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44화 (145/1,336)

#144

철검장의 단혈철검 주호.

장가장의 금권 대협.

창천문의 이세기.

세 사람의 비무가 결정됐다.

같은 날 정오,

설산의 마제사.

단혈철검 주호는 호기롭게도 금권 대협과 이세기를 같은 날 상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무 소식이 알려지자 서녕시의 흑도 방파에서 무림 명숙, 거부와 관청까지 모두가 들썩였다.

사자련 소속 철검장의 단혈철검 주호.

무림맹과 깊은 관계가 있는 장가장의 금권 대협.

강호 초출 이세기는 마도 18문의 일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자련.

무림맹.

마도 18문.

정사마를 대표하는 고수들의 비무가 이뤄지는 것이다.

모두는 직감했다.

이 비무의 결과로 서녕시와 청해성의 판도가 바뀐다!

비무 장소는 설산의 마제사!

이 비무를 보기 위해 무림 명숙과 거부부터 작은 도장과 무관, 흑도 방파의 수장들까지 들썩였다.

그리고 무림 던전의 6일째 날.

비무일 아침이 되었다.

---

철검장 앞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무 장소인 설산 마제사에 초대받은 이들은 극히 일부,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철검장과 장가장 앞에 흩어져 단혈철검과 금권 대협의 얼굴이라도 볼까 기웃거리고 있었다.

쿵-

들썩이는 철검장의 정문!

"문이 열린다!"

누군가 외치는 순간.

끼이익, 쿵-

몇 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철검장의 정문이 열리고.

백여 명의 말을 탄 철검장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뒤로 줄줄이 나오는 커다란 흑단 마차와 자재와 천막, 음식을 실은 수레들.

철검장 무사들과 마차, 수레는 곧 대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단단한 도시의 포석을 두들기는 말발굽 소리.

철검장 무사들의 엄정한 기세에 구름처럼 몰려든 구경꾼이 깜짝 놀라 물러서고,

흑도 방파의 무사들이 찔끔해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철검장의 행렬은 순식간에 도시의 성문을 통과해 설산으로 달려갔다.

이때 성문에서 기다리던 마도 18문, 이열과 극음도의 무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여 명의 극음도의 무사들과 이열.

인원수는 적지만 한 명 한 명이 절정의 경지를 두들기는 정예 무사들.

이들은 극음도의 깃발을 펼치고,

철검장의 뒤를 따라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철검장과는 참관인으로 참석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

철검장과 극음도의 무사들은 바짝 붙어 설산을 향해 달렸다.

도시에서 철검장과 극음도의 무사들이 설산을 향해 달릴 때.

이세기는 설산 초입에서 응룡채주 마일도와 헤어지고 있었다.

"진짜 혼자 가려고? 철검장에서 한 번에 들이치면 끝장이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9대 문파에 연락해서 공증을 서달라고 하는 게 나을 텐데."

마일도의 걱정에 이세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머릿수로 들이칠 생각이었으면 비무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무림 명숙들과 마도 18문의 극음도가 참관인으로 온다니. 단혈철검 주호도 체면 때문이라도 막 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조심해라."

어쩐지 걱정스러워하는 마일도의 말에,

이세기는 고개를 숙이며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을 툭 건드렸다.

"이 옷과 신발 감사합니다. 한겨울에 찢어진 옷과 맨발로 비무에 나설 뻔했습니다."

이세기는 가볍게 몸을 돌려 홀로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세기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로 혼자 보내요? 일이 터지면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채주!"

"야, 우리 응룡채가 여기 낄 급이 되냐! 이 녀석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는!"

"채주!!"

문득 들려오는 외침에 이세기는 고개를 돌려 마일도와 그 옆의 사촌 동생을 봤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마일도와 얼굴을 휙 돌리는 사촌 동생.

며칠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응룡채주 마일도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마일도는 부귀영화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쩐지 자신의 친우가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세기는 가볍게 손을 한번 흔들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

이세기는 거센 바람에 쌓인 눈이 흩날리는 설산 위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

철검장의 단혈철검 주호.

마도 18문의 극음도 이열.

창천문의 강호 초출 이세기.

그리고 강호의 명숙들과 이들 틈에 끼어 움직이는 부호들과 도장, 여러 방파의 수장들까지.

비무의 참가자와 참관인, 구경꾼들이 열심히 설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때 비무의 또 다른 참가자 자칭 금권 대협, 천문석은 이미 비무 장소인 설산 마제사에 도착해 있었다.

---

숯이 가득 담긴 화로로 따뜻한 방 안.

천문석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마제사의 뜨끈한 두부 전골을 먹고 있었다.

후우후우-

숟가락 위 뜨거운 국물과 새하얀 두부를 식히고 입안에 넣는 순간.

흐어어-

"이 스님들 두부 진짜 잘 만드시네! 아니 국물을 뭐로 낸 거야?!"

절로 탄성이 터졌다.

이때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주. 나요. 들어가겠소."

방문이 열리고 산적 같은 얼굴의 스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천문석이 어제 만나 이야기를 끝낸 마제사의 주지 스님이었다.

"주지 스님 오셨습니까!"

천문석은 반색하고 일어나 재빨리 밖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준비는 끝나셨나요?"

천문석의 다급한 질문에.

의자에 앉은 스님은 대답 없이 눈을 감고 염불을 시작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척하면 척!

천문석은 재빨리 은자 주머니에서 은자를 몇 개 쥐어 스님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쿵-

순간 번쩍 떠지는 눈!

스님의 눈은 순간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은자를 가늠하고 다시 감겼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더 커지는 염불 소리!

'하-'

천문석은 내심 한숨 쉬며 탁자 위에 은자를 더 올렸다.

쿵, 쿵-

다시 한번 묵직한 은자 소리가 나자,

스님은 번쩍 눈을 떠 탁자 위에 쌓인 은자 더미를 헤아리며 탄식했다.

"허어···. 내가 어찌 악업을 행하겠는가···."

스님이 탄식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게 어찌 악업이겠습니까? 피 볼일을 없애고. 한겨울의 스님들께도 좋은 일이니. 모두가 행복한! 부처님께서도 좋아하실 일입니다!"

"허어···. 시주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어찌 사람을 속이는 일을···. 중이 한단 말인가···."

산적 같은 스님은 탄식하며 탁자 위 은자 더미를 향해 연신 눈짓을 했다.

'이런 산적 같은 중 같으니라고!'

천문석은 내심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은자를 더 쌓았다.

쿵, 쿵, 쿵-

이 순간 산적 같은 중의 옷소매가 스윽- 탁자 위를 훑고 은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스님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탁-

천문석은 스님의 손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지 스님. 일은 확실히 처리돼야 합니다."

스님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시주가 말한 장소에 건량과 물이 담긴 보따리를 숨겨뒀소. 그리고 그 '이세기'란 시주는. 절대 이곳 마제사에 도착하지 못하오."

"확실한 건가요?"

천문석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한번 확인하자.

산적 같은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어내는 스님.

“내가 이미 인근 사찰의 중들과 화전민 마을의 주민들. 그리고 암자의 비구니들까지 모두 동원해서. 이곳 설산의 길이란 길에는 모조리 쫙 깔아 놨소.”

“이세기 특징도 설명하셨습니까?”

“...보는 순간 ‘더럽게 잘생긴 새끼’란 말이 튀어나온다는 시주의 그 말. 내가 단단히 전했소.”

“최소 일주일은! 뺑뺑이를 돌려야 합니다!”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스님은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가 바로 정직과 신뢰의 마제사요.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최소 한 달은 이곳 마제사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게. 그 '이세기'란 시주를 화전민 마을과 다른 사찰들로 뺑뺑이 돌리겠소!"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흐흐흐-

카캬카-

마제사 주지 스님과 천문석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밝혀서 그렇지 이 스님 일 처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 달 동안의 뺑뺑이.

이걸로 이세기는 처리됐다!

이세기가 마제사에 도착하지 못하고 뺑뺑이를 도는 동안 비무는 이미 끝날 것이다!

비무 결과는 단혈철검 주호의 승리!

그러나 주호는 1년은 정양해야 할 정도의 내상을 입고.

이세기는 어쩔 수 없이 다음 비무 상대를 찾아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번 한 번만 넘기면 된다.

이세기는 이제 곧 천하 18성의 초절정 고수와 겨루고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림 던전의 보스 단혈철검 주호와 이세기가 비무를 할 일은 없어진다.

천하 18성을 꺾은 이세기에게 주호가 미친 게 아니면 도전할 일은 없을 테니까!

무림 던전은 평화를 되찾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이한다.

천문석은 은자 주머니 안에서 황금 가면을 꺼냈다.

이제 자신이 이 황금 가면을 쓰고 금권 대협이 되어 주호와 싸울 차례다.

이겨서는 안 되는 승부.

지는 것도 그냥 지는 게 아니라 1년은 정양해야 할 내상을 주호에게 입히고 져야만 한다.

전생 천마 천문석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천문석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황금 가면을 들어 올렸다.

이때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깊은 한숨 소리.

“하아- 대웅전 부처님 금칠이 벗겨졌는데···. 얼마나 추우실까! 금덩이가 조금만 있으면 다시 금칠할 텐데!”

“...”

“부처님이 걱정돼서 제자들이 이 추운 날에 일이나 제대로 할지···.”

탄식을 흘리며 천문석과 황금가면을 번갈아 바라보는 주지 스님.

"..."

이 산적 같은 스님은 엄청난 강적이었다.

천문석은 산적 같은 스님에게 황금 가면의 가장자리를 잘라 줬다.

"거기까지 자르면 얼굴이 보인다니까요!"

"어허, 시주! 이 정도로는 절대 몰라본다니까 그러네."

---

마제사의 대웅전 앞,

탁 트인 마당.

조용한 이곳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탕, 탕, 탕-

쾅, 우지직-

철검장의 무사들이 이 마당에 단단한 판자를 깔아 비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마제사에는 이미 거액의 시주가 들어갔고 비무에 대한 승낙을 받은 상태.

철검장의 무사들은 순식간에 비무대를 설치하고,

비무대 주위에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천정에 걸릴 때쯤.

하나둘 도착한 무림 명숙과 구경꾼들이 천막에 자리할 때.

단혈철검 주호가 등장했다.

순간 일제히 검으로 바닥을 내려치는 철검장 무사들!

쿵-

주호는 성큼성큼 걸어 비무대 남면에 세워진 천막 아래 의자에 해를 등지고 앉았다.

곧 참관인 극음도 이열이 서쪽 천막에 자리를 잡았다.

단혈철검 주호와 극음도 이열의 시선이 비어있는 북쪽과 동쪽의 천막으로 향했다.

비무를 청한 금권 대협과 창천문의 이세기의 자리.

비무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두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비무대 북쪽 마제사의 내원 방향에서 가장자리가 삐뚤빼뚤 잘려나간 황금 가면을 쓴 남자와 장가장의 장일 총관이 걸어오고 있었다.

황금 가면을 보는 순간 모두는 직감했다.

장가장의 금권 대협이다!

이때 구경꾼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권 대협인데···. 황금 가면은 왜 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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