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11화 (21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11화>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왜 거기서 나와?”

엠마가 다급히 묻는 순간, 천문석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거대 사슴벌레 덕분에 휑해진 고블린 평야, 30분이면 캠프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몬스터가 사라지자, 고립됐던 헌터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들을 하나둘 화물차에 싣고 지붕에 올리다 보니 곧 화물차는 피난민 수송 차량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초거대 사슴벌레에 놀라 도망쳤던 마수와 몬스터마저 돌아왔다.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치고받으며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물에 푹 절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까?”

천문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 순간.

엠마는 어이없어하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 재수 좋은 녀석! 하하하-.”

엠마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 주위에 몰려든 헌터들이 일제히 엠마를 들어 올렸다.

헌터들이 뭘 하려는지 깨달은 엠마가 다급히 외쳤다.

“시바 하지 마! 헹가래 치지 마! 하려면 쟤를 해! 쟤가 너희 구해 준 사람이야! 하지 말라고 새끼들아!”

엠마가 진심을 담아 외쳤으나, 사지에서 살아나온 기쁨에 정신이 반쯤 나간 헌터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몰려든 헌터들이 일제히 외쳤다.

“우리를 구해 준 최고의 헌터를! 셋에 들어 올린다!”

“하나……!”

“둘……!”

“셋!”

와아아아아아-

“으아아악- 하지 말라니까!”

헌터들의 엄청난 힘으로 휙휙- 공중을 나는 엠마.

천문석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엠마와 환호성을 지르는 헌터들을 봤다.

고블린 평야에 고립됐던 헌터들과 돌아온 동료를 찾은 이들이 소리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

고생은 좀 했지만, 이들 모두를 안전한 이곳으로 데려 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엄청나게 뿌듯…….

“……어?”

순간 천문석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엠마! 헌터 수가 좀 적은 거 같지 않냐!?”

“그게 뭔 소리야? 으아아악-.”

엠마가 헹가래 쳐지며 대답할 때, 천문석의 시선이 멈춰 선 복합엔진 화물차로 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헌터들의 환호성과 외침에 가려진 미약한 진동!

화물칸이 흔들리고 있었다!

“야! 엠마 화물칸! 화물칸 열었어!?”

“아앗!”

엠마가 깜짝 놀라는 순간, 천문석은 번개같이 화물차로 달려갔다.

“야, 비켜! 급하다! 비켜봐!”

인파를 뚫고 화물칸을 여는 순간.

철컹-

흐아아압-

커어어억-

다급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고, 탈진하고 기절한 헌터 수십 명이 드러났다.

“이지혜!?”

“마틴 바이든!”

“스즈키 히로!”

“안토닌 로롤로!”

……

“……살아 있었구나!”

우와아아아-

동료를 찾던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에서 달려왔고, 헹가래 쳐지던 엠마는 땅에 뚝- 떨어졌다.

“으으……! 하지 말라니까…… 새끼들이! 시바-.”

허리로 땅에 떨어진 엠마가 울분을 터트렸으나.

이미 엠마 주위의 헌터들은 화물칸에서 쏟아지는 탈진한 헌터들에게 달려간 후였다.

*   *   *

불이 환하게 밝혀진 강변 교두보.

지도가 놓인 테이블 주위에는 사냥팀과 길드의 베테랑 헌터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설명을 끝낸 천문석이 펜을 놓자, 주위에 가득한 헌터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들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고블린 평야 지도로 향해 있었다.

천문석이 만난 마수와 몬스터, 탈출로를 기록한 지도.

산맥과 강으로 막힌 광활한 고블린 평야 지도에는.

마수와 몬스터를 표시한 수많은 빗금과 탈출로로 사용한 구불구불 선이 그어져 있었다.

마차와 수레, 차량이 달려 자연히 만들어진 도로와 평야, 숲을 오가는 탈출로.

고블린 평야에 익숙한 헌터들은 지도에 그어진 탈출로를 보는 순간.

눈앞의 천문석이란 헌터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랩터, 오크, 비늘 코뿔소, 천둥 기린, 고블린…….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가 뒤섞인 난장판을 혼자도 아니고 수십 명의 헌터들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직접 보지 못하고 건너 들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직접 보는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베테랑 헌터들의 시선이 천문석의 왼팔에 닿았다.

밧줄처럼 빙빙 감겨 있는 새하얀 마수.

발견 자체가 힘든 희귀 마수 강철 구렁이!

천문석은 마수, 강철 구렁이를 채찍처럼 팔에 감고 있었다.

베테랑 헌터들의 눈이 마주쳤고 이들은 속삭이듯 대화를 나눴다.

‘저 녀석 무슨 능력자야?’

‘다중 각성 능력자 아닐까?’

‘대형 길드에서 차세대로 키우는 헌터 같은데.’

‘태성, 금성, 일화? 어딜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헌터 부대 특임대일 수도 있다.’

탁-

이때 임시지휘관 김재권이 테이블을 두들겨 주의를 끌었다.

“지금은 구조 계획을 짜는 게 중요하다. 모두 어떻게 생각해?”

베테랑 헌터들은 하나둘 입을 열었다.

“이거 몬스터 규모가…… 왜 이래!?”

“천둥 기린이라고? 아니 서식지에서도 보이지 않던 마수가 왜 여기에 나타나…….”

“구출팀 그냥 출발했으면 갈려 나갔겠는데. 하아-.”

“이거 그냥 직선으로 움직이면 휩쓸린다.”

“방법은 있다. 한 팀씩 흩어져서 흐름을 타고 움직이면 된다.”

“마력 각성자 필수겠는데. 그것도 은폐 기술이 있는 사람으로…….”

“당장 이 지도부터 복사하자.”

……

베테랑 헌터들은 지도를 보며 저마다 의견을 쏟아 냈다.

이때 한 헌터가 지도 위 숲을 가리키며 천문석을 봤다.

“여기 참나무 숲 언덕에서 거대 괴수가 나왔다고?”

“네. 엄청난 진동과 함께 튀어나왔는데. 모습은…….”

천문석은 쓱쓱 펜으로 사슴벌레를 그렸다.

“사슴벌레를 크게 확대한 듯한 모습인데. 집게 길이는 20미터를 훌쩍 넘고 몸길이는 집게 4배 정도 됩니다.”

“…….”

천문석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베테랑 헌터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곤충형 거대 괴수는 처음인 거 같은데?”

“이거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

“상대는 무슨! 무조건 피해야지!”

“맞아. 이 정도 스펙이면 오우거나 트롤 같은 놈들도 1초 컷이다!”

“뭐 이런 미친 괴수가 고블린 사냥터에서 나와…….”

이 헌터의 말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초보 사냥터에 레이드 몬스터가 나온 상황.

하아아-

베테랑 헌터들의 한숨이 쏟아지고 누군가 천문석에게 다시 물었다.

“마수와 몬스터 무리가 회전한다고?”

천문석은 지도 위에 손을 올리고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였다.

“고블린 평야 전체에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생겼습니다.”

“아니…… 무슨 웨이브가 원을 그려…….”

한 헌터가 어이없어하자, 천문석은 바로 이유를 설명했다.

“맹목적으로 달리는 미친 마수와 몬스터가 있는데. 다른 놈들이 이놈들한테 휩쓸렸습니다.”

천문석은 장갑 버스로 만들어진 성벽을 가리켰다.

“그래서 고블린 평야의 마수와 몬스터들이 거의 흩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헌터들과 마력 각성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헌터들 모두 한두 번은 크고 작은 몬스터 웨이브를 겪은 베테랑이었다.

예전에 겪었던 몬스터 웨이브라면 이곳 강으로 몬스터들이 몰려 와야 했다.

성벽을 세웠는데도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아 의문을 가졌는데, 천문석의 말을 듣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원을 그리는 흐름에 갇혀 마수와 몬스터가 새어 나오지 않고 있는 거다.

이때 문득 들려오는 물음.

“혹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 가는 거 있냐?”

천문석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베테랑 헌터, 김재권과 시선이 닿자, 김재권은 고개를 아주 작게 흔들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천문석은 김재권의 의중을 바로 파악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거 없이 함께 마수와 몬스터를 막고 구출팀을 편성하고 있었다.

지금 몹몰이를 한 증거를 내밀면 신뢰가 깨지고 난장판이 된다.

“글쎄요……?”

천문석은 애매하게 대답했고, 김재권이 재빨리 말을 이어받았다.

“질문은 그만해라. 저 난장판에서 가족과 동료를 구해 준 은인이다!”

순간 날카로웠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주위에 모인 헌터들이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 네 덕분에 동생이 살았다.”

“우리 팀 마력 각성자를 구해 온 게 너다. 정말 고맙다.”

“화물차에 몇 명을 실어 온 거냐!? 하하-.”

“이런 미친 새끼! 너 같은 녀석은 언제든 환영이다! 우리 길드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라!”

“하- 무슨 소리! 꺼져. 당연히 우리 길드로 와야지! 꼭 연락해라! 언제든지!”

……

무거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지고, 밝아진 얼굴의 헌터들이 앞다퉈 영입제안을 했다.

이때 김재권이 가볍게 테이블을 두들겼다.

쿵, 쿵-

시선이 모이는 순간, 테이블 위에 놓이는 종이와 펜.

“너희들 말로만 때우지 말고. 여기에 상황 적고 서명해라.”

“이게 뭔데?”

“헌터부에 제출할 서류다.”

김재권이 종이를 들어 헌터들에게 보여 줬다.

[공적 확인서]

*   *   *

헌터들이 [공적 확인서]에 서명하는 동안 김재권은 천문석과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무사히 빠져나와서 다행이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다른 헌터까지 구해서 나오다니! 하-.”

베테랑 헌터, 김재권은 연신 감탄하다가 문득 헌터들이 서명하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 공적 확인서 신동대문 시청에 제출하면 상당한 ‘헌터 포인트‘가 주어질 거야. 이런 위급상황에서의 인명구조는 가산점이 높다.”

예전 쿠팡맨 때 헌터 포인트란 단어를 얼핏 들었었다.

“헌터 포인트 쓸모 있나요? 그거 별 쓸모가 없다던데.”

천문석의 의문에 김재권은 피식 웃었다.

“보통 헌터들에게는 그렇지. 헌터 포인트로 대형 길드 만들거나. 거점도시 이권을 사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네!?”

천문석은 깜짝 놀라 물었다.

“헌터 포인트로 거점도시 이권을 살 수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김재권 헌터.

“아까 했던 사냥터 점유 이야기 기억하지?”

바로 기억이 났다.

고블린 평야는 점유한 대형 길드가 없다는 이야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의문을 가지는 순간 이어지는 이야기.

“길드가 사냥터 점유하는 거. 초기 개발하면 주어지는 헌터 포인트로 헌터부에서 위임받는 거다. 신동대문 같은 게이트 거점도시 내의 이권도 마찬가지고.”

천문석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헌터 포인트로 이권을 살 수 있다니!

예전 쿠팡맨 일을 할 때도, 고산 마을 보안관에게 공적 확인서를 받았었다.

그런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때 이어지는 김재권 헌터의 이야기.

“……신동대문 성벽 안에는 남는 이권이 없고, 주변 사냥터와 거점 마을에도 남은 이권이 거의 없지만. 네가 한 일 정도면 다른 게이트 거점도시에서 적당한 이권, 영업권이나 토지 사용권 같은 걸 살 수 있을 거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게이트 거점도시들.

지금도 도시가 성장 중인 ‘신서울‘.

아직 개척 초기인 이세계 항구 도시 ‘신부산‘.

적당한 곳에 토지 사용권을 받은 후 건물을 세우면!?

지구에서도 이루지 못한 건물주의 꿈이 단숨에 이뤄지는 거다!

생각도 하지 않은 곳에서 대박이 터졌다!

천문석의 얼굴이 환해질 때, 김재권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 이야기 말하지 않은 것 잘했다.”

작게 ‘화살‘이라고 말하는 김재권.

생각도 하지 못한 대박에 기뻐하던 천문석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다.

“혹시…… 뭔가 알아낸 게 있습니까?”

“그 일 아무래도 좀 이상해. 캠프에 오자마자 확인했는데…….”

주위를 살핀 김재권은 목소리를 낮춰 작게 말했다.

“안면이 있는 몇몇 외국계 헌터 애들. 한글이 새겨진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어가 새겨진 화살도 나왔고.”

“……!”

한글, 한자, 일본어.

한·중·일 세 나라 문자가 새겨진 화살.

순간 천문석은 이 일이 우연히 일어난 몹몰이, 몬스터 스노우볼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어떤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으면, 그 사건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일의 전모를 알기 위해선 사건을 일으킨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왜 몬스터 스노우볼을 굴렸을까?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글, 한자, 일본어가 새겨진 화살을 쏴서 몬스터 스노우볼을 굴렸을까?

천문석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단편적인 정보들.

게이트 없는 게이트 거점도시 신동대문.

도로망 건설계획.

해외 자본에 넘어간 이권들.

도시에 자리를 잡으려는 수많은 외국계 헌터들.

신동대문으로 돌아오는 길드, 헌터, 장사꾼.

헌터 부대.

대형 길드.

연합 레이드 팀.

북에서 밀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

도토리 숲의 악마.

고블린 사냥터.

그리고 보란 듯이 ‘한글’, ‘한자‘, ‘일본어’를 새긴 붉은 화살들.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여러 개의 그림이 그려지고 지워지고를 반복하다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때 손에 느껴지는 감각.

탁-

김재권이 압착팩을 돌돌 말린 종이로 감싸 건네고 있었다.

“이 압착팩 그거다. 화살. 이 종이는 내 편지고. 이거랑 공적 확인서 가지고 신동대문에 돌아가서 이곳 소식 전해라.”

“……누구한테 소식을 전해야 할까요?”

천문석의 질문에 담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냐는 속뜻에, 김재권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특임대. 시청에 헌터 부대 특임대 왔을 거다. 특임대에 편지랑 증거를 모두 전하면 된다.”

“믿을 수 있을까요?”

천문석의 질문에, 김재권은 강화 전투복을 걷어 올렸다.

어깨에 새겨진 특임대 문신 아래 선명한 한글!

‘낙동강 전선.’

게이트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

헌터 부대, 특임대가 탄생한 낙동강 전선 출신 헌터 김재권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특임대는 믿을 수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