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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74화 (175/1,336)

#174

천문석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오르며 다시 한번 한탄했다.

"카드를 챙겼어야 했는데!"

카드는커녕 신분증과 동전 하나 없던 천문석.

재금 빌딩으로 찾아가 철수형, 한경석, 최후식 생각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결국, 천문석은 결국 광화문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2시간 22분 동안!

9.1km, 13,999걸음.

횡단보도 33개를 건너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놀겠다고 다짐했는데,

광화문에 오자마자 이런 어이없는 시작이라니!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것이다!

"마침내 돌아왔다!"

그러나 천문석은 옥상 문을 여는 순간 굳어버렸다.

"어···?"

아직 햇살이 쨍쨍한 옥상.

대략 보름 만에 다시 본 옥상이 무언가 달라졌다!

곳곳에 놓인 화분,

바닥에 그려진 경주 트랙.

옥상 가장자리의 작은 창고.

벽에 기대어진 빗자루와 쓰레받기.

모두 전과 같았다.

그런데 뭔가, 뭔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문득 눈앞으로 휙 떨어지는 하얀빛!

"어엇! 이거 뭐야!?"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피하자,

하얀빛에서 소리와 진동이 담긴 작은 파문이 퍼져 나왔다.

퐁, 퐁, 퐁-

약해졌지만 너무나 익숙한 소리와 진동!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무림에서 사라졌던 하늘 고래의 힘이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깜짝 놀란 천문석은 벨트에 걸린 나뭇가지 검을 뽑아 하얀빛을 톡 건드렸다.

퐁-

순간 비눗방울처럼 터져버린 하얀빛.

나뭇가지 검이 파르르 떨리고,

터져 버린 하얀빛이 나뭇가지 검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심상.

퐁, 퐁, 퐁-

아득한 그리움.

깜짝 놀란 천문석은 바로 그리움을 담아 나뭇가지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이-

퐁, 퐁, 퐁-

나뭇가지 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도 같이 퍼져나간다.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은 예전의 반의반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해졌다.

그러나 몇 번이나 느꼈던 하늘 고래의 힘이 맞았다!

“...!”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와 진동을 살폈다.

무림 던전에서 이세기에게 흡수된 하늘 고래의 힘이 대한민국에 그것도 자신의 옥탑방 앞 옥상에 있었다.

"무림 던전은 닫혔는데···. 너 정체가 뭐냐? 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야?"

천문석은 나뭇가지 검에 마음을 두고 의문을 담은 심상을 전했다.

그러나 당연히 대답은 없고 경쾌한 소리와 진동에 담긴 아득한 그리움만 전해졌다.

퐁, 퐁, 퐁-

"..."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천문석은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하늘 고래의 힘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쁠 것 없었다.

이런 개꿀이라니!

천문석은 신나게 웃으며 옥상을 가로질렀다.

“무림에 있다 와서 그런가. 이거 옥상이 왜 좁아진 거 같지?”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류세연! 꼬맹이! 나 왔다!"

그러나 현관 너머 거실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다시 한번 굳어버렸다.

"어, 어?"

깜짝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천문석은 입을 떡 벌렸다.

집이 완전히 변했다!

---

확 넓어진 거실!

천문석은 완전히 변한 자신의 옥탑방을 훑어봤다.

바닥에는 원목 마루가 깔리고 벽에는 대리석벽이 시공됐다.

천장에 설치된 부드러운 간접 조명 아래,

통째로 바뀐 주방에는 커다란 냉장고와 아일랜드 식탁이 생겼고, 거실에는 보기만 해도 푹신한 카페트가 깔렸다.

그리고 벽 전체로 커진 거실 창과 거실과 이어지는 복도 좌우와 정면에 있는 문!

문이 늘어났다!

"아니 방이 왜 늘어나···."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머리 위에서 붙어오는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문득 얼굴을 들자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이 보였다.

그리고 에어컨 아래에는 예전 텔레비전 4개가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완전히 달라진 집에서 눈에 익은 건 텔레비전 앞에 놓인 오래된 소파.

그리고 소파 위에 언제나처럼 비스듬히 누운 류세연과 소파 등받이에 누운 특급 헌터 꼬맹이뿐이었다.

"야, 이게 다 뭐냐!?"

천문석이 깜짝 놀란 묻는 순간.

소파와 등받이에 비스듬히 누워 천문석을 보고 있던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흔들며 외치는 두 사람.

"알바! 오랜만!"

"오빠! 오랜만!"

이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오빠? 이게 어디서 기어올라! 삼촌!"

번개같이 달려가 딱밤을 날리는 순간.

냐야앙-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천문석의 딱밤이 허공을 때렸다.

"...!"

천문석이 깜짝 놀라는 순간.

텔레비전 앞에서 나타나는 류세연과 특급 헌터!

으흐흐흐-

카카캬캌-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신나게 웃으면서 외쳤다.

"성공했어! 세연!"

"잘했어! 특급 헌터! 완벽한 타이밍이야!"

냐아아-

그리고 공중에 뚝 떨어지는 새끼 고양이!

"앗! 냠냠이!"

특급 헌터는 떨어지는 새끼 고양이를 재빨리 잡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였다.

냠, 냠, 냠-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천문석이 놀라움을 담아 외치자,

류세연은 손가락으로 천문석을 가리키며 당당히 선언했다!

"오늘로 압제는 끝났어! 이제 나는 마음대로 오빠라고 부를 거야! 혁명!"

순간 특급 헌터도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압제는 끝났어! 나도 마음대로 알바라고 부를 거야! 혁명!"

"야, 꼬맹이 너는 계속 알바라고···."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힘찬 구호.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잘했어! 특급 헌터!"

"잘했어! 세연!"

으흐흨-

캬카캌-

다시 한번 신나는 웃음이 터지고,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손이 번개같이 부딪혔다.

짝, 짜작, 짝짝짝-

멍하니 이 모습을 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초능력 계통 능력, 순간이동이다!

"류세연. 너 각성한 거야? 순간이동, 초능력 계통 각성!?"

류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 같은 초천재는 각성하면 당연히 마력 각성이지."

"뭐?"

이 순간 특급 헌터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특급 헌터가 왔다!"

"특급 헌터. 네가 각성한 거야? 지금 순간이동 네가 한 거였어?"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급 헌터 꼬맹이가 초능력을 각성했다고!?

아니 16세 미만은 각성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울 텐데?!

천문석이 깜짝 놀라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외쳤다.

"당연히 아니지! 난 특급 헌터거든!"

"..."

잠시 잊고 있었다.

특급 헌터의 엉망진창 대화법을.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야, 그럼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혹시 삼촌 아이템 가져온 거야?"

특급 헌터는 무언가를 냠냠 먹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냠냠이가 한 거야."

"냠냠이? 그 새끼 고양이 이름이냐?"

“맞아!”

천문석은 어쩐지 눈에 익은 새끼 고양이, 냠냠이를 유심히 봤다.

"그 새끼 고양이. 그러니까 냠냠이가 초능력 각성자라고?"

"맞아!"

다시 한번 대답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특급 헌터를 봤다.

각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각성한 동물들은 종종 나타난다.

배송경주에서 1등을 했던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각성한 동물의 힘을 빌려 쓰는 건 각성 동물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걸 특급 헌터가 해냈다니!

"너 어떻게 각성한 동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친구라서 도와주고 그런 거야?"

천문석이 놀란 얼굴로 묻자,

특급 헌터는 더 깜짝 놀라 외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냠냠이는 친구라고 도와주고 그런 거 없어! 냠냠이는 공과 사가 아주 철저한 고양이란 말야!"

냐아아-

맞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우는 새끼 고양이.

"뭐?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이없어하는 천문석에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척 내미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의 손에 들린 건, 견과류가 박힌 칼로리 바였다.

"이거 주고 냠냠이랑 계약했어."

특급 헌터가 말하는 순간,

류세연이 손으로 V자를 그리며 말했다.

"난 특급 헌터와 계약했고."

"맞아! 나와 류세연은 계약했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류세연 -> 특급 헌터 -> 냠냠이(순간이동 능력)]

'그런데 계약은 왜 한 거야?'

의문을 가지는 순간 잇달아 들려오는 류세연의 외침.

"오빠 잘 갔다 왔어?"

"오빠 각성은 한 거야?"

"오빠 선물은 사 왔어?"

"오빠, 오빠, 오빠! 으히힣-"

...

류세연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연신 '오빠'를 외치고 있었다.

지난 한을 풀듯 연신 오빠를 외치는 류세연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모든 의문이 풀렸다.

어이없게도 ‘오빠’라고 부르기 위해 류세연은 특급 헌터와 계약을 한 거다.

"너 계약 대가로 뭐 받았냐?"

특급 헌터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거실 구석을 가리켰다.

확 넓어진 거실 구석에는 러그가 깔려있고 그 위에 티피, 인디언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인디언 천막 입구에 붙어있는 종이.

[특급 헌터 집]

"저기 러그가 깔린 땅이랑. 저 훌륭한 집 세연이 줬어! 이제 나도 내 집이 생겼어!"

다다닥 달려가 인디언 천막을 쓱쓱 옷소매로 닦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뿌듯한 얼굴로 류세연에게 외쳤다.

"고마워 세연. 세연은 역시 최고의 집주인이야!"

"뭘. 특급 헌터. 너도 아주 훌륭한 특급 헌터야."

"야! 내 옥탑방 거실을 왜 네가 주는데!"

천문석이 항의하는 순간,

류세연은 눈을 반짝이며 손으로 거실에 선을 그었다.

"계약상. 이 선 너머 거실은 옥상이야."

"어?"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확 넓어진 거실.

그렇다! 거실이 옥상까지 확장된 것이다!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자.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여고생과 꼬맹이, 고양이.

으흐흨-

캬카컄-

냐아아-

두 사람과 새끼 고양이의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순간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

상황 파악이 순식간에 끝나고,

류세연을 응징할 방법이 떠올랐다.

[류세연 --> 특급 헌터 --> 냠냠이]

'계약의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끊는다!'

천문석의 예리한 시선이 특급 헌터에게 놓였다가 벨트로 움직였다.

벨트에 걸려있는 30cm 정도 되는 속이 빈 나뭇가지 검.

천문석은 나뭇가지 검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약한 고리 특급 헌터를 불렀다.

"특급 헌터. 이거 봐라."

"응?"

특급 헌터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뭇가지 검이 허공에 휘둘러 졌다.

휘이이잉-

퐁, 퐁, 퐁-

나뭇가지 검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순간.

물결치듯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경쾌한 소리와 진동!

"....!"

경악한 특급 헌터는 잡고 있던 냠냠이 마저 뚝 떨어뜨렸다.

자신도 모르게 천문석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천문석 앞에 쪼그려 앉아 입을 크게 벌린 채 나뭇가지 검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 어? 어!”

특급 헌터는 입가에서 침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퐁, 퐁, 퐁-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을 바라봤다.

"어때? 특급 헌터 이거 좋아 보이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쏟아냈다.

"이건! 너무나 훌륭하잖아! 나 살짝 아주 살짝!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 역시 안 되겠지? 이렇게 훌륭한 막대기는 처음 보는데···. 에휴. 우리 삼촌은 이상한 것만 잔뜩 있고 이런 아주 엄청 훌륭한 막대기는 없는데. 이거면 앙꼬 대장도 이길 수 있을 텐데···. 알바는 좋겠다. 집도 좋고 이런 훌륭한 막대기도 있고. 엄청 부자잖아! 부럽다! 너무 부럽다! 나라면 ‘퐁퐁검’이라고 이름 붙일 텐데! 에휴, 에휴, 에휴- ···."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제 약한 고리는 당기는 시늉만 해도 끊어진다!

그래서 천문석은 당기는 시늉을 했다.

"특급 헌터. 이 퐁퐁검 빌려줄까?"

"...뭐! 퐁퐁검을 빌려준다고? 한 번 만지는 것도 아니고 빌려준다고? 진짜로? 정말로? 진짜 진짜 진짜야?!"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외쳤다.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건이 하나 있긴 한데 뭐 힘든 건 아냐···.”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류세연을 보는 천문석.

순간 류세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특급 헌터! 귀 막아! 절대로 들으면 안 돼!"

반사적으로 귀를 막으려는 특급 헌터.

그러나 천문석이 나뭇가지 검을 움직이는 순간.

휘이이이-

퐁, 퐁, 퐁-

특급 헌터는 귀를 막으려는 것도 잊고 홀린 듯이 나뭇가지 검을 바라봤다.

"...!"

그리고 잠시 후.

딱, 딱, 딱-

으악, 으악! 으아악!

전법륜인 딱밤의 무자비한 응징이 혁명군에게 가해졌다.

"혁명은 실패했다! 카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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