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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2화 (193/1,336)

#192

깊은 밤 캠핑장의 텐트 안.

휘이잉-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떴다.

가슴에서 전해지는 뜨끈뜨끈한 열기.

문득 시선을 내리자 특급 헌터가 가슴 위에 대자로 팔다리를 펼치고 자는 모습이 보였다.

천문석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특급 헌터를 바닥으로 내렸다.

퐁퐁검을 손에 꼭 쥔 채,

정신없이 자는 특급 헌터 꼬맹이.

꼬맹이는 워터파크에서 놀던 일을 떠올리는지 웃으며 자고 있었다.

천문석은 예전 기억에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봤다.

"오늘 재밌었냐?"

"...완전 재밌었어."

타워 팰리스에서 봤던 대로 잠든 특급 헌터는 잠꼬대하듯 순순히 대답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눈을 반짝이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꼬맹이의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

잠결에 흘리는 작은 웃음.

우히히···.

그리고 한 번도 꼬맹이 입에서 나온 적 없는 단어가 들려왔다.

"엄마···."

생각도 못 한 대답에 천문석이 굳는 순간,

꼬맹이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엄마 와서. 너무 조아···."

"..."

이 순간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꼬맹이, 특급 헌터의 마음이 만져질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평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특급 헌터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던 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급 헌터는 엄마가 아빠 생각에 슬퍼할까 봐,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는 속 깊은 아이였으니까.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서 전해지는 깊은 마음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천문석은 어쩐지 눈앞의 특급 헌터가 새삼 마음에 들었다.

엄마와 삼촌,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아직 어린데도 용감하고 씩씩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진짜 특급 헌터로 자라고 있었다.

‘너 진짜 특급 헌터였구나···.’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마음의 편지를 쓰자고 한 진짜 이유를 이 순간 알 수 있었다.

특급 헌터는 일에 바쁜 엄마에게 '마음의 편지'로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려 한 것이다.

"...마음의 편지. 엄마한테 편지 쓰고 싶어서 하자고 한 거였구나···."

천문석의 혼잣말에,

특급 헌터는 뒤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앙꼬한테 썼는데···."

---

"...뭐, 누구?"

천문석이 당황하는 순간,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한숨 소리.

하아-

천문석은 바로 텐트 밖으로 나왔고 예상했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장민.

"얘가 잘 자는지 확인하려고···."

장민은 어쩐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들었구나!'

순간 잠꼬대하듯 들려오는 특급 헌터의 목소리.

"앙꼬···. 너무 조아···."

장민은 설핏 웃으며 물었다.

"앙꼬면 우리 애가 키즈카페에서 같이 노는 아이 맞죠?"

"네. 특급 헌터가 아주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벌써 엄마보다 여자친구가 좋을 나이가 된 거니?"

장민은 미소 지은 채 잠꼬대하는 특급 헌터를 바라보다가 몸을 숙였다.

"잠시 잠자리 좀 봐줄게요."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는지 텐트 안에서 잠시 움직이던 장민이 텐트에서 나와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알바씨. 차 한잔 괜찮으신가요? 시간이 너무 늦은 건가요?"

"아뇨 괜찮습니다."

천문석은 장민을 따라 걸었다.

장민은 텐트 사이를 지나 관리 사무실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에는 작은 화로가 피워져 있고 화로 위에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멀리 캠핑장 경계 부근, 방금까지 여기에 앉아있었을 경호원이 보였다.

장민은 간이 의자를 펼치고 천문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건네지는 따뜻한 차가 담긴 머그컵.

"첫맛은 많이 써요."

천문석은 차를 한 모금 마신 순간 뱉어낼 뻔했다.

혀가 아릴 정도로 쓰고 떫은 맛!

그러나 억지로 삼키는 순간,

머릿속에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미 한번 겪었던 느낌!

천문석은 놀란 눈으로 장민을 봤다.

"이 차는 헌터용 음료의?"

"벌써 마셨었나 보군요. 맞아요. 이세계의 선물. 센트라 차에요."

장민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외상과 멘탈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사냥 중인 헌터들은 입에 달고 살아요. 아, '센트라'라는 이름은 비밀입니다. 이걸 공급하는 헌터팀에서 센트라라는 이름이 알려지는 걸 아주 싫어하더라고요."

천문석은 얼핏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정보를 독점하는 소규모 헌터팀들.

장철 헌터가 수익이 높다고 소개해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머그컵을 봤다.

신기할 정도의 효능을 가진 차.

이런 차를 공급한다면 장철 말대로 수익이 엄청날 것이다.

천문석이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

장민은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캠핑이라니 정말 좋네요."

휘이이-

한여름 시원한 숲 바람이 불어오고,

파드드-

숲속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킥, 키킥-

그리고 하늘에서 이름 모를 날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달을 가린 구름이 사라지고,

평소보다 몇 배는 환한 달빛이 쏟아졌다.

천문석은 달빛이 담긴 머그컵을 들어 아주 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발간 화로 너머,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장민 대표가 보였다.

천문석은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키즈카페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어져 평범한 알바였던 자신이 한 기업의 오너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사근사근한 목소리.

"문석씨. 오늘 정말 감사해요. 아이랑 노는 게 쉽지 않으셨죠?"

"아닙니다. 대표님. 저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오늘 하루 특급 헌터와 아주 재밌게 놀았다.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옥탑방 리모델링!

옥탑방이 완전히 변한 후 장민 대표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대표님. 옥탑방 감사합니다. 완전히 달라졌던데요."

천문석의 감사 인사에,

장민 대표는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였다.

"어때요? 깜짝 놀라셨나요?"

"네 정말 놀랐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장민 대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제 선물을 받아주셔서 오히려 감사해요. 문석씨에게는 정말 감사드리고 있어요."

손가락을 들어 특급 헌터가 잠든 텐트를 가리키는 장민 대표.

"우리 집 아이 예전에는 악마 꼬맹이라고 악명이 자자했어요."

천문석이 뿜을 뻔한 차를 다급히 삼킬 때.

장민 대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급 헌터는 이제 말썽도 부리지 않고 더 씩씩해졌어요. 어느새 샐러드랑 야채 주스 잘 먹고. 집에 오면 종일 얼마나 알바가 대단한지 이야기해요.”

장민 대표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자기는 커서 알바 같은 어른이 될 거라고 하네요.”

“...”

장민 대표가 설핏 웃었을 때,

천문석은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천문석은 기반을 닦는 중이라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대단할 게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신분과 지위 면에서 천문석과 장민 대표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났다.

보통의 집안이어도 어린 아들이 천문석처럼 되겠다고 하면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장강 유통의 오너인 장민 대표, 최상위 등급 각성자 장철 헌터 둘 다 이상할 정도로 천문석에게 호의적이었다.

이때 문득 들려오는 장민 대표의 사근사근한 목소리.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괜찮은 사람을 만나긴 정말 힘들죠. 그리고 훌륭한 어른을 만나는 건 더 힘들고요."

"..."

"그래서 문석씨와 세연이에게는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 집 아이에게 모범이 되어주시고 너무나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셨어요."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장민에게서 전해지는 진심에,

천문석은 어쩐지 민망해졌다.

처음 키즈카페에서 특급 헌터를 만났을 때는 악마 꼬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특급 헌터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이 생각은 변해갔다.

누군가에 대해 깊이 알면 아주 친해지거나,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싫어진다고 한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작고 어린 몸에 담긴 깊은 마음을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들었다.

특급 헌터는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의리 있는 꼬맹이였으니까.

"아뇨. 저도 즐거운 일이 많았습니다."

천문석은 느낀 그대로를 말했고,

장민 대표는 민망해하면서도 다시금 고개 숙여 감사했다.

"...정말 감사해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다음에 꼭 세연이, 경석이랑 같이 놀러 오세요. 제가 뭐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네요."

장민 대표는 어느새 한경석을 친한 동생처럼 부르고 있었다.

천문석은 어쩐지 한경석에게도 좋은 인연을 이어준 것만 같았다.

따뜻한 차와 시원한 바람,

밝은 달빛과 어쩐지 미소짓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앞에는 훌륭한 어른, 장민 대표가 있었다.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는 것도 좋았지만,

장민 대표와 웃으며 대화하는 오늘 같은 하루도 나쁘지 않았다.

천문석은 한참 동안 장민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텐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이불로 꽁꽁 묶인 채,

잠들어 있는 특급 헌터를!

훌륭한 어른, 장민 대표의 소소한 복수였다!

---

휘이이이-

거센 바람이 북한산에 불어오는 순간,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다람쥐 울음소리!

킥, 키킥-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미약해진 빛의 날개 막을 펼치고 하늘을 나는 새끼 다람쥐가 있었다.

벌써 4일째 임시 거처에도 돌아가지 않고 서울을 날아다니는 니케였다.

니케는 바람을 타고 북한산의 숲과 계곡을 몇 바퀴나 돌다가 착- 나무 꼭대기에 착지했다.

킥, 키킥-

그리고 터져 나오는 분노한 울음소리!

'멍청한! 바보 고래!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3일 전, 평소처럼 도토리 숲을 찾아다니던 니케는 갑자기 터져 나온 하늘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구으으으으응-

소리를 듣는 순간 니케는 직감했다.

오래전 하늘 고래가 도토리 숲에 뚝 떨어진 순간 울렸던 그 울음소리다!

자신의 부하, 멍청한 하늘 고래!

그 녀석도 자기처럼 이곳에 떨어졌구나!

니케는 바로 하늘 고래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딱 한 번만 들려왔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돌로 된 탑과 검은 땅.

드문드문 이어지는 숲과 산, 커다란 강 어디에도 하늘 고래는 없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지금,

니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늘 고래는 처음 만났을 때도 부우, 부우- 울기만 하면서 작은 인간들에게 마구 맞고 있었다.

자신처럼 이곳에 뚝 떨어진 하늘 고래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것만 같았다.

킥, 키킼-

니케는 다급한 마음에 나무 꼭대기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파슥-

미약한 빛의 날개 막이 생겨나고,

니케의 몸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하늘 고래는 부하였다.

자신이 하늘 고래를 구해줘야 했다!

니케는 결심을 굳히고 처음 소리가 느껴진 곳을 바라봤다.

'멍청한 하늘 고래를 찾을 때까지 쉬지 않는다!'

휘이이잉-

때마침 불어온 거센 상승 기류!

상승 기류를 탄 니케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활강을 시작했다.

킥, 키킥-

니케는 북한산 캠핑장을 휙 지나쳐 남서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 뒤를 흔한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쫓고 있었다.

핏, 핏, 핏-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릴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삼색 고양이.

니케는 자신의 뒤를 삼색 고양이가 쫓는다는 것도 모른 채 빠르게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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