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금권 대협인데···. 황금 가면은 왜 쓴 거야?”
"어?"
순간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그러네! 금권이면 황금수 뭐 이런 무공을 익혔을 텐데. 황금 가면은 왜 쓴 거야?"
"저럴 거면 금면 대협이라고 해야지."
“금면은 안되지. 고리채를 놓는 상인도 아니고···.”
"한겨울에 황금 가면은 왜 쓴 거야?"
“금권(金拳) 대협이 아니라 금권(金券) 대협인 거 아냐?”
구경꾼들의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올 때.
황금 가면을 쓴 천문석과 장일 총관이 비무대 북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일 총관은 비무대가 가까워지자 다시 한번 천문석을 설득했다.
"주호가 질 리가 없다니까요. 비무만도 큰일인데. 이것까지 걸면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엄청난 위기 상황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걸 걸어요?"
"철패 보셨죠? 제 말이 철권 대협의 명입니다."
"...하- 진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에 기반 만드는데 진짜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무림 던전에서 돈 벌기 진짜 빡세다니까요!"
"그 기반을 지키려고 이러는 겁니다!"
비무대에 도착한 천문석은 끝까지 말리는 장일 총관을 뿌리치고 주호를 향해 포권을 취하고 외쳤다.
"단혈철검 주 대협! 제가 장가장을 통해서 비무를 청한 금권 대협입니다!"
순간 실소를 터트리는 구경꾼들과 무림 명숙들.
"뭐야? 지금 자기가 스스로를 '대협'이라고 부른 거야?"
"하- 내가 비무를 몇 번이나 봤어도 저런 녀석은 또 처음이네···."
...
하하하-
으하하하-
사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러나 천문석은 뻔뻔하게 나갔다.
"이세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주 대협 저와 먼저 승부를 겨뤄 주십시오!"
천문석이 외친 순간,
주호가 묘한 눈으로 황금 가면을 쓴 천문석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비무는 받아들였으나. 철권 대협도 없는 자리. 내가 왜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그대와 비무를 치러야 하나? 금권 대협? 이름도 사문도 모르는 그대가 누군지 알고?"
주호가 느긋한 목소리로 답한 순간.
천문석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뭐야? 주호 이 녀석 사파 출신이 뭐 이리 논리적으로 말해?'
가면을 벗을까?
문득 생각했으나···.
비무대 서쪽 천막 아래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극음도 이열이 보였다.
가면 아래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열은 자신이 이세기라고 외치고 상황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보다 쉬운 해결책이 필요했다.
천문석은 장일 총관의 허리춤을 꾹 질렀다.
"..."
그러나 묵묵부답 고개를 돌리는 장일 총관.
천문석은 내력을 일으켜 장일이 품 안에 꼭 안고 있던 보따리를 쏙 뽑아냈다.
"으아악! 그건 진짜 안 됩니다!"
대경실색해서 소리를 지르는 장일.
그러나 천문석은 보따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주호에게 외쳤다.
“주 대협! 이번 비무에 이걸 걸겠습니다!”
주호는 천문석의 손에 들린 보따리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에 장가장 땅문서라도 들었나?”
으하하하-
주호가 말한 순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그래! 걸려면 땅문서라도 걸어라!”
누군가 다시 한번 외치는 순간.
비무대 주위는 완전한 웃음바다가 됐다.
사방에서 웃음이 쏟아지는 이때.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목소리로 외쳤다.
"맞습니다! 이 안에 장가장의 장원, 농지, 산! 그리고 부두의 땅문서와 권리증이 모조리 다 있습니다! 이걸 이번 비무에 걸겠습니다!"
천문석이 외친 순간,
웃음이 사라지고 정적에 빠지는 비무장!
“...!”
잠시 후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땅문서를 건다고?"
"비급도 아니고 땅문서를 비무에 왜 걸어?!"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장가장이면 정파 쪽 인물 아니었어?"
“이건 무슨 뒷골목 투전판도 아니고.”
“아니, 도대체 땅문서는 왜 걸려는 거야?”
...
듣도 보도 못한 일에 무림 명숙들과 구경꾼들이 술렁이고.
하-
단혈철검 주호마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릴 때.
극음도 이열은 확신했다.
'금권 대협! 저 사람이 이세기다!'
이상한 황금 가면을 쓰고 정중함을 가장했지만,
은연중 드러나는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가 눈과 귀에 익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한 비무에 땅문서를 걸겠다는 저 정신 나간 행동.
비급 대신 은자 3만 냥을 원하던 이세기의 모습과 똑같았다!
천하가 아무리 넓다 하나 저런 미친놈이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확신하는 순간 이열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세기!"
"..."
그러나 천문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극음도 이열은 다시 한번 외쳤다.
"금권 대협. 이세기!"
다시 한번 극음도 이열이 외치자,
황금 가면을 쓴 천문석은 이제야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허허허- 소협은 누구신데. 저한테 이세기라고 하시는지? 저는 금권 대협입니다."
"그 검! 똑똑히 기억한다! 이세기, 어째서 가면을 쓰고 나왔나!?"
하, 새끼···.
눈치 더럽게 빠르네!
뭐 이리 빨리 회복한 거야.
천문석은 내심 투덜거리며 롱소드를 뽑아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천지신명과 장가장, 무림맹을 걸고 맹세한다. 난 이세기가 아니다! 소협 됐습니까?"
"..."
이열은 말문이 탁 막혔다.
분명 특이한 형태의 검과 말투, 행동 모두가 자신과 싸운 이세기다.
그런데 장가장과 무림맹까지 걸고 맹세를 하니 더는 추궁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주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신성한 비무에 땅문서를 건다고? 이런 천둥벌거숭이가 있나!"
파르르르-
엄청난 내력이 실린 주호의 외침에,
돌풍이라도 맞은 듯 진동하는 천막!
무림 명숙들의 안색이 변하고,
철검장 무사들이 바짝 긴장할 때.
천문석은 뽑은 롱소드를 까닥이며 혼잣말하듯 주호의 속을 긁었다.
"사자련이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게 땅문서랑 금고라고 하던데?"
이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무림 명숙들과 구경꾼들.
"하긴···. 그렇긴 하지."
"사자련이 좀 그런 면이 있지."
...
순간 철검장 무사들의 살기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구경꾼들이 다급히 입을 닫았지만,
무림 명숙들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니. 금권 대협이 사실을 말했는데. 왜 저래?"
"그러게 말야? 사자련이 땅문서 좋아하는 건 사실이잖아? 하하-"
...
분위기가 바뀐 순간,
천문석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럼 땅문서 말고 뭘 걸면 비무대에 올라주시겠습니까? 여기에 은자로 탑이라도 쌓을까요?"
천문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비무대 주위를 돌아보자,
곳곳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명백한 비웃음.
재물을 밝히는 사자련을 비웃는 소리였다.
이 순간 주호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공들여 초대한 무림 명숙들이 자리한 비무 자리.
자신이 초절정에 올랐음을 천하에 알리는 자리가 광대 놀음판이 되고 있었다!
주호는 번뜩이는 안광으로 천문석을 노려보며 외쳤다.
"검!"
주호의 손에 검은 철검이 놓이는 순간.
천문석은 깜빡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주 대협. 한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철검장의 땅문서라도 걸기를 원하나?"
주호가 비웃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단지 주 대협의 연세가 연세 신지라. 중간에 지치셔서 비무가 중단될까 두렵군요."
"..."
말투는 공손했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은 불손하기 그지없었다.
그 나이 먹고 제대로 싸울 수 있겠냐는 도발!
주호는 검을 뽑아 천문석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내가 비무를 멈출 일은 없다!"
순간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그럼 비무의 승패는 어떻게 가릴까요? 참관인과 친하신 것 같던데. 참관인에게 맡길까요?"
이 또한 주호를 무시하는 도발!
주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천문석을 노려보며 외쳤다.
"네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 비무의 승패가 갈리는 때다!"
"..."
"그때까지 이 비무는 끝나지 않는다!"
단혈철검 주호가 선언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그 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
이 순간 천문석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원하던 모든 것을 얻어냈다!’
승부보다 더 신경을 썼던 사전 조율이 끝나는 순간,
천문석은 장가장의 땅문서가 담긴 보따리를 장일 총관에게 던져줬다.
"받으세요."
다급하게 보따리를 받아 품 안에 꼭 안는 장일 총관.
장일 총관은 천문석에게 바짝 붙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어쩌시려고 주호를 도발하셨습니까?! 상대는 단혈철검 주호입니다! 사자련의 절정고수 주호! 지금 비무가 아니라 생사결이 된 겁니다!"
장일의 얼굴에 서린 걱정을 보며,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이 여기서 해결하면 모두 끝날일.
계속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승부에 집중할 때!
천문석은 비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주호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최대한 빨리 승부를 시작해야 했다.
금권 대협 천문석과 단혈철검 주호가 검을 뽑고 마주 섰다.
그리고 비무가 시작됐다.
---
단혈철검 주호는 사파 고수답지 않은 장중한 기수식을 펼치며 말했다.
"강호의 선배로 선수 삼초를 양보하겠다!"
주호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롱소드로 가볍게 열십자를 그려 기수식을 대신하고 검을 찔러 들어갔다.
훙-
15도. 비스듬히 검을 기울여 들어오는 찌르기.
뒷짐을 진 주호가 가볍게 옆으로 걸어서 검을 피하는 순간.
철검장의 무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일초!”
핑-
이 순간 찔러 들어오던 천문석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순간 뱀처럼 튀어 오르는 주호의 피처럼 붉은 손.
단혈장!
주호의 단혈장이 천문석의 검에 닿자.
깡-
단단한 금속과 부딪힌 소리가 터지고,
천문석의 검이 휘청 옆으로 밀려나며 가슴이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이때 철검장의 무사들이 다시 한번 외쳤다.
“이초!”
주호는 천문석의 허점을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금권. 마지막 삼초다! 신중히 들어와라.”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탄하는 목소리.
“역시 단혈철검!”
“이제야 철이 들었군. 후배에게 양보도 하고···.”
...
주호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순간.
천문석은 주호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외쳤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삼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천문석은 롱소드를 천천히 상단세로 들어 올리고.
앞으로 성큼 뛰어들어가며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려그었다.
휘이잉-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일 검!
그러나 단혈철검 주호에게는 무디고 느린 공격이었다.
주호는 피식 웃으며 단혈장으로 천문석의 검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주호의 단혈장이 튀어나오는 순간.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지던 천문석의 롱소드가 멈췄다.
그리고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 휘어지는 롱소드!
휘어지던 롱소드가 돌연 공간을 넘어 주호의 가슴으로 쏘아졌다.
마지막 삼초.
천문석은 감각을 교란하는 구인창을 검으로 펼쳤다!
훙-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이 휘어지는 순간.
비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무사들과 거부, 흑도 방파의 수장들은 경악했다.
돌연 검이 구부러지다니!
이 순간 터져 나오는 주호의 비웃음!
“잔재주 한수가 있었구나!”
깡-
단혈철검 주호는 감각을 교란하는 구인창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쳐냈다.
“삼초가 모두 지났다. 금권 대협!”
주호가 외치는 순간.
폭음이 터졌다!
쾅-
검은 철검!
단혈철검 주호의 철검이 마침내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