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신입 헌터들의 고블린 사냥이 계속 이어졌다.
5마리, 7마리, 9마리, 3마리.
풀링을 하는 베테랑 헌터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고블린 무리를 풀링 해 왔고.
신입 헌터들은 포메이션을 짜서 고블린 무리를 잡고 부산물을 회수하고 뒷정리하고 한숨 돌리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3시간이 지났을 때,
신입 헌터들은 능숙하게 고블린을 잡기 시작했다.
긴장으로 굳었던 얼굴이 풀리고,
좁아진 시야가 넓어졌는지 신입 헌터들은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응했다.
베테랑 헌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제야 사냥 같은 사냥을 하네."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베테랑 헌터의 말대로 처음 어설프게 보였던 신입 헌터들이 어느새 하나로 연결된 톱니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엠마의 목소리.
"뭘. 그렇게 신기하게 보냐? 저게 재밌냐."
“왜? 재밌기만 한데?”
고개를 끄덕이던 천문석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김철수 사무실에 소속된 4인조 헌터!
엠마와 게릭,
클릭스와 폴리머.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구성이 딱 헌터팀이다.
탱커 - 게릭.
원딜 - 엠마.
근딜 - 클릭스.
마력 각성자 - 폴리머.
4인조 헌터의 능력을 가늠하던 천문석은 눈을 번뜩였다.
'어, 이거 잘하면!'
4인조 헌터들은 뭔가 허술한 점이 하나씩 있지만.
그건 자신이 커맨더로 들어가면 해결된다!
머릿속에서 그동안 잡은 마수와 몬스터가 스쳐 지나간다.
랩터, 늑대, 백곰, 고블린, 오크, 검치호···.
검치호!
검치호가 딱이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검치호 사냥 파티!
4인조 헌터를 빡세게 굴리면 마탄을 한발도 쓰지 않아도 검치호를 잡을 수 있을것 같았다.
‘값비싼 마탄을 사용하지 않는 검치호 사냥!’
천문석의 눈이 번뜩였다!
김철수 사무실이 번창하고,
자신의 건물주 게이지는 쭉쭉 차오르게 되는 거다!
"와, 이런 방법이 있었네! 돌아가면 당장 시작해야겠다!"
천문석이 감탄해서 외치는 순간,
엠마가 돌연한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뭘 시작해?!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불길한 예감에 놀란 엠마가 외치는 순간.
삐이이이이이-
신호용 피리가 미친듯이 울렸다.
뒤이어 들려오는 풀링 하던 헌터의 다급한 외침!
"퇴각! 뒤로 빠져라! 바로 달려!"
"저 새끼 왜 저래?"
베테랑 헌터가 의아해하는 순간.
"...!"
천문석은 소름 끼치는 살기를 느꼈다.
"저기!"
천문석이 살기가 느껴지는 곳을 가리키는 순간.
새하얀 무언가가 수풀에서 뛰어올라 풀링 하던 헌터를 덮쳤다!
후으으응-
공기가 밀려나는 듯한 풍압,
잘게 부서져 흩날리는 수풀과 관목!
으아악-!
풀링조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뛰는 순간.
후드득-
엠마의 화살이 쏟아지고,
쒜에엑-
천문석이 던진 돌이 날아갔다.
그러나 어느새 몸을 숨긴 새하얀 무언가!
이때 수풀에서 기듯이 튀어나온 풀링조 헌터가 다급히 외쳤다.
"눈표범! 눈표범이 뒤에 붙었어!"
안색이 변한 베테랑 헌터는 바로 외쳤다.
"신입! 강까지 달린다! 바로 움직여!"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장비를 챙기기 시작하는 신입 헌터들.
"야, 이 새끼들이 달리라고! 장비 놔두고 달려!"
베테랑 헌터가 신입 헌터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외치자,
신입 헌터들은 얼떨결에 달리기 시작했다.
후미에서 달리는 베테랑 헌터는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석호! 네가 선두. 기석이 신입 옆에 붙어! 후미는 내가 막는다! 거기 같이 도망가자. 지금 혼자 떨어지면 위험해!"
천문석과 엠마는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장비를 모두 버려두고 강을 향해 달리는 헌터들!
천문석은 후미의 베테랑 헌터에게 물었다.
"눈표범이면?"
베테랑 헌터는 내뱉듯이 외쳤다.
"중급 마수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무슨 고블린 사냥터에서 중급 마수가 나와!?'
베테랑 헌터는 천문석의 표정을 보더니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저 산 위에 눈표범 서식지 있다! 어지간해서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데. 시발! 누가 고블린으로 스노우볼 굴려서 어그로를 끈 모양이다!"
순간 천문석은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번개같이 뒤를 돌아봤지만, 기감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파스스슥-
그러나 거대한 뱀이 기어가듯 흔들리는 수풀과 관목이 보였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눈표범!
기척을 죽인 채 은밀하게 쫓아오고 있다!
이때 천문석과 같은 곳을 본 베테랑 헌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야 신입! 뭉쳐! 절대 떨어지지 마라! 야! 석호, 기석이! 애들 옆에 바짝 붙어! 눈표범 우리 뒤로 따라붙었다!"
다급히 명령한 후 소리치는 베테랑 헌터.
"신입들! 외쳐라!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네···?"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순간 옆에서 같이 달리던 헌터의 손이 헬멧을 때렸다.
쾅-
"소리치라고! 새끼들아!"
신입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
곧 사방에서 대답하듯 들려오는 목소리들!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
천문석은 깨달았다.
사냥 중인 동료 헌터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파드드드득-
예상대로 사방의 수풀이 흔들리고,
고블린 평야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헌터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 들려오는 한 헌터의 거친 목소리.
"진짜 눈표범이야? 눈표범이 고블린 사냥터에 왜 나타나!?"
"왜겠냐! 어떤 미친 새끼가 고블린으로 스노우볼을 굴렸겠지! 직접 확인한 거다!"
"하! 어떤 새끼들이야!"
스노우볼이란 단어만으로 상황을 파악했는지 욕설을 내뱉는 헌터.
곧 이 헌터도 소리쳤다.
"야! 빨리 외쳐!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야, 이 새끼들아! 어리바리하지 말고 장비 놓고 빠져! 눈표범한테 끌려가면 시체도 못 찾아!"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눈표범이 나타났다! 강에서 처리한다!"
...
다시 한번 사방으로 외침이 퍼져나가고,
보이지 않는 눈표범을 피해 헌터들이 일제히 달렸다.
거의 백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동쪽, 강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파드드드득-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풀 속을 달리는 눈표범.
그러나 사방에서 헌터들이 달리자, 누구를 쫓을지 망설이는지 속도가 죽고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겠다고 생각할 때.
“...!”
천문석의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시선을 돌려 훑는 순간 보였다.
바람을 거슬러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수풀과 관목!
하나둘이 아니다!
얼핏 보이는 것만 열!
"뒤에 더 붙었습니다!"
천문석의 외침에 깜짝 놀라 돌아보는 베테랑 헌터.
"하! 시바! 이거 도대체 몇 마리야!?"
베테랑 헌터가 분통을 터트리더니 다급히 외쳤다.
"시발! 최소 열! 눈표범 열 마리다!!"
사방에서 다른 헌터들이 복창하듯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표범 열 마리다!! 시발-"
"눈표범 열 마리다!! 쌍-"
"이대로는 따라잡힌다!"
"하, 시발! 어떤 새끼가 눈표범 어그로를 끈 거야!?"
"서식지에서도 보기 힘든 눈표범이 열 마리라고?! 이런 젠장!!"
...
사방에서 분통을 터트리는 헌터들.
"화살로 속도를 줄일까?!"
하얗게 질린 엠마의 외침에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놈들 지금 누굴 쫓을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곳으로 어그로가 몰리면 속도가 배는 빨라질 거다."
"맞다. 지금은 강의 캠프에 최대한 빨리 소식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
베테랑 헌터가 그물을 꺼내며 천문석을 봤다.
"강까지 달려서 소식을 전해라! 눈표범 최소 열 마리가 나타났다고! 빨리 소식 전하지 않으면. 이곳 사냥터의 다른 헌터들 모두 위험하다! 부탁한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 뒤로 뛰는 베테랑 헌터!
천문석은 베테랑 헌터의 생각을 짐작했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뒤를 쫓는 눈표범의 속도를 줄이려는 것!
이때 사방에서 하나둘 몸을 돌리는 헌터들이 보였다.
"신입들!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죽을 힘을 다해서! 심장이 터질 때까지 달려라!"
한 헌터가 외친 말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 사냥터의 헌터 대부분이 1년 차 미만의 비각성 헌터들.
중급 마수에게 뒤를 잡히는 순간, 무더기로 죽어 나갈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베테랑 헌터들이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핏 봐도 베테랑 헌터들은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중급 마수 열 마리를 상대하면 시간 끌기 이상은 힘들었다.
이들은 사실상 죽으러 가고 있었다.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엠마에게 외쳤다.
"엠마! 강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서 소식을 전해라!"
"뭐? 너 그게 무슨!"
“달려라! 엠마 심장이 터질 때까지!”
천문석은 엠마의 등을 툭 치고 몸을 돌려 베테랑 헌터를 향해 달렸다.
“야, 어디가! 지금 무슨 짓이야!?”
"뭐 하는 거야!? 위험하다!"
천문석을 본 베테랑 헌터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쭈뼛 솟아오르는 소름!
순간 천문석은 땅을 박차고 뛰었다!
후우웅-
거센 바람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순간,
천문석은 베테랑 헌터를 밀어내고 강철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크르르르륵-
톱밥처럼 죽죽 갈려 나가는 강철과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불꽃!
흐릿한 전신,
점점이 박힌 형광 무늬!
눈표범!
순간 방패에 실리는 엄청난 힘!
눈표범이 방패에 발톱을 깊숙이 박아 넣은 채 몸을 비틀고 있었다!
"눈표범! 어느새?!"
"방패 놓고 빠져! 화살 날릴게!"
베테랑 헌터가 경악하고,
달려온 엠마가 다급히 화살을 날리려 할 때.
“기다려!”
천문석은 몸에 힘을 빼고 눈표범과 함께 땅을 구르며 외쳤다.
데굴데굴-
엄청난 속도로 땅을 구르는 천문석과 눈표범.
그와 동시에 다급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끼에, 끼에, 끼에엑-
깜짝 놀란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소리.
천문석이 눈표범을 쿠션 삼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천문석은 방패를 놓고 냅다 스냅을 걸어 손을 뿌렸다.
휘이잉-
어느새 손에 들린 강화 해머가 방패에 발톱을 박아넣은 눈표범의 머리로 떨어졌다.
그러나 강화 해머가 닿기 직전,
눈표범의 전신이 잔상을 일으키며 흔들렸다.
탁, 탁, 탁-
제대로 타점을 잡지 못하고 빗맞아 미끄러지는 강화 해머!
이 순간 엠마의 화살이 쏟아졌다.
후드드득-
픽, 픽, 픽-
엠마가 속사로 날린 화살이 잔상에 닿는 순간 사방으로 빗겨 나갔다!
"눈표범한테 그냥 공격은 거의 안 먹혀!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 우선 빠져라!"
베테랑 헌터가 그물을 가지고 달리며 외쳤다.
아니,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잔상을 흘리며 몸을 흔들던 녀석이 포효했다.
크아, 크아앙, 크아아앙-
눈표범은 미친듯이 포효하며 계속 몸을 흔들었다.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우선 강까지 달려!"
베테랑 헌터가 앞으로 나서려 할 때.
"잠시만···!"
천문석은 베테랑 헌터를 제지하고 포효하는 눈표범을 자세히 살폈다.
몸길이는 1.5미터 정도, 체고는 거의 1미터.
날렵한 표범이 아닌 살찐 고양이 같은 체형.
새하얀 털에 점점이 박힌 흐릿한 형광 점.
이 눈표범은 아직 어린 새끼였다!
새끼 눈표범은 몸을 흔들어 잔상을 일으키며 사나운 포효를 연신 내지르고 있다.
크아, 크아앙-
...포효만 내지르고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새끼 눈표범의 앞발로 향했다.
여전히 자신의 강철 방패에 박혀 있는 새끼 눈표범의 앞발.
이 순간 천문석은 상황을 파악했다.
"너, 방패에 발이 꼈구나?"
크아앙-
새끼 눈표범이 사납게 울부짖었으나,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씨익 웃었다.
아무리 산중지왕 호랑이라도 철창에 갇혀있으면 구경거리일 뿐이다.
잠시 후.
강철 방패에 꽁꽁 묶인 새끼 눈표범이 엄청난 속도로 고블린 평야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크아앙-
애처롭게 우는 새끼 눈표범을 끌고 달리는 건, 천문석이었다.
천문석은 시간을 끌려던 베테랑 헌터들을 모두 강으로 보낸 후,
방패에 꽁꽁 묶인 새끼 눈표범을 썰매처럼 끌면서 갈지자로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크아앙-
새끼 눈표범이 한번 울 때마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
성체 눈표범들의 분노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새끼 눈표범이 천문석에게 끌려가자,
평야를 달리던 모든 눈표범의 어그로가 천문석에게 몰렸다.
중급 마수 십여 마리의 섬뜩한 살기가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상황!
그러나 천문석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외쳤다.
"엠마! 어그로 완전히 잡혔다! 성공이다! 하하하-"
천문석이 완전히 어그로가 끌린 눈표범들을 보며 신나게 웃음을 터트릴 때.
그 옆에서 달리는 엠마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미친 새끼야! 그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