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07화>
“…….”
“…….”
숲으로 달리던 천문석과 엠마는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우리 화물차가 있는 숲에 왜 우두머리 눈표범이 기다리고 있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엠마가 분통을 터트렸다.
“하- 저 끈질긴 놈! 어떻게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주위를 훑어봤다.
크아아앙-
끼에에엑-
굉천수를 얻어맞고 쓰러진 마수와 몬스터들이 거친 울음소리를 토해 내고, 멀리서 밀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들도 이놈들에게 걸려 쓰러지고 있다.
몰아치던 마수와 몬스터의 흐름이 막힌 상황.
그러나 무력화된 놈들은 곧 회복하고 이곳 참나무 숲 주변은 마수와 몬스터의 흐름에 삼켜진다.
퇴로가 막히는 것이다!
외통수!
어떻게든 무력화된 놈들이 회복하기 전에 화물차를 찾아서 빠져나가야 했다!
천문석은 우두머리 눈표범을 향해 외쳤다.
“야! 새끼 끌고 달린 거는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새끼 몸에 박혀 있던 화살도 뽑아줬어! 우리 이제 그만 각자의 갈 길을 가자!”
천문석이 진심을 담아 호소했지만,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크아아아앙-
우두머리 눈표범은 저릿저릿한 피어가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어떻게 된 게! 끝없이 사고가 터져! 시바! 무슨 초보자 사냥터가 이렇게 빡세! 헉, 허억-.”
조금 전까지 환호성을 지르던 엠마가 숨을 몰아쉬며 분통을 터트렸다.
“…….”
천 문석도 동감이었다.
이번 일 분명 처음에는 운이 좋았는데…….
갑자기 눈표범이 나타나더니 일이 꼬이고 난장판이 됐다.
임기응변으로 재빨리 도주로를 찾아 도망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벤트가 발생했다.
처음 했던 헌터일 이세계 배송의뢰, 쿠팡맨 때보다 더한 난장판이 만들어지고 빡세게 구르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신나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더 굴러라! 더 신나게 굴러라!’
그래도 천문석은 부사장이자, 엠마의 상사였다.
임원이 직원과 똑같이 불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엠마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야, 걱정할 것 없어! 저 우두머리 눈표범 한 마리뿐이다! 처리할 방법 있다!”
“뭐!?”
천문석은 왼팔에 감긴 강철 구렁이를 들어 보였다.
“저놈 상대하기 힘든 건 타점이 제대로 안 잡혀서다! 강철 구렁이! 이걸로 저놈을 상대하면 된다!”
“그럼?”
엠마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생겨나는 순간.
툭-
엠마의 손에 쥐어지는 열쇠 뭉치.
“내가 저 눈표범 상대하는 사이에, 넌 우회해서 숲으로 들어가. 화물차 시동을 걸고 끌고 나오면 내가 거기로 올라탈게.”
“너…….”
화물차 열쇠를 손에 쥔 엠마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천문석은 가장 위험한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고 있었다.
“야, 얼굴이 왜 그래? 나 엄청 세다? 충분히 상대할 만해.”
“…….”
“그럼 화물차 끌고 와라. 이따가 보자.”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엠마의 등을 툭 치고 옆으로 달려 나갔다.
“야! 제대로 한판 붙자!”
함성을 지르며 오른손에 강화 해머로 왼손의 강철 구렁이를 두들긴다!
깡, 깡, 깡-
날카로운 쇳소리가 징처럼 울리는 순간.
크아아아앙-
우두머리 눈표범은 포효하며 천문석을 향해 달렸다.
참나무 숲의 아름드리나무와 수풀을 지나 달려오는 눈표범.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운공하며 눈표범과 자신을 견주었다.
장거리 이동속도와 지구력은 자신보다 못하다.
그러나 폭발적인 민첩성과 공격력은 자신보다 낫다.
게다가 타점을 흘리는 잔상을 만들어 내고, 굉천수도 먹히지 않는다.
믿을 것은 하나, 강철 구렁이 채찍!
차르르륵-
천문석은 왼팔에 감긴 강철 구렁이를 느슨하게 풀어내며 머릿속으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오른손의 강화 해머를 휘둘러 방심을 유도하고, 왼손의 강철 구렁이로 몸통을 꽁꽁 감아 버린다!
강철 구렁이가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엠마가 화물차를 가져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화물차를 타고 잽싸게 도망가면서 리볼버를 갈기면, 지구력이 떨어지는 눈표범은 절대 따라붙지 못한다!
천문석이 전투 계획을 완성하는 순간 엠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화물차 바로 가져올게! 어떻게든 버티고만 있어!”
크아아앙-
이 순간 터져 나오는 포효!
후두두두둑-
우박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성한 숲의 나무 위에서 눈표범들이 쏟아졌다!
하나둘 몸을 일으키는 눈표범들!
섬뜩한 살기가 천문석에게 쏘아졌다.
우두머리 눈표범만이 아니었다.
다른 눈표범들도 참나무 숲에서 매복해 있었다!
서른 마리 가까운 눈표범 무리 전체가!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주위를 훑었고 외통수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하-
짧은 헛웃음이 터지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엠마! 계획 변경한다! 화물차 찾으면 그냥 달려! 돌아올 필요 없다!”
짧게 외치고 달려가는 천문석.
“야! 기다려! 야 시발! 멈추라고!”
엠마가 다급히 제지할 때.
크아아앙-
크아아앙-
수십 마리의 눈표범이 일제히 포효를 내질렀다.
천문석도 끌어올린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와라! 여기서 끝장을 보자!”
쿵, 쿵, 쿵-
천문석은 기세를 끌어올리며 돌진속도를 조절했다.
엠마는 화물차가 숨겨진 숲과 홀로 눈표범 무리로 돌진하는 천문석을 몇 번이나 보다가 외쳤다.
“시발! 시발! 내가 미쳤지! 야, 같이 가자! 혼자선 안 돼!”
엠마는 활을 뽑아 들고 천문석을 향해 달렸다.
전력으로 달려간신히 천문석을 따라잡는 순간.
쿵-
땅이 울렸다.
“어……?”
달려가던 엠마가 문득 땅을 보는 순간.
쿠르르-
땅이 흔들리고 뒤이어 참나무 숲이 거칠게 요동쳤다.
쿠르르르르릉-
점점 강해지는 진동!
비틀어 쥐어짜듯 흔들리는 대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요동치고 있었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엠마는 절규하듯 외쳤다.
“지진!”
* * *
“지진!”
쿠르르르르릉-
“지진? 지진이라고! 진짜로! 정말로! 지금 이 타이밍에 지진이 난다고? 시발! 이렇게 재수 없는 게 말이 돼!? 으아아아악-.”
엠마는 목이 터질 듯 소리쳐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이 순간 달리던 천문석은 굳은 얼굴로 우뚝 서 있었다.
수천의 전장에서 살아난 예감이, 천외천의 경지에 도달했던 무인의 직감이 말한다.
이건 지진이 아니다!
부르르 떨리는 손과 경련하는 전신.
전신의 솜털과 머리털이 쭈뼛 솟아오르고 오금이 저리다!
참나무 숲 속을 달리던 눈표범 무리도 어느새 멈춰 서 꼬리를 말고 한곳에 뭉쳤다!
압도적인 강적의 예감!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천문석은 이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지는 곳을 봤다.
대지!
순간 땅속 깊숙한 곳에서 엄청난 용트림이 터져 나왔다.
그아아아아앙-
엄청난 진동에 드넓은 대지가 파도가 치듯 물결친다!
쿵, 쿠쿵, 쿵-
맥동하는 대지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하늘로 튕겨 올라가는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의 마수와 몬스터가 픽픽- 쓰러졌다.
깨에에엥-
숲 속에 뭉쳤던 눈표범 무리마저 땅을 구르고, 하늘을 날던 새들마저 뚝뚝- 떨어진다!
힘의 파장!
땅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거대한 힘의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힘의 파장이 지나가는 곳, 모든 마수와 몬스터, 야생 동물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어, 어…… 어…….”
울분을 토해 내던 엠마마저 엄청난 힘의 파장에 새하얗게 질릴 때.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게 멈추고 고요해졌다.
“……끝난 거야?”
엠마가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아직이다.”
천문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폭풍 전야!
하늘이 숨을 죽이고 땅이 긴장한다.
천지의 이목이 바로 앞 참나무 숲으로 모이고 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대요마(大妖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현상을 비틀어 버리는, 대요마 급의 존재감이 다가오고 있다!
이 정도 적은 허술한 마음으로 상대하려 하면 보는 순간 이지를 잃고 홀려 버린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렸다.
삼성의 내력으로 심상 공간에 불을 지르고 수인을 짚어 마음에 벽을 세운다.
느껴질 리 없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격전을 준비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
류세연, 특급 헌터…….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산악 같던 하늘 고래 이야기를 해 준 두 사람에게.
이번에도 대요마와 싸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기를.
이 순간.
콰아아앙-
참나무 숲이 무너졌다!
깨에에엥-
한곳에 뭉쳐 있던 수십 마리의 눈표범이 단숨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주위 아름드리나무 수십 그루가 꺼지듯 사라진다!
참나무 숲에 생겨난 거대한 구멍!
이 거대한 구멍에서 검은 기둥이 쑤욱- 튀어나왔다.
5미터, 10미터, 15미터…….
끝없이 솟아나는 거대한 톱날 달린 기둥!
천문석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기둥이 아니다!
집게!
거대한 톱날 집게다!
20미터가 훌쩍 넘는 길이의 거대한 톱날 집게가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거대한 땅 울림과 함께 뒤이어 나타나는 거대한 벌레 머리!
“……이건 뭐야!? 거대 괴수? 거대 곤충 괴수!?”
경악해서 외치던 엠마는 곧 입을 떡 벌렸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곤충은 20미터가 훌쩍 넘는 톱날 집게를 가진 숲이 작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사슴벌레였다!
아니 거대하다는 말조차 부족했다.
전차 같던 비늘 코뿔소조차 작아 보이는 크기!
옥탑방이 있는 류세연네 건물이 통째로 올라갈 정도 크기의 초거대 사슴벌레가 땅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순간 초거대 사슴벌레가 하늘을 향해 거대한 집게를 치켜세우고 몸을 떨어 울었다.
구으으으으응-
쿠르르르르릉-
무너질 듯 진동하는 하늘과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대지!
이 순간 마치 정지된 듯 숨죽이고 이 모든걸 보던 마수와 몬스터들이 다급히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끼이이익-
크아아앙-
끼에에엑-
“으아악! 망했어! 우리는 망한 거야! 거대 괴수라니!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엠마가 땅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외칠 때.
격전을 준비하던 천문석은 무언가 변한 것을 느꼈다!
“엠마! 잠깐만! 저길 봐!”
“……?”
천문석이 외친 순간 엄청난 진동을 토해 내던 초거대 사슴벌레가 우뚝 멈췄다.
딱-
집게를 오므리더니, 더듬이를 펼쳐 흔든다.
커다란 나무를 집고 몸을 일으켜 숲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살핀다.
쿵-
땅에 내려 와 더듬이로 흙을 헤집어 보고 나무를 쓱쓱 쓰다듬는다.
당황한 듯 참나무 숲을 타닥, 타닥- 이동하며, 무언가를 찾듯 참나무 줄기를 쓱쓱 훑는 초거대 사슴벌레.
그리고 잠시 후.
쿵, 쿵, 쿵-
초거대 사슴벌레는 참나무 숲 밖으로 나와 우뚝 멈춰 섰다.
바로 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함선 같은 초거대 사슴벌레.
히이익-
엠마가 깜짝 놀라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다가 주저앉았다.
그러나 초거대 사슴벌레는 천문석과 엠마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초거대 사슴벌레는 엉뚱한 산을 오른 사람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참나무 숲을 바라보다가.
구으으-
구으으응-
어쩐지 난감한 느낌이 전해지는 울음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