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크아앙-
방패에 묶인 새끼 눈표범이 포효를 지르는 순간.
천문석은 갈지자로 평야를 달리며 신나게 외쳤다.
"잘한다! 더 크게 울부짖어라!"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엠마는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순간 터져 나오는 섬뜩한 포효들!
히이익-
엠마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순간.
"야, 뭘 그렇게 놀라냐?! 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으며 뒤에 붙은 눈표범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표정이 굳어 버렸다!
"...언제 이렇게 불어난 거야?!"
열 마리를 훌쩍 넘는 눈표범!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가 늘어나고 있다!
파드드드득-
미친 듯 흔들리는 수풀!
은밀히 수풀 속을 달리던 눈표범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쫓는 무리에 합류하고 있었다!
방패에 꽁꽁 묶어 끌고 달리는 '새끼 눈표범'을 구하기 위해서!
어그로가 너무 잘 끌렸고,
숨어서 달리던 눈표범의 수가 예상을 훌쩍 넘었다!
천문석의 안색이 굳는 순간,
앞서 달리는 엠마가 외쳤다.
"야, 너무 많이 몰려왔잖아! 시바- 저거 어떻게 처리해!?"
"모두 내 예상 안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구라를 치고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파바바박-
엄청난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리며,
새끼 눈표범이 묶인 방패로 이어진 밧줄을 흔든다.
쿵, 쾅, 쿵, 쿵-
크앙, 크아앙, 크앙-
대지를 미끄러지는 방패가 요란하게 흔들릴 때마다 애처롭게 우는 새끼 눈표범!
크아아아앙-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은 성체 눈표범들이 울부짖을 때.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울부짖어라! 미끼야!"
"그만해 미친놈아!"
엠마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엠마의 바로 옆을 달리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야, 그러니까 먼저 강으로 가라고 했잖아?"
"..."
엠마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잖아도 엠마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천문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동료 헌터를 구하기 위한 미끼로 나섰을 때.
그 모습과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돕겠다고 남았다.
그러나 적당히 눈표범을 유인할 줄 알았지.
새끼 눈표범을 방패에 매달아 썰매처럼 끌고 달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미친 짓을 할 줄 알았다면 그냥 가랄 때 도망치는 건데!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리는 거다.
으아아악-
엠마는 괴성을 지르며 힘을 끌어내 달렸다.
파바바박-
천문석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엠마를 따라 달리며 외쳤다.
"야, 걱정하지 마라. 여기서 시간 끌다가 탈출하는 건 나한텐 식은 죽 먹기다!"
"...뭐? 야, 지금 눈표범! 중급 마수가! 열. 아니 열둘. 아니 열···. 시발! 왜 이리 빨리 늘어나!"
엠마가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하나로 뭉쳐서 달려오는 수많은 눈표범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숫자는 상관없다!”
“그게 무슨 개···.”
“나한텐 굉천수 있잖아?”
"...!"
순간 환해지는 엠마의 얼굴.
"그렇지! 굉천수가 있었지! 맞아! 굉천수가 있었어!!"
굉천수에게 몇 번이나 당한 엠마는 굉천수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믿음에 보답할 때!
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주르륵, 탁-
밧줄에 묶여 끌려오던 방패를 발로 멈춰 세우는 천문석.
크아앙-
꽁꽁 묶인 새끼 눈표범이 포효할 때,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탁 트인 시야!
주위에는 짧은 풀과 자잘한 돌멩이뿐, 나무 한 그루 없다.
도망치기 전에 확인한 대로 이곳에는 굉천수의 섬광을 막을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크아아앙-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소리.
천문석은 잔상을 흘리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눈표범 이십여 마리를 오연한 눈으로 바라보며 선언했다.
“여기서 저놈들을 떨군다! 엠마!”
“뭐든지 말만 해라! 난 무엇을 하면 되냐! 화살 공격을 할까?! 아니면 저놈들이 빌빌댈 때 옆에서 들이칠까?!”
엠마가 열성적으로 외치자,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굉천수를 여기서 터트리고 바로 강으로 도망친다 엠마! 네가 할 일은 땅이다!"
"땅?"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가리켰다.
“이번 굉천수는 사상 최대다! 땅으로 몸을 숙이고 완전히 눈과 귀를 가려라! 이 한방에 저놈들은 모조리 무력화 될 거다!”
“알았어!”
얼굴이 환해진 엠마가 땅에 엎드려 눈과 귀에 손을 올릴 때.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린 발로 방패에 묶인 새끼 눈표범을 툭, 툭- 걷어차며 외쳤다.
"울부짖어라! 미끼야! 적이 전부 모여들 때까지!"
그아, 그아앙-
그러나 이 순간 새끼 눈표범은 서글픈 울음소리를 냈다.
"...어?"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내려 지금까지 끌고 달린 새끼 눈표범을 봤다.
쫙 펼쳐진 오징어처럼,
네 발과 꼬리가 활짝 펼쳐진 채 방패 위에 밧줄로 꽁꽁 묶인 새끼 눈표범.
새끼 눈표범의 크고 둥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
이 녀석의 진짜 정체는 무시무시한 중급 마수, 눈표범인데···.
살찐 새끼 고양이 같이 귀엽게 생긴 놈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글프게 우니까···.
마치 자신이 악당 같았다!
"야, 네가 그렇게 우니까! 내가 나쁜 놈 같잖아. 너 마수잖아! 아까처럼 사납게 울란 말야!"
천문석이 새끼 눈표범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크아아아앙-
전신이 저릿저릿한 포효가 터졌다.
피어가 섞인 포효!
경악한 천문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눈표범 무리.
그 선두, 다른 놈 두 배는 될 듯 커다란 놈이 나타났다!
"피어!?"
백곰 마수, 강철 와이번과 싸울 때 겪었던 피어가 분명하다!
순간 백곰 마수의 마석으로 터트린 대박의 기억이 떠오른다!
2000만원!
당연히 저 눈표범에서도 엄청나게 비싼 마석이 나올 것이다!
쿵, 쿵, 쿵, 쿵-
순간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시야에서 주위사물이 날아가고 피어를 지른 눈표범만 보인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새로운 계획이 세워졌다.
눈표범들한테 눈뽕을 먹이고 도망친다는 계획에 한 단계를 추가한다.
사상 최대 굉천수로 눈뽕을 먹이고 저 큰놈을 밧줄로 꽁꽁 묶어 강까지 끌고 달린다!
순식간에 새로운 계획을 세운 천문석은 허리띠에 걸린 밧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삼성에 달하는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렸다.
부르르 떨리는 육체와 엄청난 힘에 절로 충만해지는 심맥!
두 손을 들어 굉천수의 구결에 따라 일기일원공을 움직인다!
파르르-
당장이라도 터질 듯 진동하는 두 손!
전생에도 사용하지 않은, 사상 최대의 굉천수를 준비하며 천문석은 외쳤다.
“엠마! 곧 터진다! 준비해라!”
“알았어!”
엠마가 눈과 귀를 가리고 얼굴을 대지에 묻는 순간,
눈표범 무리가 돌진하는 속도가 확 올라갔다!
마지막 스퍼트!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눈표범!
100미터···.
70미터···.
40미터···.
그리고 눈표범 무리가 20미터에 도착하는 순간.
천문석은 삼성의 일기일원공을 모두 쏟아부은 사상 최대의 굉천수를 터트렸다.
짝-
부르르 진동하는 두 손이 맞닿는 순간.
번쩍-
빛이 명멸하고 순간 천지가 어두워진다.
너무나 밝은 빛에 오히려 주위가 어둡게 느껴지는 것!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엄청난 섬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순간!
쿠르르르-
쾅, 쾅, 쾅-
천지가 무너지는 굉음이 폭발했다!
너무나 거대해서 당장이라도 몸이 터질 듯한 굉음!
사상 최대의 굉천수!
삼성의 일기일원공을 모조리 때려 박은,
굉천수가 그야말로 굉천(轟天), 하늘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섬광과 굉음 속에,
천문석은 절대자처럼 오연히 서 있었다.
이때 문득 들려오는 서글픈 울음소리.
그아, 그아앙-
"어···?"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내려 방패에 묶인 새끼 눈표범을 본 순간.
"...!"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상 최대 굉천수가 바로 앞에서 터졌는데도 방패에 묶인 새끼 눈표범은 천문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문석은 의식하기도 전에 움직였다.
무너지듯 뒤로 넘어지는 몸!
순간.
후우우웅-
빛 속에서 튀어나와 천문석이 서 있던 공간을 잘라버리는 빛나는 발톱!
빛을 삼킨 듯 이글거리는 새하얀 털,
이 순간 점점이 박힌 형광 무늬가 명멸한다!
피어를 지르던 거대한 눈표범!
거대한 눈표범은 굉천수의 섬광을 흡수한 듯 번쩍이는 모습으로 다시금 포효를 터트렸다.
크아아앙-
포효에 담긴 피어에 전신이 저릿저릿해지는 순간!
후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발톱!
그러나 사상 최대 굉천수에 내력을 모조리 쏟아부은 천문석에겐 남은 내력이 거의 없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발로 방패를 차올리며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깡, 휘리리릭-
우두머리 눈표범은 방패를 무시하고 천문석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방패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아앙-
공중으로 떠올라 빙그르르 회전하는 방패에는 새끼 눈표범이 묶여 있었다!
그아, 그아앙-
엄마를 본 새끼 눈표범의 반가운 울음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을 공격하려던 우두머리 눈표범은 깜짝 놀라 다급히 방패를 물고 새끼 눈표범을 꽁꽁 묶은 밧줄을 잘라냈다.
빛나는 발톱에 걸려 단숨에 밧줄이 잘려나갈 때.
천문석은 땅에서 튕기듯 일어나 뒤로 뛰며 손을 휘저었다.
탁-
손에 잡히는 엠마의 허리벨트!
"뭐야? 끝난 거야?"
천문석은 대답할 틈도 없이 엠마의 허리벨트를 낚아채 겨우 끌어낸 내력이 실린 발로 땅을 박찼다.
팟, 팟, 팟, 팟-
엄청난 속도로 뒤로 뛰는 천문석의 눈이 커졌다!
굉천수의 섬광이 사라진 곳,
우르르 무너지듯 달려오는 눈표범들!
빛을 삼킨 듯 이글거리는 새하얀 털을 가진 이십여 마리의 눈표범!
이놈들은 굉천수를 맞고도 멀쩡하게 달리고 있었다!
아니 멀쩡한 게 아니라.
좀 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빛을 머금은 듯한 발톱!
섬광이 번뜩이는 두 눈과 더 빨라진 몸!
마치 진화한듯한 모습!
“아니 시발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이 눈표범에게는 굉천수가 안 먹힌다!
아니, 오히려 굉천수의 눈뽕을 맞으면 진화한다!
이런 미친 마수가 있다니!?
이때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저거 뭐야!? 너 굉천수 터트린 거 아냐? 쟤들 왜 멀쩡히 달려!? 아니 멀쩡한 게 아니라! 더 강해진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뒤늦게 눈을 뜬 엠마가 경악해서 다급히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하하-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웃음부터 터트렸다.
"야, 뭐냐니까? 지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하하, 하-
"너 이 새끼! 왜 계속 웃기만 하는 거야?! 대답하라고! 설마 저거? 혹시···!?"
하, 하하-
"눈표범한테 굉천수가 안 통하는 거야?!"
마침내 정답을 찾은 엠마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웃음을 뚝 그치고 재빨리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엠마. 나한테는 언제나 계획이 있다."
"무슨 계획?! 빨리 말해봐!!"
엠마가 다급히 묻는 순간.
천문석은 뒤로 뛰던 몸을 번개같이 돌리며 엠마를 휙 앞으로 던졌다.
“아앗!”
땅에 떨어진 엠마가 균형을 잡고 일어서는 순간,
천문석이 재빨리 외쳤다.
"다음 계획은 ‘다리’다!"
"...다리?"
"두 다리로 헌터 캠프가 있는 강까지 도망치는 거다! 앞으로 세 시간! 죽을힘을 다해 달리자! 엠마! 우리는 할 수 있다!"
타다다닥-
천문석은 재빨리 엠마를 지나쳐 달렸고.
"으아악- 시바! 이게 뭐야!"
엠마는 괴성을 지르며 천문석을 따라 뛰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천문석과 엠마의 뒤에는.
방패에서 풀려난 새끼 눈표범과 우두머리 눈표범 그리고 이십여 마리의 성체 눈표범이 있었다.
사상 최대 굉천수의 섬광을 흡수한 눈표범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포효했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눈표범의 섬뜩한 포효가 대기를 가르는 순간.
후드드득-
사방에서 솟구치는 수많은 새들!
새들은 한동안 하늘을 날다가 다시 내려앉으려 했으나, 이미 대지에는 내려앉을 곳이 없었다.
펼쳐진 평야,
곳곳에 흩어진 숲,
열천이 치솟는 늪지.
광활한 고블린 평야와 이 주위를 둘러싼 산맥이 요동치고 있었다!
크아아아-
수십 개의 오크 부족.
끼이이익-
수백에 달하는 랩터 무리.
끼에에엑-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블린.
쿵, 쿵, 쿵-
맹목적으로 달리는 비늘 코뿔소.
쿠르르릉, 쾅-
우레와 뇌전을 휘감고 뛰는 천둥 기린.
그리고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들!
누군가 굴린 고블린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
돌아온 도토리 숲의 폭군이 일으킨 마수와 몬스터의 파도와 충돌했다.
거대한 숲을 통째로 태우는 불도 시작은 작은 불꽃 하나!
마수와 몬스터의 파도에 떨어진 고블린 스노우볼이 이 불꽃 역할을 했다.
지금 이 순간 광활한 고블린 평야에 마수와 몬스터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풍이 시작되는 고블린 평야를 천문석과 엠마가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