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
목소리를 들은 순간,
천문석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었다.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한 사람의 얼굴!
천문석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꺼운 털옷을 입은 일남 일녀
!
두 사람이 능선을 넘어 다가오고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남자에게 꽂혔다.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
'더럽게 잘생겼네!'
그리고 청년의 모습에 겹쳐지는,
머리를 빡빡 깎은 꼬맹이의 모습!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세기!
'아니, 쟤가 왜 여기에 있어!?'
돌연한 상황에 천문석이 당황하는 순간.
문득 고개를 든 이세기가 깜짝 놀라 외쳤다.
"뒤!"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감!
천문석이 몸을 돌리는 동시에 주호의 주먹이 배에 꽂혔다!
커어억-
천문석이 제대로 맞은 주먹에 휘청 흔들리는 순간.
"으아아아- 천문석!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호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천문석은 피범벅이 된 입으로 피를 토하며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질척여야 사파 무사지!”
천문석은 두 손을 들어 가드를 올리며 외쳤다.
"단혈철검 주호! 여기서 끝장을 내자!"
"그래 여기서 끝장을 보자!"
천문석과 주호가 격돌하려는 순간.
일진광풍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휘이잉-
일진광풍에 실린 종잡을 수 없는 경력!
내공이 바닥난 천문석과 주호가 깜짝 놀라 몸을 빼는 순간.
휘이잉-
일진광풍은 순식간에 훈훈한 미풍이 되어 두 사람을 감쌌다.
"이게 대체···!?"
주호의 경악한 눈이 이세기에게 향할 때 반가움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드디어,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요! 단혈철검 주 대협. 제가 비무첩을 보낸 강호 초출 이세기입니다! 저와 비무를 해주십시오!"
'이런 젠장! 하필 지금!'
천문석이 돌연한 상황에 경악할 때.
주호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 지금 여기서 비무를 하자고?"
이세기는 즉각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네! 제가 비무첩을 보낸 이세기입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설산을 오르는데. 길을 잘 아신다는 스님분이 알고 보니 길치여서···. 그리고 그 뒤로 만난 여염집 아낙, 화전민분들이 모두···."
이세기는 비무에 늦은 이유,
아침부터 설산을 헤맨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주호는 말문이 턱 막혔다.
금권 대협 천문석에 이어 갑자기 나타난 강호 초출 이세기.
이 녀석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6시진 동안 도망치고 나서야 제대로 싸우기 시작한 천문석.
갑자기 설원 한복판에 나타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자신에게 비무를 청하는 이세기.
천문석.
이세기.
자신이 비무 하기로 한 두 녀석 모두 미친놈들이었다!
주호는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시발! 이런 미친놈들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비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데!'
강호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
40년이 넘게 강호에서 구른 주호도 이런 미친놈들은 처음 봤다.
골수까지 마기가 침범한 마인이나 괴팍하게 늙은 노괴도 아닌 20대 청년들이 이렇게 미쳤다니!
강호의 앞날이 어둡다 못해 깜깜했다!
주호는 깝깝한 가슴으로 미친놈 보듯 이세기를 바라봤다.
"...그런 이유가 있으니. 비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 대협."
이때 들려오는 천문석의 다급한 목소리.
"야! 상도의 아니 무림의 규칙을 지켜야지! 새치기하면 안 된다!"
이세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네? 무림의 규칙이요?"
천문석은 주호를 가리키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그래! 무림의 규칙! 내가 주호를 저 상태로 만드는데 얼마나 힘들었던 줄 알아!? 내가 6시진 동안! 생사결을 벌여서! 이제 겨우 승부를 내려는데! 뭐? 지금 비무를 하겠다고?! 낼름 승리를 훔쳐가려고 해!?"
"뭐? 6시진 동안 생사결을 벌여?! 야, 이···!"
주호가 너무나 황당해 말을 잇지 못할 때.
이세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언제 비무가 끝나시는지? 저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 가능한 한 빨리 좀···."
순간 천문석은 눈을 반짝였다.
역시 다음 비무 일정이 있었구나!
당연히 다음 상대는 천하 18성의 일원 일터.
어떻게든 이세기를 여기서 치우기만 하면 된다!
천문석은 주호를 가리키며 당당히 외쳤다.
"석 달 열흘!"
"네?"
"뭐?"
이세기와 주호가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당당히 외쳤다.
"내가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 이 비무는 안 끝난다! 석 달 열흘이 지나도!"
"석 달 열흘···. 그러니까 100일 동안 비무를 하시겠다는 건가요?"
천문석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주호는 내 것이니까! 넌 그냥 일정대로 다음 상대랑 싸우러 가라!"
"..."
이세기는 이채를 띤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뭐지, 이 어이없는데 당당한 모습은?'
툭툭 내뱉는 거친 언사와 불량한 행동.
뒷골목 시정잡배,
흑도 방파의 삼류 무사 같은 말과 행동인데···.
이상하게도 불쾌감이 느껴지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아니, 어째선지 저 말과 행동이 반갑기까지 했다.
"..."
이세기는 천문석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두꺼운 털모자를 눌러쓰고 깃을 세워 가려진 얼굴.
손바닥 정도 크기로 드러난 얼굴은 쏟아진 피로 엉망이다.
처음 볼때는 밋밋하나 문득 다시 보는 순간,
뇌리에 박혀 드는 섬전을 머금은 눈과 강렬한 인상!
분명 처음 보는데···.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이상하네···."
이세기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물었다.
"금권 대협. 그런데···. 혹시 우리 언제 만난 적이 있는지요? 이상하게 얼굴이 눈에 익네요?"
"...!"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천문석은 내심 움찔했다.
이세기 이 새끼.
뭐 이리 눈치가 빨라!
그러나 천문석은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당당히 외쳤다.
"그럴 리가!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얼굴이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현생에서는 처음 만나는 이세기였으니까.
그리고 살아온 생이 다른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의 얼굴은 다르다. 이세기가 자신을 알아볼 리가 없었다.
천문석은 좀 더 강하게 나갔다.
"뭐야? 친한 척하면서 비벼볼 생각이냐! 하-"
"이상하네···. 분명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천문석. 천문석···."
이세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할 때,
천문석은 손을 흔들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됐고! 훠이, 훠이- 넌 다음 상대나 찾아가라! 난 저기 주호랑 석 달 열흘 동안 비무를 벌여야 한다!"
반사적으로 주호를 찾던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설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법을 운공해 내공을 회복하고 있는 주호!
“역시 사파 무사!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구나!”
하하하-
천문석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재빨리 눈 뭉치를 만들어 주호에게 던졌다.
휘이잉, 퍽-
심법 운공 중에 눈 뭉치를 맞은 주호가 파르르 경련할 때.
천문석은 계속 눈 뭉치를 던지며 이세기를 안내하던 여자를 찾았다.
멀찍이 당황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 비구니가 보였다!
산적같이 생겼던 마제사 주지 스님이 동원한 사람.
천문석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흔들며 강렬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비구니가 움찔하는 순간.
재빨리 입 모양으로 말한다.
'쟤 빨리 데리고 가세요! 빨리!'
비구니가 깜짝 놀라 이세기에게 달려가는 사이.
천문석은 내력을 회복 중인 주호에게 계속 눈 뭉치를 던지며 다가갔다.
휘이잉, 퍽, 퍽, 퍽-
주호는 몸을 떨며 입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심법을 운공했다.
안정성이 떨어지는 사파 심법을 눈 뭉치를 맞으면서도 운공하다니!
천문석은 내심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당장 안 일어나면. 그거 던진다! 노란···!"
"야, 이 씹!
주호는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
"시주! 우선 마제사로 가서 기다리시죠!"
비구니가 다급히 옷소매를 잡아끄는 순간.
이세기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풀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신 거로 됐습니다."
얼굴은 부드럽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단단한 의지에 비구니는 더는 이세기를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이 순간 천문석과 주호는 다시 마주했다.
이제는 아예 검조차 뽑지 않고,
주먹을 쥐고 마주 선 두 사람.
천문석은 두 팔로 가드를 올리고 가볍게 스탭을 밟으며 외쳤다.
“주호! 아작을 내주마!”
“나야말로! 작살을 내주마!”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내력을 회복했는지 경력이 실린 주먹을 휘두르는 주호!
후웅-
그러나 내력을 회복한 건 천문석도 마찬가지!
천문석은 날아오는 주먹을 가벼운 상체 움직임만으로 피하고 잽을 날렸다.
팍, 파박, 팍-
가벼운 잽 3연타가 주호의 얼굴에 꽂히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숙이고 주호의 몸을 파고들었다.
지금까지와는 사용한 무공과는 전혀 다른 공격방법 주호가 당황하는 순간.
천문석은 땅을 짓밟으며 훅을 갈겼다.
후웅-
바람을 머금은 강력한 훅이 옆구리에 닿기 직전.
주호는 무릎을 세워 천문석의 얼굴을 찍었다.
훅과 무릎이 동시에 닿는다.
툭-
쾅-
닿는 순간 허깨비처럼 힘이 사라지는 훅!
"허초!?"
주호가 깜짝 놀라는 순간.
이마로 무릎을 받은 천문석은 한발로 디딘 주호의 발을 잡고 체중이 실린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콰아앙-
얼어붙은 땅으로 쓰러지는 주호!
천문석은 바로 마운팅 포지션을 잡고 주호의 귀에 주먹부터 갈겼다.
쾅, 쾅, 쾅-
연속으로 귀에 떨어지는 주먹!
띠이이잉-
주호가 순간적으로 이명이 터지고 균형감각을 잃는 순간.
천문석은 괴성을 지르며 폭발적인 주먹을 갈겼다.
으아아악-
쾅, 쾅, 쾅-
쏟아지는 주먹에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는 주호!
그러나 뒷골목 막싸움에는 주호도 익숙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끌어모은 한 호흡의 진기를 담아.
하앗-
기합을 터트리며 철판교의 수법으로 천문석을 튕겨냈다.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뜨는 순간,
천문석은 다리로 주호의 허리를 감싸고 늘어졌다.
뒤엉킨 채 설원을 데굴데굴 구르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설원을 구르며 온몸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퍽, 퍽, 퍽-
쾅, 쾅, 쾅-
초절정은커녕, 뒷골목 시정잡배처럼 주먹을 날리고 이마로 박고 무릎으로 치고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었다.
"으아악! 뒤져라!"
"너야말로! 이야악!"
흐르던 피가 눈에 들어가 붉게 변한 시야.
천문석은 주호의 멱살을 잡고 늘어지며 이마로 코를 들이박았다.
커어억-
시뻘건 피가 확 흩어질 때.
주호의 단혈장이 천문석의 가슴을 가격했다.
쿵-
찌르르르-
단혈장의 경력이 가슴을 헤집었으나.
천문석은 솟구치는 피를 삼키며 주호의 뒤를 잡았다.
주호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비트는 천문석!
평소라면 먹히지 않았을 관절기.
그러나 내력이 거의 바닥난 주호의 팔이 움직였다!
으득!
완벽하게 들어간 기술에 팔이 비틀리는 순간.
으아아악!
주호는 악을 쓰며 천문석의 옆구리에 단혈장을 쏟아냈다.
쿵, 쿵, 쿵-
큽, 큽, 컥-
천문석은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기어이 주호의 어깨 관절을 완전히 돌렸다.
으드드득-
으아아악-
팔이 완전히 돌아가는 순간,
주호는 엄청난 비명을 토하며 팔을 축 늘어트렸다!
쿨럭-
이 순간 천문석도 피를 토해내고 단혈장의 경력에 풍이라도 맞은 듯 전신을 떨었다.
지금 끝장을 봐야 했다!
천문석은 널브러진 주호의 발을 두 손으로 잡고 다리를 조였다.
"커억- ...뭐 하는···."
주호가 입을 여는 순간.
천문석은 주호의 발을 돌려 버렸다!
으드드드득-
끄아아아악-
주호의 끔찍한 비명이 터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폭발하는 경력!
파아앙-
천문석은 폭발하는 경력에 날아가 눈 위로 나뒹굴었다.
설원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천문석.
눈으로 엉망이 된 천문석은 바로 검집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찌르르르-
단혈장의 경력이 전신을 헤집고.
순간적으로 훅 올라오는 현기증!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
천문석은 열 걸음 정도 앞에 쓰러진 단혈철검 주호를 봤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완전히 돌아간 채,
새하얀 설원 위에 널브러진 단혈철검 주호!
폭발한 경력이 마지막 발악이었다.
주호의 몸은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이겼다!’
그러나 아직이었다.
팔과 다리를 아작냈고 전신에 외상을 입혔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주호라면 한 달이면 본신의 무공을 회복할 것이다.
지금 바로 내상을 입혀,
주호의 기경팔맥을 뒤집어 놓아야 했다.
일 년은 자리를 보전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