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암살검의 어깨에 올라간 천문석의 손!
"어···."
"어···?"
"어···!"
엠마와 클릭스, 폴리머 세 헌터는 순간적으로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이때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내가 왔음.]
암살검이 대답하는 순간.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
"너, 너, 너···."
엠마는 경악한 얼굴로 천문석을 바라보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 순간 엠마의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메아리쳤다.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질식할듯한 아찔한 침묵이 흐를 때,
어느새 깨어난 게릭의 경악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런 미친! 누가 누구 친구라고!?"
천문석이 톤파로 어깨를 두들기며 대답했다.
"암살검 한경석 내 친구야. 너희가 박살낸 이곳 스위트룸이 있는 호텔 주인."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으아아악-"
게릭이 절규하는 순간,
엠마가 다급히 외쳤다.
"게릭! 돌진! 클릭스! 폴리머를 챙겨라! 탈출한다!"
게릭이 반사적으로 천문석에게 돌진하는 순간 엠마가 뒤로 뛰고 클릭스는 재빨리 폴리머를 낚아채 창문으로 달렸다!
픽-
순간 점멸이동으로 창문 앞을 막는 한경석.
엠마와 클릭스는 감히 암살검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즉각 바닥을 박차고 옆으로 뛰었다.
이 순간 엠마는 재빨리 무장 벨트를 풀어 각성력을 담으며 외쳤다.
"폴리머! 연막! 시야를 가려라!"
폴리머가 마력을 움직이려 할 때.
천문석은 게릭의 주먹을 슬슬 피하며 외쳤다.
"신의 주사위!"
도망치던 클릭스.
마법을 쓰려던 폴리머.
주먹을 휘두르던 게릭.
그리고 무장 벨트로 볼텍스를 갈기려던 엠마.
네 사람은 거짓말처럼 몸을 멈췄다.
이때 들려오는 당혹감 어린 목소리.
"어떻게!?"
클릭스가 외치는 순간 다급히 입을 막는 폴리머.
"무슨 헛소리냐!?"
경악한 표정의 엠마가 버럭 소리 지르는 순간.
천문석은 뒤집힌 소파로 걸어가 소파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마피아 보스처럼 두 팔을 벌려 팔걸이에 올렸다.
"서 있지 말고 대충 앉아라."
마피아 보스같이 무게를 잡고 말했지만,
천문석은 반바지에 반팔 그리고 슬리퍼를 신은 동네 청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 헌터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천문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천문석은 슬리퍼를 까딱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 이 호텔에서 그냥 도망쳐도 되겠냐? 밖에 나가는 거 안 무서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엠마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들었다.
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천문석 뒤에 나타난 암살검.
"너희들 뒤에 엄청난 거물이 있나 보다? 부럽다. 그렇지 않냐 친구?"
천문석이 장난스럽게 묻는 순간.
암살검 한경석이 대답했다.
[부럽다. 친구.]
엠마는 암살검의 대답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대인전 세계 랭커 암살검 앞에서 뒤에 거물이 있다고 자랑했다니···.
이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지!?
동네 백수 청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암살검의 친구라고 말하는 천문석!
게다가 중남미 최대 카르텔의 이름까지 말했다!
엠마의 머리가 복잡하게 변했다.
'설마, 모든걸 알고 있는 암흑가의 거물인가!?‘
그러나 그랬다면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처리 한 거지?
엠마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릴 때,
천문석이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더니 창을 가리켰다.
"창밖을 봐라."
"..."
엠마와 세 헌터는 말없이 창가로 갔다.
그리고 창밖을 내려다보는 순간 굳어졌다.
호텔 정문 앞. 무장 병력 수십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으나 각성 헌터의 시력으로 무장 병력의 인종적 특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진한 이목구비와 검붉은 피부.
중남미 라티노로 보이는 헌터들!
"언제 이렇게···."
"리더! 이거 설마···!?"
"빌어먹을 어떻게 여기까지!"
게릭과 클릭스, 폴리머 세 사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 때.
천문석은 툭 던지듯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카르텔 수배 명단에 올랐다며?"
“...!”
엠마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모든걸 알고 있었구나!'
중남미 최대의 카르텔, 신의 주사위!
멕시코 출신 각성 헌터 4인.
엠마와 게릭, 클릭스, 폴리머 네 사람은 카르텔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카르텔의 수배 명단에 오른 이상.
북미와 남미, 유럽 어디에도 이들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으로 왔다.
카르텔이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할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한국으로.
그런데 한국에도 이미 카르텔의 손길이 뻗어있었다.
엠마는 직감했다.
라티노로 보이는 무장 병력.
카르텔의 집행 부대다!
---
천문석은 엠마와 게릭, 클릭스와 폴리머를 쓱 훑어봤다.
절망 어린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네 명의 헌터들.
호텔 앞에 깔린 라티노 무장 병력을 보는 순간,
이들은 카르텔이 보낸 무장 병력이라고 생각해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웃었다.
카캬카-
한경석에게 건네받은 자료에 있던 이름.
'신의 주사위.'
신의 주사위는 멕시코에서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아우르는 중남미 최대의 카르텔이다.
세계 최대의 마석 광산이라는 구리협곡 마경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마경과 던전, 균열에서 엄청난 양의 마석을 생산하는 마석 카르텔.
마석 카르텔은 중남미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엠마와 게릭, 클릭스와 폴리머.
네 사람은 이 마석 카르텔의 수배 명단에 올라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천문석은 순식간에 계획을 세웠다.
명단에 오른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카르텔의 명단에 이들의 이름이 올랐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신의 주사위 카르텔은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마석 공급을 좌지우지한다.
카르텔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돈과 힘 그리고 마석.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세력이 하나둘이 아니다.
슬쩍 정보만 흘리면 이 4인조 헌터는 끝장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마석 카르텔이라 해도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에 눌려 전혀 힘을 못 쓴다.
그러나 실제 진실보다 어떻게 보이고 믿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호텔 밖에 깔린 라티노 무장 병력은,
천문석이 총지배인에게 부탁해 준비한 가짜였다.
그리고 천문석의 계획대로 4인조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4인조가 카르텔의 명단에 올랐다는 걸 안 순간 세운 계획대로.
지금 이 순간 이들 4인조의 목줄은 천문석에게 잡혔다.
천문석은 악당 4인조를 훑어봤다.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탱커와 근딜, 원딜, 마력 각성자가 포함된 균형 잡힌 헌터팀.
전생에 많이 다뤄본 마도 18문의 수하들과 비슷한 악당들.
악운이 강하고 명이 질겨서 위험하고 빡센 일에 써먹기에 딱 좋은 인재들이다.
머리 쓰는 게 영 허술하지만, 그건 문제가 안 된다.
머리는 자신이 쓰고 얘네들은 몸으로 구르는 걸 시키면 되니까!
카캬카-
천문석은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어 위엄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희들 내 부하가 돼라."
---
1차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고 개판이 된 중남미 대륙에서 등급외 각성자가 한 명 나타났었다.
이름과 나이, 성별, 능력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등급외 각성자.
이 등급외 각성자는 몇몇 각성 헌터를 규합해 작은 조직을 만들었다.
이게 마석 카르텔 신의 주사위의 시작이었다.
신의 주사위는 게이트와 던전, 균열로 개판이 된 중남미 대륙 곳곳에 안전지대를 만들었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 보급 이후 중남미 마석 생산의 80% 이상을 장악했다.
마석은 새로운 시대의 석유나 마찬가지였다.
카르텔이 생산한 마석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갔고,
엄청난 규모의 돈이 카르텔로 쏟아져 들어갔다.
돈과 힘이 있는 곳에 권력이 모이는 법.
마석과 수많은 각성 헌터를 보유한 마석 카르텔, 신의 주사위는 중남미에서 국가를 넘어서는 권력을 가지게 됐다.
이런 마석 카르텔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는 것은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다.
간신히 남미에서 빠져나왔는데···.
한국까지 무장 병력을 보냈다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를 찾아냈지!?
엠마는 창밖의 무장 병력을 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리더! 어떻게 하지?!"
"빌어먹을! 리더 그냥 뚫고 나가자!"
"...그냥 항복하는 게 낫지 않을까?"
부하들이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으나,
엠마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카르텔을 항복했다고 봐주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항한다면?
그 화가 어디까지 미칠지 짐작도 안 된다!
엠마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내 부하가 돼라."
순간 엠마와 부하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까닥거리는 천문석이었다.
"뭐, 너 무슨 말을···."
엠마가 얼빠진 얼굴로 묻는 순간.
탁-
천문석은 소파 손잡이를 가볍게 내리치며 질문했다.
"내가 어떻게 암살검의 친구일까?"
"...?"
"저 밖의 카르텔 집행 부대는 왜 이 호텔로 들어오지 못할까?"
"...!"
엠마와 부하들이 깜짝 놀라 서로를 볼 때 천문석은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재금 그룹 사람이라서 그렇다.”
"재금 그룹!"
엠마와 게릭, 클릭스, 폴리머는 경악했다.
마석 카르텔이 미친개라면, 재금 그룹은 미친 드래곤이었다.
초강대국 미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몇 번이나 깡패짓을 한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세계 어디에도 재금 그룹을 건드릴 놈들은 없었다.
건드렸던 놈들이 하나같이 아작이 났으니까!
엠마는 떨리는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카르텔 수배 명단에 올라 한국으로 도망쳤는데.
한국에서 처음 엮인 사람이 재금 그룹 사람이라니!
밖에는 미친개, 카르텔!
안에는 미친 드래곤, 재금 그룹!
"이런 씻! 뭐가 이따위야!!!"
엠마가 절규하는 순간.
투둑-
엠마 앞으로 종이 더미와 펜이 떨어져 내렸다.
"어?"
엠마와 부하들의 의아해하는 순간.
천문석은 손으로 박살 난 스위트룸을 한 번 훑고 창을 가리켰다.
"고용계약서다. 거기에 사인하고 내 밑에서 일해라. 아니면 여기 스위트룸 수리비 내고 호텔 밖으로 나가던지."
순간 한경석이 입을 열었다.
[수리비. 아주 비쌈.]
"..."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근과 채찍.
당근은 재금 그룹의 보호.
채찍은 호텔 밖에서 기다리는 카르텔의 집행 부대.
엠마와 게릭, 클릭스, 폴리머.
이들 네 명은 한 명씩 고용계약서에 서명했다.
탁, 탁-
천문석은 네 명의 고용계약서를 추려서 품 안에 넣으며 미소지었다.
훌륭한 인재를 얻었다!
악운에 강하고, 명줄이 질긴.
빡센 상황에서 막 굴리기 좋은 악당 부하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