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파아아아-
물살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는 쾌속선!
쾌속선 선미에 선 천문석은 마지막 남은 은자를 손 위에서 가볍게 던지며 주위를 확인했다.
탁, 탁-
은자를 맞은 쾌속선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그 뒤로 다른 쾌속선들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저 쾌속선에는 흑기당주 당무가 타고 있을 것이다.
은자를 던지는 방법이 당무에게는 통할 리가 없었다.
멀리 응룡채의 거선이 따라오고 있지만, 이 거선은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배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가속에 시간이 걸리는 건가?’
의아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거선이 충분히 가속했을 때면.
자신이 탄 쾌속선은 이미 점점이 이어지는 섬으로 들어갈 테고 거선의 속도는 다시금 줄어들 것이다.
목적지는 호수 북쪽,
산맥과 이어지는 곳이다.
천문석은 눈을 반짝였다.
모두가 산맥을 타고 도망쳤다고 생각할 때!
등하불명!
도시로 돌아가 장가장으로 스며든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천문석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번개같이 하늘을 향해 은자를 던졌다.
쒜에에엑-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쏘아지는 은자!
은자가 날아가는 방향에는 원을 그리는 매가 있었다.
휘유우우우-
그러나 원을 그리던 매는 잽싸게 날개를 접고 활강해 은자를 피해냈다.
어지간한 무림 고수보다 빠른 움직임.
"하- 엄청 빠르네!"
천문석이 감탄할 때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둥, 둥-
거센 칼날 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북소리!
멈춰선 쾌속선 뒤로 다가오는 다섯 척의 쾌속선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였다.
이때 왕웅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졌다.
"대장선이다! 흑기당주 당무가 오고 있다!"
"당무?"
천문석은 흥미로운 눈으로 쾌속선을 훑었고,
곧 당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쾌속선 선수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흑기당주 당무.
당무에게선 잘 갈려진 검과 같은 검사 특유의 예리한 기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기세!
천문석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당무와 멈춰선 쾌속선을 봤다.
'은자를 맞고 멈춰선 쾌속선을 당무는 어떻게 처리할까?'
곧 당무의 쾌속선이 멈춰선 쾌속선에 가까워졌고 당무가 몸을 날렸다.
그리고 폭발하듯 퍼져 나오는 피 분수!
쾌검!
당무는 일 검에 한 부하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 순간 얼어붙은 듯 굳어버린 흑기당 무사들!
다음 순간.
당무가 천천히 검을 검집에 넣으며 외쳤다.
"움직여라!"
혼란은 순식간에 회복됐고,
멈춰섰던 쾌속선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무는 가볍게 달려 대장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검을 뽑아 앞으로 겨눴다.
순간 천문석의 미간에서 느껴지는 간질거림!
검사의 살기가 공간을 넘어 전해지고 있었다.
천문석은 이채를 띠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당무의 수준이 높다.
절정 바로 앞!
당무는 단 한 걸음, 단 한 번의 도약이면 절정의 벽을 넘어설 경지에 닿아있었다.
그러나 이 한 걸음, 한 번의 도약에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이 벽은 일류와 절정을 가로지르는 드높은 벽이다.
그러나 이 드높은 벽도 절정과 초절정을 가르는 벽에 비하면 낮은 담일 뿐이다.
초인경의 시작 초절정.
초절정에 달해야만 천하를 논할 수 있었다.
카캬카-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천문석은 자신의 검대에 걸린 롱소드를 봤다.
검절, 이세기의 검혼이 담긴 롱소드!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이 롱소드를 잡는 순간.
자신은 초절정의 무공, 검강을 쓸 수 있었다.
즉 자신은 저기 엄청 무게를 잡는 당무보다 훨씬 강한 것이다!
“하하하- 가소로운 녀석!”
천문석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파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터지고,
뒤이어 공기가 찢어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쒜에에엑-
촤아아아아-
다음 순간 쾌속선 옆에서 치솟는 물기둥!
“...!”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대포!
어떤 미친놈이 대포를 쏘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앞! 섬 사이입니다!"
천문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하얀 연무에 휩싸인 범선이 섬에서 나오고 있었다.
돛을 펼친 흑사회의 도박선이다!
대포를 발사한 흑사회의 도박선은 어느새 섬과 섬 사이 북쪽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도박선의 선수에 선,
화사하게 미소지은 흑사회주 여량위의 모습이 보였다.
여량위는 한 번에 천문석을 알아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내공을 담아 외쳤다.
"극음도 이세기님. 인사도 없이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시나요?"
"급한 약속이 생각났거든."
천문석은 적당히 대답하며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점점이 이어지는 섬들.
북쪽 물길은 흑사회의 도박선에 막혔고,
남쪽에서는 흑기당의 쾌속선과 거선이 다가오고 있다.
남은 길은 동쪽과 서쪽!
이때 다시 한번 터지는 폭음!
파아아앙-
도박선에서 다시금 대포를 발사하고,
서쪽 물길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럼 남은 길은 동쪽···.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멀리서 다가오는 거선이 눈에 띄었다.
응룡채의 거선!
"..."
천문석은 깨달았다.
동서남북 모든 물길이 막혔다!
사면초가.
독 안에 갇힌 쥐가 되었다!
---
"시발. 시발! 어떻게 할 거냐!?"
왕웅의 고함이 들려오는 이 순간에도.
천문석이 탄 쾌속선은 빠르게 흑사회의 도박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문석은 시간을 벌기 위해 아무 말이나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너 대포를 쏘면 관청에서 잡아간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그럴듯했다.
아무리 관청에서 뒤를 봐줘도,
흑도 방파에서 대포 같은 화기를 쓰는 걸 용납할 리가 없었다.
여량위는 코웃음을 치며 주위를 가리켰다.
"이세기님이 이곳으로 도망친 덕분에 대포를 쓸 수 있게 되었네요."
여량위가 가리키는 것은 주위를 막은 섬들.
불꽃과 포성만 가려지면 무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도 18문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나!?"
천문석은 다시금 마도 18문을 팔았다.
순간 평정을 가장하던 여량위의 미소가 깨졌다.
"뭐? 마도 18문?! 이 새끼가 아직도 구라를?! 너 내가 얼마나···."
여량위가 말을 쏟아낼 때,
천문석의 머리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갔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동쪽은 응룡채의 거선에 막혔다.
저놈들은 전문 수적이니 물 위에서는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 당연히 기각!
서쪽은 흑사회 범선의 포문이 향한 방향이다.
도망치다가 대포에 한 방만 맞으면 한겨울 호수에 빠진다.
절정고수 10명보다 무서운 게 한겨울 호수의 냉기다!
남쪽은?
당무는 만만한데 남쪽을 뚫을까!?
천문석이 은근슬쩍 남쪽을 보는 순간.
멀리서 다가오는 거선의 선수가 보였다.
선수에 서 있는 냉막한 인상의 청년.
극음도 이열!
이열이 응룡채의 거선에 타고 있었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동, 서, 남.
3방향이 막혔다!
북쪽.
어떻게든 흑사회의 도박선을 뚫어야 했다.
이때 문득 귀에 들려오는 여량위의 목소리.
"...나를 감쪽같이 속이다니! 이 가짜 놈아! ...강기를 보지 않았다면···."
강기!
천문석은 진짜 극음도 이열이 어떻게 자신을 증명했는지 깨달았다.
무공이야말로 무인의 신분 증명.
이열은 '강기'를 보여 자신을 증명했다!
천문석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열은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연히 완전히 유형화된 강기를 보이지는 못했을 거다.
천문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한가지 계획이 만들어졌다.
어느새 바짝 가까워진 흑사회의 도박선!
"야! 어떻게 하냐?"
"지금이라도 키를 돌릴까요!?"
왕웅과 젊은 무사가 다급히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아직도 분노를 토하고 있는 여량위에게 당당히 외쳤다.
"여량위! 어째서 내가 가짜라고 생각하나?"
"..."
---
이미 모든 게 탄로 난 상황에서 던진 천문석의 한마디.
천문석의 외침을 들은 모두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
"아니···. 이게 무슨 병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연 젊은 무사의 등을 재빨리 쿡 찌르고.
천문석은 위엄을 담아 다시금 외쳤다.
"흑사회주 여량위! 대답해라! 어째서 내가 가짜라고 생각하냐!?"
"하- 이 새끼가 또 구라를!"
분노한 여량위가 내력이 담긴 손을 움켜쥐었다.
콰지직-
순간 박살 나는 나무 난간!
산산이 조각난 나뭇조각이 흩날릴 때 여량위가 외쳤다.
"이 가짜 놈아! 도망치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냐!?"
그러나 천문석은 당당히 대답했다.
"본문의 역도에게서 몸을 피한 것이다!"
"어···!?"
여량위가 당황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도 쟁투에서 어째서 극음도가 승리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하늘에 묻는다'란 일파의 사람이 지존 위에 올랐을까?"
"..."
천문석은 내력을 담아 잇달아 외쳤다.
"본가 일부가 배신하고 역도가 되었다!"
"..."
"그래서 이번 마도 쟁투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이다!"
"..."
"여량위 너를 찾아 마도 쟁투의 소식을 물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본가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
“여량위! 넌 나를 믿지 못하는가!”
천문석의 비통한 외침이 끝났다.
여량위는 묵묵부답 혼란스러운 얼굴로 천문석을 보고 있었다.
'이거 먹히는 거야? 안 먹히는 거야?'
천문석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순간에 들려오는 여량위의 망설이는 목소리.
"...극음도의 사자분은 한옥패도 가지고 계시던데···. 그리고 강기도 보여주시고···."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반쯤 먹혔다! 긴가민가하고 있다!'
이제 쐐기를 박을 때!
마침 거리도 적당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천문석은 검대에 걸린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마침내 검강 롱소드를 실전에 쓰는 순간이 왔다!
천문석은 검혼에 마음을 두고,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 순간 천문석의 롱소드에서 뻗어 나오는 찬란한 빛!
특이한 기형검에 빛이 맺히는 순간,
도박선과 쾌속선 위의 모두는 경악했다.
찬란한 빛 속에서 맺히는 파괴적인 기운!
강기!
방금 전 이열의 강기를 본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열의 언뜻언뜻 검에 어렸던 강기와는 차원이 다른 강기다.
초인경의 시작,
초절정의 상징.
완전히 유형화된 강기.
검강!
가짜라고 생각했던,
이세기의 검에 ‘검강’이 맺혔다!
이때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천하 18성!"
“...!”
이 순간 여량위는 깨달았다.
눈앞의 이세기는 천하 18성의 수준에 달한 고수.
초절정의 고수였다!
---
여량위가 검강을 보고 얼어붙은 순간,
천문석의 마음도 초조하게 말라붙고 있었다.
검신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대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와 진동.
퐁, 퐁, 퐁-!
이미 검강에 경악했던 젊은 무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퐁, 퐁, 퐁-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이 도박선 위 여량위에게 닿기 전에 여량위가 마음을 돌려야 했다!
'빨리, 빨리 결정해라! 흑도 방파 수장이 왜 이리 성격이 느긋해!'
천문석이 마음속으로 다급히 소리칠 때.
여량위의 입이 열렸다.
"...한옥패에 떠오른 극음이란 글자를 봤는데. 이게 홍청방에서는 극음도의 후계자의 상징이라고···."
여량위의 조심스러운 어조와 태도.
천문석은 9부 능선을 넘었음을 깨닫고 마지막 마무리를 지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한 목소리로 묻는다.
"여량위! 그대는 단지 물건일 뿐인 패를 믿겠는가? 아니면 무인인 그대의 눈을 믿겠는가!"
"...!"
이 순간 여량위의 전신이 격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무인!’
이 한 단어가 여량위의 마음을 때렸다!
흑도 방파,
흑사회의 회주.
정사마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천시당하는 흑도 방파의 수장에게 ‘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그것도 천하 18성에 달한 초절정의 고수께서!
뼈를 깎는 고련을 거쳐 내가 기공의 고수가 됐음에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여량위의 마음이 요동쳤다.
이 순간 여량위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뜨거운 눈물!
초절정에 달한 진정한 고수의 인정에,
여량위의 마음속 응어리진 울분이 녹아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여량위는 포권지례를 취하며 허리 숙여 외쳤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