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1화 (192/1,336)

#191

장민, 류세연, 한경석.

세 사람은 짧은 대화 몇 마디에 어느새 엄청 친해져 서로를 언니동생이라 부르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한경석을 보며 내심 미소 지었다.

세연이가 워터파크에서 어떻게 했는지, 낯을 가리던 한경석이 이제는 환하게 웃으며 장민, 류세연과 자매처럼 대화하고 있었다.

어쩐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씨익 웃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빨리빨리! 장민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준비하고 고기 구워야 해!"

특급 헌터는 열심히 상을 차리며 외쳤다.

"걱정마! 번개같이 움직일게!"

천문석도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급 헌터가 씻은 야채를 그릇에 담고 장과 소금, 파채를 더는 사이.

천문석은 미리 준비한 시원한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캠핑용 화로대에 숯을 깔고 불을 붙인 후 석쇠를 올렸다.

그리고 선물 받은 한우 선물 세트를 개봉!

넓은 쟁반에 차곡차곡 쌓이는 환상적인 마블링의 구이용 한우!

"한우 구워 먹기 시작합니다!"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장민 대표가 소매를 걷고 다가와 가위와 구이용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굽는 건 제가 할게요."

"손님이신데.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저 야외에서 고기 엄청 잘 구워요. 알바씨도 어서 손 씻고 앉으세요."

그리고 시작한 한우구이 저녁.

이날 천문석은 알게 됐다.

장민 대표는 고기를 정말 기막히게 구웠다.

같은 고기인데도 장민 대표가 구워주는 고기는 맛이 전혀 달랐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잘 구운 것 같지는 않은데?'

예전에 특급 헌터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타워 팰리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천문석의 표정을 본 장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밖에서 구워야 제 실력이 나오거든요. 예전에 사냥한 고기를 이렇게 밖에서 많이 구워 먹었죠."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구이용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아- 하세요."

긴 젓가락으로 잘 익은 고기를 집어 천문석과 류세연, 한경석, 꼬맹이 입에 쏙쏙 넣어주는 장민.

"어서 많이 먹어요."

장민은 동생들을 챙기는 큰 언니처럼 고기를 굽고 잘라 하나씩 앞 접시에 놓아주고 있었다.

잘 구워진 한우구이.

시원한 쇠고기무국.

따뜻한 쌀밥.

"훌륭해! 이건 아주 훌륭한 한우야!"

특급 헌터는 연신 감탄하며 쉴 새 없이 고기를 먹었다.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먹어야지."

장민은 상추 위에 고기와 파채, 마늘 한 쪽을 올려 특급 헌터의 입에 물려줬다.

빵빵해진 입으로 열심히 쌈을 오물거리는 특급 헌터.

"어때? 더 맛있지?"

특급 헌터는 꿀꺽 쌈을 삼키고 대답했다.

"별로야! 그냥 고기가 더 맛있어!"

흐흐흐-

후후훕-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장민의 한숨 소리.

하아-

류세연과 한경석, 장민과 특급 헌터. 그리고 천문석.

다섯 사람은 쉴 새 없이 밥과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어느새 높게 쌓였던 한우가 반 이상 사라졌을 때,

특급 헌터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벌써···. 이렇게나 없어졌어···."

순간 장민 대표가 손을 들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정장 차림의 여자.

"대표님."

“제 수행비서예요. 혹시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더 많은 소고기라던가?”

장민 대표가 미소 띤 얼굴로 묻자,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저요! 자동차! 저는 자동차가 꼭 필요합니다!"

“...하아.”

장민 대표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물었다.

"...너 아직도 자동차 포기 안 한 거냐?"

"특급 헌터에게 포기란 없어!"

장민 대표는 헛웃음을 흘리며 비서에게 말했다.

"...준비한 한우 등심 가져와요."

“멋지고 잘생긴 비서 누나. 자동차도 가져오세요!”

몸을 돌리던 비서가 움찔해서 장민 대표를 봤다.

“자동차 준비할까요?”

장민 대표는 특급 헌터를 보며 빙그레 미소짓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고등어도 가져와요. 여기에 고등어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네요.”

“...!”

경악한 특급 헌터는 바로 외쳤다.

“생각해보니까 세발자전거면 충분한 거 같아! 고등어는 가져오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멋지고 잘생기고 훌륭한 비서 누나님!”

---

어느덧 노을이 천천히 깔리고,

캠핑장에 조명이 하나둘 밝혀질 때.

휘이이-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한우구이를 먹던 천문석은 시원한 산바람에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다.

드문드문 반도 차지 않은 캠핑장 곳곳 식사 중인 야영객들이 보였다.

타다닥-

자글자글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바베큐 요리를 만드는 아빠.

잘 익은 소시지를 나무젓가락에 꽂아주는 엄마.

소시지를 후후 열심히 불며 먹는 꼬맹이.

...

안정화 권역에 걸쳐진 북한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일행을 봤다.

쉴 새 없이 고기를 구우면서도 미소지으며 대화하는 장민 대표.

큰 언니 앞의 동생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류세연.

두 사람의 이야기에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한경석.

그리고 여전히 고기 위주의 식사 중인 특급 헌터.

캠핑과 워터파크.

짧은 하루짜리 여름 휴가인데도 어쩐지 마음속에서 여유와 웃음이 차오른다.

일상 속 여유와 웃음이라니.

역시 전생 천마보다 현생 알바의 삶이 훨씬 좋다.

천문석이 웃음 짓는 순간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이 쌈 먹어! 내가 싼 거야!"

특급 헌터가 눈을 반짝이며 커다란 쌈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기대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

천문석은 사양하지 않고 쌈을 먹었고 경악했다.

마늘과 고추!

파무침만 가득 든 쌈!

특급 헌터!

이 악마 같은 꼬맹이 녀석!

"...!"

천문석이 경악한 눈으로 보는 순간.

터져 나오는 특급 헌터의 즐거운 외침.

"내가 보스를 물리쳤다! 알바 아이템 줘!"

우히히히-

특급 헌터가 신나게 웃는 순간,

세 사람도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흨-

후후훕-

......풉-

평범하게 즐거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모두 끝난 후.

특급 헌터는 텐트에 일행 모두를 모이게 하고 선언했다.

"이제 캠핑오면 꼭 해야 하는 걸 해야 해!"

"뭐, 보드게임이라도 가져왔냐?"

"당연히 가져왔지! 그런데 그게 아냐!"

특급 헌터는 자신의 커다란 배낭을 열고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배낭에서 나온 특급 헌터의 손에는 편지지와 편지봉투, 펜이 잔뜩 들려있었다.

특급 헌터는 편지지와 펜을 나눠주며 설명했다.

"이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한테 편지 쓰는 거야! 내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이걸 ‘마음의 편지’라고 한데!"

"...이게 마음의 편지라고? 좀 이상한데···. 이건 어디서 봤냐?"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자신 없는 표정으로 일행의 얼굴을 보는 특급 헌터.

"마음의 편지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내는 거 아냐? 이거 원래 캠핑에서 하는 거 아니었어?"

순간 류세연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재밌겠는데 하자."

"뭐?"

"그래요. 알바씨 재밌겠는데요?"

"...네?"

"친구. 내 생각에도 아주 재밌을 거 같아."

"..."

‘이거 뭐지? 왜 갑자기 셋이서 짠 듯이 말하지?’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장민, 류세연, 한경석 세 사람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강제로 쓰게 된 마음의 편지.

천문석 앞에는 편지지가 잔뜩 쌓였다.

“아니, 왜 나한테만 이렇게 많이···.”

천문석이 자신 앞에 무더기로 놓인 편지지를 보며 어이없어할 때,

장민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알바씨는 누구에게 마음의 편지를 쓸까요? 후후후- 난 이런 게 너무 좋더라."

"당연히 나지!"

특급 헌터가 당연하다는 듯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솔깃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럼 우리 서로에게 마음의 편지 쓰는 거로 할까?"

"아니. 난 쓸 사람 정해져 있어!"

당연하다는 듯 딱 잘라 거절하는 특급 헌터.

어이없어하기도 잠시.

류세연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당연히 '집주인'인 나한테 쓰지 않겠어? 세입자?"

뒤이어 들려오는 한경석의 목소리.

"글쎄. 어제도 같이 일한 '친구'에게 쓰지 않을까? 친구?"

그리고 은근슬쩍 끼어드는 장민 대표.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어딘가의 '대표'라던가? 알바씨?"

"아니라니까! 알바는 '특급 헌터'랑 가장 친하다니까! 알바! 빨리 말 좀 해줘!"

"넌 나한테 안 쓴다며···."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세 여자와 한 꼬맹이 앞에서 천문석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가장 간단한 해답을 선택했다.

이런 어이없는 꼬맹이 녀석!

천문석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을 향해 이를 갈며 마음의 편지를 썼다.

눈앞의 네 사람 모두에게 줄 4통의 편지를!

"철수 오빠가 서운하지 않을까?"

5통의 편지를···.

"이런 장철도 섭섭할 것 같은데요?"

6통의 편지···.

"후식이도 기대할 거 같아!"

7통의 편···.

"키즈카페 친구들! 알바 엄청 보고 싶어해!"

"..."

천문석은 허탈한 눈으로 앞에 앉은 네 사람을 봤다.

워터파크에 오면서 사건·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그 사건·사고가 이런 종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십 통의 편지라니!

으아악-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알바가 분노했다! 모두 도망쳐!"

"알바씨가 분노했어요!"

"와아! 친구가 화났어!"

"앵그리 문석이 됐어!

특급 헌터와 세 사람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 도망쳤다.

그리고 모두가 마음의 편지를 쓴 순간.

특급 헌터는 일행이 쓴 편지를 모두 모아서 말했다.

"이건 내가 니케, 냠냠이랑 같이 배달해 줄게."

"니케, 냠냠이?"

장민 대표와 한경석이 처음 듣는 이름에 의아해했다.

특급 헌터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친구를 설명했다.

"내 친구들이야!"

"니케는 요즘 아주 바빠!"

"냠냠이는 공과 사가 아주 분명해!"

"..."

"..."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장민과 한경석이 서로를 볼 때.

"잠깐만!"

메고 온 배낭으로 달려가 낯익은 신발을 꺼내오는 특급 헌터.

"...너 그 신발도 가져온 거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특급 헌터는 척- 자랑스럽게 신발을 내밀며 외쳤다.

"니케야!"

한경석의 당황한 시선이 신발과 특급 헌터, 류세연, 천문석에게로 움직일 때.

장민 대표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니케구나. 만나서 반갑다. 니케. 우리 애랑 잘 놀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신발을 잡고 가볍게 흔드는 장민 대표.

"...!"

특급 헌터가 경악한 순간.

천문석은 진한 기시감을 느꼈다.

자신이 한번 겪은 상황이다!

이 순간 천문석에게 쏟아지는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강렬한 눈빛!

천문석은 예전에 당했던 그대로 장민 대표에게 외쳤다.

"...정체를 밝히고 진짜 장민 대표를 내놓으세요!"

"네?"

장민 대표가 반문하자,

천문석은 당당히 외쳤다.

"장민 대표님이 신발이랑 반갑다고 인사할 리가 없잖아요!"

이 순간 류세연이 앞으로 나서 신발 끝을 잡고 인사했다.

"네가 니케구나! 반가워!"

"어?"

그리고 뒤이어 특급 헌터는 신발을 까닥이며 대답했다.

"니케가 아주 반갑대!"

흐흐흨-

우히힠-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장민 대표의 의아한 시선이 쏘아질 때.

천문석은 깨달았다.

당했다!

이런 악마 꼬맹이x2!

"류세연-! 특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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