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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1화 (132/1,336)

#131

천문석은 두 배는 빨라진 왕웅의 움직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게 최고다!

천문석이 웃을 때,

젊은 무사는 다시 한번 이 손님에게 감탄했다.

응룡채주 마일도에게 찍힌 왕웅을 몰래 빼내길래 무슨 생각인가 했는데···.

말 몇 마디만으로 왕웅이 최선을 다해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젊은 무사는 눈앞의 손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리와 마음에 새겼다.

이 끝을 모르는 심모원려와 거침없는 실행력!

아무렇지도 않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대담함!

말 몇 마디로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화술!

게다가 눈탱이를 계속 때리다가도,

빠져야 할 타이밍에는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젊은 무사는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자신들을 쫓아오던 흑기당, 응룡채, 흑사회의 수많은 배는 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하-’

내심 탄성을 터트리는 젊은 무사.

이미 섬 뒤로 들어와 행적이 가려졌고 바람은 순풍으로 불어오고 있다.

뒤를 쫓는 배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이 배는 이미 점점이 이어지는 섬들 사이로 사라진 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섬을 뒤지겠지만,

바다같이 넓은 청해 호수에서 이 배를 찾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장가장으로 숨어든 후일 테니까!

등하불명(燈下不明)!

그것도 그냥 등잔 밑이 아닌 무림맹과 깊은 관계를 맺은 철권 대협의 장원이다.

사자련이라 하여도 장가장으로는 밀고 들어오지 못한다.

하물며 흑사회, 흑기당 같은 흑도의 방파는 걱정거리도 안된다.

손님의 계획을 되새긴 젊은 무사는 새삼 감탄했다.

'이런 잔머리라니!'

이 순간 젊은 무사는 끓어오르는 존경심에 천문석에게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존경합니다!"

"뭐···?"

"저도 꼭 나중에 손님처럼 되겠습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굳은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 무사.

순간 천문석은 어이없으면서도 기분이 묘해졌다.

공포의 대상은 자주 됐어도 존경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존경 어린 시선으로 보는 건 아주 색달랐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젊은 무사.

이 녀석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천문석은 왕웅을 슬쩍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름이···."

휘유우우-

순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바람 소리를 닮은 맹금류의 울음소리!

천문석은 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확인했다.

매!

한 마리 매가 천문석이 탄 배 위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휘유우우우-

순간 다시 한번 매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동쪽에서 가까워지는 매 한 마리가 더 보였다.

활강하는 매 뒤로 나타나는 검은 깃발을 올린 배들.

흑기당의 쾌속선이다!

천문석은 시선이 원을 그리는 매와 흑기당의 쾌속선을 오갔다.

하늘을 나는 매가 원을 그려 신호를 보내고,

흑기당의 쾌속선이 이 신호를 따라 뒤를 쫓고 있었다!

---

휘유우우우-

높은 하늘에서 원을 그리는 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흑기당의 쾌속선과 자신이 탄 배의 속도를 견주다가 왕웅에게 물었다.

"왕웅! 어때? 따라 잡힐 것 같냐?"

흑기당의 쾌속선이 나타난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한 왕웅이 외쳤다.

"이 배로는 못 도망친다! 무게 차이가 너무 난다! 육지, 가까운 육지로 도망치자!"

그러나 꼬리를 달고 육지로 내리는 순간,

사방에서 몰려든 놈들에게 포위된다.

포위됐는데 진짜 극음도 이열까지 나타나면?

그때야말로 끝장이다!

천문석은 주위를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위치를 알리는 하늘의 매.

뒤를 쫓는 흑기당의 쾌속선.

아직 다른 배는 보이지 않는다.

순간 한가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금 문제는 지금 탄 배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

이걸 해결한다면?

천문석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젊은 무사와 왕웅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

"네!?"

"뭐? 이런 미친 새끼!? 그런 미친 계획이 될 리가 있냐?!"

계획을 들은 젊은 무사가 깜짝 놀라고,

경악한 왕웅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더 좋은 생각 있냐? 있으면 말해라."

"..."

"..."

말문이 막힌 두 사람이 침묵하는 순간.

천문석은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럼 내 생각에 동의하는 거지?"

왕웅과 젊은 무사가 굳은 얼굴로 말없이 서 있자,

천문석은 바로 키를 잡은 손을 돌리며 외쳤다.

"모두 준비해라!"

기리리릭-

키가 빠르게 돌아가고,

12시 방향으로 나아가던 배의 선수가 2시 방향으로 움직였다.

흑기당의 쾌속선이 다가오는 방향은 3시 방향.

천문석이 탄 배와 흑기당 쾌속선의 진행 방향이 겹쳤다!

---

차아아-

휘이이잉-

칼바람을 가르며 겨울 호수를 나아가는 천문석의 배와 흑기당의 쾌속선!

두 배의 진행 방향이 'ㅅ'자로 겹치자,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천문석이 키를 돌리며 타이밍을 잡는 동안.

젊은 무사는 돛대에 밧줄을 묶고 매듭을 만들어 어느새 복면을 쓴 왕웅에게 건넸다.

그리고 천문석에게도 매듭지은 밧줄을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 묶으시죠.”

"난 됐다."

천문석은 밧줄을 사양하고 흑기당의 쾌속선을 살폈다.

유선형의 날렵한 선체,

노잡이 없는 소형 범선.

갑판에 솟은 돛대에는 삼각돛 세 개와 흑기가 솟아있다.

갑판에 오른 무사의 수는 십여 명.

그리고 이 쾌속선 뒤로 간격을 두고 가까워지는 다른 쾌속선들이 보인다.

얼핏 봐도 지금 자신이 탄 배와는 속도 차이가 크다.

왕웅의 말대로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

천문석은 재빨리 자신의 무장을 확인했다.

롱소드와 두툼한 털가죽 옷.

허리춤에 매달린 은자가 가득 든 주머니.

문득 갑판에 떨어진 장대가 보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두꺼운 장대는 오랜 시간 물이 먹어 묵직해 보였다.

천문석은 기다란 나무 장대를 잡았다.

롱소드.

나무 장대.

은자 주머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천문석은 키를 좌우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쾌속선을 주시했다.

'ㅅ'자로 경로가 겹치는 지점으로 이동하는 두 배.

거리가 가까워지자 흑기당 무사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멈춰라!"

"...세워라!"

"...이 가짜 놈아!"

...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흑기당 무사들.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자,

흑기당 무사들은 칼을 뽑아 들었다.

흉포한 기세와 살기가 쏟아질 때.

천문석은 키를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며 외쳤다.

기이이익-

"시작한다!"

이 순간 왕웅과 젊은 무사가 허리에 몇 번이나 감은 밧줄을 움켜잡았다.

파아아아-

파도를 가르며 갑자기 기수를 트는 배!

흑기당의 쾌속선에 탄 무사들은 접근하는 배를 보며 눈을 빛냈다.

한눈에 상대의 계획을 눈치챈 것!

당파(撞破)!

쾌속선보다 크고 무거운 선체를 이용한 당파 공격이다!

흑기당 무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선체로 밀고 들어오는 무겁고 둔한 배를 몇 번이나 농락하듯 상대한 흑기당 무사들!

이들은 선체 난간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외쳤다.

"당파 공격이다!"

"충돌에 대비하라!"

"키잡이 준비해라!"

"붙는 순간 단숨에 끝장낸다!"

...

그리고 두 배가 충돌하는 순간!

쿵, 쿵, 쿵-

묵직한 파괴음이 아닌 가벼운 충돌음이 잇달아 터졌다.

흑기당의 노련한 키잡이가 재빨리 키를 돌려,

당파 공격의 파괴력을 상쇄시킨 것이다.

충돌음이 곧 사라지고.

거대한 나무가 맞물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르르륵-

선체가 하나로 맞물린 채 나아가는 두 배!

이 순간 선체 난간을 잡고 몸을 숙였던 흑기당 무사들이 단숨에 뛰어올랐다.

하아앗-

"한 번에 밀고 들어간다!"

기합을 지르며 단숨에 난간을 뛰어넘어 적의 배로 옮겨타는 흑기당 무사들!

흑기당 무사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칼을 앞세워 단숨에 돌진했다.

"...!"

그러나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으아악!"

비명이 들려오는 쾌속선을 보는 순간,

흑기당 무사들은 모두 황당해하는 표정이 됐다.

조금 전까지 키를 잡고 있던 이세기란 가짜 놈.

그리고 복면을 쓴 덩치 큰 거한과 칼을 든 어린 무사.

셋은 어느새 흑기당의 쾌속선에 옮겨 탄 상태였다.

흑기당 무사들은 어떻게 된 건지 바로 깨달았다!

당파 공격은 위장!

이 녀석들은 처음부터 배를 옮겨탈 생각이었다!

"돌아간다!"

흑기당 무사들은 외침과 동시에 몸을 돌려 달렸다.

이때 거센 바람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후웅-

하늘에서 떨어지는 묵직한 나무 장대!

힘과 기세가 실린 장대가 뛰어오르려는 흑기당 무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쾅-

장대를 맞은 흑기당 무사가 픽 쓰러지는 순간.

크게 회전하는 장대!

후우웅-

거친 기세에 움찔 물러나는 순간.

으아악-

비명과 함께 사람이 날아왔다.

자기도 모르게 칼을 내지르려던 무사는 깜짝 놀랐다.

날아오는 사람은 흑기당의 동료였다.

"잡아라!"

날아오는 동료를 낚아채는 사이에,

연이어 들려오는 충돌음과 괴성!

쿵, 쿵, 쿵-

으아악-

어느새 장대가 선체에 걸려 배를 밀어내고 있었다.

깜짝 놀란 흑기당 무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리려 할 때.

쒜에에엑-

거친 파공음과 함께 날아오는 무언가!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검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쳐낸 순간.

흑기당 무사는 얼어붙었다.

은색 빛의 묵직한 덩어리.

은자!

날아오는 건 은자였다!

"어, 어어?!"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터지는 순간.

은자가 날아오는 속도가 확 죽었다.

툭, 투두둑-

갑판 위에 비 오듯 떨어지는 은자들!

흑기당 무사들은 얼어붙은 채 떨어지는 은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

깊은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쿵, 쿵, 쿠우웅-

묵직한 진동이 이어지더니 선측을 맞대고 있던 쾌속선이 떨어져 나갔다.

“...”

이 순간에도 은자는 계속 떨어졌고,

쾌속선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나아갔다.

파아아아-

쾌속선이 파도를 가르며 멀어지자,

침묵 속에 얼어붙어 있던 흑기당 무사들의 고개가 미세하게 끄덕여졌다.

이들은 재빨리 몸을 숙여 갑판에 떨어진 은자를 챙기기 시작했다.

---

멀어지는 쾌속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열심히 은자를 줍고 있는 흑기당 무사들.

"..."

왕웅은 한참 동안 멍한 얼굴로 이 모습을 보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미친 계획이 먹히다니···. 흑기당 미친놈들···."

장대를 든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충돌하고 배를 바꿔 타자는 계획.'

왕웅은 될 리 없다고 말했지만,

천문석은 처음부터 자신의 계획이 먹히리라 확신했다.

이미 흑사회의 도박선으로 가는 길에 확인했었다.

은자를 뿌리니 은근슬쩍 챙기던 흑사회 무사들.

흑기당이나 응룡채의 놈들도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고.

생각이 적중했다!

죽일 듯 살벌한 살기를 뿜어내며 달려들던 흑기당 놈들.

그러나 은자를 뿌리자 은근슬쩍 모른 척 보내주고 떨어지는 은자를 줍기에 바빴다.

적당히 모른척할 수 있는 구실을 주고 뿌려준 은자.

눈앞에 떨어진 은자의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이때 키를 잡은 젊은 무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뒤, 뒤에 쾌속선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천문석은 선미로 달리며 왕웅에게 물었다.

"어때 따돌릴 수 있겠냐!?"

"나 혼자라 바람을 모두 받기는 힘들다! 아까 배보다는 빨라졌지만, 결국엔 따라잡힐 거다!"

"아니. 흑기당 쾌속선 말고. 저기 응룡채의 거선 말이다!"

"뭐···?"

당황한 왕웅이 뒤를 다시 확인했다.

쾌속선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응룡채의 거선이 보였다.

이때 다시 한번 묻는 천문석.

"어때? 저 거선에 따라잡힐 것 같냐?"

"...육지에 닿기 전에 따라잡히지는 않을 거다."

"그럼 됐다."

"되긴 뭐가 돼!? 쾌속선에 따라 잡힌다니까!"

"쾌속선은 걱정하지 말고. 활대 줄이나 잘 잡아라."

천문석은 왕웅의 어깨를 툭 치고,

젊은 무사의 품에서 주머니를 몇 개 챙겼다.

돛대를 잡고 망루로 뛰어오르는 천문석.

그리고 쾌속선이 가까워졌을 때,

왕웅은 천문석이 말한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런 미친놈!"

"으아악! 그러시면 안 돼요!"

왕웅과 젊은 무사의 당황한 외침이 터질 때마다.

천문석의 손에서 암기가 날아갔고,

뒤를 쫓는 쾌속선의 속도는 축축 쳐졌다.

휘이이잉-

부드럽게 날아가 갑판 위에 떨어지는 암기.

은자!

후두두둑-

아무 위력 없는 은자가 갑판에 떨어지는 순간.

"비켜! 이건 내 거다!"

"꺼져! 나한테 맞았으니 내 거다!"

...

흑기당 무사들은 은자를 향해서 사방에서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상황을 통제해야 할 중간 간부들마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은자에 눈이 돌아간 상황!

흑기당 무사들은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은자를 뺏고 뺏었고,

당연히 천문석이 탄 쾌속선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천문석의 손에 들린 은자는,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무서운 암기였다.

사람의 욕심을 깨우는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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