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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75화 (176/1,336)

#175

"혁명의 배신자!"

류세연이 발갛게 변한 이마를 잡고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재빨리 물통을 들고 달려왔다.

"세연. 이거 바르면 하나도 안 아파!"

특급 헌터는 손에 물을 묻혀 세연의 이마에 바르고 호, 호- 열심히 불었다.

"아, 혁명이 이렇게 실패하다니!"

세연이 한탄하자 재빨리 세연의 귓가로 입을 가져가 속삭이는 특급 헌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세연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렇단 말이지? 흐흐흐-"

류세연이 닫혀있는 화장실 문을 보며 음흉하게 웃는 순간,

특급 헌터는 주먹을 흔들며 열심히 외쳤다.

"세연!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어!"

순간 동시에 구호를 내뱉은 두 사람.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그런데 그 나뭇가지 검이 그렇게 맘에 들었어?"

류세연이 고개를 갸웃하자,

특급 헌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퐁퐁검! 진짜 진짜 엄청나! 내가 자세히 보여줄게!"

특급 헌터는 나뭇가지 검을 움직이며 아득한 그리움이 담긴 단어를 외쳤다.

“앙꼬!”

휘이이-

퐁, 퐁, 퐁-

휘파람 소리가 들려올 때 경쾌한 소리와 진동이 물결치듯 퍼져나갔다.

냐아, 냐아-

물결치듯 퍼져나가는 소리와 진동의 파문을 펄쩍 뛰어넘는 새끼 고양이.

류세연은 물결치듯 퍼져나가는 파문을 손으로 휘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진짜 신기하네. 입자도 파동도 아닌데, 마력장도 아니고···. 발동 트리거가 그리워하는 거라고? 정제 마석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던전에서 나온다는 아이템인가?”

“그거 봐! 이런 거는 생전 처음 봤다니까!”

"그러게 연구소에서도 이런 건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퐁퐁검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문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이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샤워를 끝낸 천문석이 나왔다.

천문석은 짧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물었다.

"화장실에 스파 욕조는 뭐냐? 뭐 이리 큰 걸 설치했어. 이거 다섯 명은 들어가겠던데?"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거 내가 강력히 주장했어! 알바 목욕 엄청 재밌게 잘한다고. 그런데 너무 작아!"

"...뭐? 이게 작다고?"

특급 헌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외쳤다.

"분명 내가 그림 그려 줬거든! 이만큼 이만큼 긴 욕조! 우리 목욕탕 갔을 때 헤엄쳤던 욕조 설치해 달라고 했는데! 저게 최선이래. 에휴-"

“...”

어이없는 꼬맹이 녀석.

공중목욕탕에 있는 10미터가 넘는 욕조를 집에 설치하려 한 거냐?

천문석은 장민 대표가 상식적인 사람이란 게 새삼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이때 발밑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냐아아-

천문석은 새끼 고양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뭐야? 네가 기르는 고양이야?"

"당연히 아니지. 알바네 옥상에 놀러 오는 고양이야! 이름은 냠냠이."

특급 헌터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새끼 고양이는 대답하듯이 바닥에 누워 배를 내밀었다.

새끼 고양이의 분홍빛 배를 보는 순간.

벼락 치듯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수풀에서 불쑥 튀어나와 낙엽 위를 우아하게 걷는다.

그리고 자신 앞에 발라당 자빠져 휘릭, 휘릭 작은 꼬리를 흔드는 새끼 고양이!

"...!"

천문석은 새끼 고양이 냠냠이가 눈에 익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이 고양이는 서울 사태 당시, 균열이 생겨난 류세연의 학교로 가기 위해 산을 넘을 때 만났던 그 고양이었다.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하듯 계속 자신 앞에 나타나 칼로리 바를 받아먹던 새끼 고양이!

“너 여기까지 칼로리 바 달라고 찾아온 거냐?”

천문석이 허탈하게 물을 때.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났다.

"앗! 소개해줄 친구가 더 있어! 니케, 니케! 어딨어!?"

특급 헌터가 거실 곳곳을 살피고 방과 화장실까지 확인하며 외쳤다.

그러나 어디서도 니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니케 어딨지? 오늘도 일하러 간 건가?"

"니케도 네 친구야? 냠냠이 같은?"

“아니. 니케는 냠냠이랑 완전히 달라.”

천문석의 질문에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외쳤다.

"앗! 맞아!"

특급 헌터는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장에서 신발 한 짝을 꺼냈다.

그리고 한달음에 달려와 천문석 앞에 신발 한 짝을 내밀었다.

"이게 니케야!"

"..."

오래된 nike 신발 한 짝.

천문석은 말없이 눈앞의 신발과 특급 헌터를 번갈아 봤다.

특급 헌터 꼬맹이는 원래도 특이한 녀석이었는데,

무림 던전을 갔다 오니까 몇 배는 더 특이해졌다.

갑자기 신발장에서 오래된 nike 신발을 꺼내와 자기 친구 니케라고 말한다.

'꼬맹아. 이제는 신발도 네 친구가 된 거냐?'

무림 던전에서 온갖 사건·사고에 구를 때에도 느끼지 못한 황당함.

그러나 천문석은 악마 꼬맹이들이 수두룩한 키즈카페에서 극한으로 단련됐다!

이런 특이한 꼬맹이를 다루는 데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천문석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몸을 낮췄다.

"네가 니케구나. 만나서 반갑다. 니케."

nike 신발과 눈을 맞추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천문석.

천문석은 인사 후 악수하듯 신발 끝을 잡고 흔들었다.

"...!"

순간 특급 헌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절대 아는 체를 하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을 보는 듯한 두려움 가득한 얼굴.

특급 헌터는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주위를 살폈고,

어느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류세연과 눈이 마주쳤다.

"세연!"

특급 헌터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소파로 달려가 세연에게 안겼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특급 헌터.

세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문석에게 외쳤다.

"야, 너 누구야? 우리 오···. 삼촌을 내놔라!"

"맞아! 정체를 밝히고 알바를 내놔!"

"..."

"빨리 안 내놓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다!"

"맞아! 제임스···. 아니 우리 삼촌 부를 거다!"

"너희 뭐 하는 거냐? 내가 천문석이잖아. 알바. 삼촌. 이 옥탑방 세입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며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들고 있던 신발을 내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알바가 조금 많이 이상하긴 해도! 신발이랑 반갑다고 인사하고 악수까지 할 리는 없단 말야!"

"맞아! 우리 삼촌이 아주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신발이랑 악수할 리는 없어!"

"...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던 천문석이 외쳤다.

"야! 네가 친구라며! 니케라고 이름까지 지어줬잖아?!"

"신발이 친구일 리 없잖아!"

"맞아! 신발은 신고 다니는 거야!"

천문석이 뒷목을 잡는 순간.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서로를 보며 외쳤다.

"세연!"

"특급 헌터!"

짝, 짜짝, 짝짝짝-

손을 연속해서 부딪힌 후 친남매처럼 동시에 웃는 두 사람.

후흐흨-

카캬캌-

"..."

천문석은 어이없었지만, 마침내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그렇지···. 이래야 내 집이지. 특이한 녀석이 둘이나 있는 내 집. 허, 허, 허-”

천문석이 허탈하게 웃는 순간,

발밑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생경한 감각.

냐아, 냐아아-

챱, 챠아압-

새끼 고양이 냠냠이가 분홍빛 배를 보인 채 천문석의 발에 침을 바르고 있었다.

“...”

특이한 여고생,

아주 특이한 특급 헌터 꼬맹이.

여기에 특급 헌터 친구 하나, 아니 둘 추가다.

새끼고양이 냠냠이.

그리고 니케라는 이름을 가진 신발.

보름여 만에 돌아온 집은 무림 던전 못지않은 난장판이었다.

---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천문석은 주방에 자리한 커다란 새 냉장고를 열었다.

"재료 사와야 하나."

그러나 새 냉장고 안에는 이미 식재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거 냉장고 안에 식재료는 뭐냐? 류세연. 네가 채운 거야?"

"아, 그거 장민 언니가 냉장고 설치하고 채워준 거야."

"..."

더는 놀랍지도 않았다.

역시 장민 대표,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다.

천문석은 거실을 향해 물었다.

"김치찌개 끓여서 저녁 먹을 건데. 너희 괜찮냐?"

묻는 순간 동시에 들려오는 대답.

"고기 많이!"

"고기 많이!"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완전히 변한 주방에서 새 식기와 조리도구를 가지고 돼지고기가 팍팍 들어간 김치찌개를 끓였다.

카페트 위에 커다란 상이 펼쳐지고.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와 일 인당 2개씩 돌아가는 계란 프라이.

넓적하게 자른 생김과 양념장, 밑반찬이 가득 깔렸다.

"밥 먹자!"

재빨리 손을 씻고 물기를 꼼꼼히 닦은 후 상 앞에 앉는 류세연과 특급 헌터.

"삼촌. 난 고기 많이!"

"쉐프! 훌륭한 요리입니다!"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돼지고기를 가득 담은 국그릇을 류세연과 특급 헌터 앞에 내려줬다.

그리고 어쩐지 한 달여 만에 먹는듯한 한국식 저녁 식사를 했다.

....

저녁 식사를 한 후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그릇 정리까지 모두 끝났을 때.

류세연은 소파 위에 앉았고,

특급 헌터는 나뭇가지 검을 들고 소파 등받이 위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새끼 고양이 냠냠이는 사라진 상태.

천문석은 세 줄의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류세연과 특급 헌터에게 한 줄씩 건네고 소파 앞 카펫에 앉았다.

"삼촌. 땡큐!"

"알바! 고마워!"

마침 커다란 텔레비전에서는 러브 시그널이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이시언! 오늘은 꼭 에리나 한테 고백해야 해!"

특급 헌터가 능숙하게 요구르트를 쭉 빨아 마시며 외치는 순간.

휘이이-

전보다 몇 배나 넓어진 거실 창으로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천문석은 문득 주위를 돌아봤다.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집.

이제 자신의 집은 옥탑방이라기보다는 신축 아파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배는 넓어진 거실.

화장실과 현관도 확 커졌고,

방과 다용도실이 하나씩 더 생겼다.

바닥에는 튼튼한 원목 마루가 깔리고 벽에서 새하얀 대리석이 시공됐다.

그리고 에어컨과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월풀 욕조, 식기세척기와 공기청정기 같은 가전과 창호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건 노트북과 오래된 소파 같은 몇몇 가구뿐.

전후 사진을 놓고 보면 같은 집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옥탑방은 던전에 다녀온 보름여 만에 재건축 수준으로 달라졌다.

옥상을 보면서 뭔가 생경함을 느낀 것도,

옥탑방이 확 넓어지면서 옥상이 작아진 것 때문이었다.

‘불과 보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정도 공사가 가능한 건가?’

천문석은 문득 류세연에게 물었다.

"여기 장민 대표님이 리모델링 한 거 맞지?"

류세연은 시선을 텔레비전에 둔 채 고개만 까딱였다.

"맞아. 삼촌이 던전으로 출발한 그 날 바로 공사 들어갔어. 장민 언니가 안전 검사, 허가, 등록까지 모두 끝냈어. 미리 이야기했다던데? 못 들은 거야?"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게 있었다.

무림 던전으로 출발하기 전 장민 대표와 특급 헌터, 류세연과 자신 넷이서 러브 시그널을 보던 날.

그 날 장민 대표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말했었다.

'제가 선물을 해도 될까요?'

옥상을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웃던 장민 대표.

던전에서 돌아오면 깜짝 놀랄 거라던 그 장난기 어린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날을 떠올리자.

세연이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과일을 같이 먹으며 러브 시그널을 보던 장민 대표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상상 속 장민 대표는 장난스레 코끝을 찡긋하며 묻는다.

'알바씨 어때요? 깜짝 놀랐나요?'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이라고 해서 텔레비전 정도를 생각했는데,

리모델링을 넘어 재건축 수준으로 옥탑방을 갈아엎고 가전제품과 가구 창호까지 통째로 바꿨다.

얼핏 봐도 여기에 들인 돈과 시간, 노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민 대표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이런 선물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천문석은 새삼스레 주위를 돌아봤다.

사실상 새집을 선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예전이라면 이런 선물에 기쁘기보다는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러나 장민 대표의 냉철한 모습 뒤에 가려진,

장난기 어린 웃음과 속 깊은 마음 씀씀이를 알게 돼서인가?

부담감보다는 장민 대표의 호의와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이 미소지으며 마음속으로 감사하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시언! 안돼! 에리나한테 고백해야 해!”

소파 등받이에 앉아 있던 특급 헌터가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날 때.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류세연도 같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렇지! 이시언 잘한다! 바로 추서연한테 고백해라!"

천문석의 시선도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이시언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카페로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클로즈업되는 흐릿한 여자의 뒷모습.

"어? 추서연이 아닌가?"

"아냐, 아직 몰라! 얼굴! 빨리 얼굴 보여줘!"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가는 순간.

뒷모습만 보이던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고 흐릿했던 화면의 초점이 맞기 시작했다.

"에리나!"

"추서연!"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다급히 외칠 때.

화면이 멈췄다!

"어, 이게 뭐야!? 고장인 건가?!"

탁, 탁, 탁-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텔레비전을 두들기자,

류세연이 외쳤다.

"특급 헌터. 잠시만! 고장이 아닌 거 같아!"

이때 멈춘 화면 위에 자막이 나타났다.

[광고 후 2부에서 이어집니다.]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동시에 분통을 터트렸다.

"으악! 중간 광고!"

"이런 젠장! 중간 광고!"

"내가 어른이 되면! 중간 광고 못 하게 법을 만들 거야!"

"맞아! 중간 광고 넣으면 감옥 보내야 해!"

"완전 찬성이야! 감옥에 보내고 고등어도 매일매일 먹여야 해!"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어할 때 광고 화면 하단으로 속보가 지나갔다.

[오늘 예정된 러브 시그널 2부는 긴급 뉴스 관계로 결방되었습니다. 광고 후 긴급 편성한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옐로스톤 마경 이상 현상 발생. 미국 정부 경계경보 2단계 격상. 남중국 접경지대. 몬스터 웨이브 발생. 거대 괴수···.]

"뭐, 결방!?"

"세연! 결방이 뭐야?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깜짝 놀랄 때,

속보를 본 천문석은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이 난리네. 역시 게이트 안정화 권역의 건물주가 최고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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