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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86화 (187/1,336)

#186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11시가 되자마자 세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다.

천문석은 소파에 누우며 거실 카페트 위를 슬쩍 봤다.

여행 전날은 같이 모여 자야 한다고 해서 천문석과 류세연, 특급 헌터 셋은 모두 거실에 모여 자고 있었다.

거실 카페트 위에 이불을 깔고 누운 류세연과 특급 헌터.

두 사람은 사이좋은 어린 남매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이고 있었다.

"...진짜로?"

"정말이라니까! 알바가···."

천문석은 두 꼬맹이에게 말했다.

"일찍 자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다."

"알았어!"

"알았어!"

동시에 들려오는 대답을 들으며,

천문석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퐁-

퐁, 퐁-

퐁, 퐁, 퐁-

귓가를 간지럽히는 익숙한 소리와 진동.

설핏 잠에서 깼을 때,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일어나!"

번쩍 눈을 뜨자, 이미 옷을 갈아입은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보였다.

"알바 엄청 늦었어! 빨리 일어나!"

"맞아! 왜 이리 늦게 일어나!"

"내가 늦잠을 잤다고?"

천문석은 깜짝 놀라 휴대폰을 켜보고 굳어졌다.

[5:31]

천문석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거실 창으로 움직였다.

아직 어둑어둑한 하늘에 조금 밝아오고 있는 여명.

"어이없는 녀석들! 새벽 6시도 안 됐는데 이 시간에 누가 캠핑장에 가?"

"...우리?"

"...우리!"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대답했다.

천문석은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리며 말했다.

“응, 아냐. 이따가 7시에 깨워라.”

이때 천문석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톡, 톡, 톡, 톡-

짧게 진동하며 문자 착신음을 계속 내는 휴대폰.

"새벽부터 뭔 스팸이···."

어이없어하며 휴대폰을 본 순간 천문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준비 다 했어.

-지금 빌딩 앞에서 기다림.

-천천히 와도 됨.

-그런데 언제쯤 올 거야?

-내가 찾아가도 되는데!

...

한경석의 문자였다.

류세연과 특급 헌터 그리고 한경석까지 셋은 이미 출발 준비를 끝낸 상황.

3:1

자신이 이상한 거였다.

천문석은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씻고 바로 출발하자."

와아아-

두 꼬맹이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천문석은 화장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천문석과 류세연, 특급 헌터는 화물차에 탔다.

천문석은 휴대폰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광화문에서 들려 한경석을 태우고 정릉동 국민대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북한산 캠핑장이 나온다.

천문석은 능숙하게 화물차를 운전에 광화문 광장에 있는 재금 빌딩으로 향했다.

평일 새벽 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삼촌 운전 잘하네?"

"내가 봐도 잘하는 것 같아!"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칭찬에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 노가다할 때랑 배송 알바할 때 운전했었거든."

"그랬구나···."

류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랑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라고?"

"한경석. 얼마 전 사귄 친구. 낯을 좀 가리니까. 세연이 네가 챙겨줘라."

"그 어제 전화했던 그 사람···?"

"맞아."

"..."

류세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

"어제 목소리 얼핏 듣기로는 여자 목소리던데···."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그걸 들었어? 맨 목소리는 처음에만 잠깐 들렸을 텐데···. 여자 맞아.”

"...그렇구나."

어쩐지 류세연은 말끝을 흐리다가 문득 물었다.

“둘이 친한 사이야?”

“뭐?”

뜬금없는 질문에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특급 헌터가 좋아, 한경석이 좋아?!”

“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삼촌! 특급 헌터야! 한경석이야! 류세연이야! 빨리 대답해!”

어느새 류세연까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고 있었다.

“알바! 빨리 말해! 특급 헌터가 최고지?!”

“삼촌! 류세연이 최고지!?”

“난 어린이 젤리도 엄청 많이 있어!”

“난 집주인 대리야!”

...

갑자기 똑같은 수준으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하는 특급 헌터와 류세연.

캠핑장에는 도착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

화물차가 재금 빌딩 앞에 도착했을 때는 6시를 지난 시간이었다.

천문석은 텅 빈 도로에 화물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

이른 시간인데도 재금 빌딩 앞에는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다는 한경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한경석 데리고 올게.”

천문석은 화물차에서 내려 전화를 했다.

띠리리-

휴대폰에서 송신음이 들려올 때.

툭-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손길.

“한경석?”

천문석이 반색하며 몸을 돌렸을 때,

앞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다시 후드로 얼굴을 가린,

한여름인데도 긴 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멘 여자.

“혹시···?”

천문석이 물으려는 순간,

여자가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부르르-

여자의 손에는 전화가 오고 있는지 진동하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걸던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진동이 멈추는 휴대폰.

"한경석?"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머리가 끄덕여지고 기어들어 갈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이때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씩씩하게 외치는 꼬맹이.

"누나가 같이 놀러 가는 한경석 맞지!?"

특급 헌터는 우선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중히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특급 헌터입니다!"

"...?"

한경석이 당황한 얼굴로 뭐라 대답하지 못하자,

특급 헌터는 재빨리 한경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누나 빨리 와! 지금도 시간이 가고 있어! 빨리빨리! 출발해야 해! 놀 시간이 부족해진다니까!"

한경석은 특급 헌터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화물차 뒷좌석에 태워졌다.

천문석도 화물차에 타면서 뒷좌석을 살폈다.

화물차 뒷좌석.

류세연과 특급 헌터 사이에 어색하게 앉아있는 한경석이 보였다.

"바로 출발할까?"

한경석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특급 헌터가 다급히 외쳤다.

"빨리빨리! 우리 시간 없어!"

부으으응-

화물차가 출발하자 한경석 좌우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이름이 한경석이라고요?"

"..."

"맞아 이름이 한경석이래!"

"오···. 우리 삼촌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

"그러게 알바를 어떻게 알게 됐지? 누나도 키즈카페 다녔어?"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

"내가 보기에는 세연이 보다 많아 보여! 누나 같아!"

"이름이 한경석이 맞나요?"

"..."

"내가 별명 지어줄까? 나 별명 되게 잘 지어!"

...

한경석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질문을 쏟아냈다.

후드를 눌러 쓰고 있던 한경석은 어느새 후드를 벗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양쪽에서 질문을 쏟아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한경석이 당하는 걸 방금 전까지 천문석이 당하고 있었다.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쏟아내는 질문!

류세연 x 특급 헌터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빠르게 쏟아지는 정신없는 질문과 함께,

화물차는 북한산 유원지를 향해 달렸다.

---

전 세계에 게이트가 나타난 1차 게이트 사태.

게이트와 함께 균열과 던전,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났고.

게이트에서 쏟아진 엄청난 마력에 세계 곳곳의 지형이 변화했다.

수에즈 운하는 해협이 됐고.

히말라야산맥은 세계의 기둥이 됐다.

북한산 지역도 게이트 마력으로 지형이 변한 곳중 하나였다.

전체적으로 높게 융기하면서 북쪽으로 넓게 펼쳐진 북한산.

게이트 마력으로 변화한 북한산 지역은 서울 안정화 권역 너머 파주와 양주까지 펼쳐진 거대한 산맥이 됐다.

그리고 북한산에 커다란 수원(水源)이 생겨났고.

이 수원에서 쏟아지는 물로 서울에 커다란 강이 생겨났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이 강이 서울에 남은 하천들을 하나로 연결했다.

북한산에서 시작해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청계천, 중랑천을 지나 한강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북한천과 창릉천을 지나 한강으로 이어진다.

서울 강북 지역 전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강이 시작되는 곳에 북한산 캠핑장과 워터파크가 있었다.

처음 북한산에 캠핑장과 워터파크가 만들어질 때는 반대가 컸다.

반대의 이유는 안전 문제였다.

북한산은 서울 안정화 권역 밖까지 뻗어 있었고,

거대한 산맥이 된 북한산 지역으로 흘러들어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모두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산에는 캠핑장과 워터파크뿐만 아니라 대규모 유원지가 만들어졌고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없이 오늘도 성업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건 한 각성자 덕분이었다.

이때 상념에 잠긴 천문석의 눈에 표지판이 보였다.

[북한산 유원지 입구]

그리고 표지판 옆,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뒤로 도로가에 줄줄이 서 있는 크고 작은 조각상들.

이 모든 조각상은 한 각성자를 묘사하고 있었다.

북한산 유원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인 각성자.

"뽀미다!"

특급 헌터의 신난 외침.

그렇다.

이 고양이 조각상의 주인공.

'뽀미'가 북한산 유원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염동력 10등급+.

공간이동 10등급+.

텔레파시 10등급+.

뽀미는 알려진 것만 세 가지 초능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초능력 계통 다중 각성자다.

각성 랭킹이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초능력 계통 한국 랭킹 1위에서 내려온 적 없는 초능력 고양이 뽀미.

뽀미는 원래 국냥이라 불리는 국민대에서 빈둥거리는 평범한 고양이였다고 한다.

그랬던 뽀미가 각성 후 1차 게이트 사태로 고립되었던 국민대와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서울 수복 때까지 지켰다.

뽀미가 구한 주민들의 수는 수십만 명!

이 엄청난 업적에 뽀미는 수많은 상훈을 받고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됐다.

뽀미는 국민대의 수호자답게 학교 안을 어슬렁거리다가도,

북한산 지역에 몬스터와 마수가 나타나면!

텔레파시 능력으로 감지하고,

장거리 공간이동으로 이동해,

염동력으로 몬스터와 마수를 끝장낸다.

이런 뽀미 덕분에 광활한 북한산 지역은 서울의 북부 방어선이 됐고 대규모 유원지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뽀미와 이세계 배송경주를 했으니 지는 게 당연했다.

이때 특급 헌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이제 다 온 거야!?"

"한 10분 정도 더 가야겠는데?"

천문석이 대답하자,

특급 헌터는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뽀미, 냠냠이랑 닮지 않았어?"

평범한 삼색 고양이 뽀미,

새하얀 털의 새끼 고양이 냠냠이.

같은 고양이라는 것 말고는 전혀 닮지 않았다.

"야, 뭐가 닮았어? 완전 다른데?"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특급 헌터는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자세히 봐봐! 완전 비슷하잖아! 냠냠이 뽀미랑 아주 비슷하다니까!"

특급 헌터 옆에 앉아있던 한경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냠냠이라고? 고양이야?"

특급 헌터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냠냠이는 아주 훌륭한 혁명 고양이야!"

"맞아. 그 혁명이 배신자 때문에 실패했지만 말야."

류세연이 슬쩍 끼어들어 대답했다.

"혁명? 배신?"

한경석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강한 확신을 담아 외쳤다.

"아직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어! 우리는 할수 있어!"

"하아- 과연 그럴까?"

"...지금 무슨 말이야? 혁명, 배신? 할수 있다고?"

류세연이 한숨을 쉬고, 한경석이 더욱 혼란스러워할 때.

특급 헌터의 작은 손이 류세연과 한경석의 손을 잡았다.

"세연! 경석! 믿음을 가져야 한단 말야! 모두 모여! 내가 제2차 혁명 계획을 말해줄게!"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백미러를 봤다.

머리를 맞댄 한경석과 류세연에게 특급 헌터가 입을 가리고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퐁, 퐁, 퐁-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러나 듣지 않아도 한경석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니 얼마나 엉망진창 계획인지 짐작이 갔다.

그러고 보니 낯을 가리던 한경석이 어느새 제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한경석은 특급 헌터에게 제대로 말려들었다!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뒤에서 따라오는 장갑 SUV를 봤다.

눈에 익은 장갑 SUV는 특급 헌터의 경호원들이 타고 있는 장갑 SUV였다.

낡은 화물차를 호위하듯 따라오는 장갑 차량이라니.

천문석은 웃음을 삼키며 운전했고,

곧 북한산 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캠핑과 워터파크!

놀고먹는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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