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9화 (200/1,336)

#199

김기태는 천문석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당분간은 신문 꼭 사라. 거기에 시청 공고문 올라가니까 확인하고 움직여.”

“그래야겠네···.”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작동했다면 도시 내에서 방송 시청이 가능했겠지만, 신동대문의 게이트는 사라졌다.

재금 그룹에서 마력장 왜곡 장치를 설치하고 있지만, 아직 작동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지금으로선 신문을 확인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공고문은 도대체 왜 떼어가?"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김기태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에 사람이 많아지면 희한한 놈들이 꼭 튀어나온다니까. 이번 마수 사냥 중에 우리 팀 신입 헌터는 담배를 피우더라. 하-"

"마수 사냥 중에 담배를 피웠다고?"

담배 냄새는 자연에서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고 오래가는 냄새다.

몇몇 마수들은 남아있는 담배 냄새를 맡으면 수십 시간 동안 뒤를 추적해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헌터는 준비된 장소, 준비된 시간에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상대가 하급 마수라고 해도 예기치 못한 기습을 당하면 인명 피해가 생길 수 있었다.

김기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하- 시바. 그 녀석. 무경력자여도 군필이고 절박해 보여서 데리고 갔는데. 화장실 갔다 왔다는 놈한테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거야?"

"그래서?"

"담배 피웠냐고 물으니까.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네? 그래서 그 녀석 미끼로 썼다! 그날 대박 터졌다! 마수가 끝도 없이 밀려와! 하하하-"

김기태 헌터는 번뜩이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하여간에 민폐를 끼치는 놈들은. 자기가 당해봐야 그게 민폐란 걸 안다니까. 하하하-"

천문석은 웃고 있는 김기태 헌터를 보며 헌터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헌터업이 예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안전해졌다지만,

여전히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생명을 걸고 마수와 몬스터를 잡는 사람들, 헌터.

그렇기에 헌터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해도 매년 죽어 나가는 헌터의 수가 하나둘이 아니다.

눈앞의 김기태 헌터 정도면 아주 온건하고 상식적인 헌터였다. 어디 한두 군데 맛이 간 헌터가 수두룩했다.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물었다.

"그래서 그 신입은 어떻게 했는데? 잘랐냐?"

"당연히 안 잘랐지! 그렇게 호되게 신고식을 해서 쓸만하게 만들었는데 왜 짤라? 그리고 걔 근성이 장난 아냐. 너 가짜 마탄 아냐?"

"가짜 마탄? 자체 생산 마탄 말하는 거냐. 불량률 높은 마탄?"

“맞아. 그거. 하- 신입이 멋도 모르고 싸다고. 마력장도 제대로 못 깎는 가짜 마탄을 탄창 가득 채워 왔어. 당연히 중간에 잼 일어났고. 사방에서 들개 마수가 쏟아지는데! 하하하-”

김기태는 통쾌하게 웃으며 눈을 번뜩였다.

“우리 신입 헌터가! 팔을 미끼 삼아 던져 주고 소총으로 내리찍어서 마수들을 아작을 내놨어! 걔 근성이 아주 그냥 미쳤다! 진짜 쓸만한 신입이 들어왔다. 나중에 너한테도 소개해줄게. 하하하-”

“...”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는 김기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온건하고 상식적인 헌터라는 말 취소다.

이 녀석도 어딘가 한군데 맛이 보통의 헌터였다.

---

미래의 길드장, 김기태 헌터와의 술자리를 끝낸 천문석은 술집과 헌터용 잡화점과 용품점을 몇 곳 더 들렸다.

다른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해서였지만,

김기태에게 들은 것과 비슷한 이야기만 들었다.

-외국인 헌터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외국 자본이 쏟아져 들어와 난리다.

-사냥터에서 트러블이 많다.

...

신동대문 주변 지역에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결국, 천문석은 정보수집을 끝내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호텔 앞 신동대문 시청을 지나는 순간, 문득 머리에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암살검 한경석에게 들은 오리온 길드가 헌터 부대, 대형 길드와 '연합 레이드'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

이 기억에 김기태에게 들은 이야기가 겹쳐진다.

‘도로건설’을 위해서 상급 마수와 상급 몬스터를 밀어버린다는 연합 레이드 팀.

두 이야기의 공통점.

‘연합 레이드 팀.’

천문석은 직감했다.

한경석과 김기태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한 거다.

오리온 길드의 최후식 이사가 메인 탱커로 나선다는 연합 레이드 팀 이야기를!

"하, 이게 또 이렇게 이어지네."

헌터 업계의 최상위층 ‘대형 길드’와 엘리트 중의 엘리트 ‘헌터 부대’가 연합한 레이드 팀!

도토리 숲의 악마가 아무리 강력한 상급 마수라도 해도 거대 괴수조차 잡아내는 연합 레이드 팀이면 금방 해결할 수 있다.

꺼림칙했던 도토리 숲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도토리 숲의 악마가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찜찜했던 일이 알아서 저절로 해결된다!

천문석은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도로를 건너 사람들로 붐비는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휘이이, 휘휘-

오늘은 느긋하게 힐링하고 내일부터 다시 남은 일거리를 처리하면 된다.

---

밝은 달이 떠오른 여름밤.

휘이이잉-

광활한 도토리 숲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바람을 타고 숲 위를 나는 작은 새끼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다.

황금빛 섬광이 번뜩이는 작은 눈!

활짝 펼친 팔다리에 생겨난 빛의 날개막!

돌아온 도토리 숲의 악마,

분노한 폭군.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니케!

니케는 눈에 익은 나무가 보이자 포효를 터트렸다.

킥, 키키킥-

새들과 야생동물들이 깜짝 놀라 도망치는 순간.

날개막을 접고 수직으로 도토리 숲으로 떨어지는 니케!

탁-

상수리나무 앞에 내려선 니케는 움찔했다.

나무에 새겨진 커다란 톱니 집게 자국!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보낸 독촉장이다!

니케는 지하세계 마법사들에게 고향 케페니안으로 돌아갈 문을 열어달라고 의뢰를 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도토리 숲을 비워 대금 지급이 정지되자,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찾아와 도토리 숲 곳곳에 독촉장을 새겨놨다!

니케는 지하세계 마법사들이 있는 땅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밀린 대금을 줘야 하나···?

한참 동안 고민하던 니케는 그냥 배를 째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는 거지가 돼서 고향에는 못 돌아가니까.

그리고 지금은 더 중요한일이 있었다!

머리를 번쩍 든 니케는 잽싸게 상수리나무 앞, 땅을 파고 들어갔다.

파바바박-

순식간에 땅이 파헤쳐지고,

나뭇잎에 소중히 싸인 도토리 한 알이 나왔다.

다행히 이곳의 도토리는 도둑맞지 않고 남아있었다!

이 도토리는 겉모양은 평범한 도토리와 똑같지만,

안에는 케페니안의 빛을 머금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 멋진 집을 사기 위해서 니케가 힘을 불어넣던 도토리!

보물 창고에 보관하던 143개의 보물 도토리를 도둑맞고,

남은 것은 도토리 숲 곳곳에 숨겨둔 채 힘을 불어넣던 도토리뿐!

이 도토리는 너무 아까워 한 입도 먹지 않고 모으기만 하던 니케의 ‘보물 도토리’였다!

니케는 숲에 돌아오자마자 보물 도토리를 찾았는데,

어떤 도둑놈이 이 보물 도토리마저 몇 개나 훔쳐갔다!

그래도 이곳처럼 숲 곳곳에 남아있는 보물 도토리들이 있었다.

니케는 주저하지 않고 보물 도토리를 먹었다.

까드득-

순간 니케의 눈에서 번뜩이는 황금빛!

니케는 상수리나무를 밟고 달려 하늘로 펄쩍 날아올랐다.

빛의 날개막에서 거센 바람이 쏟아지고.

휘이이잉-

바람을 탄 니케는 순식간에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다시 도토리 숲을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중한 숲에 들어온 도둑놈들을 때려잡으며,

숲 곳곳에 숨겨놓고 까먹었던 케페니안의 빛이 담긴 보물 도토리를 찾아 먹길 며칠째!

힘이 돌아오고 있다!

‘이제 곧 이다!’

니케의 황금빛 섬광이 번뜩이는 눈이 멀리 서쪽으로 향했다.

인간이 잔뜩 있는 도시에 있는 이상한 원반!

이제 니케는 알고 있었다.

그 원반을 통과하면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세상에는 반드시 복수해야 할 적이 있었다!

이 순간 니케의 머리에 선명히 떠오르는 복수 명단!

1순위. 멍청한 하늘 고래.

2순위. 보물 도토리 143개 범인.

3순위. 소환한 다음 도망친 마법사.

4순위. 바가지를 씌운 지하세계 마법사.

...

이 명단이 갱신됐다.

1순위. 거대한 삼색 고양이!

힘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할 일!

자신을 무참히 때려눕힌 삼색 고양이를 엄청 아프게 마구마구 물어주겠다!

킥, 키키킥-

니케가 분노를 노래하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을 깜박한 것 같은 느낌.

'...뭐를 잊어먹었나?'

원래 자주 깜박깜박하는 니케가 기억을 떠올리려는 순간.

크아아아아-

끼이이이익-

도토리 숲 가장자리에서 전투 소음이 들려왔다.

순간 니케의 눈에서 황금빛 섬광이 번뜩이고 전신에서 빛이 폭발했다.

파스스슥-

다음 순간, 니케는 도토리 숲 가장자리를 날고 있었다.

니케의 눈이 확 커졌다.

오크와 랩터들이 도토리 숲 경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킥, 키키킥-

분노한 니케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파슥, 파슥, 파스슥-

섬광이 연이어 번뜩였다.

섬광이 터질 때마다 도토리 숲 안에서 싸우고 있던 오크와 랩터들이 픽, 픽- 쓰러졌다.

그리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

키이이이이-

육체를 넘어 그 본질에 타격을 가하는,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의 물기 공격!

감각기관이 있는 생명체뿐 아니라,

골렘 같은 마법 생명체, 고스트 같은 영체도 고통에 울부짖게 만드는 니케의 물기 공격이 작렬했다!

쓰러진 오크와 랩터들은 기절조차 하지 못한 채,

전신의 구멍에서 체액을 줄줄 흘리며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분노한 울음소리!

킥, 키키킥-

이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갈대 늪지에 깔린 수백의 오크와 랩터들은 깨달았다.

도토리 숲의 악마,

무자비한 폭군이 돌아왔다!

북에서 내려오는 마수와 몬스터 무리에 밀려나 갈대 늪지.

그리고 도토리 숲까지 이동했던 오크와 랩터들은 즉시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러나 니케는 용서를 모르는 무자비한 폭군이었다.

니케는 도토리 숲을 넘어 북쪽으로 날아가며 눈에 보이는 모든 마수와 몬스터들을 물었다.

킥, 키킥-

분노한 폭군의 울음소리가 터질 때마다.

픽, 픽-

땅에 쓰러져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는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

멀리 북쪽 설원에서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 마수와 몬스터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몸을 돌려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쪽 도토리 숲의 악마.

북쪽 설원의 서리 늑대.

황금 다람쥐와 재앙급 마수 사이에 낀 마수와 몬스터들이 ‘고블린 평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마수와 몬스터의 연쇄 이동을 일으켰다.

당연하게도 고블린 평야. 그리고 이곳과 이어진 산맥과 숲, 들판에 펼쳐진 신동대문의 사냥터는 점점 난장판이 돼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도로건설, 해외 자본 투자, 사냥터 분쟁 같은 다른 이슈에 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상을 감지했던 예리한 직감을 가진 헌터가 한 명 있었지만···.

그 헌터는 이 순간 희희낙락 외치고 있었다.

"우와- 이게 다 얼마야!? 대박, 대박이다!!"

예리한 직감을 가진 헌터,

천문석은 25개의 몬스터 마석을 번쩍번쩍 광택이 날 때까지 닦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개당 100만원만 잡아도 2500만원!

헌터의 마석 거래에는 세금도 붙지 않는다!

즉 눈앞의 번쩍이는 마석은 현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마수와 몬스터 부산물, 의뢰비까지 받으면 한방에 거액이 들어온다.

자본주의 레벨이 폭렙을 하고!

건물주 게이지가 확 차오를 날이 곧 이다!

천문석은 최고의 힐링, 금융 힐링을 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번 임무 운이 엄청 좋은데! 카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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