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8화 (199/1,336)

#198

헌터 부대 장성.

대형 길드 수뇌부.

외국인 투자자.

게다가 대규모 투자 협정서작성이라니!

천문석은 생각 이상으로 빠른 진행에 깜짝 놀랐다.

"뭐? 아니 뭐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냐? 일주일 전에 내가 사냥하러 갈 때까지는 별다른 소문도 없었잖아?"

김기태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원래 우리 같은 말단 헌터들이 가장 늦게 아는 거지. 대형 길드 집행위원 같은 거물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보더라고. 그리고 놀라지 마라. 이거 단순한 도로건설이 아니다."

"...그건 무슨 소리야. 신서울이랑 신동대문 잇는 도로건설이 아니라고?"

"그건 단지 시작일뿐이란 거지! 생각해봐 신서울과 신동대문 사이 잇겠다고 헌터 부대, 대형 길드 몇 개가 동시에 움직이겠냐? 외국투자까지 받아서?"

그러고 보니 그랬다.

신서울과 고산 마을을 잇는 도로를 건설할 때도 대형 길드가 위장 길드를 내세워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고 했었다.

아무리 그때보다 힘들다고 해도,

지금처럼 도로 하나 뚫겠다고 몇 개 세력이 연합하는 건 너무 과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물었다.

"너, 정보 들은 거 있구나···?"

김기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도로건설. 신서울과 게이트 거점 도시를 잇고, 다시 게이트 거점 도시에서 주요 거점 도시를 잇는. 이세계 거점 도시 전체를 잇는 '도로망 건설 계획'이란다! 신동대문이 그 계획의 첫 번째고!"

순간 천문석은 들썩이는 신동대문의 분위기가 이해가 됐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신동대문은 주요 거점 도시를 잇는 이세계 교통의 허브가 된다!

"와-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천문석이 감탄하자, 김기태가 입안에 술을 털어 넣더니 말을 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뭐가 더 있는 거야? 야, 빨리 말해봐."

천문석이 빈 잔을 채우며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 김기태.

"도로건설 예정지에 몬스터와 마수가 하나둘이 아니거든. 그거 정리하는 일에 우리 헌터팀도 참여하기로 했다. 어때 너도 우리 팀 들어올 생각 없냐?"

"야, 나 아는 형이랑 일한다니까. 그보다 너희 헌터팀에서 몬스터 정리를 한다고? 사냥이랑 정리는 완전히 다르잖아? 너희 헌터팀 인원으로 그게 되냐?"

마수와 몬스터를 잡아 ‘부산물과 마석을 얻는 사냥’과 마수와 몬스터의 근거지를 파괴하고 ‘완전히 밀어내는 정리’는 차원이 달랐다.

순간 김기태는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것 때문에 헌터 부대와 대형 길드 몇 개가 연합한 레이드 팀이 만들어지고 있어."

"연합 레이드 팀?"

천문석이 되묻는 순간,

테이블을 두들기며 대답하는 김기태.

탁-

"맞아. 연합 레이드 팀! 위에서는 도로건설 예정지의 마수와 몬스터, 마경을 연합 레이드 팀으로 속전속결! 한방에 밀어버릴 생각인 거지!"

"너희 헌터팀이 거기에 들어갔다고? 대형 길드 연합 레이드 팀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자랑스럽게 말하던 김기태는 겸연쩍게 웃었다.

"우리 헌터팀이 거기에 끼기에는 규모가 좀 많이 모자라지. 하하- 우리 헌터팀이랑 다른 헌터팀, 사냥팀 몇 개 연합해서 작게 레이드 팀 만들기로 했다."

"레이드 팀을 만든다고? 대형 길드 연합 레이드 팀이 만들어지는데. 일거리 받을 수 있겠냐?"

김기태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연합 레이드 팀은 굵직한 상급 마수, 상급 몬스터, 마경을 밀어야지. 자잘한 몬스터 정리에 대형 길드 연합이 나서는 건 인력 낭비지."

천문석은 김기태가 하려는 일을 알아챘다.

눈앞의 김기태는 예전 철수형이 이세계 쿠팡맨을 할 때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틈새시장!

"너 틈새시장을 노리려는 거구나! 그런데 그거 수지타산이 맞겠냐? 헌터부 일은 가능한 돈을 안 주고 상점으로 때우려 한다며. 원성이 자자하던데?"

"이번에는 좀 달라. 이번 도로망 건설 외국 투자자본이 들어와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풀릴 거다. 곧 시청에서 용역 공고 붙을 예정인데 그거 입찰하려고."

"그래도 머릿수가 늘어나면 큰 이득을 보긴 힘들 텐데···."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이어지는 이야기.

“아니. 이번 일은 오히려 머릿수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뭐? 그게 무슨···?”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김기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합을 맞추는 게 힘들지 몇 번 손발을 맞춰서 행동하다 보면. ‘임시 레이드 팀’이 ‘길드’ 되는 건 순식간이잖아?”

“...!”

이 순간 머리를 스치는 단어.

‘길드!’

천문석은 김기태의 진짜 계획을 깨달았다.

금전적 이득은 부차적이다.

이 녀석의 진짜 계획은 다른 사냥팀의 헌터들을 흡수해서 ‘길드’를 만드는 거다!

"와아- 이런 야망 덩어리 같으니라고! 너 다른 팀 헌터들 낼름 삼켜서 길드 만들려고 하는구나!"

천문석이 정곡을 찌르는 순간,

김기태는 어깨를 으쓱하며 주위를 가리켰다.

술집 곳곳 테이블마다 무리 지어 이야기하고 있는 헌터들.

"지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헌터들이 한둘이 아닐걸. 저 헌터들도 비슷한 생각 중일 거다. 돈과 명분, 그리고 새롭게 생겨날 이권! 기회가 온 거다! 한방 크게 터트리고 비상할 기회!"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자신만만한 김기태와 술집 안의 헌터들을 봤다.

평소와 달리 거친 헌터들이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머리를 모으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상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다니!

역시 눈과 귀가 밝고 행동력이 빠른 사람들은 헌터 업계에도 많았다.

시장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 몸집을 키우고 길드를 만들 생각까지 하다니!

이때 김기태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솔깃하지 않냐?"

"뭐가 솔깃해?"

"너 지금 우리 팀에 합류하면, 바로 집행위원. 길드 출범하면 부 길드장 지위 줄게. 계획대로 되면 그냥 작은 길드가 아니라. 헌터만 100명 이상인 대형 길드의 부 길드장이 되는 거다."

“날 뭘 믿고?”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김기태는 피식 웃었다.

“너 깡이 아주 맘에 들어! 하- 랩터 무리한테 포위됐는데. 끝까지 마탄 한 방 안 쏘고 방패와 해머로 때려잡다니! 그런 놈은 처음 봤다! 어디서 그런 깡이 나오냐?”

“...”

연신 탄성을 터트리는 김기태에게 천문석은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발당 2만원의 마탄 값이 아까워서 몸으로 때웠다는 진실을···.

그래서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야, 나 지금도 부사장이다! 미래의 부 길드장 정도로 내가 움직일 거 같냐?"

어이없어하는 김기태.

"하- 야! 너희 사무실 직원이 두 명이라며! 사장, 부사장. 두 명!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 헌터팀 10명은 전부 이사다!"

"어허. 내 밑에 네 사람 더 있다니까 그러네. 너 엠마 봤잖아? 걔도 우리 사무실 직원이야."

"엠마 저번에 한잔하니까 그러더라. 아무래도 자기가 사기계약 당한 것 같다고."

"...사기계약? 엠마가 그랬다고?"

"너 엠마 무급으로 고용했다면서? 와- 어떻게 경력 3년이 넘는 베테랑 헌터를 무급으로 고용했냐? 그것도 소총수도 아닌 궁수를?"

하-

김기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기계약이라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돈보다 중요한 걸 대가로 주는 공정한 계약 했어!"

천문석이 강하게 항의하자,

김기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그거 가'족'같은 기업 단골 멘트잖아! 임금은 적어도 가'족'같은 분위기의 기업! 금전 이상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꼭 그런 데가 대표나 이사 월급은 엄청나더라."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

그러나 천문석은 당당했다.

사장 김철수는 사무실에서 구르고 있고,

부사장 천문석은 현장에서 구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김철수 사무실은 월급은커녕 아직 수익이 나지도 않았다.

즉 엠마만 무급인 게 아니었다.

"우린 그런 가족 같은 기업이 아니다. 사장과 부사장이 솔선해서 구르는, 일종의 뭐라고 할까···. 패밀리? 맞아! 우린 패밀리다!"

"마피아냐? 패밀리는 무슨···. 그것보다 생각 바뀌면 언제든 말해라. 지금 외국애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래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덩치를 키우는 중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외국애들?"

김기태는 술집을 쓱 훑어보더니 몇몇 테이블을 가리켰다.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분위기가 다른 헌터들이 보였다.

"저기 중국이랑 일본 헌터들. 지금 헌터 모으고 있잖아."

"그게 왜? 헌터가 사냥팀 옮겨 다니는 건 흔한 일이잖아?"

"인원수를 너무 빠르게 늘리고 있어. 그리고 한국 헌터뿐만이 아니야. 너 밖에 도로로 들어오는 장갑 SUV, 장갑 버스 봤지."

도시로 들어올 때의 기억을 떠올린 천문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기태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거 반 이상이 일본과 중국 본토에서 들어오는 헌터들이 타고 있는 차량이다."

"그게 문제가 되냐? 헌터는 많을수록 좋잖아?"

"갑자기 헌터 수가 늘어나면서 지금 사냥터에서 트러블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니까! 우리 길드도 오늘 일본 쪽 애들이랑 한판 붙을 뻔했어!"

김기태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지만,

천문석은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사냥터에서 트러블이 일어났다고? 오늘도 마수와 몬스터 거의 천 단위로 나타났는데도 주위에 헌터는 한 명도 보이지 않던데 무슨 트러블."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요새 사냥터마다 헌터들이 바글거리는데···. 너 어디서 사냥했는데?"

"서쪽, 도토리 숲 옆 갈대 늪지. 한 일주일 정도 사냥 캠프 차렸어. 그동안 헌터는 두세 팀? 얼핏 지나가는 것만 봤고."

순간 김기태는 기겁해서 외쳤다.

"거기! 오크 부족 이동로잖아! 그 근처 헌터들 모두 철수했지!"

"이동로?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북쪽에서 마수와 몬스터가 계속 밀려 내려오는 건 알지?"

신동대문에 온 첫날 들었던 이야기다.

북쪽에서 계속 마수와 몬스터가 밀려 내려온다는 이야기.

"그거야 당연히 알지."

"하- 야, 그래서 시청에 공고 붙었잖아. 밀도를 낮추기 위해서 북쪽에서 밀려오는 마수와 몬스터 일부를 서쪽 갈대 늪지 방향으로 밀어낸다고!"

"...!"

천문석은 이 순간 오늘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게 됐다.

며칠 전부터 영역을 벗어나 나타나던 오크와 랩터들.

오늘 랩터 몰이 사냥 중 나타난 수많은 오크와 랩터 무리.

이들 모두 북쪽에서 밀려오는 마수와 몬스터에 밀려 움직인 것이다!

"그 공고 언제 붙은 건데! 나는 전혀 몰랐는데!?"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김기태가 입을 열었다.

"그거 이주 전부터 붙어 있었는데?"

"...내가 사냥 나가기 전에 시청 공고를 분명 확인했는데. 그땐 없었어!"

순간 천문석과 김기태의 시선이 마주쳤고,

김기태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 또 공고문 떼어갔나 보네!"

"...뭐?"

"요즘 자꾸 공고문을 떼어가는 녀석이 있어. 벼르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데. 이상하게 안 잡히네."

“...”

천문석은 말문이 턱 막혔다.

자신이 갈대 늪지에서 겪었던 일은 어이없게도 공고문 도난이 원인이었다.

공고문을 확인하지 못해 다른 마수와 몬스터에 밀려나는 수백의 오크와 랩터 무리에 포위되어 아작이 날뻔한 거다!

이런 어이없는 결론이라니!

하-

천문석은 허탈하게 웃으며 입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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