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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08화 (20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08화>

초거대 사슴벌레가 넋을 놓고 있을 때.

파르르르-

참나무 숲에서 황금빛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탁-

황금빛 풍뎅이는 초거대 사슴벌레의 얼굴에 내려앉아 날개를 흔들었다.

띠, 디딛-

디띧띠띠-

곧 특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더듬이가 축 늘어지는 초거대 사슴벌레.

초거대 사슴벌레는 빙글 몸을 돌려 자신이 뚫고 나온 구멍으로 들어갔다.

쿵, 쿵, 쿵-

그리고 잠시 후 대지가 다시금 흔들렸다.

구르르르르르-

예전보다 약해진 흔들림은 천천히 남서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걸 보고 있던 천문석은 직감했다.

목적지를 잘못 찾은 초거대 사슴벌레가 고블린 평야 남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시에 머리에 떠오르려는 수많은 생각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엠마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천문석은 엠마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외쳤다.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화물차 챙겨서 튀자!”

“뭐, 아니! 거대 괴수가……!?”

진동이 느껴지는 땅을 가리키는 천문석.

“거대 괴수. 이동했다! 잘 들어 봐! 땅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멀어지지? 그리고 기회다 주위를 봐!”

“……!”

엠마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훑어보는 순간 천문석이 뭘 말하는지 깨달았다.

거대 곤충 괴수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주위의 모든 마수와 몬스터가 도망갔다!

휑할 정도로 텅 빈 평야!

“내가 장애물을 치울게! 넌 화물차에 시동을 걸어! 바로 빠져나가자!”

“알았어!”

천문석과 엠마는 바로 참나무 숲이 있는 언덕으로 뛰어들어갔다.

참나무 숲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멍이 수직으로 뚫려 있었다.

거대한 구멍은 다행히 화물차를 숨겨 둔 곳과는 거리가 있었다.

천문석은 초거대 사슴벌레가 나온 구멍 옆을 달리다가 문득 구멍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휘이이잉-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

마치 사막의 열풍을 담은 듯한 이 바람에는 아주 작은 쇳소리가 실려 있었다.

까…… 앙, 가아앙-

그리고 문득 느껴지는 기이한 직감.

초거대 사슴벌레가 뚫어 놓은 이 구멍에서, 처음 게이트를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 온다.

이 구멍이 게이트처럼 어딘가로 이어져 있다는!

‘들어가 볼까?’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한발 움직이는 순간 엠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 고블린 평야 지긋지긋하다! 바로 빠져나가자!”

흠칫 놀라 정신을 차린 천문석은 재빨리 화물차를 숨겨 둔 곳으로 달렸다.

*   *   *

주위평야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참나무 숲.

초거대 사슴벌레가 나타나며 숲 곳곳의 나무가 쓰러지고, 땅이 불룩불룩 솟아 있었다.

‘이거 차에 문제 생긴 거 아냐…….’

천문석은 내심 걱정했지만, 위장을 위해 씌워둔 나뭇가지가 흩어져 난장판이 됐어도 다행히 화물차는 무사했다!

“엠마 바로 시동 걸어라! 길 열게!”

“알았어!”

천문석은 화물차 주위에 흩어진 나무를 집어던지고 바퀴 주위의 자잘한 돌을 차 냈다.

그리고 화물차가 빠져나갈 진행로에 쓰러진 나무를 잡았다.

으아아악-

내력을 끌어올리며 단숨에 들어 올려 집어던진다!

쏴아아악, 쿵-

쓰러진 나무를 치워 길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시동 소리.

구으으으응-

“준비됐어!”

“숲에서 나갈 때까지! 내 뒤로 천천히 따라와라!”

천문석은 앞장서 달리며 길을 열었다.

쓰러진 나무를 밀어내고, 툭 튀어나온 바위를 뽑아 던진다.

푹 꺼진 구덩이에 흙을 채워 넣고, 쓰러진 곳곳에 쓰러진 마수와 몬스터를 집어던진다.

천문석은 정신없이 길을 열었고, 화물차는 곧 참나무 숲이 있는 언덕을 빠져나왔다.

도로까지는 300여미터, 수풀이 우거진 평야!

“야, 이제 올라타!”

운전석의 엠마가 외쳤지만,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다!”

수풀 곳곳 쓰러진 마수와 몬스터 사체가 있다.

바퀴에 몬스터 날붙이, 천 조각이라도 빨려 들어가면 바퀴가 아작날 수 있었다.

지금 이 화물차는 자신과 엠마의 목숨줄!

작은 위험도 감수할 수 없었다.

“도로 위로 올라갈 때까지는 내가 길 열게! 내 뒤를 따라 천천히 속도 올려라!”

천문석은 기감을 퍼트리고 앞장서 달리며, 수풀 곳곳에 쓰러진 마수와 몬스터 사체를 치웠다.

잠시 후 화물차는 비포장도로에 도착했고, 엠마는 화물차 속도를 높이며 외쳤다.

구으으응-

“야, 빨리 타! 시야 트였어!”

천문석은 몸을 돌려 화물차 보닛으로 뛰어올랐다.

쿵-

보닛에 오른 천문석은 운전석의 엠마에게 외쳤다.

“엠마. 혹시 모르니 주위 좀 확인할게!”

운전석을 밟고 뛰어 화물칸 지붕에 올라선 천문석.

천문석은 내력으로 시력을 올리고 기감을 얕고 넓게 퍼트려 주위를 훑었다.

화물차 주위에는 기감에 걸리는 게 없었다.

기감에 걸리는 마수와 몬스터, 야생 동물 대부분이 한참 먼 곳에 있었다.

이대로 전속력으로 달리면, 곧 강에 세워진 헌터 캠프에 도착한다!

새끼 눈표범의 기습을 받으며 시작된 난장판에서 마침내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 주위는 초거대 사슴벌레가 나타났기 때문에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것이다.

다른 곳에선 마수와 몬스터가 뒤섞인 거대한 태풍이 여전히 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수만에서 수십만에 달할 마수와 몬스터로 엉망진창인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또 어떻게 처리하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우선 맞닥뜨린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 할 일은 무사히 빠져나가는 거다.

구으으으응-

점점 속도를 올리는 복합엔진 화물차 지붕.

한동안 주위를 훑던 천문석이 내려가려 할 때.

평야 멀리 먼지가 확 피어오르고, 뒤늦게 둔중한 굉음이 들려왔다.

과아아앙-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순간, 사방으로 날아가는 나무와 땅에서 쑤욱 올라오는 거대한 톱날 집게가 보였다!

초거대 사슴벌레!

남서쪽 방향, 평지 숲에서 초거대 사슴벌레가 튀어나왔다!

쿠르르르릉-

하늘을 떨어 울리는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터졌다!

천문석이 바짝 긴장한 순간.

초거대 사슴벌레는 커다란 머리로 한동안 주위를 살피더니…….

다시 사라졌다.

“……!”

순간 천문석은 완전히 감을 잡았다.

저 초거대 사슴벌레는 어떤 숲, 혹은 숲에 있는 무언가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초거대 사슴벌레가 이동하는 방향은 남서쪽!

“저 방향에 뭐가 있었지.”

기억을 되짚는 순간, 머리에 그려지는 지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거대한 산맥과 강으로 막힌 고블린 평야 북동쪽이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이동하면 자잘한 숲이 널린 들판, 황무지, 구릉지, 늪지대, 열천이 솟는 웅덩이와 하천이 길게 이어지다가 랩터 무리가 서식하는 갈대 늪지가 나온다.

그리고 갈대 늪지 뒤에는 도토리 숲이 있었다.

다행히 갈대 늪지에서는 헌터들이 모두 철수했고, 도토리 숲은 흉흉한 소문 때문에 들어가는 헌터들이 없다.

그리고 도토리 숲 너머에는 황무지, 거친 바위산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곳에는 헌터들이 모이는 사냥터도 없고, 거점 마을도 없었다.

하-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안도의 한숨.

다행히 초거대 사슴벌레로 인한 인명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이때 엠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너 괜찮냐!? 지금 소리 들었어!? 뒤에 타고 있는 거 맞아! 대답 좀 해 봐!”

쿵, 쿵, 쿵-

문득 고개를 돌리니 창문 밖으로 길게 몸을 뺀 채 차 문을 두들기는 엠마가 보였다.

엠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신 외치고 있었다.

천문석은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이세계 쿠팡맨 때는 엠마는 화물차를 빼앗으려 달렸고, 자신은 이곳 지붕에서 엠마를 온갖 방법으로 굴리고 인간 방패로 써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화물차에 탄 동료가 됐다.

문득 오늘 하루 동안 겪은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

허술한 악당 엠마는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에서 혼자 도망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끝까지 자신과 같이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참나무 숲에 눈표범 무리가 나타났을 때는 도와주겠다고 달려 오기까지 했다.

하-

어쩐지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이제야 엠마가 믿을 수 있는 진짜 동료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문석은 운전석 지붕으로 돌아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나 여기 있다! 너, 나 걱정했냐?”

“걱정은 무슨!”

엠마는 어이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르며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천문석은 조수석 창으로 다리를 넣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하냐? 계획 있어?”

엠마의 물음에 천문석은 화물차 앞 뻥 뚫린 비포장도로를 가리켰다.

“당연히 계획 있지. 우선 이 도로를 따라 동쪽 강, 헌터 캠프까지 달리고.”

“달리고?”

“바지선 타고 건너서 신동대문까지 도망쳐야지.”

“……그게 계획이라고?”

어이없어하는 엠마에게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면? 지금 고블린 평야에 마수와 몬스터가 수만에서 수십만이 깔렸을 텐데. 우리 둘이서 뭘 어떻게 해? 하나하나 때려잡게? 아니면 둘이서 아까 그 초거대 사슴벌레랑 싸우게?”

“아니…… 그래도…… 혹시 너라면…… 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엠마가 주저주저하며 말할 때 천문석은 내심 뜨끔했다.

‘엠마. 이 뜬금없이 예리한 녀석!’

사실 자신에게는 이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을 정리할 방법이 있긴 했다.

문제는 난장판만 정리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끝장날 가능성이 큰 방법이라는 것.

처음에는 내력을 끌어올리고 마음에 단단한 벽을 세워 격전을 벌일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초거대 사슴벌레가 떠나간 지금, 천문석의 전의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막연하나 너무나 강한 직감이 든다.

초거대 사슴벌레와는 싸울 일이 없을 거라는, 이 녀석은 적이 아니라는 직감이…….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엠마의 어깨를 툭 쳤다.

“야, 걱정할 거 없어.”

“……방법이 있는 거야?”

솔깃해하는 엠마에게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연합 레이드 팀이 오고 있잖아?”

“연합 레이드 팀! 그렇지!”

엠마는 환해진 얼굴로 탄성을 터트렸다.

대형 길드 여러 개와 헌터 부대 특임대가 하나로 뭉친 ‘연합 레이드 팀‘이 오고 있었다!

한국 헌터 업계 최상위층, ‘대형 길드’.

엘리트 중의 엘리트 헌터 부대 ‘특임대’.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거대 괴수, 마경 토벌 전문가들이다.

고블린 평야의 난장판은 이들이 해결할 것이다.

천문석과 엠마 같은 일반 헌터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아니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천문석은 문득, 허리 잡낭 안에 넣어 둔 압착팩을 꺼냈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작은 압착팩.

이 압착팩 안에는 새끼 눈표범에게서 회수한 붉은 화살이 들어 있었다.

이번 고블린 평야, 마수와 몬스터 폭풍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

스노우볼을 굴린 범인이 사용한 붉은 화살!

천문석은 눈을 번뜩였다.

신동대문에 돌아가는 대로 사냥의 규칙을 어긴 놈들을 아작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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