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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09화 (21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09화>

천문석이 정의구현을 다짐하는 순간, 엠마가 깜짝 놀라 외쳤다.

“으앗!”

“또 뭐야? 너 꼬맹이냐? 왜 자꾸 깜짝깜짝 놀라!?”

“헌터! 아까 헌터들! 나무 위에 놓고 왔잖아!”

아차!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떡하지!? 너무 정신없이 달려서 어딘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장소 기억해! 자리 바꾸자! 거기 마수랑 몬스터 없으니까. 얼른 태워서 도망치자!”

“알았어!”

엠마와 자리를 바꾸고 차를 돌리는 천문석.

운전대를 잡은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엠마를 다시 봤다.

‘뭐지? 이 녀석 지금 다른 헌터를 구하러 가자고 한 거야? 이 녀석 원래 악당인데……? .’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엠마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버럭 소리 질렀다.

“앗! 야, 이 새끼야! 너 그때! 그 날! 우리는 내버려 두고 그냥 달렸잖아!”

“그때?”

“그날 말야! 그날! 처음 그날!”

천문석은 엠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엠마는 자신과 처음 만났던 이세계 쿠팡맨 때를 말하고 있었다.

“야, 왜 우리는 버리고 가고! 얘네들은 차까지 돌려서 구하러 가는 거야!?”

붉어진 얼굴로 분통을 터트리는 엠마.

천문석은 엠마가 이러는 이유를 짐작하니 내심 웃음이 났다.

‘하- 이 솔직하지 못한 녀석.’

천문석은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때 너희가 선빵 갈겼잖아? 태워달라고 공손히 부탁했으면, 당연히 차 세우고 태워 줬지.”

“…….”

엠마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천문석은 때로 비열하고, 자주 사기꾼 같고, 항상 잔머리가 비상했다.

그리고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파악해 냈다.

보통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타인을 쉽게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러나 천문석은 오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몇 번이나 위험을 무릅썼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갈림길들.

-엠마 자신을 버렸으면 더 쉽게 빠져나왔을 거다.

-오크 라이더에게 쫓기는 헌터들을 모른 척했으면 비늘 코뿔소를 타고 더 빠르게 도망쳤을 거다.

-애초에 베테랑 헌터 대신에 눈표범의 어그로를 끌지 않았으면 오늘 겪은 이 모든 위험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엠마는 어린 시절부터 뒷골목을 전전했고, 각성 헌터가 된 후에도 서로 뒤통수를 치려는 헌터 사이에서 성장했다.

천문석은 엠마가 처음 겪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단지 태워달라는 한마디 말을 했으면 됐다는 천문석…….

이 말을 듣는 순간 엠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 한마디 말을 했다면, 천문석은 설령 그날 뒤를 쫓는 모든 마수와 몬스터와 싸워서라도 자신들을 지켜 줬을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자신과 동료들이 기습하기 전에 단지 도와달라고 외치기만 했으면, 이 모든 악연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리라…….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엠마는 운전하는 천문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너무나 저열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

천문석은 엠마의 넋 나간 얼굴을 보는 순간 엠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됐다.

후회.

그러나 삶은 예측불허.

선연과 악연.

하늘이 엮어 내는 인과는 사람의 인지로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시작이 나빴다고 끝이 항상 나쁘지 않은 것처럼.

시작이 좋았다고 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과거의 선택을 후회해도 거기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었다.

사람은 모두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니까.

천문석은 엠마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툭-

“……?”

엠마가 고개를 드는 순간, 천문석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그래도 다행 아니냐?”

“다행……?”

의아해하는 엠마에게 천문석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너희가 사고 치는 덕분에 나처럼 훌륭한 부사장님을 만났잖아? 그때 너희가 선빵을 날리지 않았으면, 나처럼 인품과 능력이 모두 훌륭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을 거 아냐?”

카캬카-

천문석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

엠마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국어인 에스파냐어로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복잡한 감정!

그러나 한국어에는 이 복잡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한 ‘단어’가 있었다.

이 순간 엠마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가 튀어나왔다.

“……시발…….”

*   *   *

‘와- 엠마 이 녀석 완전 한국어 네이티브잖아!?’

천문석은 감탄하며 화물차를 돌려 헌터들이 있는 숲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마수와 몬스터가 사라진 평야를 가로질러 달려오는 헌터들이 보였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습니다!”

……

헌터들은 화물차가 나타나자, 다급하게 소리치며 전력 질주했다.

“야, 오랜만이다!”

화물차를 세운 천문석이 손을 흔들자, 헌터들은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 어어!?”

“우리 아까 구해 준!? 맞지!?”

“어떻게 된 거야!?”

“화물차 가지고 돌아온 거야!?”

……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타라. 여기 곧 마수 몰려 온다!”

다급히 뒷좌석에 끼어 타는 헌터 네 사람.

“고맙다! 정말 고마워!”

“와-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 좋게 구하러 오냐!”

헌터들이 다급히 감사를 전할 때.

천문석은 바로 화물차를 돌려 도로를 향해 달렸다.

구으으으응-

속도를 올리는 화물차 운전석.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엠마…… 우리 뭐 잊은 거 같지 않냐?”

“……잊었다고?”

잠시 생각하던 엠마가 대답했다.

“고블린 마비독? 압착팩 놓고 와서 그래?”

“아니. 그거 말고. 뭔가 깜빡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기억 안 나면 중요하지 않은 거겠지.”

“그렇겠지?”

천문석은 화물차 속도를 올렸다.

구으으으응-

어느새 천천히 노을이 지고 있고, 잠시 멈췄던 마수와 몬스터의 폭풍이 다시 몰아치려 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캠프에 도착해야 했다!

……

천문석과 엠마가 떠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참나무 숲 언덕.

초거대 사슴벌레가 뚫어 놓은 거대한 구멍에서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잉-

이 바람에는 마수 무리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크아앙-

크아아앙-

이 울음소리는 천문석의 뒤를 끈질기게 쫓던 적.

우두머리 눈표범과 수십 마리의 눈표범의.

서글픈 울음소리였다.

*   *   *

휘이이이잉-

마수와 몬스터로 난장판이 된 고블린 평야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이 거센 바람을 타고 활강하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다.

작은 다람쥐는 능숙하게 바람을 타고 활강하다가.

탁-

어쩐지 거만해 보이는 천둥 기린의 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파지직-

순간 천둥 기린의 뇌전이 쏟아졌으나.

콰득-

아무렇지도 않게 기린의 목을 무는 작은 다람쥐, 니케!

“……!”

이 순간 천둥 기린은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콰지지직, 쾅, 쾅, 쿵--

발버둥 치며 사방으로 엄청난 뇌전을 뿜어내는 천둥 기린!

그러나 이건 오히려 니케의 화만 돋웠다.

콰득, 콰득, 콰드득-

니케는 세 번 연속으로 물었고.

쿵, 쾅, 쿠르릉, 쾅-

영혼을 때리는 듯한 고통에 땅을 데굴데굴 구르던 천둥 기린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듯이 도망쳤다.

순간 신나게 웃는 니케!

킥, 키키킥-

니케는 마수와 몬스터를 쫓아내는데 너무나 몰입해, 어느새 도토리 숲 너머 고블린 평야까지 날아왔다.

니케는 거만해 보이는 마수와 몬스터를 보이는 데로 물었고,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킥, 키킥-

‘다음에는 어떤 놈을 손봐줄까!’

신나게 외친 니케가 다시 한번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쿠르르르르릉-

대지가 진동했다.

“……?”

어쩐지 익숙한 진동에 고개를 갸웃할 때 터지는 폭음!

콰아아앙-

멀리 숲에서 불쑥 거대한 톱날 집게가 튀어나왔다!

날아오르려던 니케는 깜짝 놀라 몸을 바싹 숙였다.

얼핏 봤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도토리 숲에 독촉장을 남겼던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보낸 채권 추심원, 사슴벌레다!

‘착한 황금 다람쥐 일족을 등쳐먹는 돈벌레 같은 지하세계 마법사 놈들!’

니케는 분통을 터트렸으나, 곧 안절부절못했다.

어떡하지!?

케페니안으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마법이 시작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이제 곧 문이 열릴 텐데…….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중도금을 내지 못했다!

지금 대금 지급을 못하면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고향으로 가는 문을 닫아버릴 텐데!

고향을 생각하는 순간, 아직 어린 니케는 눈물이 찔끔 났다.

끝없는 숲과 평야, 강과 언덕이 펼쳐진 황금의 대지.

수많은 차원에 파견 나가 용병으로 일하는 황금 다람쥐 일족의 고향.

케페니안!

문득 고향의 집이 생각난다.

나무 가장 아래, 축축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고, 월세도 엄청 비싼, 반지하…….

“……!?”

니케는 깨달았다.

고향에 돌아가면 낮은 나무 다람쥐로 돌아간다!

아니 그냥 낮은 나무도 아닌 막대한 빚을 진 빚쟁이 낮은 나무 다람쥐다!

처음 소환한 마법사가 의뢰비를 안 주고 도망가 막대한 빚을 졌고, 고향에 돌아가 빚을 갚고 숲을 살 보물 도토리도 도둑맞은 것이다!

그래서 그냥 배를째기로 했었는데…….

그걸 깜빡하다니!

니케는 숙였던 몸을 번쩍 일으켰다.

모든걸 잃은 자신은!

더는, 지하세계의 채권 추심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니케는 타다닥 달리다 펄쩍 뛰어 바람을 타고 높게 날아올랐다.

휘이이잉-

높게 높게 하늘을 날아 은밀히 채권 추심원에게 다가가는 니케!

구멍이 뻥 뚫린 숲.

더듬이가 축 늘어진 초거대 사슴벌레와 황금빛이 명멸하는 풍뎅이가 보였다.

니케는 곧 둘의 정체를 알아챘다.

-사슴벌레 =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보낸 어깨.

-풍뎅이 = 지하세계의 수습 마법사.

2인조 채권 추심원!

킥, 키기-

‘그런데 쟤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의문은 곧 풀렸다.

띧띠띠띧 띧 띧띧띧띠 띠디 띧띠 띠띠띧-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황금빛 풍뎅이의 성난 울음소리!

구으, 구으응-

더듬이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우는 거대 사슴벌레!

잠시 후 황금빛 풍뎅이와 거대 사슴벌레는 빙글 몸을 돌려 수직으로 뚫린 구멍으로 들어갔다.

순간 니케의 눈에서 황금빛 섬광이 번뜩였다.

길을 잃었구나!

숨 쉬는 것도 돈을 내야 하는 지하세계, 스카라베 왕국!

채권 추심을 왔는데 대금을 받지 못하면,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

휘이이이잉-

순간 남서풍이 불어오고, 니케의 섬광이 번뜩이는 눈이 바람이 불어오는 남서쪽으로 향했다!

복수 명단 1순위, 거대 삼색 고양이가 있는 곳!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 순간 당장 복수할 방법이 떠올랐다!

킥, 키키킥-

니케는 신나게 울음을 터트리고.

뚝-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휘이이잉-

대기를 가르고 떨어져 내린 니케는 수직으로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구멍 안 뜨겁고 건조한 스카라베의 왕국의 바람이 불어오고, 문양이 새겨진 단단한 돌이 깔린 통로가 나타났다.

니케의 눈에 두려움이 감돌았다.

처음 지하세계, 스카라베 왕국의 마법사들을 불렀을 때의 느꼈던 그 바람이다!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케페니안과 달리, 지독한 돈벌레가 모여 있는 스카라베 왕국!

이 통로는 스카라베 왕국까지 이어져 있다!

니케는 혹시라도 스카라베 왕국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의 느낌이 전해지는 통로로 날아갔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잠시 후.

꾸으우웅우웅으-

띠띧띠 띧 띠띠디 띧-

니케가 날아간 통로에서 영혼이 붕괴하는 듯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은 길게 길게 한참을 이어지다가 뚝 그쳤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과 고요.

그러나 정적은 길지 않았다.

쿠르르르르르릉-

땅을 파는 진동이 다시금 울려 퍼지고.

쿵, 쿵, 쿵-

파인 땅 사방의 흙이 단단한 벽돌이 되어 고정된다.

다시 땅을 파는 초거대 사슴벌레의 머리 위에는 황금빛 풍뎅이를 깔고 앉은 작은 다람쥐가 있었다.

킥, 키킥-

작은 다람쥐, 니케가 우는 순간.

구으으-

두려움에 더듬이가 빳빳해진 초거대 사슴벌레가 즉시 방향을 바꿨다.

띧띠띠 띠띧띠-

황금빛 풍뎅이가 소심하게 항의했지만.

딱-

니케가 무는 시늉을 하자, 깜짝 놀라 파르르 떨었다.

거대 사슴벌레, 황금빛 풍뎅이.

든든한 부하가 둘이나 생긴 니케는 눈을 번뜩였다!

복수 명단 1순위, 거대한 삼색 고양이!

이제 그 녀석을 때려잡으러 갈 때다!

킥, 키키킥-

니케가 한 방향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

“……?”

사슴벌레와 풍뎅이는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딱-

니케의 이빨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재빨리 명령대로 땅을 팠다.

쿠르르르르-

쿵, 쿵, 쿵-

고블린 평야 지하에서 거대한 지하도가 엄청난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니케와 사슴벌레, 풍뎅이.

커맨더, 탱커, 마법사.

셋으로 이뤄진 파티가 만들어졌다.

초거대 사슴벌레.

황금빛 풍뎅이.

두 채권 추심원은 고블린 평야가 초행길이었고.

파티의 리더 니케는 자주 깜빡깜빡하는 다람쥐였다.

당연히 니케에게 땅속에서 제대로 길을 찾을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니케가 명령하고 초거대 사슴벌레가 파는 지하도는 신동대문 방향으로 뚫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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