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힐링을 끝낸 천문석은 두툼한 의뢰서 서류철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신동대문 인근 강 수심 확인. / 완료
-오크의 서식지 확인, 갈기 회수. / 완료
-랩터의 서식지 확인, 갈고리발톱 회수. / 완료
...
굵직했던 의뢰 대부분이 끝났고, 남은 건 몇 개 안 됐다.
자잘한 것을 빼고 보상이 괜찮은 것은 세 가지.
-도토리 숲 조사.
-고블린 종족별 마비독 수집.
-허브 형태의 풀 100종류 수집 및 서식지 기록.
천문석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의뢰를 봤다.
도토리 숲은 연합 레이드 팀이 밀어 버린 후에 조사하면 간단하니 우선은 패스.
허브 형태의 풀 100종류 수집.
이 의뢰는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났다.
의뢰자의 의도가 빤히 짐작됐기 때문이다.
게이트를 넘어오기 전, 장민 대표와 마셨던 차.
'센트라'
이 의뢰는 사실 허브가 아닌, 이름이 알려지는 것조차 예민한, 센트라 서식지를 찾으려는 의뢰다.
외상 치료와 멘탈 회복에 엄청난 효과가 있는 센트라.
센트라는 헌터용 드링크에 들어가는 원재료로 몇몇 헌터팀이 독점 공급하는 약초였다.
당연히 이 의뢰를 하는 순간, 센트라를 공급하는 헌터 팀과 불편한 관계가 될 게 뻔했다.
헌터 업계의 금언(金言).
친구를 만들지는 못해도 적을 늘려서는 안 된다.
이 의뢰는 당연히 패스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고블린 종족별 마비독 수집.
천문석은 의뢰서를 펼쳤다.
의뢰 내용은 간단했다.
가능한 많은 양의 고블린 종족의 마비독을 가져가면 끝.
주의할 건 고블린을 잡는 즉시 고블린 마비독이 들어있는 주머니뿐만 아니라 고블린이 입은 옷과 무기, 음식과 잡동사니를 모조리 밀봉해서 가져오라는 조건이었다.
천문석은 왜 이런 조건을 걸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의뢰는 고블린 마비독 인공합성 연구를 위한 재료 수집 의뢰였다.
고블린 마비독은 신체에 부담이 거의 없는 마취가 가능해서 언제나 수요가 엄청났다.
십 년이 넘게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고블린 마비독의 인공합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 중.
고블린 마비독은 여전히 헌터들이 사냥을 통해 공급하는 것을 정제해서 사용했고.
헌터의 인건비와 운송비가 포함되어 가격이 비쌌다.
이 때문에 고블린은 최하급이라는 등급보다 수익이 쏠쏠한 몬스터였다.
비각성 헌터가 맨몸으로 헌터 업계에 들어와도 고블린 사냥을 1년 정도 하면 기초적인 장비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신동대문에는 유명한 고블린 사냥터가 여럿 있었다.
천문석은 철수형이 건네준 신동대문 사냥터 지도를 펼쳤다.
신동대문 북서쪽 하루 거리 강 너머.
강과 산맥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에 고블린 사냥터가 있었다.
폐광된 구리 광산,
곳곳에서 열천이 치솟는 늪지.
그리고 드문드문 숲이 이어지는 평야.
광산 고블린, 늪지 고블린, 숲 고블린 등등.
수많은 고블린 부족, 엄청난 수의 고블린이 깔려있는 곳.
이곳은 언제나 신입 헌터들이 붐비는 인기 있는 고블린 사냥터였다.
쓰윽-
천문석은 지도 위에 가볍게 원을 그었다.
강에서 몇 개의 숲을 거쳐 광산까지, 한 방에 처리한다!
천문석이 그린 원아래 지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블린 평야.’
---
천문석은 털썩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무더운 바깥과 달리 에어컨으로 시원한 객실.
천문석은 기지개를 켜며 고블린 평야로 출발 전 가져갈 물품을 생각했다.
보존 식품과 물.
벌레 기피제, 탈취제.
발열팩, 아이스박스용 얼음.
그리고 고블린 마비독 해독제.
이번 고블린 의뢰가 끝나면 편하게 쉬다가.
연합 레이드 팀이 도토리 숲의 악마를 끝장낸 후 도토리 숲을 조사하면 모든 의뢰가 끝난다.
남은 것은 별 가치 없는 의뢰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이때 문득 보이는 마탄 상자 7개.
그러고 보니 350발의 마탄을 준비했는데,
단 한 발도 사용하지 않고 의뢰가 끝나게 생겼다.
이번 의뢰는 처음 느낌대로 운이 아주 좋았다!
이대로라면 최초의 제대로 된 헌터 일은 막대한 수익을 남기고 끝날 것만 같았다.
천문석은 미소지은 채 미끄러지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천문석은 호텔 로비에서 세탁물과 수리가 끝난 장비를 찾고 엠마와 만났다.
엠마는 밤새 술을 마셨는지 화물차 조수석에 타자마자 쓰러지듯 잠든 상태.
"야, 직원이 너무 불성실한 거 아냐? 부사장님이 운전하는데 말야."
엠마는 힘겹게 눈을 떠 공손히 말하고 다시 잠들었다.
"제발 해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사장님."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화물차를 운전했다.
‘지금이라도 편안히 쉬어라. 엠마.’
어차피 사냥터로 가면 빡세게 구르게 될 테니까.
천문석은 사냥터로 출발하기 전 소모품부터 보충했다.
화물차 화물칸이 열리고, 헌터용 보존 식품과 물, 헌터용 드링크, 벌레 기피제 같은 소모품을 잔뜩 실었다.
"마력엔진 화물차로 사냥을 다니세요? 와- 화물차에 마력엔진 다시는 헌터분은 처음 봤습니다."
사실 이 화물차는 마력엔진이 아닌, 어떻게 작동하는지 의문인 복합엔진이 달린 화물차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해봐야 복잡해지기만 할 뿐, 천문석은 직원에게 적당히 대답했다.
"뭐.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어서 나름 괜찮습니다."
소모품을 보충한 천문석은 바로 헌터 용품점에 도착했다.
사냥 대상 마수와 몬스터에 따라 필요한 용품을 파는 헌터 용품점.
고블린 사냥용품과 마비독 포장용 진공 압착팩을 넉넉하게 사들이고, 마비독 해독제를 구입하려 할 때 문제가 생겼다.
"...가격이 얼마라고요?"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헌터 용품점 직원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10회 투약분 한 세트에 100만원입니다."
1회분에 6, 7천원 하던 마비독 해독제가 10만원!
10배가 넘게 폭등했다고!
"아니, 무슨 해독제 가격이 일주일 사이에 10배가 넘게 올라요!"
헌터 용품점 직원은 상점 한쪽을 가리켰다.
4, 5명씩 모여서 용품을 쓸어 담고 있는 헌터들.
천문석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외국계 헌터들!
"갑자기 도시에 외국계 헌터가 늘어나면서 헌터 용품 가격이 확 올랐습니다."
"..."
"특히 외국계 헌터 중에 고블린 사냥을 하려는 신입 헌터가 많아서···. 고블린 마비독 해독제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럼 5세트 구입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량이 적어서 구매 제한이 걸렸습니다."
"...그럼 몇 개나 구매 가능한가요?"
직원은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원래 헌터 팀당 1세트인데···. 한국분이니 2세트 내드릴게요."
"..."
마비독 해독제 2세트를 200만원에 구입한 천문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주일 안에 영수증과 함께 가져오면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
해독제 200만원은 고블린 마비독에 당하지만 않으면 돌아와서 바로 회수 가능한 것이다!
구으으응-
천문석과 엠마를 태운 화물차가 신동대문 북서쪽 고블린 평야를 향해 출발했다.
신동대문에서 나온 화물차는 마차와 수레가 다녀 만들어진 길을 지나 하루 뒤 거대한 강에 도착했다.
그리고 화물차째로 커다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이 강에는 커다란 뗏목이 곳곳에 떠 있었고,
뗏목 위에는 텐트와 천막으로 만든 캠프가 차려져 있었다.
"이곳 고블린 평야 지대에서 사냥하는 헌터들의 캠프입니다."
뗏목 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넘어간 강변 주위는 불을 질러 시계 청소를 한 상태였다.
천문석은 화물차를 타고 시계 청소된 지역을 지나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 땅을 한참 동안 올라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 탁 트인 평야가 나왔다.
드문드문 숲이 보이고 저 멀리 거대한 산맥이 솟아있는 평야!
이 평야가 수많은 고블린 사냥터가 몰려있는 ‘고블린 평야’였다.
화물차는 곧 고블린 평야를 가로질렀고,
조수석의 엠마가 문득 물었다.
"이번에도 몰이 사냥할 거냐? 굉천수 쓰면 고블린 100단위로 잡을 수 있겠는데?"
"여기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천문석은 창밖을 가리켰다.
화물차가 지나가는 거대한 평야 곳곳 포메이션을 짜고 고블린을 사냥하는 헌터팀들이 보였다.
이미 사냥 중인 헌터들이 많은데 몰이 사냥을 하면, 눈덩이가 구르듯 몬스터가 뭉쳐 다른 헌터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정석적으로 사냥하자."
"..."
그러나 엠마는 뭔가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 뭐야? 정석적으로 사냥한다니까?"
"...이제는 네가 정석적으로 사냥한다고 하면 더 불안하다."
천문석은 피식 웃고 적당한 숲에 화물차를 숨기고 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
휘이이-
휘파람 소리를 닮은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문득 고개를 돌리는 고블린 무리.
다섯 마리의 고블린 들은 바짝 긴장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때 다시 한번 들려오는 바람 소리.
휘이이-
고블린 무리는 조심조심 수풀에서 나와 소리가 들려오는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고블린 무리가 바위 앞에 도착하는 순간.
후드드드득-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화살 비!
끼에엑-
고블린 들은 다급한 비명을 터트리고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화살에 맞은 고블린의 기동력은 이미 확 죽은 상태!
이때 바위 뒤에서 뛰어나온 천문석이 고블린 무리로 파고들었다.
딱, 딱, 딱-
천문석은 강화 해머에 스냅을 줘서 고블린 머리를 긁어내듯 때렸다.
지금 중요한 건 파괴력보다 속도!
천문석이 스치는 순간 고블린 들은 픽픽 쓰러져 나갔다.
그러나 이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고블린 울음소리!
끼에엑-
낙오한 고블린이 뒤늦게 수풀에서 나오다가 다급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천문석이 강화 해머를 던지려는 순간.
후드득-
세 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고블린의 뒤통수와 목, 등에 박혔다.
고블린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픽 쓰러져 절명했다.
"나이스!"
천문석은 외따로 서 있는 나무에서 내려오는 엠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고블린을 한곳에 모았다.
여섯 마리의 고블린.
엠마가 날린 화살을 회수하는데, 한 고블린 다리에 박혀 있는 붉은 화살이 보였다.
“아 또 이거네.”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화살을 뽑았다.
촉 없이 뾰족하게 깎은 붉은 나무 화살에는 ‘홍(洪)’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거 이름인 건가?"
천문석은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고블린이 걸친 천 조각을 뒤집어 마비독 주머니와 무기, 장비를 하나도 모아 묶었다.
고블린 한 마리당 하나씩 여섯 개의 꾸러미를 만들어 하나하나 부산물 회수용 압착팩에 넣고 버튼을 누르는 천문석.
푸으으으-
보존 효과가 있는 압착 가스가 공기를 밀어내며 압착팩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압착 가스가 사라지면서 압착팩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피시시식-
압착팩으로 압축된 고블린 마비독과 장비는 한 뼘 크기의 정육면체 6개가 됐다.
"11:12분. 신동대문 고블린 평야 남쪽, 평야 고블린."
천문석은 압착팩에 고블린을 잡은 장소와 시간, 고블린의 종족을 기록했다.
이때 땅을 파고 고블린 사체를 묻은 엠마가 걸어왔다.
"이번에도 글자 새겨진 화살 나왔냐?"
"어, 1대 나왔다. 오늘 잡은 고블린 전부 하면, 3마리에 1대꼴로 나오네···. 이 화살 뭐지?"
“그러게. 화살 날린 사람은 안 나타나고 화살 맞은 고블린만 나오는 게 이상한데?”
엠마는 의아한 듯 고개를 저으며 전장 정리를 시작했다.
천문석은 허리벨트에 걸어둔 주머니를 봤다.
수북이 들어있는 ‘홍’이란 한자가 새겨진 붉은 화살들.
글자가 새겨진 화살이 박혀 있는 고블린을 잡고 있자니,
마치 남이 선점한 몬스터를 먹튀 하는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주위에 흙을 뿌려 전투 흔적을 지우는 엠마에게 물었다.
"엠마. 이렇게 몬스터에 화살이 박혀 있으면 선점한 거냐? 보통 이런 경우에는 안 잡고 보내주는 거냐?"
"너 지금 외국인한테 한국 사정을 물어보는 거야?"
엠마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중남미, 너희 동네는 어떤 식으로 사냥하냐? 이런 식으로 선점하고 그래?"
엠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선점 그런 거 없는데···. 그냥 너나 할 것 없이 보이는 마수와 몬스터는 그냥 다 때려잡아."
"그러면 누가 잡은 것인지 어떻게 알아? 사냥 분쟁 일어나면 어떻게 해결하는데? 무슨 기준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우리는 분쟁 안 일어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냥터에서 분쟁이 안 일어날 수가 있냐?"
"우리는 카르텔이 있잖아."
"아···."
천문석은 바로 납득했다.
엠마네 동네는 카르텔이 법이었다.
분쟁이 일어나면 카르텔이랑 친한 놈이 이기는 구조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천문석은 뽑아낸 붉은 화살을 모아둔 주머니를 뒤집었다.
한 뼘 정도 되는 짧고 가벼운 화살이 벌써 10대가 넘게 모였다.
"아. 이거 되게 찜찜하네. 계속 사냥해도 되는 건가?"
천문석은 지금 자신이 사냥터의 암묵적 규칙을 어기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보통 신입 헌터가 길드나 헌터팀에 들어오면 고블린 사냥터에 투입된다고 한다.
최하급 몬스터인 고블린 사냥을 하면서 암묵적인 헌터 업계의 규칙과 사냥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것이다.
그 후에 다른 마수와 몬스터 사냥법을 배운 후에 이세계의 마석 광산, 약초 채집 혹은 던전, 균열, 마경 등에 투입된다.
그런데 천문석은 이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서울사태로 동네에서 랩터와 싸운 게 처음.
그다음은 동네 뒷산에서 탱탱볼 늑대랑 싸웠고 뒤이어 균열 지대에서 백곰 마수와 격전을 벌였다.
생각해보니 무림 던전에 가서 한참 동안 도망 다니기도 했다.
고블린 사냥은 해본 적이 없으니······.
헌터 누구나 알고 있다는 사냥터의 암묵적인 규칙을 알 수가 없었다.
"하- 이거 원래 이렇게 화살로 쏴서 선점되는 건가?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제대로 처리도 안 하고 화살만 날린다고 자기게 될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않냐? 엠마?"
천문석이 답답한 마음에 분통을 터트릴 때,
다급히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고블린 기척!
천문석은 빙글 몸을 회전시켜 보지도 않고 방패를 갈겼다.
콰아앙-
수풀에서 튀어나오던 고블린은 일격에 쓰러졌고,
뒤이어 고블린을 쫓던 헌터들이 수풀에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숨을 헐떡이는 두 명의 헌터.
딱 봐도 초짜 티가 나는 헌터들이었다.
이들이 천문석과 쓰러진 고블린을 번갈아 볼때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
"야, 이 씹새야! 포위망 제대로 짜라고 했지! 사냥감 흘리면 절대 안 된다!"
보는 순간 베테랑처럼 보이는 헌터가 두 헌터의 헬멧을 쥐어박았다.
쾅, 쾅, 쾅-
으아악-
신입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잡는 순간. 천문석을 보는 베테랑 헌터.
베테랑 헌터는 천문석의 발 앞에 쓰러진 고블린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길드에서 신입 헌터 연수 중인데 고블린을 흘렸습니다. 혹시 피해 보신 건 없는지···."
정중히 사과하던 베테랑 헌터는 천문석의 손에 들린 붉은 화살 무더기를 보더니 돌연 얼굴이 굳었다.
"하- 네가 그 붉은 화살 날린 새끼냐! 고블린은 선점 안 되는 거 몰라?! 왜 자꾸 화살을 날려서 고블린을 사방으로 흩어놔!"
뒤이어 수풀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뭐야? 화살 날린 놈 찾은 거야? 일본놈 맞지?! 누가 막타도 안 치고 화살부터 계속 날려!"
"시발. 한국은 자리 잡고 고블린 잡는다고 몇 번을 말해!"
베테랑 헌터 뒤쪽 수풀에서 두명의 헌터가 분통을 터트리며 나오고 있었다.
딱 봐도 경험 많아 보이는 베테랑 헌터들!
천문석은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며 재빨리 화살을 든 손을 들었다.
"이 화살 저도 고블린에서 회수한 겁니다! 저 한국 사람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엠마에게 모였다.
외형은 외국인이지만, 엠마는 마법 각인을 받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문화와 관습 부분은 약하지만,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는 이미 배웠다.
그래서 엠마는 배운 대로 대답했다.
"저도 한쿡 사람이무니다."
순간 살기등등하던 베테랑 헌터들이 빵 터져 버렸다.
“뭐? ‘한쿸.’ 크캬카- 도대체 국적이 어디길래?”
“‘이무니다는.’ 또 뭐야? 카하하-”
크하하하-
와크크큭-
주위의 모든 헌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
엠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빵 터진 헌터들을 돌아볼 때, 귀에 익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카캬카카-
웃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천문석.
방금 한 인사말을 가르쳐준 장본인.
자신에게 이런 상황에서 해야 할 대답이라고 가르쳐준 장본인이 가장 크고 신나게 웃고 있었다.
카캬캬컄-
엠마는 주위 분위기만 보고도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했다.
‘시바, 천문석. 이런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