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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49화 (150/1,336)

#149

천문석이 도망치고,

주호가 쫓기를 두시진.

천문석이 3번째 행낭을 찾았을 때,

기울어지던 해가 산맥 너머로 떨어졌다.

아직 빛은 남았으나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눈!

한겨울 설산에 엄청난 냉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냉기가 몰아치는 설원 위를 두 고수.

천문석과 주호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뽀득, 뽀득, 뽀드득-

새하얀 밀가루처럼 눈이 흩날리는 단단한 얼음 위를 달리는 주호.

주호는 분노한 눈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몸에 눈이 조금씩 쌓이고,

무복 곳곳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축축 처지고,

입에서 나오는 호흡도 거칠어진다.

겨울 무복을 입었으나 비무를 대비한 가벼운 무복.

빠르게 떨어지는 기온에 체력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주호는 분노한 눈으로 이 모든 일의 원흉을 바라봤다.

금권 대협!

대협이라는 말과 달리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싸우고 도망치고를 반복하는 천문석을!

비무장을 나와 천문석과 처음 싸우고 두시진 동안 주호는 천문석과 세 번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매 격전은 30합이 되지 않아 끝났다.

온갖 방법으로 도망치는 천문석!

이제는 주호도 진실을 깨달았다.

금권 대협 천문석은 반로환동의 고수 그런 게 아니었다.

단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나,

내공이 너무나 부족한 기형적인 고수였다!

“...!”

주호의 이글거리는 눈이 천문석을 응시했다.

정면승부를 하면 40합이면 이길 수 있는데!

천문석은 절대 오랫동안 싸우지 않았다.

짧으면 10합에서 길어야 30합!

잠깐 싸우고 도망쳐 내공을 회복하는 걸 반복했다!

어떻게든 붙잡고 늘어지려 했으나.

도망치는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도저히 30합 이상 승부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호는 인내했다.

도망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면,

내공이 약한 천문석의 체력이 더 빠르게 소진된다.

‘그 순간 작살을 내주마!’

주호는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순간 주호의 시선이 도망치는 천문석의 전신을 훑었다.

두툼한 털모자를 쓰고 털가죽 옷에 장갑과 눈 신까지 착용한 천문석.

어느새 황금 가면을 벗고 방한 장비를 착용한 천문석은 연신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순간 주호는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눈을 녹여 먹으며 뒤를 쫓는 동안!

천문석 저 미친놈은 어디서 났는지 건량을 씹고 물을 마시고 의복마저 털이 달린 방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저놈을 갈아 마시고 싶은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체력마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 순간 단혈철검 주호는 가슴속 울분을 토해내며 35번째로 다짐했다.

철검장으로 돌아가면 천금을 들여서라도 경공술을 배우리라!

...

으아아악-

단혈철검 주호의 피 끓는 고함이 터진 순간.

천문석은 힐끗 뒤를 살폈다.

눈밭 위를 달려오는 주호.

얼핏 봐도 체력이 확 깎인 게 느껴진다.

'이제 슬슬 승부할까?'

생각과 동시에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수.

그것도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파 고수는 더럽게 질척질척 끈질긴 기질이 있었다.

밑바닥에서 힘겹게 구를 때 생기는 기질.

사파 고수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생각도 못 한 일을 벌일 때가 있었다.

무림 던전의 지속이 걸린 일.

최대한 변수를 줄여야 했다!

천문석은 육포를 꼭꼭 씹고 아직 온기가 남은 물을 마셨다.

그리고 거센 바람 속으로 몸을 움직였다.

---

천문석은 한 시진을 더 도망쳤고 주호와 두 번 더 싸웠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할 때.

천문석과 주호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깎아지른 절벽 위를 걷고 있었다.

주호가 끓어오르는 울분을 담아 앞서 걷고 있는 천문석에게 외쳤다.

"야, 이 새끼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싸울 거야 말 거야!? 좀 제대로 싸우자!"

이제는 명호조차 부르지 않는 주호.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주호!"

퐁, 퐁, 퐁-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롱소드를 흔들다가 흠칫 놀랐다.

주호의 기감이 사라졌다!

다급히 주호를 찾았으나,

외침이 들려왔던 곳에는 아무도 없고.

휘이이잉-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 어디에도 주호가 보이지 않았다!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주호가 있던 장소로 달렸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절벽 위 주호가 있던 지점.

여전히 기감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설마, 절벽을 타고 내려간 건가!?"

천문석은 눈발이 휘몰아치는 절벽으로 달려갔다.

거센 눈발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절벽!

무림인이어도 이런 눈보라 속에서 절벽을 타고내려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절정고수 주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주호가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면 놓친다!

어떻게 하지!?

가장 좋은 건 던질 수 있는 투척 무기를 준비해서 공격하는 것!

그러나 주위에 보이는 것은 눈뿐이다.

가벼운 눈 뭉치로는 내력을 실어도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이 순간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 눈싸움하던 기억!

제대로 된 타격을 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그러나···.

"....이거 진짜 해도 되는 거야?"

천문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빠르게 결정하고 허리춤을 풀었다.

어차피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주호에게 던져 발을 묶기만 하면 된다.

자기가 말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만든 눈 뭉치에 맞는지 주호는 꿈에도 모를 거다.

잠시 후 단단한 눈 뭉치를 여러 개 만든 천문석은 절벽을 향해 다급히 달렸다.

그리고 천문석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파아아앙-

높게 쌓인 눈이 폭발하듯 비산하고 절절 끓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잡았다! 이 쥐새끼 놈!"

단혈철검 주호!

주호가 눈 속에서 뛰어나와 천문석에게 돌진했다.

뒤는 절벽!

앞은 주호!

천문석은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귀식대법을 펼쳐 기감을 죽이고 눈 속에 숨어 있었구나!'

천문석은 바로 눈을 박차고 옆으로 뛰었다.

퍽, 퍼억-

눈 신을 신었으나 급기동에 눈 속으로 푹 파고드는 다리!

순간 주호가 폭발적인 내공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딜 도망가냐! 여기서 끝장을 보자!"

주호는 천문석을 따라 옆으로 뛰며 검강을 뿌렸다.

섬뜩한 검강이 공간을 가르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차올리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

솟구친 눈이 주호를 덮치며 연속으로 터지는 굉음!

쾅, 쾅, 쾅-

십자 섬광이 비산하는 눈을 단숨에 가르고.

하-

단혈철검 주호가 검강을 앞세워 눈 속에서 뛰어나왔다!

"잡았다!"

주호는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뒤는 절벽으로 막혔다!

아무리 도망을 잘 치는 녀석이라도 더는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이제 40합이면 이놈을 요절낼 수 있다!

주호는 내력으로 눈과 귀, 오감을 보호하며,

머리 위와 좌우, 도망칠 곳을 철통같이 살폈다.

더는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제야 검을 앞세우는 금권 대협 천문석!

주호는 단숨에 땅을 박차고 뛰어 혼신의 힘을 다한 단혈십자검을 펼쳤다.

파스스슥-

열십자 검강이 공간을 찢는 순간.

천문석은 훅 꺼지듯이 사라졌다.

"...!"

주호는 말을 잊은 채 천문석을 봤다.

훅 꺼지듯이 몸을 낮춰 데굴데굴 구르는 천문석.

천문석은 자신이 땅을 박차는 순간 눈 위를 굴렀다.

그것도 자신의 발밑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나려타곤!

검강을 사용하는 초절정 고수.

천하 18성의 고수가 나려타곤으로 적의 다리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 몸을 피하다니!

주호는 단혈십자검을 펼치던 것도 잊고 경악해 굳어졌다.

순간 주호의 발밑을 굴러서 빠져나간 천문석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잇달아 눈 뭉치를 던졌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주호는 눈 뭉치는 무시하고 몸을 날렸다.

내력을 실었다고 해도 가벼운 눈 뭉치.

서로 간의 내력 차를 생각하면 큰 피해를 줄 수는 없다!

지금은 저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이 절벽에 붙잡아 두는 게 우선이었다!

주호의 내력이 실린 발이 눈을 박차는 순간.

쾅-

굉음이 터지고 주호의 신형이 쏘아지듯 허공을 갈랐다.

이때 주호의 몸으로 다가오는 눈 뭉치들.

이 순간 주호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쒜에엑-

날아오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가벼운 눈 뭉치가 아닌 돌이 날아오듯 묵직한 소리!

그리고 주호가 피할 사이도 없이,

내력을 실은 노란 눈 뭉치들이 주호의 전신을 때렸다.

쿵, 쿵, 쿵-

몸이 부르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

몸을 타고 흐르는 내력에 막혀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묵직한 눈 뭉치에 담긴 충격량에 허공으로 쏘아지던 주호의 몸이 멈췄다.

어느새 눈밭 위를 재빨리 달려 거리를 벌리는 천문석.

거리가 가깝다!

아직 늦지 않았다!

주호는 내력을 끌어올려 천문석을 쫓아 달리려다가 문득 멈춰섰다.

"..."

주호의 눈에 눈밭에 흩어진 노란 눈 뭉치들이 보였다.

자신의 몸을 맞추고 떨어진 노란 눈 뭉치들.

"어?"

돌처럼 묵직했던 노란 눈 뭉치···.

묵직했던 노란 눈 뭉치···.

노란 눈 뭉치···.

노란···!

"...설마···. 설마···!"

수전증에라도 걸린 듯 파르르- 떨리는 손.

주호의 떨리는 손이 눈 위에 흩어진 노란 눈 뭉치로 향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렇지! 당연히 아니지! 초절정의 무인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떨리는 손으로 얼어붙은 노란 눈 뭉치를 들어 올리는 순간.

"이런 미친 새끼가!!"

주호는 미친듯한 속도로 천문석을 쫓아 달리며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제정신이냐!? 야 이 또라이 새끼야!"

대충 묶었던 허리끈을 단단히 조이고, 새하얀 눈으로 손을 연신 비비며 도망치는 천문석.

"..."

천문석도 이번에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에는 선을 넘은 것 같았으니까.

“미안하다···.”

천문석은 작게 속삭이고,

삑삑이 검강 롱소드를 흔들었다.

퐁, 퐁, 퐁-

언제나 즐거운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이 거센 눈발 속으로 퍼져 나갈 때.

"야! 그 '퐁, 퐁, 퐁-' 그만하고! 당장 서라! 이런 미친 또라이 새끼야!"

머리끝까지 분노한 주호가 천문석을 쫓아 달렸다.

---

눈 속의 추격전이 시작된 지 5시진이 지났다.

마제사의 비무장을 떠난 후.

10시간 동안 한겨울 설산을 달린 천문석과 주호.

어느새 펑펑 쏟아지던 눈도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한겨울 밤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은 달빛에 새하얀 설원이 환하게 밝혀졌다.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 없이 탁 트인 설원.

설원 너머로는 만년설이 쌓인 거대한 산맥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빛나고.

지상에는 새하얀 설원과 거대한 산맥이 펼쳐져 있다.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

천문석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하하하- 단혈철검 주호! 어떤가?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 아닌가!"

"..."

대답 없는 주호.

헉, 헉, 헉-

주호는 천문석을 노려보며 숨만 몰아쉬었다.

주호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상대의 현기 어린 초식을 훔쳐내려 외진 곳으로 유인했는데···.

5시진이 넘도록!

설원을 달리며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이건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잠깐 대결했을 때를 제외하면.

가끔 10합에서 30합 정도 검을 맞댔을 뿐.

천문석은 절대 길게 싸우지 않고 기회만 보이면 도망쳤다.

그러나 자신이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하면 악착같이 발목을 붙잡는다!

눈 뭉치와 돌멩이를 던져 견제하고,

도망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무시할 수 없는 강공을 퍼붓는다!

그러다가도 제대로 붙으려 하면 어느새 훌쩍 도망치는 금권 대협 천문석!

"..."

사파의 밑바닥에서 시작해 초절정 고수가 된 주호.

온갖 강호의 귀계모략을 겪었음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검강을 쓰는! 초절정의 고수가 이토록 치사하다니!'

주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천문석이 수통의 물을 마시고 육포를 씹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는 마른 침.

꿀꺽-

침을 삼킨 순간,

날아오는 무언가.

툭-

주호 앞에 작은 갈색의 조각이 떨어졌다.

약지 정도 크기의 육포 조각!

주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이 순간 느껴지는 시선!

주호는 문득 시선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천문석.

금권 대협 천문석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떠돌이 개에게 먹이를 주는 그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 먹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주호는 눈앞의 육포 조각을 발로 짓밟고 외쳤다.

"필요 없다! 금권 대협! 이제라도 제대로 붙자!"

이 순간 반사적으로 들려오는 천문석의 외침.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주호!"

퐁, 퐁, 퐁-

오늘 밤 수십 번이 넘게 들은 외침과 소리.

주호는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 참으며 외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도망치고 있잖아! 뭘 정정당당히 붙어? 지금 전혀 정정당당하지도! 승부를 하는것도 아니잖아!"

"..."

"너 안 싸울 거면 여기서 비무를 끝내자! 나 돌아갈 테니까! 이제는 쫓아오지 마라!"

주호는 말을 쏟아내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천문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혈철검 주호! 비무를 시작할 때 무림 동도 앞에서 한 약속을 어길 생각인가?"

“...뭐?!”

주호는 머리가 띵해졌다.

약속을 어겼다고?

이 새끼가 지금까지 도망쳐놓고는 이게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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