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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43화 (144/1,336)

#143

천문석이 무림 던전을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도시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외부활동을 자제해온 철검장과 단혈철검 주호에게 온 비무첩!

평소라면 이 비무첩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일이었다.

강호 초출이 호기롭게 철검장의 단혈철검 주호에게 도전하는 것은 이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던 일.

그러나 비무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사자련의 절정고수,

단혈철검 주호의 무게감은 강호 초출의 비무에 응할 만큼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며칠 전 청해 호수에서 격전이 일어났단 소문이 퍼지고 흑사회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청년 이세기!

곧 이세기란 이름에 대한 흑도 무사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흑사회의 도박장을 박살 내고,

청해 호수의 도박선도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호수의 격전과 추격전.

뒤이은 소금 벌판에서 있었던 경천동지할 승부!

이세기는 검은 뱀, 흑사회를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키고,

절정에 이른 고수마저 이긴 강호의 신성으로 소문이 퍼졌다.

눈덩이처럼 커진 소문은 어느새 뒷골목 흑도 방파뿐만 아니라.

서녕시의 무림 명숙들과 부호, 일반인에게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흔한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절정의 무위에 달한 이세기!

절정고수의 비무첩이 철검장에 전해진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철검장에 모인 순간.

철검장이 움직였다.

---

철검장의 대전.

좌우로 늘어선 수십 명의 사파 무사들의 앞.

바짝 마른 체구에 패도 적인 기운을 뿌려내는 장년인이 호피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단혈철검 주호!

주호의 입이 열렸다.

"이세기가 마도 18문과 관련이 있다고?"

주호의 물음에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는 총관.

"네! 흑기당의 무사들에게 확인한 정보입니다. 이틀 전 밤의 청해 호수의 추격전. 소금 벌판의 격전 모두. 20대의 청년 이세기가 관련된 걸 확인했습니다. 창천문 출신이란 건 위장. 극음도의 일문 내부에서 알력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응룡채를 통해 비무첩을 보낸 이세기와 이 청년은 동일인물 같습니다."

"절정의 경지라고?"

"그렇습니다. 이세기는 소금 벌판에서 마도 18문, 극음도의 후계자 이열과 싸웠고 승리했습니다. 이 생사결에서 이세기가 강기를 사용한 것을 흑기당의 무사들이 직접 봤다고 합니다."

순간 눈썹이 꿈틀거린 주호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이세기의 비무첩으로 향했다.

"강기! 그 나이에 절정이라니! 공명심에 눈이 먼 애송이는 아니란 건가. 이세기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응룡채주 마일도와 함께 응룡섬에서 답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주호의 시선이 이세기의 비무첩 옆에 놓인 서신으로 향했다.

철권 대협의 장가장에서 도착한 금권 대협이라는 자의 비무첩.

공교롭게도 마도 18문과 관련된 이세기란 청년의 비무첩이 도착한 날.

무림맹과 친분이 깊은 철권 대협이 보증한다는 금권 대협이라는 자의 비무첩도 전해졌다.

정파와 마도 일문에서 동시에 비무첩이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온 다음 날!

"장가장의 비무첩은 거절하도록 할까요?"

총관이 조심스레 묻는 순간 주호는 피식 웃었다.

사자련에 들어오고 오랜 시간 웅크렸던 주호.

그러나 가슴속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단혈철검(丹血鐵劍)!

한 자루 철검으로 사자련을 움켜잡겠다!

주호는 피비린내 나는 웃음을 지으며 철검을 뽑아 들었다.

"둘 다 받아들인다! 모레. 설산 마제사! 한 번에 눈엣가시 장가장을 치워버리고! 마도 18문의 애송이도 끝장낸다! 이곳 서녕에 사자련의 깃발을 꽂는다!"

주호가 외치는 순간.

줄지어 도열한 무사들의 피 끓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존명!"

이 순간 주호의 철검에서 뿜어지는 강기의 빛!

파스스슥-

아지랑이 지듯 일렁이던 강기의 빛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타래가 풀린 실처럼 하늘거리는 강기!

곧 강기의 실은 하나로 엮이고,

엮인 강기의 덩어리가 만져질 듯 선명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검강!

단혈철검 주호는 절정의 고수가 아니었다.

초절정!

주호는 유형화된 강기,

검강을 만들어내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주호의 검강이 드러나는 순간.

오랜 시간 철검장에 웅크리고 있던 철검장 무사들의 기세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

엉겨 붙은 머리카락과 핼쑥해진 얼굴.

검게 타들어 간 안색은 깊은 병에 걸린 사람 같다.

그러나 두 눈에 어린 형형한 눈빛에는 여전히 차가운 냉기가 담겨 있었으니.

극음도 이열.

이열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물조차 마시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러진 극음도를 보고 또 봤다.

부러진 검신에 새겨진 한 줄의 문장.

"관음을 보았는가?"

이열은 문득 입을 여는 순간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장난스러운 필체의 글귀.

그러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너무나 생생히 떠오른다.

하늘하늘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던 검강!

그러나 물조차 가르지 못할 것 같은 이 검강이,

폭발하듯 강기가 끓어오른 자신의 극음도를 잘라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머리를 강타했던 무리.

'능유제강!'

순간 이열의 머릿속에서 이세기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장난스럽게,

권태스럽게,

무심하게 검강을 휘두르는.

그 모습,

그 여유,

그 기세!

검을 맞댄 순간에는 단지 한 걸음만 넘어서면 이세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대결을 복기하는 지금은 까마득한 태산을 마주한듯한 아득함만이 느껴진다.

이세기!

극음도의 정수, 그 아득히 높은 무리를 지녔음에도 단 한 수도 사용하지 않았다.

검강, 초절정의 그 지고한 무공으로 '퐁, 퐁, 퐁-'거리며 생사결을 모독했다!

이열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이세기.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검에 남겨진 글귀.

‘관음’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더해가는 의문에,

이열의 마음은 심마에 든 듯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흑기당주 당무가 들어섰다.

“마도 18문. 극음도의 무사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밤 도착한다고 합니다!”

“...”

그러나 이열은 묵묵부답 답이 없었다.

당무는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단혈철검 주호에게 이세기가 비무를 청했다고 합니다. 응룡채주 마일도를 통해 비무첩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세기’란 이름을 듣는 순간 이열의 형형한 눈이 당무에게 꽂혔다.

섬뜩한 칼이 날아오는 듯한 눈빛!

이열은 짧게 명령했다.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라!”

“존명!”

당무가 나간 순간,

이열은 천천히 죽을 씹어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이 순간 이열의 머릿속에서 극음도의 정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이열의 머릿속에는 이름 한 개만 남아있었다.

‘이세기!’

이열은 의문을 풀고 싶었다.

극음도의 정수가 아닌,

이세기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

바다같이 넓은 청해 호수 한가운데,

응룡채의 본거지 응룡섬이 있었다.

이 응룡섬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든 기세등등한 수십 명의 꼬맹이 무사들과 이들을 상대하는 허름한 옷의 청년.

이세기였다.

이야아얍!

우와아아!

...

수십 명의 꼬맹이가 나뭇가지를 흔들며 달려드는 순간!

이세기는 손에 들린 오래된 나뭇가지 검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휘잉, 휘잉, 휘이이이-

사방으로 몰아치는 바람!

이세기의 나뭇가지 검에서 시작된 바람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꼬맹이들의 몸을 타고 흘렀다.

우히히히-

순간 몸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기회!"

이세기는 번개같이 움직여 주저앉은 아이들의 겨드랑이를 톡톡 나뭇가지 검으로 건드렸다.

우힣히히히힣-

아이들은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간질간질한 이세기의 내력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수십 명의 아이는 순식간에 무력화됐고,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들 사이에서 선 이세기는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 순간 이세기는 어쩐지 오래전 그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산속의 버려진 사당에서 수십 명의 어린 동생들과 살던 어린 시절로.

이세기는 훌쩍 뛰어 앙상한 나뭇가지를 잡고 수십 장 높이로 뻗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겨울답지 않은 햇볕이 따뜻한 나무 꼭대기.

휘이이이이-

문득 바람이 불어올 때.

이세기는 손에 들린 나뭇가지 검을 봤다.

한자 길이의 짧고 얇은 나뭇가지 검.

이 검은 자신의 친우가 아이들에게 만들어준 검이었다.

속을 파내어 가볍고 맞아도 다치지 않은 나뭇가지 검.

이 나뭇가지 검을 휘두르면 바람 소리가 퍼져 나간다.

이렇게.

휘이이이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

멀리 퍼져 나가는 바람 소리.

이 소리를 들을 때면 언제나 돌멩이가 생각난다.

돌멩이.

무엇이든 능숙하게 잘했던 친우의 이름.

친우를 떠올릴 때면 힘겨웠으나 언제나 웃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산속 평지를 개간해서 밭을 만들고 약초를 캐고 나무열매를 모았다.

그리고 덫을 놓아 작은 동물을 통발로 물고기를 잡았다.

가끔 아이들이 모아들인 삭정이와 잘 말린 장작을 객잔에 팔고 올 때면.

한 봉지씩 사 오는 사탕에 우르르 몰려들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웃던 동생들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

그리고 동생들이 모두 마종문에 입문하던 날.

돌멩이, 자신의 친우는 한 스님을 따라 먼 서쪽으로 훌쩍 떠났다.

몰래 숨어서 보던 그 모습이 자신의 친우 돌멩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返.

그러나 자신의 친우 돌멩이는 이 넓은 천하 어디에 있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다.

이세기는 오랜 기억 속 장난스러운 친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바람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 검을 하늘로 움직였다.

휘이이이-

흔적 없는 바람이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로 불어갈 때.

이세기는 바람에 마음을 실어 오랜 친우를 불렀다.

'돌멩이. 뭐 하고 있냐?'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돌멩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해주던 오랜 꿈.

커다란 3층 객잔의 주인이 되어 거드름을 피우는 그림.

너무나 그럴듯한 상상에 이세기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이번 비무행 중에 돌멩이가 주인으로 있는 객잔에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꺼이 바가지를 써주리라!'

이세기는 웃음을 띤 채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했다.

창천문.

어린 시절 자신을 받아주고 큰 은혜를 내려준 사문의 명령으로 시작된 비무행.

사문에서는 창천문의 이름이 강호에 우뚝 서기를 원했다.

그래서 시작된 비무행이다.

강호에 창천문의 이름을 세우기 위해서 단혈철검 주호를 시작으로 사자련의 고수들과 천하 18성의 무인들을 하나하나 꺾는다!

그러고도 살아남는다면···.

문득 이세기의 눈이 멀리 서쪽으로 향했다.

강호의 절대자.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에게 도전하리라!

하-

순간 웃음을 터트리는 이세기.

단혈철검 주호.

천하 18성의 무인.

그리고 마도 지존 천마!

단 한 명도 만만한 상대가 없다.

자신의 사문 창천문은 지방에서는 명문거파라 불리지만 실상은 강호 100대 문파에 겨우 드는 문파.

창천문의 제자인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세기에게는 이번 비무가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고수와의 첫 비무였다.

어쩌면 첫 상대인 단혈철검 주호와의 비무 중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세기의 마음속에 사문에 대한 원망은 없다.

가슴에 새겨진 너무나 크나큰 은혜.

쌀 두 가마와 두툼한 거적,

잘 마른 장작과 도끼.

보리 세 가마와 솥,

커다란 항아리와 튼튼한 수레.

그리고 사탕 한 주머니.

동생들이 추운 겨울과 배고픈 봄을 무사히 나고 웃을 수 있게 해준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으니까.

은혜는 은혜로.

생명은 생명으로.

구명의 은혜는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

구으으으응-

이때 큰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응룡채의 거선이 부두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쿵-

심장이 크게 한번 뛰는 순간,

이세기는 직감했다.

'기다리던 소식이 왔구나!'

거선이 부두에 닿는 순간.

날듯이 나무로 달려오는 거선의 선원!

이세기는 바로 나무에서 뛰어 내렸고.

선원은 이세기에게 붉은 배첩을 전했다.

"철검장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이세기는 배첩을 열었다.

'모레 정오. 설산 마제사.'

단혈철검 주호와 이세기의 비무가 결정됐다!

< 비정규직 천마 - #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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