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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2화 (123/1,336)

#122

"정말로 이 거리로 들어가시겠다고요?"

"여기 내가 말한 조건에는 맞냐?"

천문석은 붉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거리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네. 말씀하신 조건에 맞긴 하는데. 이런 곳은 뒤를 봐주는 놈들이 위험한데···. 아니, 주머니도 두둑하신데 좋은 곳들 놔두시고 왜 여기로···. 지금이라도 제가 정말 괜찮은 반점이나 청루로 모시겠습니다."

젊은 무사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천문석을 설득하려 했다.

"야!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나만 믿어! 그보다···. 내가 아까 말한 거 기억하지?"

천문석은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을 하다가 돌연 목소리를 낮췄다.

덩달아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는 젊은 무사.

"장가장이나, 철권 대협 이름을 말하지 말라는···?"

"그래. 지금 이 순간 이후로는 입에 자물쇠를 딱 채워라."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어깨를 툭 치고,

눈이 깨끗하게 쓸린 넓은 길로 성큼 들어갔다.

순간 좌우로 붉은 등불이 줄줄이 내걸린 화려한 거리가 나타났다.

넓적한 돌이 깔린 길 좌우,

두꺼운 털옷을 걸친 기녀들이 활짝 열린 1층 창가에 앉아 웃음 짓고.

2층, 3층 창가에서는 교태로운 웃음과 호탕한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차가운 바람에 실려 오는 기름진 음식의 냄새와 달콤한 주향.

잘 차려입은 사람이 천천히 길을 걸으면,

수많은 호객꾼이 달라붙어 주루로 잡아끈다.

천문석이 젊은 무사를 채근해 온 곳은.

홍루와 반점, 객잔이 뒤섞인 일류에 미치지 못하는 적당한 유흥가였다.

천문석은 거침없이 유흥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순간 호객꾼과 기생들의 눈이 천문석의 전신을 훑었다.

값비싼 담비털 모자,

털가죽 외투와 가죽신.

귀티가 흐르는 차림이었다.

허리에 특이한 검을 착용했지만,

호위 무사로 보이는 종자까지 데리고 있다.

천문석에게서 돈 냄새를 맡은 호객꾼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대인. 저희 봉황각의 아리따운 소저들이 대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황각은 음식이 별로입니다! 저희 청룡 반점은 음식과 기녀까지 최고입니다!"

"청룡 반점은 풍류가 없습니다! 제가 모실 매화장은 일류 재담꾼과 가기들이 있습니다!"

"봉황각, 청룡 반점, 매화장은 하나씩 부족한 게 있습니다. 저희 일품정은 술, 음식, 기녀, 풍류!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습니다!"

...

천문석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호객꾼들을 헤치고 지나가다가 문득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외쳤다.

"야, 빨리 와라!"

얼빠진 얼굴로 있던 젊은 무사가 다급히 달려와 천문석에게 달라붙는 호객꾼들을 밀어냈다.

"어, 왜 밀고 그래!?"

버럭 소리를 지르는 호객꾼.

그러나 무사가 정색하고 노려보자 찔끔하고 뒤로 물러났다.

순간 젊은 무사의 머리로 떨어지는 딱밤.

따악-

"으아악-"

천문석의 가벼운 딱밤을 맞는 순간,

젊은 무사는 자신의 머리가 깨진 줄 알았다.

이 순간 들려오는 천문석의 장난스러운 목소리.

"야. 왜 사람들을 겁을 주고 그래?"

젊은 무사는 억울해서 천문석을 노려보다가 깨달았다.

'딱밤 한 대를 맞았다고 주저앉았다고?!'

고수!

자신이 모신 이 손님분은 엄청난 고수였다!

이때 천문석이 주위를 휙 돌아보더니 말했다.

"여기서 제일 큰 도박판이 열리는 곳이 어디냐?"

호객꾼들의 시선이 홍등이 걸린 창가로 모였다.

그곳에는 기녀와 시시덕거리는 장한이 한 명 있었다.

천문석은 장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외쳤다.

"손님 받아라!"

"뭐야? 이 새끼는?"

기녀와 이야기하던 장한이 귀찮은 듯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굴로 날아오는 은색 빛!

"비도!?"

장한은 대경실색해서 은색 빛을 피했다.

순간 장한이 피한 은색 빛이 창가에 앉아 있던 기녀에게 맞았다.

꺄아아아-

기녀가 칼을 맞은 줄 알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순간.

장한은 칼을 뽑아 들고 천문석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 누가 보내서 왔냐!?"

칼이 떨어지는 순간.

천문석의 앞으로 번개같이 튀어나가는 젊은 무사!

젊은 무사는 떨어지는 칼을 검으로 막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쿵-

쩔그렁-

장한이 손목을 맞고 칼을 떨어뜨리는 순간.

젊은 무사는 단숨에 팔을 꺾어 장한을 꿇렸다.

"너 내가 어디 소속인지 아냐! 흑사회가 두렵지 않냐!?"

장한이 버럭 소리를 지를 때,

천문석은 눈을 반짝였다.

'흑사회! 제대로 찾았구나!'

천문석의 즉시 장한에게 은자를 잡은 손을 내밀었다.

"...어?"

얼빠진 표정이 된 장한의 눈이 은자에 쏠릴 때,

천문석의 손가락이 장한이 있던 창가를 가리켰다.

"이런 횡재가! 한 냥짜리 은자야!"

은색 빛을 맞고 쓰러졌던 기녀.

기녀는 은자를 들고 기뻐하고 있었다.

천문석이 던진 은자였다.

“어, 어! 저거 설마?”

장한이 얼빠진 얼굴로 말할 때,

천문석은 쐐기를 박았다.

쩔그렁-

천문석은 장한의 눈앞에 두둑한 전낭을 내밀고 흔들었다.

"도박장. 손님 받으라고."

꿇려진 장한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대인! 몰라 봬서 송구스럽습니다! 즉시 이 도시 최고의 도박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천문석이 슬쩍 눈짓하자,

젊은 무사가 장한의 팔을 꺾은 손을 풀었다.

순간 장한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대인. 잠시만!"

장한은 재빨리 달려가 기녀와 드잡이질을 벌여 은자를 도로 빼앗아 왔다.

얼굴에 붉은 선이 죽죽 그어진 장한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대인!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장한의 뒤를 따라갔다.

잊고 있던 이 질척거림과 짠 내!

이것이야말로 무림의 본질이었다!

천문석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장한의 뒤를 따라가다가 재빨리 옆으로 두 걸음 걸었다.

휘익, 빡-

순간 창가에서 날아온 당화가 장한의 뒤통수를 찰지게 때렸다.

"야, 이 나쁜 새끼야! 기녀한테서 돈을 뺏어가냐!?"

장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화를 기녀에게 던져주고 앞장서서 도박장으로 길을 안내했다.

천문석과 젊은 무사는 재빨리 장한의 뒤로 따라붙었다.

---

천문석은 5층 전각의 꼭대기 층에 있었다.

방안에 가득한 열기와 연초 냄새.

거친 숨소리와 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천둥 치듯 들려오는 주사위 돌리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탄성과 탄식이 뒤섞이는 이곳은,

흑사회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이었다.

천문석은 노름판 의자에 앉은 채 흐뭇하게 웃었다.

전생의 천문석이 절대 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도박!

어린 시절부터 돈은 곧 생명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던 천문석은 도박만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둑한 전낭을 보는 순간,

마도 18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그 사람'에게 닿는 수단으로 도박을 떠올렸다.

어차피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 은자,

전생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도박을 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천문석은 생전 처음 도박장에 있었다.

그것도 흑사회가 운영하는 도박장에!

이때 천둥처럼 울리던 주사위 돌아가는 소리가 멈췄다.

쿵-

탁자를 내려치는 주사위가 담긴 잔!

천문석의 맞은편 사람이 뒤집힌 잔을 번쩍 들어 올렸다.

[5, 5, 5]

순간 사방에 터져 나오는 외침!

"5, 5, 5!"

6면 주사위 세 개가 5를 위쪽으로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

우와아아-

으아아악-

5, 5, 5 주사위를 낸 사람 주위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광기 어린 외침과 열기가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5층 도박장 전체가 열기와 함성으로 끓어오르는 이 순간.

천문석은 롱소드 폼멜을 톡 쳤다.

퐁, 퐁, 퐁-

도박장의 환호와 외침에 가려진 소리와 진동이 천문석 앞에 놓인 뒤집힌 잔에 닿았다.

이 순간 주위의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도륵-

천문석은 옆에 선 젊은 무사에게 머리를 까딱였다.

꿀꺽-

젊은 무사는 침을 삼키며 떨리는 눈으로 천천히 천문석의 뒤집힌 잔에 손을 가져갔다.

승부의 순간!

환호성은 순식간에 잦아들었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긴장으로 흥건해진 손을 연신 비비고,

충혈된 눈으로 뒤집힌 잔을 바라보는 사람들.

젊은 무사는 눈을 부릅뜬 채 뒤집힌 잔을 단숨에 번쩍 들어 올렸다.

쿵-

순간 탁자 주위의 모두는 같은 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

[6, 6, 6]

뒤집힌 잔 아래 세 개의 주사위는 모두 6면이 위를 향해 있었다!

"으아악-"

젊은 무사가 괴성을 지르며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은자와 전표를 끌어당겼다.

"이겼습니다! 대협께서 이기셨습니다! 으아아!"

젊은 무사는 도박장으로 들어오던 것을 끝까지 말리던 처음과 달리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당연했다.

천문석은 도박장에 들어온 후 연전연승.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계속 이겼다!

삐걱-

이때 탁자가 기울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은자의 무게에 탁자마저 기울어지고 있었다.

순간 도박꾼의 뜨거운 시선이 산처럼 쌓인 은자에 꽂혔다.

젊은 무사는 검을 슬쩍 뽑으며,

탁자 주위를 향해 살기를 뿌렸다.

도박꾼들이 움찔하여 물러설 때.

와르르-

은자와 전표가 튼튼한 면포 주머니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쿵, 쿵, 쿵-

세 개의 면포 주머니가 가득 찼을 때 천문석이 손을 들었다.

"됐어 거기까지만 채워라?"

"네? 아직 조금 남은 게 있는데. 한 판 더 하시게요? 주머니 하나 도로 쏟을까요?"

은근한 기대가 어린 젊은 무사의 목소리에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도박은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라던 녀석이 이제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됐어. 계속 이기니까 재미가 없다."

천문석은 도박꾼들의 염장을 지르고 탁자에 남은 은자로 손을 움직였다.

휙, 휙, 휙-

사방으로 던져지는 은자!

앗!

어, 엇!

구경하던 도박꾼들이 은자를 받고 깜짝 놀랄 때,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개평이다."

"대인! 존경합니다!"

"대협! 저는 처음부터 대협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

도박장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왕이었다.

개평을 받은 도박꾼들은 나이 차이도 잊고 극존칭을 써가며 아부를 했다.

천문석은 쓱 도박꾼들을 훑어보며,

쉴 새 없이 은자와 전표를 던져 줬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날아오는 은자와 전표를 받던 도박꾼들이나 곧 이상함을 느꼈다.

천문석이 은자를 주지 않는 사람이 있던 것이다.

누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인. 그런데 왕칠이···. 아 그러니까 대인과 마지막으로 주사위 승부를 한 사람 이름이 왕칠 입니다. 왕칠이 한테는 개평을 왜 안 주시는지?"

기다리던 질문!

천문석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흑사회 무사들을 힐끗 확인하고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아···. 쟤가 왕칠이구나? 쟤는 여기 직원이잖아? 내가 도박장 직원에게 개평을 줄 이유가 없지."

"네? 그게 무슨···."

반문하던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날아오던 은자를 받던 도박꾼들도 경악했다.

도박꾼들은 순식간에 천문석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챘다.

도박꾼들의 시선이 개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훑었다.

"설마, 설마···?"

"이 녀석들이 전부!"

"바람잡이···?"

“...짜고 친 거야!?”

...

도박꾼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순간.

쿵, 쿵, 쿵-

천천히 다가오던 흑사회 무사들의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이 순간 천문석은 쐐기를 박았다.

"쟤, 쟤, 쟤. 전부 이 도박장 직원들이잖아? 너희 그것도 몰랐냐?"

천문석은 손가락으로 사기도박을 한 놈과 바람잡이, 패를 훔쳐보던 놈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외쳤다.

충격받은 표정이 된 도박꾼들.

이 순간 누군가 깨달음을 담아 외쳤다.

"그럼 이게 다 사기도박이었다고!?"

사기도박!

도박장에서는 최악의 금기!

도박꾼들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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