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78화 (179/1,336)

#178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안정화 권역에서의 결투 행위는 위법행위!

치안 당국에 걸리면 벌점을 먹고 이세계와 던전, 마경 등에서 강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경석은 레이드 전투 무장을 한 채 광화문 광장에 나타나 다른 헌터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게다가 말려야 할 헌터들까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으아악-

암살검에게 도전하겠다고 외친 헌터가 기합을 지르며 돌진했다.

후우우웅-

공기가 밀려나는 듯한 엄청난 기세!

쾅, 쾅, 쾅-

매 발걸음 대형 중장비가 움직이듯 깨져나가는 판석!

암살검 바로 앞.

휘우웅-

엄청난 힘을 실은 해머 풀스윙이 쏘아졌다!

그러나 해머가 닿기 직전.

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경석이 사라졌다.

"점멸? 어떻게!?"

“각성력으로 마력장 교란이 일어날 텐데!?”

놀란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올 때.

천문석 앞의 공간이 일렁였다.

점멸이동의 전조 현상!

허어억-

천문석 주위의 헌터들이 다급히 물러서는 순간.

한경석의 변조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친구! 어서 와!]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

크억-

해머 풀스윙을 갈기던 헌터가 픽 쓰러졌다.

천문석은 눈을 부릅떴다.

순간적으로 사라진 한경석의 단검.

사라진 단검 손잡이가 공간을 넘어 헌터의 꼬리뼈를 때렸다!

[이제 잡으러 가자!]

한경석의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주위의 헌터들은 목소리에 담긴 위압감에 주춤주춤 물러섰다.

위이이잉-

이때 도로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사이렌이 들려오는 도로를 바라보는 헌터들.

다가오는 차량은 확인한 헌터들이 다급히 외쳤다.

"헌터부 경찰이다!"

"국가 헌병대도 오고 있다!"

"벌점 악당들이 나타났다!"

"무보수 강제 동원된다! 빨리 도망쳐!"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헌터들!

천문석도 재빨리 외쳤다.

"도망쳐요! 빨리!"

[도망쳐?]

천문석은 대답하지 않고 한경석의 손을 낚아채 달렸다.

-헌터 여러분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헌터부 경찰, 국가 헌병대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이세계에서 봉사활동 며칠만 하면 됩니다!

-도망치지 마시고 자랑스러운 준법 헌터가 되세요!

순간 한 헌터가 각성력을 담아 외쳤다.

"저거 다 사기야! 내가 저기에 속아서 하수구 노역장에서 개고생했다!"

"맞아! 나도 당했다!"

"국가 헌병대! 이 사기꾼 놈들!"

도망치는 헌터들에게서 쏟아지는 원성 어린 함성들.

이 순간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변했다.

-야! 도망치지 말라니까!

-도망치다 잡히면 벌점 2배로 먹인다!

-거기 당장 서라! 잡히면 하수구 던전! 아니 몬스터 광산에 처박는다!

...

"어, 이거 멈춰야 하는 건가?"

천문석이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주위 풍경이 일그러졌다.

점멸!

핏, 핏, 핏-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잇달아 울리고.

매 순간 광장, 차도, 버스, 인도, 카페로 위치가 변했다.

연속 점멸!

"탈진합니다!"

예전 기억에 천문석이 깜짝 놀라 외칠 때.

핏-

천문석과 한경석은 재금 빌딩 바로 앞에 있었다.

[성채 빌딩. 보호 필드.]

한경석이 재금 빌딩을 가리키며 말한 순간,

천문석은 뒤도 보지 않고 재금 빌딩 로비로 들어갔다.

"장비 해제···."

천문석이 다급히 말했을 때,

한경석은 이미 장비의 기능을 해제하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상태였다.

천문석은 난장판이 된 광화문 광장을 살피며 다급히 물었다.

"연속 점멸 괜찮···."

순간 손목을 들어 올리는 한경석.

짤랑-

한경석의 손목에는 일곱 색의 보석이 박힌 팔찌가 걸려 있었다.

"후식이 칠 채 마력 팔찌 빌려왔어. 이거 엄청 좋아! 연속 점멸도 가능···."

한경석은 말하다 말고 움찔했다.

"친구. 혹시 내 뒤에 후식이 있어?"

"네?"

"최후식 이사 말야. 이상하게···. 내가 후식이라고 할 때마다 뒤에서 나타나서 뒤통수를 때려."

목을 움츠리며 두려운 듯 조심스레 말하는 한경석.

천문석은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은근히 개기던 한경석과 매번 응징하는 최후식 이사.

"뒤에 최후식 이사님 없네요."

천문석이 말한 순간,

한경석은 확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차게 말했다.

"친구! 그럼 이제 걔네들 조지러 가자. 준비는 완벽히 끝냈어!"

"...설마?"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한경석을 다시 봤다.

거대 괴수 레이드라도 가듯 완전무장한 채 광화문 광장에서 기다리던 한경석.

"혹시 지금 그 장비 제가 맡긴 일 때문에 갖춰 입은 건가요? 4인조 헌터 잡으러 가려고?"

한경석은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착용한 장비를 하나하나 짚었다.

"후식이가 길드 연합 레이드 메인 탱커로 나간다고 아껴둔 개인 장비 꺼내놨어. 그래서 슬쩍 빌려왔어. 이지스 방패 세트, 극검의 왕관, 칠 채 마력 팔찌···."

천문석은 한경석의 설명을 들으며 새삼 감탄했다.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마력 무구들.

헌터는 사냥꾼이다.

싸우는 전사가 아닌 사냥을 하는 사냥꾼.

그렇기에 대부분의 헌터는 상대할 적이 결정되는 순간 과도할 정도의 준비를 한다.

한경석도 마찬가지였다.

악당 4인조 헌터를 잡으러 가는데 레이드 장비를 착용하고 왔다.

그것도 레이드 메인 탱커, 최후식 이사의 장비를!

"뭘 그렇게 과도하게 준비했습니까?"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한경석은 고개를 저었다.

"전에 검치호, 강철 와이번이랑 싸울 때 맨몸으로 싸워서 큰일 날 뻔했잖아? 그래서 철저히 준비했어! 칠 채 마력 팔찌로 연속 점멸하고 극검의 왕관으로 마력장 봉쇄 뚫고 이지스 방패로 머리만 땅에 고정하면 꼼짝도 못 해. 그리고 이것도 있는데···."

한경석은 로브를 들춰서 십여 자루의 단검과 각종 아이템, 마력 장비를 보여주며 어떻게 싸울지 열심히 설명했다.

"..."

아무래도 예전 현장 면접 때 검치호와 강철 와이번에 당할 뻔한 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천문석은 이미 악당 4인조랑 상대해봤다.

직접 싸운 것은 탱커뿐이지만 이들 모두의 실력은 파악이 끝났다.

사실 배송경주 당시에는 겉으로는 여유롭게 싸웠지만,

실상은 굉천수와 구인창, 온갖 꼼수를 이용해서 간신히 상대했었다.

그러나 무림 던전에서 개고생하며 천문석은 강해졌다.

그리고 이곳은 서울이다.

헌터의 총기, 무기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완전무장한 한경석의 모습이 보였다.

보통의 헌팅 장비도 아닌 레이드용 장비로 완전무장한 한경석.

이 모습을 보니 세계에서 규제가 가장 강하다는 이야기가 무색했다.

그에 반해 자신은 급하게 나오느라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이거 내가 너무 방심한 건가?’

문득 생각했지만, 악당 4인조가 한경석처럼 완전무장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적당한 헌터용 단봉 하나면 제압할 수 있을것 같긴 한데···.'

이 순간 문득 머리에 떠오른 생각.

'그놈들 혹시 총 가지고 있는 거 아냐?'

이동 시 무장 박스에 넣기만 하면 개인 보관이 가능한 도검류와 달리,

총화기류는 무조건 경찰서, 관공서, 허가받은 총포사와 헌터 상점, 대형 길드 영치가 기본이다.

특히 서울 안정화 권역에서는 총화기에 대한 관리가 더욱 빡세다.

그런데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마탄 사고가 터진다.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악당 4인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미 출신으로 보이는 외모,

서슴없이 사람에게 총질하던 모습.

잡으러 갔는데 좁은 공간에 마탄이 쏟아지면?

자신도 위험했다.

그래서 천문석은 아직도 열심히 설명 중인 한경석에게 물었다.

"강화 전투복이랑 무기, 방패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순간 번쩍 고개를 들고 신나게 말하는 한경석.

"당연하지! 나만 믿어 친구! 후식이가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보기만 하는 엄청 좋은 장비 있거든! 그거 빌려줄게!"

"아뇨. 그냥 평범한 장비면 될 것 같네요."

"그렇구나···."

어쩐지 실망한 표정의 한경석과 함께 재금 빌딩의 오리온 길드 무기고를 방문한 천문석.

천문석은 오리온 길드에서 금속 방패와 톤파를 빌려 한경석과 함께 출동했다.

목적지는 악당 4인조가 숨어있다는 종로의 은신처였다!

---

한경석을 따라 종로 뒷골목을 걷고 있는 천문석.

훙, 훙, 훙-

천문석은 손잡이를 잡은 채 톤파를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팔에 딱 붙어 부드럽게 회전하는 톤파.

순간 그립을 잡으며 주먹을 뻗는다.

후웅-

공간을 가르며 일 점으로 쏘아지고.

팡, 휘리릭-

멈추는 순간 빙글 회전해 하박 전체를 가린다.

이 순간 팔을 펼치며 톤파를 회전시킨다!

후우웅-

위압적인 소용돌이가 팔의 궤적을 따라 퍼져나간다.

쿵-

천문석은 톤파로 금속 방패를 가볍게 두들긴 후 방패 뒤에 찔러 넣었다.

톤파와 금속 방패 둘 다 오랫동안 방치됐는 데도 쓸만했다.

오리온 길드는 레이드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고,

길드 무기고는 장비 불출이 모두 정지된 상황이었다.

한경석이 장비 담당을 닦달하려 할 때 천문석은 이 장비를 골랐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먼지가 가득 쌓인 톤파와 금속 방패.

톤파는 무기의 성격상 몬스터를 상대로 쓰기 부적합하고,

금속 방패도 마력 회로가 박혀있지 않은 통짜 금속 방패였다.

둘 다 게이트 사태 초기에 잠시 쓰였다가 도태된 무기라서 쉽게 빌릴 수 있었다.

톤파와 금속 방패.

지금 천문석에게는 딱 맞는 무기였다.

톤파로 제압하고,

금속 방패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총기 공격을 막는다.

이 장비면 악당 4인조를 상대하는 데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장비 감사합니다."

천문석의 감사 인사를 들은 한경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후식이 장비 필요 없어? 360개월 할부로 산 강화 전투복도 있는데. W.S. 인더스트리에서 만든 나이트 아머 탑승자용 강화 전투복! 이거 엄청 좋은 건데?"

360개월 할부라니!

이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빌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진짜 이곳에 숨어있는 건가요?"

천문석이 좁은 골목길을 살피며 의아해하자 한경석은 바로 대답했다.

"여기 맞아. 이제 곧 나와. 걔네들 호텔 체인에 숨어있어서 찾아서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렸어."

"호텔 체인에 숨어있어요?"

“걱정할 거 없어. 벌써 이곳 호텔로 옮겨 놨거든.”

한경석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좁은 골목에 호텔이 있다고?'

천문석이 주위를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순간,

골목길이 꺾이고 낡은 철제 대문이 달린 집이 나타났다.

"..."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었다.

막다른 곳이었다.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한경석.

"이쪽이야."

한경석을 따라 들어간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깔끔한 제복을 차려입은 직원이 오래된 한옥 주택 마당에 테이블을 놓고 앉아 있었다.

한경석이 가볍게 손을 젓자,

제복 입은 직원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인사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순간 소리 없이 열리는 벽!

"이쪽으로 가야 해."

천문석은 앞장선 한경석을 따라 마당을 통과해서 열린 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잘 관리된 넓은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정원 너머 한경석의 말대로 호텔이 있었다.

20층이 훌쩍 넘을 것 같은 대형 호텔이 사방이 벽과 창문 하나 없는 빌딩으로 막힌 넓은 공간에 있었다!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천문석의 눈이 커졌다.

낡고 오래된 그런 호텔이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호텔.

넓이와 층수만 봐도 객실 수가 100개는 훌쩍 넘을 것이다.

'이런 호텔이 왜 대로변이 아닌 차도 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이때 천문석의 생각을 짐작한 것 같은 한경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호텔 ‘안전 호텔’ 본점이야. 벌점 먹은 헌터, 도망자 같은 사람들 보호해주는 호텔 체인. 주위 빌딩이랑 건물은 위장용. 저 앞 빌딩 주차장이랑 지하로 연결됐어."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호텔을 봤다.

예전에 얼핏 그런 인터넷 썰을 본적이 있었다.

길드나 기업, 각종 단체의 표적이 된 헌터나 도망자를 보호해주는 호텔이 종로에 있다는 이야기를

헌터가 되기 전 인터넷 썰로만 들었던 호텔을 직접보다니···.

"이런 호텔은 투숙 비용이 엄청 비싸겠죠? 신변 보호를 해주니까···."

"본점 말고 지점비용은 그리 안 비싸. 대신 정보를···."

한경석이 대답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과 한경석은 악당 4인조를 잡으러 가고 있었다.

'안전' 호텔로!

우뚝 멈춰선 천문석은 황당해하는 눈으로 한경석을 봤다.

신변 보호를 해준다는 안전 호텔.

이 호텔 뒤에는 도망자의 신변 보호가 가능할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것이다.

그런 호텔로 무장한 채 가고 있었다.

호텔 투숙객을 잡으러!

이때 설명을 하던 한경석이 멈춰 서서 천문석을 봤다.

"친구. 왜 안 와?"

"...저기 안전 호텔이잖아요?"

"맞아."

"지금 우리 안전 호텔로 무장한 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한경석.

"안전 호텔로. 무장한 채 거기 투숙객을 잡으러 가고 있다니까요."

"맞는데···?"

천문석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다.

"아니. 저 호텔 뒤를 봐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타다다닥-

이때 다급한 발소리와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장을 입은 신사가 호텔 방향에서 달려오고 사방에서 완전무장한 보안요원들이 나타났다.

‘뭐 이리 빨라!’

천문석이 깜짝 놀라는 순간,

정장 차림의 신사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총지배인입니다. 준비는 모두 끝냈습니다. 오너."

"...?"

천문석의 시선이 총지배인이 고개를 숙인 방향으로 향했다.

한경석.

총지배인은 한경석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너요?"

천문석이 묻는 순간.

어느새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발동시킨 한경석이 호텔을 가리켰다.

[저 호텔. 내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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