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10화>
노을이 짙게 깔리는 늦은 저녁.
고블린 평야가 시작되는 강변에서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야! 장갑 버스 앞으로 빼라니까! 그 장갑 버스로 성문 만들어야 해!”
구으으으응-
외침에 따라 장갑 버스는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고.
바스스슥-
다른 장갑 버스 성벽을 지나 불을 질러 시계 청소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때 다시금 들려오는 외침.
“멈춰! 그 위치에 가로로 세우고! 장갑벽 내려라!”
장갑 버스가 회전해서 가로로 세워지자 장갑 버스 하부의 강철판이 땅으로 떨어졌다.
쿵, 쿵, 쿵-
땅에 떨어진 강철판이 장갑 버스 타이어 와 하부의 공간을 완전히 가렸고, 장갑 버스는 다른 장갑 버스 성벽 앞에 놓인 미닫이 성문이 되었다.
“재권아! 장갑 버스는 이게 마지막이야! 남은 건 구출팀 애들이 쓸 장갑 SUV밖에 없다!”
천문석에게 고블린 사냥을 보여 주던 베테랑 헌터.
김재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다리를 타고 장갑 버스 위로 올라갔다.
장갑 버스를 이어 만든 성벽이 자리한 강변.
강에 떠 있던 뗏목, 헌터 캠프에서 장비가 쏟아져나와 장갑 버스 성벽 위로 옮겨지고 있었다.
지붕 앞쪽에 방패와 간이 장벽을 세우고, 뒤에 모래 포대를 쌓은 후 화력이 강한 지원 화기를 거치한다.
지시 없이도 능숙하게 움직여 방어진지를 보강하는 헌터들은 고블린 평야 너머 마석 광산과 산맥으로 가려던 베테랑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성벽 안 강변 곳곳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구출팀 구성 중입니다! 정찰 가능하신 분! 마력 각성자! 광역 스캔 가능한 마력 각성자 없습니까?”
장갑 SUV 위에 선 한 헌터의 외침에 외국인 헌터가 번쩍 손을 들고 즉석에서 5인조 구출팀이 구성됐다.
사냥터 분쟁으로 감정이 안 좋지만, 마수와 몬스터 앞에서 국가와 인종은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계, 외국계 할 것 없이 사방에서 구출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구출팀만 20개 조.
이들의 목표는 고블린 평야 곳곳에 고립돼 있을 헌터의 구조였다.
그러나 아직도 구출팀은 출발하지 못했다.
문제는 정보 부족.
임시 지휘를 맡은 김재권은 문득 고개를 돌려 노을이 지는 고블린 평야를 바라봤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 구릉이 길게 이어져 시야를 가렸지만, 전신을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살기!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블린 평야는 난장판이 됐다!
끼이이-
크아아-
거센 바람에 마수의 포효와 몬스터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지난 한 시간 고블린 평야에서 나타난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몰살당한 건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떠오를 때,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권아! 구출팀에서 언제 출발할 수 있냐고 묻는데! 어떻게 할까? 정보가 없어도 출발시켜야 하는 거 아냐?”
김재권은 옆에서 광역 스캔 중인 마력 각성자를 봤다.
“혹시 뭐 나온 거 있습니까?”
고개를 젓는 마력 각성자.
“……엄청난 수의 마수와 몬스터가 날뛰고 있습니다. 스캔이 제대로 안 됩니다. 몬스터 웨이브 같긴 한데…… 정작 강으로 오는 놈들이 없으니…… 이상하네요.”
이때 성문 역할을 하는 장갑 버스로 다가오는 장갑 SUV.
한 헌터가 조수석 창으로 몸을 내밀고 외쳤다.
“야! 문 열어 줘! 그냥 출발해야겠다! 우리 길드 애들 저 밖에 고립됐어!”
김재권이 임시로 지휘를 하고 있지만, 헌터 간에 상하 관계는 없었다.
동료가 고립됐는데 정보가 없다고 언제까지고 막아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움직이는 게 낫다.
“기다려라! 한 번에 같이 움직이자! 기석아! 구출팀 한 번에 출발한다고 전해라!”
“알았어!”
구출팀 장갑 SUV가 출발하기 위해 성문 앞으로 하나둘 모일 때.
구릉지 위 정찰병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잠시만 기다려! 통신 들어온다!”
헌터용 통신기를 잡은 헌터가 다급히 외치고 통신을 받았다.
“……차가 나타났다고!?”
“차가 아니라 화물차? 몇 명이나 탔냐?”
“수십 명?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화물차에 무슨 수십 명이 타!”
……
모두가 의아해하는 순간 들려오는 엔진음!
구으으으응-
“마력엔진음!?”
“고블린 평야 방향이다!”
“생존자가 나타났다!”
……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다급히 장갑 버스 성벽 위로 올라갔다.
고블린 평야 방향!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높아지는 구릉 위를 한 대의 화물차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어, 저거 뭐야!?”
“화물차? 뭔가 이상한데?
“……저기 겉에 전부 사람이다!”
화물차를 본 헌터들은 경악으로 입을 떡 벌렸다.
화물차 지붕과 옆, 보닛!
보이는 모든 곳에 사람이 달라붙어 있었다!
얼핏 봐도 스무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
순간 화물차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뒤에……!”
“시발! 견제사격!”
“뒤에 쏴라! 빨리! 사격해!”
……
화물차에 다닥다닥 매달린 헌터들이 일제히 외쳤다.
끼이이익-
외침과 동시에 구릉지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수많은 랩터 무리!
뒤이어 몬스터 무리가 쏟아졌다.
후드드득-
고블린 독침이 쏟아지고.
투드드드드-
오크 라이더가 언덕을 뛰어넘는다.
헌터들을 가득 실은 화물차 뒤, 마수와 몬스터의 파도가 밀려 오고 있었다!
김재권은 곧 정신을 차리고 명령했다.
“마력 각성자! 원딜! 살상지대 설정!”
곧 화물차 뒤쪽으로 쏘아지는 신호탄과 결집하는 마력!
휘이잉, 쾅, 콰쾅-
신호탄이 터지고 붉은 살상지대가 곳곳에 생겨나는 동시에 진지 곳곳에서 외침이 터졌다.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외침이 길게 이어지자, 화물차에서 매달린 헌터들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사선 확인!”
“빌어먹을! 사선 확인!”
“빨리 사격해! 사선 확인!”
그리고 시작되는 사격!
타타타탕-
타타타, 탕-
개인화기와 진지에 거치된 공용화기에서 마탄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이세계에서 더 강해진 몬스터 반발장에 마탄의 위력이 확 죽었지만, 충격량은 전해진다.
마탄에 맞은 랩터, 오크가 구르는 순간, 그 뒤를 달리는 수십 마리 몬스터가 뒤엉켰다!
끼에에엑-
크아아앙-
그리고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터지는 순간, 그 위로 쏟아지는 마력 각성자의 광역 메즈기!
몸을 일으키던 몬스터가 엄청난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픽픽 쓰러지고 다시 한번 뒤엉켰다.
타타타, 탕-
마력장이 깎인 몬스터 위로 마탄이 쏟아지고.
화르르륵-
파지지직-
마력 각성자의 화염과 전격 마법이 발현됐다.
약화된 반발장을 뚫고 들어가 단숨에 마수와 몬스터를 무력화시키는 마법!
그러나 물밀듯 밀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화망에서 빠져나온 마수가 펄쩍 뛰어오르고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무기를 던졌다.
으아아악-
스쳐 지나가는 무기와 공격에 화물차에 매달린 헌터들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마수 무리에 잡힐 것 같던 화물차가 폭발적으로 치고 나왔다!
구으으으으응-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는 화물차!
그러나 어느새 화물차 주위로 마수가 하나둘 달라붙고, 몇몇 몬스터는 마탄 사격에 어그로가 끌려 성벽으로 돌진했다.
화물차 앞, 길이 막히고 있었다!
“이대로 못 들어오겠는데!”
“전복된다! 위험해!”
“길 열어 줘야 한다!”
……
헌터들의 다급한 외침이 터질 때, 임시지휘관 김재권은 재빨리 명령했다.
“성문 열 준비해라! 화물차 바로 들여야 한다! 탱커, 격수 준비! 화물차 들어올 길 열어 준다!”
외침과 동시에 성문 역할을 하는 장갑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구으으으으응-
그리고 장갑 버스 성문 뒤로 달려오는 구출팀 헌터들!
“대기! 대기! 대기!”
김재권이 타이밍을 재다가 외치는 순간!
“열어라!”
틈 하나 없이 주차된 장갑 버스 성문이 미끄러졌다.
끼이이익-
강철판이 맞물려 갈리고, 불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순간.
“달려라!”
“길을 연다!”
……
방패를 든 탱커와 간이 방벽을 짊어진 격수들이 열린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흐아악!
이야악!
기합을 지르며 몬스터를 방패로 밀어붙이는 탱커들!
산발적으로 달려 오던 몬스터가 탱커의 힘과 돌진력에 밀려 나는 순간!
쿵, 쾅, 쾅, 쿵-
격수들이 간이 방벽을 들고 달려 박아 넣었다.
땅에 박혀 들어가 산발적으로 달려오는 마수와 몬스터의 흐름을 막아 낸 간이 방벽!
“으아악! 방패 세워!”
“격수 등 받혀라!”
“어깨 붙여!”
“단숨에 밀어붙인다!”
“바닥! 바닥 정리해라!”
탱커가 방벽 사이를 막아 쏟아지는 몬스터와 마수를 막고, 다급히 달리는 격수들이 화물차가 들어올 길을 틔웠다.
이때 터져 나오는 마력엔진음!
구으으으으응-
틔워진 길로 수십 명의 헌터가 가득 매달린 화물차가 진입했다.
“고맙다! 하하하-.”
“새끼들아! 눈물 나게 고맙다!”
“시발! 더럽게 고맙다! 하하하-.”
화물차에 매달린 헌터들이 외치는 순간.
마수와 몬스터를 밀어내던 헌터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 미친 새끼들! 어떻게 그렇게 도망친 거야!?”
“마지막에 떨어지지 말고 들어와라! 하하하-.”
“더럽게 재수 좋은 새끼들! 하-.”
……
구으으으으응-
화물차는 단숨에 성문을 통과했고 김재권은 잇달아 명령했다.
“우선 성문부터 닫는다! 탱커, 격수! 뒤로 천천히 빠져라! 사다리! 밧줄 준비!”
끼이이이익-
장갑 버스는 열었던 공간을 바로 막았고, 곳곳의 지붕에서 사다리가 내려지고 카라비너가 걸린 밧줄이 던져졌다.
격수가 탱커의 방검 조끼에 카라비너를 걸고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고.
“먼저 간다!”
끝까지 몬스터를 막던 탱커는 몇 명의 헌터가 밧줄에 달라붙어 끌어올린다.
“단숨에 당긴다!”
하아앗-
이야약-
화물차가 들어올 길을 열어 준 베테랑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철수했다.
크아아앙-
끼에에엑-
쿵, 쿵, 쿵-
남겨진 마수와 몬스터가 광기를 터트려 장갑 버스 장갑판을 때리고 지붕으로 독침을 발사했으나.
타타타탕-
타타탕, 탕-
곧 직사로 쏘아진 마탄 사격에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김재권은 구릉지를 살폈다.
쏟아지던 마수와 몬스터 무리는 어느새 끊긴 상황.
장갑 버스 성벽에 붙은 마수와 몬스터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김재권은 장갑 버스에서 뛰어내려 화물차로 달렸다.
장갑 버스 성벽으로 둘러싸인 강변 교두보 중앙.
누군가 뿌린 물로 하얀 증기가 올라오는 화물차가 보였다.
차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물차에 바글바글 붙어 있던 헌터들이 떨리는 다리로 일어선 채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살았다!”
“하! 웨이브에서 멀쩡히 나오다니! 하하하-.”
……
그리고 사방에서 달려와 동료를 찾는 헌터들!
“시발! 너 살아 있었구나!? 하-.”
“마틴! 마틴 바이든!”
“안토닌 로롤로! 안토닌! 거기 없냐!?
“지혜! 누구 이지혜! 본 사람 없어? 마력 각성자다!”
“지오 길드! 지오 길드 사람 한 명도 없냐!?”
……
이때 화물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눈에 익은 여자가 보였다.
순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
“고맙다! 고마워!”
“와! 이런 미친 새끼!”
“이거 받아라! 내 성의다!”
“네 덕분에 살았다! 정말 고맙다!”
……
사방에서 헌터들이 다급히 달려와 여자의 어깨를 두들기고 마석을 무더기로 건네고 있었다.
“야, 됐고! 비켜! 좀 비키라니까! 급한 일 있어!”
엠마는 다급히 헌터들을 밀어내다가 김재권을 보고 한눈에 알아봤다.
고블린 사냥법을 가르쳐 줬던 베테랑 헌터!
엠마는 바로 외쳤다.
“밖에 아직 걔가 있어! 천문석!”
깜짝 놀란 김재권이 장갑 버스 성벽으로 뛰어올라갔을 때, 엠마의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는데?”
엠마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화물차를 쫓는 마수를 떼어 놓겠다고 뒤에 남았던 천문석.
천문석이 물이 뚝뚝 흐르는 모습으로 강에서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