”
고개를 숙이는 부하 직원.
“관련 문헌. 민속 학자, 헌터 업계. 모든 곳에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혹시 다른 회유할 방법은 없을까? 돈, 경전, 문화…… 그런 것에는 반응은 없나?”
“진짜 ‘중‘인 것처럼 물품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습니다. 정보집약센터의 분석 결과. 찾고 있다는 그것 말고는 돈과 여자, 권력 무엇으로도 회유 불가라고 합니다.”
내각정보실 국내3부 팀장 후세 케이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게이트를 넘어와 작전 중에, ‘나찰승‘같은 인물이 나타나다니!
후세 케이코는 신동대문으로 넘어오기 전을 떠올렸다.
2주 전.
해양 마수 관찰용 인공위성은 엄청난 속도로 일본 규슈 지방으로 달려오는 사람 크기의 물체를 포착했다.
처음 신종 해양 마수나 비행 마수가 아닐까 긴장했던 것도 잠시.
스파이 위성에서 고해상도 사진을 뽑아낸 순간, 내각정보실 모두는 경악했다.
바다를 달려오는 물체의 정체는 승복을 걸친 사람이었다!
즉각 비상이 걸리고 모든 위성과 드론을 이용해 이 사람의 모든걸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악은 더 커졌다.
거대한 해양 몬스터를 손짓 한 번에 쫓아내며, 치솟는 파도 사이를 육지처럼 달리는 승려!
정보집약센터 분석 결과로는 최소 다중능력 각성자.
몇몇 분석관은 조심스레 한국의 초능력 계통 다중 각성자 ‘뽀미‘를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헌터 풀을 가진 한국에서도 부동의 초능력 계통 각성 랭킹 1위.
‘국민대의 뽀미.’
달리 움직이는 안정화 권역이라 불리는 뽀미는 국민대와 북한산, 서울 북부 지역 전체를 지키고 있었다.
게이트가 하나도 없어 안정화 권역이 없는 일본 처지에서는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각성 동물이 뽀미였다.
그런데 뽀미 급의 각성자, 그것도 사람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타났다!
내각정보실은 발칵 뒤집혔고, 정보집약센터가 즉각 총가동되어 ‘바다를 달리는 승려’의 회유 시나리오를 만들어 냈다.
그때 국내 3부 팀장, 후세는 동료들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며 신동대문으로 출발했었다.
국민대의 뽀미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런 각성자가 알아서 걸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나 ‘바다를 달리는 승려’가 마경이 펼쳐진 가고시마에 오르는 순간 모든 평가는 변했다.
나찰승의 진가가 드러나고, 평가는 수직으로 올라갔다.
가고시마 마경에 피의 길을 여는 승려!
바다를 달리는 승려는 이제 ‘나찰승’이라 불렸고 내각정보실뿐만 아니라 자위대까지 나서게 됐다.
자위대가 동원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타국의 이목을 돌리고, 나찰승의 회유에 전력을 다했다.
후세는 나찰승이 가고시마 마경에 만들어 낸 사진과 영상을 본 순간 느낀 전율을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기억했다.
마치 경전 속 사천왕처럼 마경을 무인지경으로 돌파한 나찰승!
자위대와 내각정보실의 각성 헌터들은 여러 헌터들을 지목했다.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킨 한국의 1세대 헌터들.
이태성, 추이린…….
하나하나가 규격 외의 각성자들.
생각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나찰승의 능력은 이들을 능가했다.
일본이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규격 외의 각성자가 스스로 일본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환호했으나 곧 문제점이 발견됐다.
가고시마에 내려선 나찰승은 사쓰마를 거쳐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찰승의 이동 경로를 선으로 이으면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이어진다.
규격 외의 각성자는 세계 어느 나라나 원하고, 한국은 모든걸 다해 나찰승을 회유하려 할 것이다.
나찰승을 회유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세는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갈까 생각했다.
어차피 신동대문 작전은 국제부의 요청으로 얼굴이 덜 팔린 자신이 파견 온 상황, 자신이 없어도 작전 시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
잠시 고민하던 후세 케이코는 바로 마음의 결정을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든 나찰승, 규격 외의 각성자를 일본에 잡아 두는 것이다!
이때 부하 직원이 보안 태블릿을 꺼내며 말했다.
“팀장님이 작전에 들어가셨을 때 보안 영상이 도착했습니다.”
후세는 보안 패드를 받았다.
보안 패드 화면에는 거친 승복을 입은 험상궂은 중이 한 할머니의 대접을 받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험상궂은 중, 나찰승이 오래된 가옥 마루에 앉아 떡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
내각정보실이 나찰승의 성향을 분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영상이 뒤늦게 도착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나찰승은 진짜 중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떡과 차를 마시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마당에 자리한 돌에 무언가를 조각하고 훌쩍 떠났다.
영상에는 소리가 담겨 있지 않았다.
“대화 내용을 복원했나?”
“나찰승과 대화를 하신 할머니의 기억력이 좋으셔서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습니다.”
부하 직원은 복원한 대화 내용이 담긴 파일을 열어 넘겼다.
-스님은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뭇가지에서 떨어졌습니다.
-스님은 무엇을 찾으시나요?
-알게 되면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산악 같은 고래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고래…… 무언가의 상징인가?”
후세는 곰곰이 생각했지만, 나찰승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생을 연구한 학자들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후세가 알아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하늘을 나는 고래.’
그런 마수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나찰승을 회유해야 했다!
후세는 바로 명령했다.
“차를 돌려라! 바로 본국으로 돌아간다!”
후세 케이코를 태운 장갑 SUV는 바로 방향을 돌려 신서울 방향으로 이동했다.
칠성파의 마혁진.
삼합회의 최평.
야쿠자로 위장한 내각정보실 후세 케이코.
세 사람이 각자의 결론을 내렸을 때.
천문석과 엠마.
두 사람은 화물차를 타고 신동대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구으으응-
화물차 조수석에 앉은 천문석은 한글, 한자, 일본어 화살이 담긴 압착팩을 보며 웃고 있었다.
몬스터 스노우볼을 굴린 의도, 큰 그림은 확인됐다.
‘의도’는 한·중·일 헌터 간의 분쟁 조장.
‘범인’은 분쟁이 일어나면 이득을 보는 사람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누가 범인인지 특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아니 땐 굴뚝이 연기 날까?’
이 말은 다르게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은 연기가 나면 불을 땠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래서 천문석은 연기를 피울 생각이었다.
‘아니 시발! 불도 안 붙였는데 웬 연기야!?’
범인이 깜짝 놀라 이렇게 외치며 튀어나오도록 아주 화려하고 커다란 연기를!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그냥 작살을 내주마! 카캬카-.”
천문석이 악당처럼 웃는 순간.
운전석의 엠마는 바로 선언했다.
“야, 나는 이번에 신동대문 돌아가면 호텔에 처박힐 거다! 일 다 끝나면 와라. 그전에는 절대 부르지 말고.”
“뭐야! 우리는 몬스터 웨이브도 같이 헤쳐나온 엄청 친한 동료잖아? 그렇지 않냐, 엠마?”
천문석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는 순간, 엠마는 냉정히 팔을 잡아 내려놓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거.든.요! 부.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