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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61화 (162/1,336)

#161

청해 호수로 이어지는 관도를 통나무가 막고 있었다.

통나무 옆 길가에는 불이 피워져 있고.

불가에는 너덧 명의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왜 이리 춥냐?”

“이런 날 누가 나온다고 길을 지키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잖아. 으으으-”

무사들이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대화하는 순간.

구르르릉-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어둠을 향하고,

곧 어둠 속에서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무사 중 한 명이 외쳤다.

"멈춰라!"

천문석은 길을 막은 통나무 앞에 마차를 세우며 다급히 말했다.

"무사님들! 급합니다!"

그러나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무사.

"어디로 가는 마차냐?"

"주인 어르신께서 위중하셔서. 도련님께서 급히 스님을 모셔가는 중입니다!"

"마차 문부터 열어라!"

무사가 명령하자,

천문석은 주인의 호통이 두려운 하인처럼 전전긍긍 마차 문을 두들겼다.

통, 통-

"도련님."

"무슨 일이냐."

순간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위엄있는 목소리.

"무사님들이 안을 확인하셔야 한다고···."

순간 마차 문이 벌컥 열리고,

불빛 아래 드러나는 귀공자 차림의 남자, 이세기.

이세기를 보는 순간,

무사들은 흠칫 놀랐다.

얼핏 봐도 권문세가의 자제.

눈앞의 남자에게서 오랜 시간 남 위에 선 자의 위엄과 기품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저하며 서로를 보는 순간.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외는 소리가 들리고,

마차 안에서 산적 같은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허억!”

깜짝 놀란 무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으려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시주들. 나 마제사 주지요."

무사들은 마제사의 주지 스님을 바로 알아봤다.

진짜 산적도 기가 질릴 험상궂은 얼굴로 유명한 스님.

그러나 소 대신 강철 쟁기를 끌어 밭갈이를 해주는,

마제사가 있는 설산 인근에서는 악면보살(惡面菩薩)이라 불리는 스님이었다.

무사 중 한 명이 나서서 물었다.

"스님. 이 밤중에 어인 일로?"

이세기가 나서서 정중히 대답했다.

"집안에 우환이 들어. 내 급히 불력이 깊으신 스님을 모시는 길이요."

무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사정도 듣지 못하고,

철검장에 의해 갑자기 동원된 흑도 방파의 무사들이었다.

이들이 받은 명령은 관도를 막고 있다가,

큰 상처를 입은 무인을 발견하면 신호하라는 것.

그러나 눈앞에 있는 건.

명망 높은 마제사의 주지 스님.

권문세가 자제로 보이는 귀공자.

그리고 하인 복장을 한 마부였다.

"...이거 마차를 수색해야 하나?"

무사 중 한 명이 문득 말했으나.

"..."

이들 모두 마차를 수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권문세가와 마제사에서 슬쩍 말만 흘려도 어지간한 흑도 방파는 아작이 난다.

무사들이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보고 있자.

천문석이 잽싸게 다가와 이들의 팔을 잡아끌며 사정을 했다.

"무사님들 빨리 좀 보내주십시오! 주인 어르신 큰일 나십니다! 사람 생명이 달렸습니다!"

이 순간 무사들이 흠칫 몸을 떨며 서로를 봤다.

마부가 팔을 잡아끄는 순간,

능숙하게 품 안에 찔러 들어오는 은자.

무게를 보건에 족히 너덧 냥은 된다!

"집안에 우환이 들었다는데···. 보내주지?"

한 사람이 운을 띄우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무사들.

“무림인도 아닌데. 빨리 보내주자고.”

“그렇지. 사람 생명이 우선이지.”

“저 통나무부터 치우자고!”

...

곧 관도를 막았던 통나무가 치워지고 마차는 초소를 통과했다.

마부석의 천문석은 무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했다.

"무사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무사님들 얼굴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무사들은 어쩐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구르르릉-

천문석이 모는 마차는 순식간에 관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

한참 후 무사들이 보이지 않을 거리까지 이동하자,

이세기가 마차 문을 열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돌멩이. 너 약장사하고 다녔냐? 사기 치는 게 뭐 이리 능숙해? 초소 5개를 지나는데···. 어떻게 마차 안을 수색하겠다는 놈들이 한 명도 없냐?"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오랜 친우에게 비밀을 말해줬다.

"은자를 찔러 줬거든."

"하-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이세기가 감탄할 때.

천문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은자를 찔러주면서 경고도 같이했다."

"...경고했다고?"

의아해하는 이세기.

"당연하지. 돈을 먹인다고 순순히 열어줄 리가 없잖아? 콧대 높은 권문세가의 하인이 대뜸 돈을 먹이면. 만만하게 봐서 더 우려내거나. '이 새끼! 어디 구린 구석이 있구나!' 생각하지."

"그러면?"

"은자를 찔러 주면서 경력이 실린 손으로 툭, 툭- 가슴을 한 번씩 찔러 줬다."

이제야 이세기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챘다.

천문석이 팔을 잡아끌면 바로바로 치워지던 통나무!

이런 귀신같은 녀석!

언제 은자를 찔러 주면서 경고까지 날린 거야?

천문석은 이세기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피식 웃었다.

"한가지로는 사람이 쉽게 움직이지 않지. 명분과 이익 그리고 위험!"

“명분, 이익, 위험?”

이세기가 반문하자 천문석은 설명했다.

"명분. 우환이 들어 스님을 모셨다는 그럴듯한 이유. 그리고 마차 안에 있는 진짜 스님과 귀공자!"

"이익. 품 안에 들어온 묵직한 은자!"

"위험. 아- 빨리 보내주지 않으면 ‘좆되겠구나!’ 하는 직감!"

"..."

"명분과 이익, 위험이 모두 얽혀서. 저놈들 그냥 긴가민가한 거 확인하지 않고 모른 척 보내준 거야."

"...그럼 우리가 간 후에 신호를 보내는 거 아닐까?"

이세기가 묻는 순간.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카캬카-

"내가 마지막에 말했잖아. 얼굴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후환이 두렵지. 내 후환. 그리고 문책당하고 은자까지 뺏길 후환."

하-

이세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난 친구.

어린 시절에도 머리가 비상했던 친구는 더욱 성장했다.

‘이 녀석은 무림인이 아니라 상인이 됐으면 천하의 거부가 됐을 텐데. 아니지 최악의 악덕 상인이 됐으려나?’

...

이세기가 연신 감탄할 때 문득 들려오는 불호.

"아미타불···."

마제사 주지 스님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발도 스님. 괜찮으십니까?"

이세기가 걱정스레 묻는 순간,

바라카스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하늘을 살폈다.

5개의 초소를 언성 한번 높이지 않고 지나왔다.

천문석 시주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고 가슴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쿵, 쿵, 쿵-

뭔가, 뭔가 일어나려 한다!

바라카스 발도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가슴 조릴 때,

천문석이 모는 마차는 빠르게 관도에 설치된 초소들을 지나 달렸다.

그리고 2시진 후.

마차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목적지인 청해 호수에 도착했다.

---

바다처럼 넓은 청해 호수에서는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으니 천문석은 어쩐지 긴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 정오 비무를 치르며 시작된 사건들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으로 대환단만 얻으면 무림 던전과는 안녕이다!

천문석은 마차 벽을 두들기며 외쳤다.

"다 왔어! 청해 호수 보인다. 주호 꺼내라."

좌석 아래 공간에서 나와 마부석에 앉은 주호.

주호는 해가 뜨는 청해 호수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하- 폐관 수련에서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들어가게 되다니···."

"감상은 혼자 있을 때하고. 주호. 입구 어디야? 빨리 끝내자."

주호는 호수 바로 옆에 솟은 절벽 위를 가리켰다.

절벽 위에는 한겨울에도 잎이 무성한 침엽수 숲이 펼쳐져 있었다.

"저 숲에 입구가 있다."

천문석은 바로 숲을 향해 마차를 몰았다.

곧 낮은 언덕들을 지나 숲에 도착한 마차.

"숲 안으로는 마차가 못 들어가겠는데?"

천문석이 말하자,

주호는 마차에서 내려 잠시 절뚝이며 걷더니 말했다.

"이제 걸을 만하네. 여기서 기다려라. 대환단 가지고 올 테니까."

"어허, 어디서!"

천문석은 바로 주호를 제지했다.

"같이 들어가자. 대환단만 받으면 바로 나갈게."

주호는 바로 반발했다.

"야. 비밀 수련장 입구를 네가 알면 더는 비밀이 아니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차피. 주철도 안다며 그냥 같이 들어가지."

"하- 널 어떻게 믿고?"

천문석은 바로 손을 들고 하늘에 맹세했다.

"천지신명께 맹세코 대환단만 받아서 나오겠다."

그러나 코웃음 치는 주호.

"하- 내가 너한테 당한 게 있는데! 그 맹세 내가 하마! 천지신명께 맹세코 대환단을 가지고 나오겠다."

순간 천문석과 주호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는 외침.

"네가 양보해라!"

"네가 양보해라!"

불꽃 튀는 시선,

평행선을 달리는 의견.

천문석은 마제사 주지 스님을 봤다.

"발도 스님."

이미 천문석과는 이야기가 끝난 상황.

바라카스는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장주. 내가 같이 들어가서 대환단을 받아 나오는 게 어떻겠소?"

“...”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일.

주호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와 마제사 주지 스님이 무성한 침엽수 숲으로 들어갔다.

"발도 스님. 괜찮을까?"

이세기가 걱정스럽게 말할 때,

천문석은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걱정할 거 없다."

“그렇지. 주 대협이 약속을 지키겠지?”

“그건 아니지. 주호는 당연히 뒤통수를 치지.”

“뭐?”

깜짝 놀라는 이세기.

‘하나. 둘···.’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피식 웃었다.

이번 일에 걸린 건 무림의 무가지보 소림사의 대환단이다.

주호가 아무 수작 없이 순순히 대환단을 넘길 리가 없었다.

자신과 이세기 둘 다 건들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뒷 배경도 없고.

주호는 상황이 꼬여서 도움을 받고 있을 뿐. 여전히 주호 자신이 천문석과 이세기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쌓인 원한과 무공의 격차 그리고 후환도 없다.

주호는 당연히 뒤통수를 치려 할 거다.

그러나 주호와 같이 간 발도 스님도 보통은 아니다.

마사 안에서 짧게 손을 나눴을 때의 느낌으로는 최소 절정 이상!

게다가 은자 후리는 솜씨를 봐서는 눈치도 장난이 아니다.

‘이미 주호에게서 대환단을 우려낼 준비는 모두 끝났다!’

‘...백.’

이때 마음속으로 천천히 세던 숫자가 100이 됐다.

천문석은 이세기에게 말했다.

"이제 따라붙자."

"뭐?"

반문하는 이세기의 어깨를 툭 치는 천문석.

"주호. 근본이 사파 무사다. 이런 녀석들은 최소 도망칠 굴을 셋은 판다. 얼른 가서 도망칠 구석을 막고 '보물방'으로 몰아야 해."

"...보물방?“

이세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비상했던 친우다.

천문석과 이세기는 바로 숲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깊은 숲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 주호와 발도 스님.

"매를 부를까?"

"아니. 방법이 있어."

천문석은 고개를 젓고 쓱 주위를 훑었고.

곧 찾을 수 있었다.

'나무에 박힌 염주 알!'

발도 스님과 이야기 한 대로다.

천문석은 염주 알을 쫓아 숲을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숲속의 바위 공터, 수십 개의 바위가 쌓인 곳에서 주호를 찾을 수 있었다.

천문석과 이세기는 동시에 몸을 낮추고 기척을 죽였다.

이때 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님. 뒤로 좀 더 물러서시지요. 기관 작동방법을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바라카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물러서서 몸까지 뒤로 돌렸다.

주호는 바라카스가 몸을 돌리는 순간 번개같이 기관을 조작했다.

구르르릉-

거대한 바위가 요동치는 진동이 들려오는 순간.

으아아악-

주호가 악을 썼다.

구르, 구르르-

이 순간 쌓여있는 바위 하나가 거짓말처럼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바위가 밀려나자 천천히 드러나는 땅에 뚫린 구멍!

'저기가 입구구나!'

천문석이 직감하는 순간.

주호는 번개같이 입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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