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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79화 (180/1,336)

#179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놨습니다."

총지배인이 호텔 뒤편 직원용 출입구를 열며 말했다.

[친구. 가자.]

한경석은 천문석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총지배인을 따라 걸었다.

천문석은 텅 빈 직원용 통로를 걸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경석을 봤다.

한경석이 이 호텔의 오너였다니!

암살검 한경석은 랭커였다. 그것도 대인전 세계 랭커.

대형 길드 오리온의 직원과 헌터 할 것 없이 한경석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었다.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봤는데도 암살검 한경석의 진가를 모르고 있었다!

암살검 한경석은 종로에 20층짜리 호텔을 가진 빌딩주였다!!!

'아니지 이게 본점이랬으니 한 채가 아니라 호텔을 더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

천문석은 한경석에게서 갑자기 후광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암살검 한경석은 천문석의 미래 목표 건물주를 넘어 빌딩주를 이미 이룬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한경석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가?]

"이런 커다란 호텔의 오너라니! 아니 어떻게 이런 호텔 체인을 가지게 된 건가요!? 레이드에서 대박이 터진 건가요? 아니면 대인전 랭킹전에서?"

한경석은 주위를 쓱 훑어보더니 천문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이템이랑. 바꿨어.]

"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아이템인데 호텔 체인이랑 바꿔!?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앞장서 걷던 총지배인이 입을 열었다.

"보안요원들을 깔아 주요 통로 전체를 폐쇄했습니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흔적없이 처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걔들 어디?]

총지배인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지점에 머물던 ‘손님’ 네 분 전원을 누수를 이유로 이곳 본점 19층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해 드렸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잡아 뒀으니 바로 이동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기 ‘손님’에 대해 알아낸 자료입니다."

총지배인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한경석에게 전했다.

한경석은 서류 봉투를 보지도 않고 천문석에게 건넸다.

[친구. 걔네 자료.]

천문석이 묵직한 서류 봉투를 받는 순간.

총지배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님’이 지점에 있다는 정보와 이 자료를 준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오너께 꼭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순간 한경석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까딱였다.

[데려와.]

순간 총지배인이 뒤를 따르는 보안요원에게 명령했다.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통로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사라진 보안요원.

잠시 후 보안요원이 돌아왔을 때는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긴장한 얼굴의 여자가 같이 있었다.

여자는 한경석 앞으로 다가와 깊게 허리를 숙이며 명함을 내밀었다.

"영광입니다. 현대 정보컨설팅그룹. 유희명 대표입니다."

[유희명.]

한경석이 명함을 받아 읽는 순간 더 깊게 숙여지는 허리.

[뭐 줄까?]

한경석은 무심하게 물었고,

유희명 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한경석은 명함을 총지배인에게 넘기며 짧게 명령했다.

[해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희명 대표는 몇 번이나 허리 숙여 인사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통로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총지배인이 물었다.

"바로 시작할까요?"

한경석은 천문석을 봤고,

천문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 자료 좀 검토하고 가죠."

[알았어. 친구.]

천문석은 서류 봉투를 열고 A4 묶음을 펼쳤다.

배송경주에서 만난 4인조 헌터에 대한 자료.

묵직할 정도로 양이 많았지만,

자료 전체에 인덱스가 붙어있고 요약된 내용이 인덱스별로 붙어있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자료를 확인하고 눈을 반짝였다.

"하- 이 녀석들. 이래서 한국에 왔구나!"

4인조 헌터.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는 예상대로 중남미 출신의 각성 헌터였다.

그것도 세계 최대의 마석 광산이라 불리는 구리협곡 마경이 있는 멕시코 출신 각성 헌터!

천문석은 자료를 파르르 넘겨 한 페이지를 펼쳤다.

이들이 멕시코를 떠나 한국으로 와야만 했던 이유를 이 한 장의 페이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하나의 이름이었다.

신의 주사위(Dios dice).

중남미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카르텔의 이름!

천문석은 미소지었다.

펜은 검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그 말대로 정보는 무력보다 강했다.

악당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 빠삭한 천문석.

전생에 쥐락펴락하던 마인들과 비교하면 4인조 악당 헌터들은 잔챙이에 불과했다.

생각 없이 천문석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한 순간.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네 사람의 운명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의 정보를 확인한 지금,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악당 헌터 4인조 문제를 해결할 깔끔한 계획이 완성됐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이!

탁-

천문석은 서류 봉투를 총지배인에게 건네주며 한경석에게 말했다.

"견적 나왔습니다. 이제 목줄을 채우러 출발하죠!"

[...]

땡-

엘리베이터가 열렸으나 한경석은 돌처럼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안 타세요?"

천문석이 묻는 순간, 한경석은 주저하며 대답했다.

[취향. 존중.]

"네? 그게 무슨···?"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

‘목줄.’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한경석은 엘리베이터 구석, 천문석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작게 말했다.

[취향···. 존중···.]

"..."

---

스위트룸이 있는 19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천문석은 한경석과 총지배인에게 어떻게 일 처리를 할지 설명했다.

"...이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가능할까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총지배인이 대답할 때,

한경석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재밌겠다!]

어쩐지 특급 헌터가 생각나는 한경석의 모습.

특급 헌터를 소개해주면 아주 죽이 잘 맞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천문석은 말했다.

"다음에는 집에 초대할게요."

한경석은 고개를 번쩍 들고 물었다.

[진짜로?]

후드로 얼굴이 가려졌어도 변조된 목소리만으로도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이죠. 소개해줄 꼬맹이도 있어요. 느낌상 아주 좋아할 것 같네요."

한경석은 바로 총지배인을 봤다.

[내 친구. 좋은 방 줘!]

천문석을 가리키며 명령하는 한경석.

총지배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언제든 오시면 바로 방을 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호텔에 올 일은 없어 보였지만,

천문석은 총지배인과 한경석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땡-

이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정면에 스위트룸이 보였다.

[1901]

이 안에 악당 4인조가 있었다.

천문석은 한경석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30분 후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한경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벨트를 툭 쳤다.

철렁-

섬뜩한 강철 소리가 울릴 때,

천문석의 시선이 총지배인에게로 향했다.

"혹시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가 있나요?"

총지배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곳 스위트룸과 주차장 K 구역을 잇는 엘리베이터를 제외한. 외부 통로를 모두 폐쇄했습니다. 지금 이곳 19층은 봉쇄된 상황입니다. 창문은 낌새를 느낄까 봐 막지 않았는데 일을 시작하시면 막을까요?"

"아뇨. 창문은 막을 필요 없습니다."

천문석은 가볍게 웃으며 1901호 스위트룸 앞으로 한발 다가갔다.

리더 겸 원딜 엠마.

탱커 게릭.

근딜 클릭스.

마력 각성자 폴리머.

멕시코에서 온 4인조 악당.

이제 후환을 처리할 시간이었다.

---

엠마는 스위트룸 소파에 누운 채 멍하니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에서는 남중국해의 몬스터 웨이브 관련 뉴스가 나오고,

거실 구석에서는 게릭의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고 있다.

클릭스와 폴리머는 2만 피스 짜리 퍼즐을 맞추고 있는 중.

"무료하다."

문득 말한 엠마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임실장이라는 정보상에게 자칭 이세기라는 헌터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지 보름이 넘었다.

계속 추적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며 지루하게 호텔에서 기다리던 중.

머물던 호텔에 누수가 발생해 체인 본점이라는 이곳으로 방이 옮겨졌다.

엠마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스위트룸의 넓은 창 너머 하늘, 종로의 성채 빌딩들이 보였다.

예전에 머물던 5층 호텔보다 시설이 월등히 좋은 호텔.

이 호텔도 예전 호텔과 마찬가지로 암살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몸은 안전한 곳에 있지만, 조사가 지연되자 마음이 불안하다.

'혹시 정보상이 역으로 정보를 판 게 아닐까?'

남미에서는 흔한 일.

그러나 의심을 하는 순간,

자신들이 찾고 있는 이세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창천검, 이세기.

오래된 구형 화물차를 탔고,

입고 있던 장비도 구형 강화 전투복, 구형 방검 방탄복이었다.

게다가 사용하던 무기도 특별할 것 없는 오래된 창과 리볼버였다.

장비만 보면 임실장이란 정보상이 말한 대로 파산한 각성 헌터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세기란 가명을 댈 정도로 잔머리가 비상하고,

섬광을 터트리는 이상한 기술로 자신들을 몇 번이나 농락했다.

하지만 본신의 무력은 잘 쳐줘도 일행 중 클릭스와 동급 아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기는 든든한 배경이 있을 그런 헌터는 아니었다.

정보상이 역으로 정보를 팔만한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하아아-

엠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세기 이 새끼!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 거야!"

순간 게릭과 클릭스, 폴리머 세 사람의 시선이 리더인 엠마에게 모였다.

지난 보름 리더 엠마의 짜증에 고통받던 세 사람이 슬금슬금 몸을 피하려 할 때.

콰아앙-

부서지듯 문이 열리고 깜짝 놀란 시선이 문으로 모였다.

문에는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스위트룸 안을 쓱 훑어보며 반갑게 외쳤다.

"오랜만이다. 너희들 나 찾았다며?"

엠마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청년을 알아봤다.

몬스터와 마수가 달릴 때 화물차 위에서 창을 휘두르고 장난치듯 리볼버를 쏘던 그 녀석!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그놈이 눈앞에 나타났다!

창천검 이세기!

생각지도 못한 등장.

그러나 엠마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게릭! 붙잡고 늘어져라! 공간을 주면 안 된다!"

탱커 게릭은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함성을 지르며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으아악-

"클릭스! 붙어서 견제!"

"폴리머! 메즈기 준비해라!"

명령을 끝낸 엠마의 손이 벨트로 움직였다.

파앙-

벨트에 말려있던 한 뼘 크기의 활이 단숨에 펼쳐진다!

탁, 탁, 탁-

엠마는 손가락 사이 화살 세 개를 걸고 바로 원거리 공격 포지션을 잡았다.

순식간에 완성된 네 헌터의 포메이션!

엠마의 시선이 적과 아군을 훑었다.

이세기는 강화전투복도 없이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만 신고 단봉과 방패만 든 상황!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아군은 탱커, 근딜, 원딜, 마력 각성자가 모두 모인 풀 포메이션 상황!

엠마는 확신했다.

이번에는 잡았다!

"이세기! 드디어 잡았구나!"

엠마가 외치는 순간.

콰아앙-

게릭의 주먹이 이세기의 방패를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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