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다른 사람이 모두 내린 후에 마지막으로 꾸물꾸물 천천히 화물차에서 내리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힘없이 천문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바 잘 갔다 와···."
그리고 특급 헌터의 인사에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들.
"알바씨. 잘 다녀오세요."
장민 대표.
"오빠! 잘 갔다 와!"
장민 대표 뒤에 숨어서 외치는 류세연.
"친구! 몸조심해!"
류세연에게 손이 잡힌 채 웃고 있는 한경석.
천문석은 건물 앞에 나란히 선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대표님 집에 안 가시나요? 경석이 너 길드 안가냐? 광화문까지 태워다 줄까?"
장민 대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류세연과 한경석의 팔짱을 꼈다.
"오늘 우리끼리 할 일이 있어요."
"앗! 그럼 내가 알바랑 같이 갈게! 여자끼리 할 일이 있는데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특급 헌터가 신나게 외치며 화물차로 달려왔으나.
"잡아."
장민 대표가 명령하는 순간.
핏-
점멸 이동한 한경석이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올렸다.
"보이지도 않았는데? 잡혔어!"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외치고,
곧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알바 미안. 난 탈출에 실패했어."
“괜찮아. 나 대신 집을 지켜줘.”
“알았어! 내가 집을 꼭 지킬게! 앗! 알바 이거 가지고 가!”
특급 헌터는 씩씩하게 외치고 허리에 차고 있던 나뭇가지 검을 내밀었다.
"퐁퐁검. 이건 왜?"
"이번에 오랫동안 가 있는다며! 퐁퐁검이 알바를 지켜줄 거야!"
나뭇가지 검에 남은 하늘 고래의 힘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사양하지 않고 나뭇가지 검을 받았다.
"잘 쓰고 다시 빌려줄게.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돌아와서 뵐게요. 대표님. 나중에 보자. 류세연. 한경석."
천문석은 어쩐지 묘한 미소를 짓는 장민, 류세연, 한경석에게 인사를 하고 화물차 운전석에 앉았다.
“그럼 나중에 봐요.”
“잘 갔다 와.”
“이따가 봐.”
세 사람의 인사를 뒤로하고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가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휴식과 휴가는 끝이다.
이제 다시 헌터로 돌아갈 때였다!
---
"네. 철수형. 지금 가고 있습니다."
-...
"네. 엠마만 바로 내려 보내주시면 됩니다."
-...
"아뇨. 그냥 바로 넘어갈게요. 철수형. 밤새웠다면서요. 내려올 필요 없어요."
-...
천문석은 스피커폰을 끊고 가볍게 목을 돌렸다.
워터파크에서 빡세게 놀고 캠핑장에서 즐겁게 고기를 구워 먹은 하루.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쩐지 홀가분했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HP, MP가 가득 채워진 듯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일까.
이번 게이트 너머 일거리, 느낌이 아주 좋았다!
휘이, 휘휘휘-
천문석은 가볍게 휘파람까지 불며 운전해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들어가려 했다.
삑, 삐이익-
이때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통제 중인 교통경찰들이 보였다.
"지금 각성 동물 수색으로 광화문 광장과 인근 도로 통제 중입니다. 안국역 방향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천문석은 화물차를 돌려 안국역 앞 도로를 지나 재금 빌딩에 도착했다.
재금 빌딩 앞 인도,
땅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보는 순간 감이 왔다. 10억의 포상금이 걸린 각성 동물, 하늘다람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인파 너머 재금 빌딩 앞.
강화 전투복을 입고 무장 상자와 배낭을 메고 있는 엠마가 보였다.
엠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화단에 앉아 졸고 있었다.
"엠마! 여기야!"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나는 엠마.
"...!"
천문석은 엠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다크 서클이 짙은 새하얀 얼굴,
당장이라도 감길 듯한 졸린 눈.
엠마는 쓰윽, 쓰윽- 힘겹게 발을 끌고 걸어와 화물차 조수석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너 괜찮아? 밤새 수색했다며?"
"...괜찮습니다."
엠마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픽 떨구고 잠들었다.
"..."
천문석은 광화문 게이트 지역으로 운전하며 감탄했다.
역시 철수형!
체력이 엄청난 각성 헌터가 밤새 수색 좀 했다고 기절하듯 잠들기가 없었다.
엠마는 그 전에 철수형과 같이 일하며 피로에 찌들었을 거다!
철수형의 일복은 자신 이상!
보지 않아도 철수형의 일복에 악당 4인조가 정신없이 구르는 모습이 상상됐다.
사람은 몸이 힘들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법!
사무실에 남은 악당 3인은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다.
휘이이, 휘휘-
천문석은 신나게 휘파람을 부르며 잠든 엠마를 태운 채 광화문 게이트 지역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목적지는 광화문 게이트 지역의 맹호 건 스미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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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은 맹호 건 스미스의 대여금고에서 김철수가 빌려둔 강화 전투복과 헌터용 장비를 찾았다.
강화 전투복과 강화 군화와 방탄방검조끼, 무장 벨트.
그리고 헌터용 안전 장갑 20켤레.
대여금고 안에는 철수형이 꼼꼼하게 준비한 헌터용 장비가 잘 정리되어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장비를 착용하고,
이번에는 리볼버용 마탄을 넉넉하게 300발 구입했다.
한발 당 2만원의 마탄 300발!
리볼버 마탄 비용만 600만원!
통장 잔고가 1억원을 돌파했고 법인 카드로 긁었는데도.
천문석은 600만원의 마탄 비용에 속이 쓰렸다.
그래서 마탄 상자 6개를 배낭에 넣으며 슬쩍 물었다.
"혹시 더 싼 마탄은 없나요?"
건 스미스 직원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재금 공업 마탄 라이센스 사용 안 하고 자체 기술로 생산한 마탄은 아주 싸죠."
“자체 기술로 마탄 생산이 된다고요? 그런 게 나왔어요?!”
"나온 지는 몇 년 됐죠. 헌터들이 안 써서 묻혔긴 하지만."
건 스미스 직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뭔가 문제가 있나?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마탄 가격이 얼만가요?"
"발당 500원 미만입니다."
1/40 가격!
300발을 사도 15만원이면 된다!
마수, 몬스터 사냥에 들어가는 가장 큰 비용이 마탄 값인 걸 생각하면 이건 혁명이었다!
천문석이 솔깃한 표정을 짓는 순간,
건 스미스 직원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마탄 불발탄 나올 확률이 10에서 20% 정도 됩니다."
25발 중 1, 2발 정도 불량률.
얼핏 이 정도면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총기에 탄이 걸리는 잼이 일어나면 사격은 그 즉시 중지된다.
잼이 걸리면 총기는 그냥 무거운 쇳덩이가 된다.
자신이 사용하는 리볼버라면 불발탄이 나와도 다음 탄을 발사할 수 있지만,
신뢰도가 떨어지는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는 법.
천문석은 싼 마탄을 사겠다는 생각을 싹 지웠다.
그리고 나가려다가 문득 든 생각에 건 스미스 직원에게 물었다.
"요즈음 신동대문 어떤가요? 제가 이번에 그쪽에서 일을 좀 할 것 같은데. 거기 요새도 물가가 미쳐 날뛰나요?"
"아, 거기 물가 잡힌 지 좀 됐어요. 소문 돌더니 물류가 바로 이어졌어요. 그것 때문에 사재기 한 사람들만 난리 났죠."
"네, 소문이요? 물류가 이어졌다고요?"
천문석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 물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안 나고 진짜 소수의 몇몇 사람만 아는 이야긴데···."
건 스미스 직원은 슬쩍 텅 빈 상점 안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 신서울에서 신동대문까지 도로 뚫는다네요."
"도로? 그냥 소문 아닌가요?"
천문석이 반문하자,
건 스미스 직원은 창밖 높게 솟은 성벽을 가리켰다.
"저희 맹호 건 스미스가 저기에도 납품하거든요."
성벽이면 서울 헌터 부대 특임대다!
"지금 헌터부 공무원이 도로 건설 예정지에 은밀히 깔렸어요. 게다가 대형 길드 스카우터······."
천문석은 다음에 이어질 직원의 말이 짐작됐다.
신동대문이 들썩이고 있을것이다.
"지금 그것 때문에 신동대문이 난리에요. 다시 돌아가려는 대형 길드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기반이 날아갔으니···. 제대로 된 사냥터, 거점이 없었던 외국 길드.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폭락한 신동대문의 부동산과 이권을 많이 사들였거든요. 그게 완전 대박이 났죠. 지금 중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돈이 신동대문으로 쏟아지는데···."
천문석은 직원의 말을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동대문 게이트가 사라지는 서울 사태로 신동대문의 가치는 폭락했었다.
신동대문과 신서울을 잇는 도로가 만들어지면,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다!
물류가 뚫렸으니 사재기꾼은 큰 손해를 볼 테고,
부동산과 이권을 싸게 처분하고 떠났던 길드와 기업은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다.
어쩌면 소문과 정보에 민감한 길드와 대기업은 이미 신동대문으로 이동해서 기반을 잡고 있을지도 몰랐다.
거의 망해간다던 신동대문이 이렇게 다시 살아나다니!
이 순간 문득 생각나는 철수형의 말.
'아, 이래서 신동대문 인근 지역이 안정화됐다고 했구나!'
이번 일거리 대부분이 신동대문 인근 지역에서 해야 할 일들.
신동대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할 자신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이때 들려오는 건 스미스 직원의 목소리.
"...그래서 이번 도로 건설의 가장 큰 문제는 '도토리 숲'입니다."
"네? '도토리 숲'이요?"
천문석이 뜬금없는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건 스미스 직원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서울과 신동대문! 두 거점 도시를 잇는 도로 건설을 예전에도 몇 번이나 하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한 원인이 이 ‘도토리 숲’ 때문이거든요!"
"...숲의 지형이 안 좋아서 그런가요? 아니면 강한 몬스터 부족이 산다거나?"
건 스미스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히려 지형이 좋죠. 주위가 다 험한 지형인데 이 도토리 숲만 평지에 있습니다. 마수와 몬스터도 이 숲에만 없고요."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지형이 그려졌다.
험한 지형 한가운데 평지에 있는 도토리 숲.
도로 건설을 위해서는 이 숲에 길을 뚫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냥 숲을 밀어버리고 도로를 뚫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 게. 여기서 '악마', 그러니까 재앙급 마수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재앙급 마수요!?"
천문석은 깜짝 놀라 물었다.
"거기 혹시 마경인가요? 무슨 재앙급 마수가 도토리 숲에서 나와요?"
"마경은커녕 그 숲에는 마수나 몬스터. 아니 늑대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아요. 그게 이상하단 거죠!"
"네, 그게 무슨···?"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는 숲!
이건 담배꽁초가 하나도 없는 배수로, 완벽하게 분리수거된 재활용품, 모두가 정지선을 지키는 횡단보도와 같았다.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상황.
풍족한 이세계의 숲에 마수와 몬스터뿐만 아니라 야생 동물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건 스미스 직원은 무언가 알아 챈듯한 천문석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죠? 주위 험지에는 마수와 몬스터가 많은데 정작 환경이 좋은 '도토리 숲'에는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 이상하잖아요?!"
천문석은 어느새 완전히 몰입해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완전 이상하네요!"
"그래서 예전부터 이 도토리 숲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거든요. 비밀을 밝히겠다고 일부러 찾아가는 헌터들도 하나둘이 아니었고요. 그런데···!"
순간 말을 끊는 건 스미스 직원.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천문석이 다급히 묻자, 건 스미스 직원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이 도토리 숲에 들어갔던 헌터들은! 하나같이 넋 나간 표정으로 돌아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 도토리 숲에는! 보이지 않는 '악마'가 산다고!"
빠악-
순간 건 스미스 직원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손바닥!
"야! 손님 앞에서 무슨 헛소리야!"
"커억- 사장님!"
뒤통수를 맞은 건 스미스 직원이 머리를 잡고 움츠러드는 순간,
하얀 머리카락의 건장한 남자가 천문석을 봤다.
"오랜만이네. 천문석 맞지? 전에 광화문 지점에서 리볼버 영치했던."
천문석은 눈앞의 남자를 바로 알아봤다.
99만원짜리 정품 리볼버 마탄을 보여줬던 맹호 건 스미스의 박호 사장이었다.
"네 맞습니다. 박호 사장님."
박호는 직원을 가리켰다.
"이 녀석 말은 귀담아듣지 말아라. 장사는 뒷전이고 온종일 이상한 소문이나 듣는 놈이니까."
"사장님! 도토리 숲의 악마는 진짜라니까요! 사장님도 어제 오리온 길드 메인 탱커 사건 같이 들으셨잖아요! 도토리 숲에서 악마를 만나서 지려···."
"야, 이 미친놈아! 그걸 왜 말해!"
깜짝 놀란 박호의 외침과 함께 다시 한번 작렬하는 손바닥!
빠악-
으악-
박호는 머리를 감싸 안은 직원을 뒤로 밀어내고 천문석 앞에 섰다.
탁-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이는 50발들이 리볼버 마탄 상자!
박호는 마탄 상자를 천문석 앞으로 밀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방금 들은 건 잊어줘라. 그거 헛소문이다!"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었나요?"
천문석은 능청스럽게 대답하고 마탄 상자를 재빨리 챙겼다.
50발들이 마탄 상자.
100만원어치 리볼버 마탄!
횡재했다!
희희낙락 건 스미스를 나가는 천문석의 뒤.
박호 사장의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저 마탄 가격! 네 월급에서 깐다!"
"으악- 사장님! 아니 큰아버지 그것만은 제발···!"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화물차를 향해 걸었다.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다.
거점 도시 신동대문의 부활.
신서울과 신동대문을 잇는 도로 건설.
그리고 오리온 길드 메인 탱커의 도토리 숲 사건.
'도토리 숲 사건!'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이 사건의 주인공이 누군지 짐작됐다.
오리온 길드의 메인 탱커 하면 떠오르는 한 인물!
이 소문이 한경석에게까지 흘러 들어가는 날.
어쩌면 최후식 이사와 한경석의 관계가 역전될지도 몰랐다.
의기양양한 한경석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최후식 이사.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지는 상황.
역시 인생이란 예측 불허!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날지 예측이 안 되는 법이다.
지금 손에 들어온 공짜 마탄처럼 말이다.
천문석은 공짜로 얻은 50발들이 마탄 상자를 잡낭에 넣으며 말했다.
"운이 좋군!"
천문석은 화물차로 돌아와 바로 광화문 게이트를 넘어갔다.
다음 목적지는 신동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