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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77화 (178/1,336)

#177

"삼촌! 또 자는 거야?"

류세연의 불량스러운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슬그머니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 올려 머리를 가렸다.

타다닥-

마룻바닥을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이불 끝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타악-

"지금 몇 신줄 알아? 어서 일어나!"

류세연이 이불을 낚아채며 외쳤지만, 움직이지 않는 이불.

탁, 탁, 타탁-

세연은 포기하지 않고 사방에서 이불을 잡아당겼으나,

아무리 당겨도 이불은 천문석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려 버티고 있었으니까!

'하하하- 무공 최고다!'

천문석이 내심 웃음 지을 때.

류세연은 이불을 낚아채는 걸 포기하고 외쳤다.

"오늘로 며칠째야! 벌써 3일째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 어서 일어나서 뭐라도 좀 해!"

순간 천문석은 이불 위로 눈만 내밀고 대답했다.

"야. 사람이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사냐?"

"뭐?"

"나 열심히 숨 쉬고 있다!"

후, 하-

후, 하-

"삼촌!"

뾰족한 외침과 함께 등으로 떨어지는 손바닥 스매시!

'하- 그깟 손바닥!'

천문석이 내심 코웃음을 치는 순간.

류세연의 손바닥 스매시가 등짝에 작렬했다.

쫘아아악-

크어어억-

천문석은 피를 토하듯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으억! 이거 뭐야?! 너 무공 각성했냐!? 손이 왜 이리 매워!"

"장난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짝, 짜작, 짝, 짝-

류세연의 강렬한 등짝 스매시가 연속으로 작렬할 때.

천문석은 몸을 비틀며 강하게 항의했다.

"야, 나 좀 쉬어야 해. 이번 던전 엄청엄청엄청! 빡셌다니까!"

"뭐가 그렇게 빡셌는데?"

"그러니까···."

설명하기 위해 무림 던전을 생각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무림 던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두 가지였다.

-흑사회주 여량위한테 사기 치고 배를 타고 호수로 도망쳤다.

-단혈철검 주호에게 비무를 신청하고 설원을 달려 도망쳤다.

"..."

이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나름의 대의명분이 있는 행동이었는데···.

말로 설명하려니 뭔가 자신이 굉장히 나쁜 놈 같았다.

'이거 어떻게 설명하지···.'

천문석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심하자,

류세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할 말 없지? 그럼 오늘 간만에 대청소랑 집수리를···."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외쳤다.

"나 엄청난 격전을 치렀어! 도박장, 흑사회, 도박선, 청해호수, 소금 벌판 그리고 설산! 나 최소한 일주일, 아니 한 달은 놀아야. 아니 노는 게 아니라···. 그래! '멘탈 회복'. 멘탈 회복을 해야 한다! 너 헌터한테 정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천문석이 말을 쏟아낸 순간.

류세연은 손을 들어 옥상 방향으로 난 창문을 가리켰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옥상, 특급 헌터가 있었다.

마침 들려오는 특급 헌터의 우렁찬 목소리.

"으아악- 엄청난 힘이 솟는다! 내가 특급 헌터다!!"

특급 헌터 꼬맹이는 덥지도 않은지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트랙을 한 바퀴 돌자마자, 목에 건 시계를 찰칵 누르고 수첩에 시간을 기록하는 꼬맹이.

꼬맹이는 눈을 부릅뜨고 나뭇가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퐁, 퐁, 퐁-

"이래선 안 돼! 앙꼬 대장을 이기려면 더 빨라야 해! 이야압! 앙꼬! 내가 꼭 이길게!!"

다시 한번 트랙을 돌기 시작하는 특급 헌터 꼬맹이.

"삼촌. 저거 보고 뭐 느끼는 거 없어?"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와 쟤는 진짜 열심히 산다. 이 한여름에 덥지도 않나?"

"꼬맹이가 저렇게 열심인데 어른인 삼촌은 어떻게 해야겠어?"

"..."

말문이 막힌 천문석은 억울함을 담아 외쳤다.

"야! 여기 내 집이다!"

흐흐흐-

류세연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거실에 선을 그었다.

천문석이 누운 소파가 류세연이 그은 선에 걸렸다.

"어···?"

천문석은 깨달았다.

옥탑방이 넓어 지면서 거실이 예전 옥상으로 확장됐다.

임대차 계약에 따르면 지금 자신의 상체가 있는 곳은 옥탑방이 아니라 옥상이었다.

이 순간 쐐기를 박듯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 월세 계약 갱신일이 언제더라?"

"이런 무자비한 집주인···."

"난 원래 무자비해. 흐흐흫-"

웃음을 터트리며 환하게 웃는 류세연.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으나 류세연을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연아 너 학교 안 가냐?"

"재금 아카데미 한국 외교부랑 협의 중이래. 정식으로 개교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방학이야. 일주일에 한 번 연구소만 나가면 돼."

"교육부가 아니라 외교부?"

"재금 아카데미 저 위에 있잖아. 그리고 저긴 어느 나라 영토인지 아직 해결이 안 됐고."

류세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창밖 하늘에는 작은 점 같은 부유섬이 떠 있었다.

세계 유일의 부유섬.

저 부유섬이 농담 반 진담 반 전능 옥좌라 부르는 재금 그룹 본사 소재지였다.

천문석은 류세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저 부유섬은 원래 일본에 있던 섬이다.

그 섬을 마경 제거를 대가로 재금 그룹이 빌려서 대한민국 서울 하늘에다가 띄웠다.

일본은 여전히 그 섬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했고,

한국은 서울 하늘에 있으니 당연히 한국 영토라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재금 그룹 본사가 자국 영토에 있다고 주장하며 국세, 지방세 고지서를 발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금 그룹은 두 나라의 요청을 모두 생까고 있었다.

일개 기업이 국가의 힘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재금 그룹은 가능했다.

재금 그룹은 상징적 의미로 주민세 5000원을 강제징수하려고 하니까,

러시아 영공으로 부유섬을 옮겨 도망치는 미친놈들이니까.

"하- 재금 그룹, 이 또라이 녀석들."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손에 잡히는 물건.

빗자루와 쓰레받기.

"..."

"우선 빗자루질부터 시작해. 난 세입자분들한테 수리할 거 있는지 물어볼게."

"세연아. 국가 핵심 인재인 네가 대청소에 집수리까지 하는 건 국가적 낭비 아닐까? 넌 뭔가 머리 쓰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알았어. 그럼 몸은 삼촌이 써 난 머리를 쓸게."

"...머리를 써서 나한테 지시하겠다는 거지?"

"당연하지!"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류세연.

“이런 성실한 녀석! 무슨 집주인이 직접 건물 청소에 수리까지 해!”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며 저항을 포기하고 대청소와 집수리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띠리리리-

구원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

"철수형?!"

구원의 벨 소리에 얼굴이 환해진 천문석은 재빨리 리모컨을 소파 틈 제자리에 넣어두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휴대폰 화면에 뜬 건 처음 보는 번호였다.

"누구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는 순간.

들려오는 경직되고 딱딱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전화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경석?"

"한경석? 한경석이 누군데? 삼촌 친구야? 그런데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머리를 가까이하며 말하는 류세연.

천문석은 류세연의 머리를 밀어내며 통화를 했다.

"한경석. 맞죠? 무슨 일 있나요?"

이때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변조된 목소리.

-[맡긴 일. 끝났어.]

'맡긴 일?'

의아해하기도 잠시 무림 던전에 들어가기 전 한경석에게 부탁했던 일이 생각났다.

이세계 쿠팡맨을 할 때 엮였던 허술한 악당 4인조 헌터!

그놈들이 후환이 될 것 같아 암살검 한경석에게 찾아 달라고 했었다.

순간 늘어지던 몸에 치솟는 활력!

오늘 허술한 악당 4인조를 처리한다!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바로 가겠습니다. 혹시 준비할 게 있나요?"

-[그냥 와.]

"어디 계시나요? 예전에 봤던 공방으로 가면 될까요?"

-[광화문 광장.]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류세연은 질문을 쏟아냈다.

"방금 전화 친구야? ...목소리 어쩐지 여자 같았는데? 이름이 한경석이라고? 내가 아는 사람이야? 대학교 친구?"

바짝 긴장한 표정의 류세연.

류세연의 생각을 짐작한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히 대답했다.

"들었지? 나 아주아주 중요한 일 있어서 외출한다. 대청소와 집수리는 무기한 연기다! 카캬카-"

천문석이 크게 외치자 계획이 좌절된 류세연은 당황했다.

"앗! 아니, 그게 아니라···."

류세연이 우물쭈물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천문석은 이미 슬리퍼를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탁-

천문석은 현관문 손잡이 아래 빗자루를 받치며 외쳤다.

"세연! 그럼 나중에 보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당황한 표정의 류세연.

천문석은 재빨리 옥상을 가로질러 나가려 했으나.

어느새 옥상 문 앞에는 세발자전거를 탄 특급 헌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

특급 헌터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천문석을 올려다봤다.

천문석이 입을 여는 순간,

특급 헌터가 먼저 말했다.

"알바. 내가 태워다 줄까?"

"..."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타고 있는 세발자전거를 봤다.

"지금 그 세발자전거로 광화문까지 태워다 준다고?"

"맞아!"

"...힘들지 않을까?"

"특급 헌터에게 불가능은 없어!"

주저 없이 대답하는 특급 헌터.

'너에게도 조금은 불가능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천문석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 다른 말을 했다.

"나중에 부탁할게. 오늘은 특급 헌터가 출동할 정도로 급한 일이 아니거든."

"아, 그렇구나! 알았어! 알바 잘 갔다 와!"

퐁, 퐁, 퐁-

완전히 납득한 특급 헌터는 문 앞에서 비키며 퐁퐁검을 흔들어 배웅했다.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류세연의 다급한 목소리!

"...잠깐만!"

그러나 천문석은 멈추지 않았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건물에서 내려와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너무나 자주 타서 이제는 자가용 같은 273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휴대폰으로 교통비를 찍었다.

---

반 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천문석.

천문석은 바로 한경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있다고요?"

-...

"광화문 게이트 입구 맞은편이요?"

-...

"네, 알겠습니다."

천문석은 전화를 끊고 광화문 광장을 가로질렀다.

광화문 광장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헌터와 관련 업계 종사자들.

단체 관광객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청원 서명을 받기 위해서 서류철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여기가 세계에서 헌터 관련 인프라가 가장 좋은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서울 광화문입니다···."

"...뽀국추에서 나왔습니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만 25세 나이 기준 폐지, 서명 부탁드립니다!"

...

천문석은 수많은 인파 사이를 능숙하게 지나 광장 북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북쪽으로 갈수록 헌터들이 많아졌다.

"뭐지? 뭔 행사라도 있나?"

알 수 없는 상황에 의아해할 때,

헌터들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장비. 이지스의 방패 세트 맞지?"

"맞아! 레이드 탱거용 장비야! 어디 길드전이라도 치르러 가나···?"

"길드전? 한국에서는 길드끼리 전투도 하는 거야?"

"아니, 길드 대표로 나서서 싸우는걸 길드전이라고 한다."

“빨리 가자! 간만의 싸움 구경이다!”

...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는 헌터 무리.

이렇게 북쪽으로 이동하는 헌터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

이 순간 천문석은 뭔가 감이 왔다.

북쪽으로 달려가는 헌터들.

광화문 광장 북쪽.

자신이 한경석을 만나기로 한곳이었다.

처음 현장 면접에서 본 이후로 만날 때마다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던 한경석.

천문석은 어째선지 불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북쪽 광장 끝, 수많은 헌터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와아아-

순간 터져 나오는 환호성!

천문석은 재빨리 헌터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앞에 볼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헌터들이 뭉친 공간을 빠져나오는 순간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수많은 헌터들이 원을 그리고 구경하는 이곳에서.

컥-

한 헌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우와아아-

이 순간 다시 한번 탄성이 터지고,

사방에서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떻게 공격하는 거야?"

"이야 벌써 다섯 명째야!"

"이건 뭐, 공격이 보이지도 않네!?"

"저 장비, 저 기술! 진짜 랭커 아냐?"

...

천문석은 멍한 눈으로 공터 한가운데 서 있는 헌터를 봤다.

빛을 반사하는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헌터의 주위를 방패 세 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푹 눌러쓴 후드 위에는 단검으로 이뤄진 왕관이 자리하고,

팔과 다리, 몸 곳곳에서 푸른 마력광이 플레어처럼 넘실거렸다.

척 봐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입을 장비가 아니다.

인터넷 영상에서나 볼 수 있던 대규모 레이드 전투 무장!

휭, 휭, 휭, 휭-

이 순간 들려오는 섬뜩한 바람 소리!

헌터의 두 손 사이 잔상을 남기며 저글링 중인 단검!

천문석은 직감했다.

저 헌터는···.

"이번에는 내가 도전하겠다! 암살검!"

암살검, 한경석!

천문석이 만나기로 약속한 한경석이었다!

아니, 광화문 광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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