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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5화 (196/1,336)

#195

광화문 게이트를 넘어와 사냥 캠프를 차린 지 일주일.

엠마는 갈대 늪지를 달리고 있었다.

파바바바-

키 높이를 훌쩍 넘는 갈대가 몸을 스쳐 지나가고,

무른 늪지에서는 뜨거운 습기가 훅훅 올라온다.

후, 후-

가쁜 호흡을 내쉴 때,

등 뒤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울음소리!

끼이이이익-

비명을 지르는 듯한 울음.

타글란, 보통 랩터라 부르는 공룡형 몬스터의 울음소리다!

한 놈의 울음이 끝나는 순간,

대답하듯 곳곳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끼이익-

끼이이익-

뒤뿐만이 아니다.

양옆에서까지 울음이 들려온다!

엠마는 직감했다.

'반 포위됐다!'

랩터는 무리 사냥에 능숙한 몬스터!

아무리 랩터가 하급 몬스터라지만 그 수가 열 마리가 넘어가면 상대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자신의 뒤를 쫓는 랩터는 십 단위는커녕 백 단위에 가깝다!

엠마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랩터 사냥 중 죽은 헌터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죽었다.

랩터의 공격 대부분을 막아내는 강화 전투복을 믿고,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잡겠다고 어그로를 끌었다가.

랩터 무리에게 포위되어 강화 전투복에 충전된 마력이 모두 소진되는 순간.

랩터의 갈고리발톱에 갈가리 찢겨 죽는다!

그래서 랩터 사냥은 풀링이 가장 중요한 건데···.

'어떤 미친놈이 랩터를 몰이 사냥해! 시발, 시발, 개시발!'

엠마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미친 짓을 하는 놈이 자신의 고용주였고, 자신이 랩터를 몰고 달리는 미끼였다!

엠마는 문득 손에 들린 무기를 봤다.

고용주가 엠마의 기술과 능력을 확인하더니 건네준 검과 방패.

"이걸로 싸우라고요?"

처음 내뱉은 말.

원딜에게 검과 방패를 들려주다니!

처음 엠마는 고용주 놈이 미쳤나 했다.

그러나 이 검과 방패는 전투용이 아니라 풀링용이었다.

효율적으로 마수와 몬스터를 끌어모으기 위한 신호용 장비.

순간 광화문 게이트를 넘은 후의 일들이 떠오른다.

신동대문에 도착할 때까지는 평범한 여행이었다.

낮에는 달리고 밤에는 거점 마을에 화물차를 주차하고 잤다.

그리고 신동대문, 쇠락한 거점 도시에 도착한 후에도 한동안은 정상적인 사냥을 했다.

랩터, 오크, 고블린···.

소규모 집단을 기습 공격하는 안전하고 정석적인 사냥.

그러나 한동안 정석적인 사냥을 하는것 같던 고용주는.

어느 순간부터 온갖 희한한 방법으로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했고 자신은 구르고 굴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랩터를 몰이 사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용주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끼이이이익-

이 순간 들려오는 랩터 울음소리!

'시발, 시발-'

엠마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키며 달리는 속도를 빨리했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라 도망칠 때였다!

푹, 푸욱-

습기를 머금은 무른 늪지가 발걸음을 잡아끌 때, 훅 불어오는 습기와 열기를 품은 바람!

엠마의 눈이 커졌다.

바람에 짙은 랩터 무리의 체취가 섞여 있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랩터 울음소리!

휘익-

순간 무언가 뛰어오르는 소리가 나고.

노란 눈을 번뜩이는 랩터가 갈대 위로 치솟아 올랐다!

휘익, 휘익, 휘익-

뒤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둘이 아니다.

수십 마리 랩터가 땅을 박차고 뛰어 사냥감, 자신을 찾고 있었다!

엠마는 등골을 흐르는 소름을 느끼며 즉시 몸을 낮췄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

끼이익, 끽, 끽-

엠마는 직감했다.

'걸렸다!'

끼이익-

끼이이-

랩터의 신호하는듯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엠마 주위의 갈대밭이 거칠게 흔들렸다!

사슴을 사냥하는 늑대무리처럼,

엠마를 따라 랩터 무리가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랩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치듯 흔들리는 갈대밭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쾅, 쾅, 쾅-

엠마는 미친 듯 방패를 두들기며 외쳤다.

"긴급 상황! 바로 직선으로 달린다! 준비해!!"

원을 그리며 갈대밭을 달리던 엠마는 원의 중심을 향해 직선으로 뛰었다.

곧 무성한 갈대밭이 사라지고 매캐한 탄 냄새가 확 올라왔다.

방화선을 만들고 불을 질러 만든 늪지 속 검은 공터!

이 공터가 엠마의 목적지였다.

엠마는 검은 재만 남은 공터 한가운데, 비쩍 마른 나무를 향해서 달렸다.

그리고 엠마가 중앙의 나무에 도착해 뛰어오르는 순간.

탁-

엠마의 손을 잡는 단단한 손!

휘익-

엠마는 단숨에 나무 위로 끌려 올라갔다.

이와 동시에 검은 공터 사방에서 랩터가 쏟아졌다.

후두두둑-

끝없이 쏟아지는 랩터들.

끼이이, 끼이-

갑자기 갈대밭이 사라지고 검은 재가 깔린 공터가 나타나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랩터들.

곧 랩터들의 시선이 공터 중앙 앙상한 나무로 모였다.

그리고 사냥감을 찾은 백여 마리 가까운 랩터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끼이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랩터 무리의 울음소리가 터지는 순간.

공터에 몰려든 수많은 랩터는 일제히 나무를 향해 달렸다.

파드드득-

땅에 가득 쌓인 검은 재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랩터 무리의 엄청난 기세!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뿐인 나무는 랩터 무리의 갈고리발톱에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엠마의 안색이 하얗게 질릴 때,

지난 일주일 너무나 익숙해진 고용주의 외침이 들려왔다.

"전방 섬광!"

엠마는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고 손으로 귀와 눈을 가렸다.

끼이이익-

그리고 수많은 랩터가 일제히 울부짖으며 나무를 향해 뛰어오르는 순간!

콰아아아앙-

가린 손을 뚫고 들어오는 엄청난 섬광과 굉음!

굉천수!

엠마가 몇 번이나 당한 굉천수가 머리 위에서 터졌다.

그리고 열을 세고 눈을 떴을 때,

경이로운 광경이 엠마의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공터에 쓰러진 수많은 랩터!

"이게 성공하다니!"

엠마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검은 공터 가득한 랩터 무리!

쓰러진 랩터는 완전히 무너진 균형감각에 무력화되어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이때 고용주의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뒤에 랩터 무리 더 있잖아! 쫄지 말고 하나로 모으라고 했잖아! 다른 몬스터 어그로 끌린다니까!"

"..."

엠마는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고용주, 천문석을 봤다.

'그렇게 잘하면! 자기가 미끼로 달리지!'

당장이라도 쏟아내고 싶은 말을 간신히 삼킬 때,

천문석이 나무 꼭대기에서 휙 뛰어내리며 외쳤다.

"빨리빨리! 움직여! 다른 몬스터 나타나면 난장판 된다! 길어야 10분이다!"

"알았어!"

엠마는 바로 목에 걸린 스톱워치를 누르고 천문석을 따라 움직였다.

"크고 모양 좋은 거로 갈고리발톱 한쪽만 뽑아내! 둘 다 뽑지 말고! 가능한 전투력 살려놔야 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외치고 랩터를 훑었다.

이렇게 대량으로 잡는 것은 처음이지만,

하도 랩터를 잡다 보니 쓱 보기만 해도 감이 왔다.

모양이 크고 좋은 갈고리발톱.

그리고 마석을 품은 랩터가 어떤 녀석인지!

이놈, 저놈, 저기 저놈!

천문석은 최적의 경로를 뽑아낸 후,

단검과 강화 해머를 들고 작업에 들어갔다.

팍-

갈고리발톱이 솟아난 부위에 단검을 수직으로 박아넣고.

쾅, 쾅, 쾅-

강화 해머로 단검을 때려 넣고 단숨에 들어 올리는 순간.

끼이익-

꽈드드득-

장난처럼 툭 떨어져 나오는 갈고리발톱!

갈고리발톱을 회수한 천문석은 바로 다음 랩터로 넘어갔다.

이놈은 마석을 품고 있다!

천문석은 단검에 일기일원공을 일으켜 랩터의 몸 위를 훑었다.

랩터의 배에서 멈추는 단검!

마석이 있는 위치에 십자 상처를 내고,

상처 반대쪽 경력이 담긴 강화 해머를 때려 박는다!

타악, 콰아앙-

솟구치는 피와 함께 십자 상처에서 토해내듯 툭 튀어나오는 몬스터 마석!

7분이 지났을 때 천문석의 주머니에는 12개의 갈고리발톱과 4개의 몬스터 마석이 담겨 있었다.

그 와중에 죽은 랩터는 심장에서 마석을 빼낸 한 놈뿐이었다.

천문석은 랩터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도록 가능한 조심조심 갈고리발톱과 마석을 뽑아내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이때 들려오는 작은 울음소리.

균형감각이 무너진 랩터 중 몇 놈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게 보였다!

"하- 굉천수에도 적응을 하나. 점점 빨리 회복하네."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파드드득-

갈대가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색이 변한 천문석은 바로 바닥에 귀를 댔다.

투드드드-

미처 다 몰지 못한 랩터 무리가 달리는 진동.

궁, 궁, 궁-

그리고 그사이에 섞인 다른 진동!

더 무겁고 더 빠르다!

랩터의 전투력을 가능한 한 살려두려고 했던 이유,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천문석은 갈고리발톱을 회수하는 엠마에게 외쳤다.

"엠마! 바로 빠진다!"

"알았어!"

엠마는 두말하지 않고 천문석을 따라 달렸다.

지난 일주일.

빡세게 구르고 구른 엠마는 천문석의 능력 하나를 알게 됐다.

신기할 정도로 도망을 잘 친다!

천문석은 몸을 빼야 하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이렇게 3분 정도 달렸을 때 엠마가 물었다.

"뒤에 뭐가 붙은 거야?"

천문석이 대답하기 전.

후두두둑-

등 뒤, 갈대밭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끼이이익-

랩터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우우우웅-

그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

"이거 설마!"

엠마의 얼굴이 하얘지는 순간.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랩터 다 몰아오라고 했잖아. 남은 랩터에 '오크 라이더' 어그로 끌렸다."

오크 라이더!

탑승물을 탄 오크 기병!

기동력과 무게에서 나오는 파괴력이 일반 오크 10마리를 넘는 위험한 놈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오크 라이더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였다.

늑대, 멧돼지, 랩터를 길들여 타는 오크 라이더가 나타났다는 건, 그 뒤에 최소 천 단위의 오크 부족이 있다는 의미였다.!

엠마의 얼굴이 하얗게 변할 때,

앞서 달리는 천문석은 문득 느껴지는 기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오크 라이더 뒤에도 뭐가 붙은 거 같은데···."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외쳤다.

"엠마. 띄워줘!"

전에도 몇 번이나 했던 일.

엠마는 천문석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두 손을 깍지낀 채 다리를 굽힌다.

순간 깍지낀 손위에 걸리는 무게.

천문석.

발이 손에 걸리는 순간.

엠마는 전력을 다해 천문석을 하늘로 던져 올렸다.

"이야압!"

휘이이-

갈대밭 위로 높게 솟구치는 천문석.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이 느껴지는 곳을 훑었다.

쿵, 쿵, 쿵-

거대한 뿔이 난 비늘 코뿔소 다섯 마리가 랩터를 탄 오크 라이더 십여 명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선두의 비늘 코뿔소 몸 곳곳, 깨져나간 비늘이 햇빛에 반짝인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오크 라이더는 비늘 코뿔소를 사냥하다가 갑자기 사방에서 비늘 코뿔소가 나오자 도망쳤다.

이 와중에 랩터를 발견하자 그 뒤를 쫓은 것! 정신없는 오크다운 사냥법이었다.

이때 뿔피리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부우우우웅-

뿔피리가 들려오는 곳의 갈대가 일제히 쓰러지고 완전무장한 오크 백여 마리가 나타났다!

이때 낯익은 울음소리가 대답하듯 들려왔다!

끼이이이익-

검은 공터, 굉천수에 무력화됐던 랩터들이 몸을 일으키며 포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 모든걸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

탁-

땅에 떨어진 천문석은 재빨리 갈대를 훑어 하늘에 던졌다.

휘이-

바람 방향을 확인한 천문석은 바람을 등지고 달리며 외쳤다.

"야, 좆됐다! 빨리 뛰어!"

"뭐? 뒤에 뭐가 붙었는데!?"

엠마가 다급한 물음에 천문석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끼이이익-

크아아악-

엄청난 포효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백여 마리의 랩터와 오크 본대가 격돌하는 전투 소음!

갑자기 들려오는 엄청난 포효에 엠마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최소 백 단위 오크가 나타났다!’

이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외쳤다.

“야! 정신 차리고 빨리 따라붙어!”

엠마는 반사적으로 천문석을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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