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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58화 (159/1,336)

#158

툭, 투둑-

바로 상자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쏟아내는 천문석.

천문석은 동굴 바닥에 담요를 두껍게 깔고 기절한 주호를 눕혔다.

그리고 화로에 숯을 채우고 냄비를 걸며 말했다.

"난 바로 불 피우고 물 끓일게. 이세기, 넌 밖에 확인 좀 해라!"

이세기는 바로 동굴 입구로 걸어가 동굴을 막은 눈 덮인 판자 틈을 확인했다.

휘이잉-

판자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순간.

비스듬한 절벽 위 하늘에서 원을 그리는 매들이 보였다.

천문석이 말한,

흑기당의 추적용 매다.

휘유우-

하늘에서 매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이세기의 품 안이 꿈틀거렸다.

그륵-

이세기는 슬쩍 옷 안을 들췄다.

그러자 곤히 잠든 작은 매가 보였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참새 정도 크기의 매.

이세기가 설원에서 잡은 매였다.

"더 자라."

이세기는 매의 털을 쓱 훑어주고 동굴 안쪽 천문석에게 돌아왔다.

어느새 동굴 안은 훈훈한 온기와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천문석은 화로에 불을 피우고 냄비에 물을 끓이며 육포를 굽고 있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흑기당의 매가 날고 있는데. 아까 우리가 있던 설원 주위를 돌고 있어."

천문석은 이야기만 듣고도 상황을 짐작했다.

자신들과 철검장의 무사들이 격전을 벌인 설원.

이 설원을 돌고 있는 흑기당의 매.

흑기당과 극음도가 철검장의 뒤를 쫓고 있구나!

흑기당의 매의 움직임만 확인하면 철검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가 있었다.

철검장의 주철 총관은 생각 이상으로 치밀하지만, 흑기당과 극음도라는 변수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이걸 이용해서 길을 뚫으면 되겠다.”

흐흐흐-

천문석은 음흉하게 웃으며 담요 위에 누워있는 주호를 바라봤다.

"야. 들었지?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라."

그러나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주호.

"...너 버리고 간다! 어?"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주호를 버리고 간다?

‘이거 괜찮은 방법인데?’

철검장의 무사들, 주철 총관의 목표는 단혈철검 주호다.

살인멸구 하기 위해서 자신을 쫓기는 하겠지만,

주호가 보이지 않는다면 숨어있는 주호를 찾기위해서라도 인원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주호를 두고 떠나면 추격의 밀도가 낮아져 도망치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주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곳 동굴 은신처에는 한 달은 먹을 음식과 장작, 약이 준비돼 있었으니까.

"이거 진짜 버리고 가는 게 낫겠는데?"

천문석이 진심으로 말하는 순간.

자는 척하던 주호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뭐, 이 새끼야! 누굴 버리고 간다고?!"

주호가 분통을 터트리자.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성큼 주호에게 걸어갔다.

순간 분통을 터트린 주호는 당황했다.

"어, 어···."

깜빡했다!

자신을 구해줬지만.

금권 대협, 천문석 이 녀석은.

상대의 힘을 빼놓겠다고 6시진 동안 한겨울 설산을 도망친 놈이다!

그리고 ...를 묻힌 눈 뭉치를 던지고 섬광을 터트리고, 감각을 교란했다.

게다가 퐁, 퐁, 퐁- 마음을 뒤흔드는 이상한 음공까지 사용한다.

40년이 넘게 강호를 구른 자신도 처음 보는,

진정한 미친놈 천문석!

미친놈은 원래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 되는 법!

"내가···."

주호가 다급히 입을 열어 천문석에게 사과하려 할 때.

툭-

주호 앞에 떨어지는 나무판자와 금창약, 붕대.

"야. 화내지 말고. 우선 상처 치료부터 하자."

"뭐?"

주호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빠르게 움직였다.

“치료 시작한다.”

으드득-

주호의 어깨와 발목이 순식간에 맞춰졌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키는 주호.

천문석은 재빨리 주호의 어깨와 발목에 금창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

그리고 나무판자로 부목을 대고 붕대로 다시 한번 고정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상처 치료를 끝냈다.

이때 화로 위에 올린 냄비 물이 끓었다.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천문석은 뜨거운 물을 컵에 담아 이세기와 주호에게 한 잔씩 건네고, 화로에 굽던 육포를 나눴다.

"바로 움직여야 하니까. 우선 먹어."

주호는 온기가 전해지는 컵을 받고 우두커니 컵 안을 바라봤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 한잔.

비무를 시작한 이후 7시진 만에 마시는 물이었다.

한 모금 더운물을 마시고,

부르르 전신을 떠는 주호!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냥 따뜻한 물인데.

입안에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 스며들듯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온기!

후우, 후우-

주호는 천하의 영약이라도 마시는 듯 경건하게 더운물 한 잔을 아껴 마셨다.

이때 이세기가 주호를 눈짓하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주 대협. 왜 저러냐?'

"14시간. 그러니까 7시진이 넘도록 눈만 퍼먹어서 그래."

천문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주호는 돌처럼 굳어졌다.

몸에 스며드는 온기에 이제야 정신을 차린 주호.

주호의 머릿속에서 천문석과의 비무 과정이 떠올랐다.

처음 비무대에서 잠깐 제대로 싸운 걸 제외하고는.

천문석은 도망치고, 도망치며, 도망쳤다!

'이런 씹!'

6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놈을 쫓으며 타는 갈증에 눈을 퍼먹으며 버텼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벌어진 박투에서도.

초절정의 무인의 싸움이 아닌,

흑도 조무래기들의 진흙탕 개싸움을 치렀다!

시바, 시바!

으드득-

순간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런 병신 같은 비무를 치르다니!

주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말을 쏟아냈다.

"야, 이 더럽게 치사한 새끼! 비무하자고 비무첩까지 보내놓고! 도대체 몇시진을 도망친 거야!? 이런 미친놈아!"

주호가 말을 쏟아놓고 아차 하는 순간.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졌다고 인정했잖아?"

"뭐?"

"이번 비무 단혈철검 주호 네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아, 너 그때 기절해서 못 들었냐? 이번 비무 내가 졌어."

"..."

말문이 턱 막힌 주호는 이세기를 봤다.

이세기는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금권 천문석은 패배를 시인했습니다. 단혈철검 주 대협께서 이번 비무에서 승리하셨습니다."

"..."

주호의 시선이 부목이 대진 자신의 어깨와 발목을 거쳐.

쪼그려 앉아 후후- 입김을 불며 물을 마시고 육포를 씹는 천문석에게 닿았다.

전신이 아작나고,

내공 한점 느껴지지 않는 자신.

절정의 주철과 맞상대하고,

여기까지 자신을 데리고 도망친 천문석.

누가 봐도 승패가 분명한데···.

'내가 이겼다고?'

주호의 시선이 천문석과 이세기를 오갔다.

얼핏 봐도 친분이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이놈들 뭐 하는 짓이야!?'

주호가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천문석이 주호를 바라봤다.

푸른 섬광이 번뜩이는 광포한 눈!

주호가 맹수 앞에 선 토끼처럼 굳는 순간.

천문석은 주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내가 졌고. 주호 네가 이겼다. 알았냐!"

완전히 압도된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번개같이 이어지는 천문석의 말.

"그럼 비무 네가 이긴 거로 끝났다! 동의하지?"

"...동의한다."

"내가 너 구해준 것도 맞지?"

"...그래 인정한다."

"그럼 이제 헤어지자."

"...뭐?"

주호가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뜨거운 물을 마시며 정리한 생각을 재빨리 쏟아냈다.

"여기 한 달은 버틸 식량이랑 장작, 약이 있다. 물은 없지만, 눈을 녹여 먹으면 될 거야. 지금 너 정상이 아닌데 포위망 뚫다가 걸리면 골로 가는 거야. 여기서 치료하는 게 낫다. 포위망 뚫고 빠져나가서 사자련에 서신 보내줄게."

"사자련에 서신을 보낸다고?"

주호의 물음에,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검장에 반란이 일어났으니 도와달라는 서신. 강자존의 사자련이어도 반란은 얘기가 다르지. 바로 정예 무사들을 보내서 도와줄 거다."

순간 발끈하는 주호.

"...그러면! 내 평판이 땅에 떨어지잖아!"

“사파 무사가 평판은 무슨.”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주호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주호 가슴을 펴라!”

"뭐?"

"너 초절정이야! 강호에 18명밖에 없는 초절정!"

"..."

"와신상담 모르냐!? 잠시의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돼야지!"

"..."

"천하 18성이. 천하 19성이 되는 순간! 부하들한테 뒤통수 맞은 과거 같은 거는 모두 잊힌다!"

"..."

이때 주호는 천문석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냥 반란 수괴 주철만 처리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남의 가문 일에 끼어들어 은원을 쌓을 생각은 없다."

천문석은 바로 딱 잘랐다.

"그럼 철검장. 아니, 비밀 수련장까지만 데려다주면···."

“비밀 수련장 거기 주철 총관이 모르냐?”

"..."

주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주철 총관은 심복이자 조카였다.

당연히 비밀 수련장의 위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기는 하지만. 기관이 튼튼해서 그 안에 들어가면 안전···."

천문석은 손을 저어 주호의 말을 끊었다.

"됐어. 안 해."

"...돈을 더 주면 안 될까?"

주호의 제안에,

천문석은 품에서 잘 접힌 천을 꺼내 펼쳤다.

"은자 100만 냥에 돈을 더 얹어 주겠다고? 은자 100만 냥쯤 더 줄 거냐? 이번에는 무림맹이라도 보증인으로 세우려고?"

"..."

낯 두꺼운 주호도 차마 무림맹을 보증인으로 세우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천문석은 이세기에게 눈짓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랑 쟤가 포위망 돌파하면서 최대한 이목을 집중시킬 테니까. 여기가 더 안전할 거다. 최소 한 달! 완전히 회복하고 움직여라. 섣불리 나섰다가는 골로간다."

"정말로 안 되겠냐? 내가 단혈장의 비급서를 줄 수도 있는데···."

하-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무림인들은 절기, 독문 무공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천금, 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만큼!

주호는 단혈장을 주겠다는 제안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했을 거다.

그러나.

전생 천마 시절부터 자의 반 타의 반,

천문석의 혼백에 새겨진 무공이 하나둘이 아니다.

경지에 오르지 못해 쓰지 못할 뿐.

지금 당장이라도 익힐 수 있는 정사마의 무공들이 커다란 서가를 가득 채울 정도다.

그런데 단혈장이라니!

이건 뭐 재벌 회장한테 5만 원 주고 심부름시키는 것도 아니고···.

“됐어!”

천문석은 동굴 입구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설령 역근경, 태극혜검을 가져와도 필요 없어. 소림 대환단이면 모를까. 가자 이세기."

그리고 천문석과 이세기가 동굴 입구로 걸어가는 순간.

주호가 외쳤다.

“금권 대협! 기다려라!”

“야, 필요 없다니까! 나 이제 추운 건 질렸어. 집에 가서 돼지고기 김치찌개 먹을 거니까. 이제 부르지 마라!”

이 순간 주호가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환단!”

"...!"

거짓말처럼 멈춰선 천문석.

천문석은 다급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뭐, 대환단? 소림사 대환단? 그걸 네가 어떻게···."

천문석은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주호의 엄청난 내공의 비밀!

분명 주철이 말했었다.

소림사에 출가했던 주호가 대환단을 훔쳐 먹고 돌아왔다고!

천문석은 문득 주호의 전신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사공은 육체를 깎아 공을 이룬다.

그렇기에 경지가 오를수록 육체 본원의 힘과 진원에 손상을 입기 쉽다.

그러나 주호는.

사공을 익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는데도,

처절한 박투를 펼칠 때 엄청난 체력으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주호에게선 사공의 단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

주호가 폐관 수련에서 초절정에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천문석은 직감했다.

'폐관 수련할 때 대환단을 먹었구나!'

어떤 일이 단 한 번만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일이 두 번 일어났다면.

당연히 세 번, 네 번 일어날 수도 있었다.

경악한 천문석은 주호를 향해 외쳤다.

"너 대환단을 몇 개나 훔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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