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천문석은 맹공을 펼치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건,
주호가 초절정에 오른 지 얼마 안 됐기 때문!
주호는 검강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가진 내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이성의 일기일원공이 마르는 순간,
서로의 우열은 일순간에 뒤집히고.
자신이 패배한다!
"...!"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는데 내공의 양 때문에 지다니!
천문석은 머리가 띵해졌다.
마도 지존 천마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상황!
내가 내력에서 밀리다니!
'주호 이 새끼. 뭘 처먹었기에 내력이 이렇게 강해!'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분통이 터졌으나.
깡, 깡, 깡-
지금 이 순간에도 검은 부딪히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내력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지금 당장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위기의 순간.
천문석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그리고 핑그르르- 굴러가는 눈동자.
주호를 보고, 검강을 보고, 롱소드를 보고, 검혼을 본다.
그리고 눈 덮인 벌판, 곳곳에 놓인 나무둥치, 얼어붙은 나무토막, 주위를 둘러싼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를 빠르게 훑는 시선.
문득 바람이 불어오고.
휘이이잉-
바람에 실려 온 차가운 냉기가 전신을 타고 흐르는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계획이 만들어졌다.
이 순간 천문석은 롱소드에 솟은 검강의 크기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파스스슥-
퐁, 퐁, 퐁-
지금까지와는 다른 폭발적인 검강에 주호가 다급히 철검을 세우고 수비식을 펼치는 순간.
천문석은 훌쩍 뒤로 몸을 빼냈다.
탁, 탁, 탁-
가볍게 땅을 밟고 뛰어.
순식간에 주호와 거리를 벌리는 천문석.
천문석은 몸을 곧게 펴고 일대종사의 위엄을 담아 주호에게 외쳤다.
"단혈철검! 주호! 검강을 쓰다니 제법이구나!"
"..."
천문석의 하대가 들려오는 순간,
주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금권 대협을 봤다.
갑자기 자신을 압도하다가 몸을 훌쩍 빼낸 금권 대협, 천문석.
천문석은 고수가 하수를 내려다보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주호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았으나 감히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황금 가면을 썼으나,
목소리와 피부는 분명 20대.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라니!
이건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받고 온갖 영약을 먹고 자란 사자련주의 아들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현 천하 18성의 수좌, 무림 맹주 청양 진인도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
이 순간 주호의 머리에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다.
반로환동(返老還童)!
초절정의 끝에 닿아 신체가 다시 젊어진다는 전설적인 경지.
설마, 반로환동한 고수란 말인가!
내가 저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단 말인가?
주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질 때,
천문석은 검으로 주호를 가리키며 외쳤다.
"단혈철검. 주호! 어떤가? 너는 감히 내 검을 받을 용기가 있는가!"
상대가 반로환동한 고수라도 참을 수 없는 도발!
주호는 발끈해서 외쳤다.
"얼마든지! 와라!"
주호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상단세로 검을 들어 올렸다.
파스스슥-
검에 자라난 검강이 강해지고,
기이한 소리와 진동이 퍼져 나왔다.
퐁, 퐁, 퐁-
진동이 몸에 닿는 순간 단혈철검 주호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기이한 심상!
"...!"
급박한 비검 중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생경한 감각에 주호는 경악했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사술인가!?'
이때 천문석이 돌진했다!
휘이이이-
검강의 빛을 머금은 검이 번개같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순간.
주호는 잡념을 끊고 철검에 솟아난 검강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적은 반로환동한 엄청난 고수.
기세에서 밀리는 순간 죽는다.
모든 힘을 다해서 마주 부딪힌다!
그리고 검강과 검강이 충돌하려는 순간.
휘잉-
천문석의 롱소드는 갈대처럼 구부러지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번개같이 땅을 박차고 옆으로 뛰는 천문석!
주호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어느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
"주호!"
대경실색한 주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돌아갈 때.
콰아앙-
주호의 눈앞에서 굉천수의 섬광이 다시 한번 터졌다!
---
섬광에 하얗게 변한 공간!
그러나 처음 굉천수를 맞을 때와 달리 주호는 검강을 일으킨 상태였다.
외력을 막아내 몸을 보호하는 검강의 힘!
굉천수의 섬광에도 주호의 시각과 청각은 그대로였다.
천문석의 몸은 새하얀 섬광에 가려졌지만,
그 존재감은 섬광 속에서도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주호는 무인의 육감을 따라 섬광 속 존재감, 천문석을 향해서 돌진했다.
훙-
검과 하나가 되어 굉천수의 섬광을 가르는 주호!
툭-
검강에 무언가 닿는 순간.
주호의 경력이 쏟아져 나갔다!
파지지직-
주호는 폭풍 같은 기세로 성명 절기를 펼쳤다.
천지를 잇는 일 검이 떨어지고,
천지를 양단하는 일 검이 뒤를 잇는다.
단혈십자검!
십자 검강에 열십자로 공간이 쪼개지고,
그 중앙의 일 점으로 파고드는 검강!
파스스슥-
검강이 파고드는 느낌에 주호가 아차 하는 순간.
굉천수의 섬광이 사라지고.
검강에 꿰뚫린 물체의 정체가 드러났다.
얼어붙은 나무토막!
이때 주호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퐁, 퐁, 퐁-
어느새 검을 흔들며 달리고 있는 금권 대협, 천문석.
"..."
주호는 멀어지는 천문석과 열십자로 쪼개진 얼어붙은 나무토막을 번갈아 봤다.
이 순간 주호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상황이 재현됐다.
검강에 막혀 효과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터트린 섬광.
섬광 속 존재감을 드러내던 얼어붙은 나무토막.
퐁, 퐁-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천문석.
...
주호는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게 기만이었다!
상대는 처음부터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섬광이 터지는 이상한 무공.
먹히리라고 생각해서 그 무공을 쓴 것이 아니다.
도망치기 위해서!
섬광으로 눈을 가리고 얼어붙은 나무토막에 존재감을 심어 던지고 도망친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주호가 노성을 터트리려 할 때.
도망치던 천문석이 돌연 멈추더니 몸을 돌려 당당히 외쳤다.
"주호!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그리고 천문석은 주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숲속으로 도망쳤다.
퐁, 퐁, 퐁-
정정당당히 승부하자고 외치자마자,
바로 숲속으로 도망치는 금권 대협 천문석.
"..."
상대의 말과 행동의 괴리에,
주호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이때 급격히 멀어지는 소리가 귀에 날아와 박혔다.
퐁, 퐁, 퐁-
주호는 멍하니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번개처럼 달려갔다.
"이런 미친 새끼! 찢어 죽여주마!"
---
드문드문 나무가 자라난 얼어붙은 숲.
뽀득, 뽀득, 뽀드득-
다져진 눈 위를 달리는 천문석은 힐끗 뒤를 돌아봤다.
"금권! 거기 서라!"
주호는 분노한 황소처럼 달려오며 연신 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달음에 달려들어 자신을 찢어 죽일 듯 살기등등한 모습!
그러나 주호는 전형적인 사파 무사,
초절정의 경지에 비해 경공술은 별 볼 일 없었다.
엄청난 내공을 이용해서 비무 중에 거리를 좁힐 수는 있으나,
대놓고 도망치는 적을 잡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자신은 비무를 준비하며 데굴데굴 구르기에 경공술의 내력 운용술을 몇 가지 접목해둔 상태였다.
내공에서는 밀리지만, 도망치는 것만큼은 자신이 우위다!
‘역시 미리미리 준비해두길 잘했어!’
천문석이 내심 흐뭇하게 웃을 때.
느껴지는 섬뜩한 기감!
천문석은 재빨리 검강 롱소드를 흔들며 몸을 숙였다.
퐁, 퐁, 퐁-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이 퍼져나가는 순간!
니트로 부스터를 사용한 레이싱 카처럼,
내력의 질이 정순해지고 압력이 순간적으로 강해졌다!
파지직-
단단히 얼어붙은 눈이 깨져나가며 폭발적으로 뛰어나가는 천문석.
팟, 파직, 팟, 팟-
천문석은 엎어질 듯 몸을 숙인 채,
얼어붙은 땅을 갈지자로 박차고 달려나갔다!
순간 천문석이 있던 곳에 떨어지는 비도!
후두두둑-
날아오는 비도가 천문석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힐끗 뒤를 살폈다.
비도를 던지며 폭발적인 가속을 보여주는 단혈철검 주호!
그러나 자신과 주호와의 거리는 곧 벌어지기 시작했다.
주호의 내공은 압도적이나 경공술 없이 압도적인 내공만으로는 중장거리를 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주호가 비도를 모두 던진 순간.
천문석은 달리던 자세 그대로 빙글 몸을 180도 회전시켜 일어났다.
그리고 펼쳐지는 손!
훙, 훙, 훙-
천문석의 손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덩어리들이 주호에게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주호가 검강이 생겨난 철검으로 전면에 열십자 검격을 뿌렸다!
십자 검강에 맞아 단숨에 박살 나 흩날리는 새하얀 덩어리들!
내심 안도하던 주호는 뒤늦게 깨달았다.
허공에서 흩날리는 눈!
새하얀 덩어리는 암기가 아니었다.
눈 뭉치!
눈을 뭉쳐 던진 것이다.
"금권!"
분노한 주호가 외치는 순간!
쿠우웅-
천문석이 한 타이밍 늦게 내공을 실어 던진 눈 뭉치가 주호의 머리 위 나무에 맞았다.
쏴아아아-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쏟아져,
주호는 전신에 눈을 뒤집어썼다.
이때 들려오는 천문석의 외침!
"주호!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퐁, 퐁, 퐁-
주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천문석은 롱소드를 흔들며 재빨리 도망쳤다.
---
으아아악-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주호의 울분에 찬 고함!
"하- 내공 진짜 엄청나네! 저놈 대환단이라도 훔쳐 먹은 거 아냐?"
도망치던 천문석은 다시금 감탄했다.
절정으로 예상한 단혈철검 주호의 경지는 초절정이었다.
게다가 주호는 영약이라도 먹었는지 가진 내공의 양도 대단했다.
자신의 예측이 모두 틀린 상황이었다.
검강 롱소드에 담긴 검혼의 힘을 이용하면,
이성의 일기일원공으로도 절정고수를 압도할 수 있었다.
절대적인 내공의 양은 부족하지만,
검혼의 힘으로 내공을 압축해서 질로 압도하는 거다.
그러나 이건 초절정 고수인 주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성의 일기일원공을 검혼의 힘으로 압축해도 내공의 양에서 너무 밀리기 때문이다.
검강 롱소드를 사용해도 길어야 50합!
주호와 싸운다면 50합이면 자신이 패배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즉 주호를 적당히 상대하다가 내상을 입히고 지겠다던 처음 계획은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무림 던전을 지키려다가 골로가게 된 위기상황!
그러나 천문석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미 계획은 수정됐고,
이런 변수를 대비한 준비도 돼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재빨리 품 안의 지도를 꺼내 주위를 살폈다.
'이곳 근처다!'
천문석은 주위를 훑어보며 달리는 속도를 조절했다.
한겨울이나 아직 해가 지긴 이른 시간.
드문드문 나무가 서 있는 숲이 바람을 막아줘서 추위도 견딜 만하다.
그러나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해가 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기온은 순식간에 뚝 떨어질 것이다.
무림 고수의 체력도 순식간에 깎여나갈 정도로!
무림 고수도 결국은 사람.
물과 음식 없이 한겨울 설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얼어 죽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초절정쯤 되면 이 기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단혈철검 주호라면 일주일은 음식 없이도 버틸 거다.
단, 자신이 없었다면 말이다!
흐흐흐-
천문석이 음흉하게 웃는 순간.
한 나무 앞에 꽂혀있는 작은 나뭇가지 세 개가 보였다.
'여기다!'
천문석은 재빨리 나뭇가지 아래 눈을 팠다.
그러자 눈에서 나오는 행낭!
행낭 속에는 아직 얼어붙지 않은 물이 담긴 수통과 건량, 숯이 담긴 구리통과 불씨 그릇이 있었다.
마제사의 주지 스님이 준비한 물건이 담긴 행낭.
이런 행낭 20여 개가 설산 곳곳에 숨겨져 있다!
카캬카-
이 순간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주호가 초절정 고수라는 건 예상외였다.
하지만 주호가 어그로가 끌려서 홀로 산속으로 들어온 순간.
주호의 패배는 이미 결정됐다!
천문석은 주위를 쓱 훑어봤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과 뚝뚝 떨어지는 기온.
그 어떤 초고수의 절초보다 무서운 추위와 배고픔!
막을 수 없는 추위와 배고픔에 주호의 체력이 훅훅 깎여 나갈 때.
자신은 물과 건량을 먹고 숯이 담긴 구리통의 온기로 체력을 보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주호의 체력 차이는 벌어진다.
그렇다고 주호가 몸을 돌려 돌아갈 수도 없다.
50합!
천문석이 주호와 정면으로 승부를 겨뤘을 때 버틸 수 있는 건 50합이 고작이다.
그러나 등을 돌려 도망치는 적의 발목을 잡는 건 한도 끝도 없이 가능했다!
주호와 단둘이 설산에 들어온 순간.
자신이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문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재빨리 구리통 안의 숯에 불을 붙여 품 안에 넣고 물을 마시고 건량을 씹었다.
그리고 주호의 기감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주호!"
천문석은 집어등을 흔드는 어부처럼 롱소드를 흔들었다.
퐁, 퐁, 퐁-
'어서 따라와라! 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