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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9화 (120/1,336)

#119

다음 날 아침.

예비 각성자 모두에게 엄청난 의욕을 심어준 천문석은 포근한 이불 속에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으아아아-

던전에서 누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이 여유!

침상 앞, 발간 숯이 가득 담긴 커다란 화로에서는 뜨끈뜨끈한 열기가 전해지고.

활짝 열린 창밖으로는 천천히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보인다.

휘이-

문득 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러나 이 바람이 춥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진다.

한겨울, 포근한 이불 속에서 떨어지는 눈을 보며 데굴데굴 구르는 이 느긋함이 미치도록 좋았다!

각성 던전이라길래 내심 빡셀거라고 바짝 긴장했었는데···.

직접 들어온 무림 던전은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난밤의 꿈이었다.

내심 각성몽을 꾸길 기대했는데.

밤새 꾼 꿈은 스승님을 따라 서쪽으로 여행하며 사냥, 요리, 수인, 염불, 부적을 배우며 개고생하던 꿈이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각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진정한 목적은 전생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이때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씻을 물이 준비됐습니다. 들여가도록 할까요?"

장일이 붙여준 하녀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천문석이 침상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커다란 대야와 수건, 양동이를 들고 들어오는 세 명의 하녀들이 보였다.

하녀들은 천문석의 얼굴과 손발을 씻긴 후, 조심스레 말했다.

"머리 면도를 할까요?"

이제야 조금씩 올라오는 머리카락을 밀겠다니!

어디서 큰일 날 소리를!

기겁한 천문석이 재빨리 말했다.

"면도 절대 안 합니다!"

"그럼 아침 식사를 올리도록 할까요?"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엄청난 음식이 차려졌다.

오향장육, 동파육 같은 주요리만 다섯 가지.

커다란 만두와 정갈한 소채가 차려졌고.

죽엽청과 소홍주, 종류를 알 수 없는 술이 세 종류나 올라와 있었다.

전생의 마도 지존, 천마일 때보다 더 좋은 음식과 술이었다.

천문석은 천마보다 장원 주인이 훨씬 낫다는 전생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역시 사람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법이다.

천마 같은 거 말고 장원 주인, 건물주 같은 생산적인 일 말이다.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오향장육을 한 점 먹고, 죽엽청을 한 모금 마셨다.

쫄깃한 돼지고기의 식감과 어우러진 죽엽청의 담백한 향!

"카- 아주 훌륭해!"

절로 나오는 탄성!

천문석은 연신 감탄을 하며 음식을 먹었다.

할수만 있다면 요리를 싸가서 류세연과 특급 헌터에게도 주고 싶을 정도로 음식이 훌륭했다.

그러나 던전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물건은 '아이템'뿐이었다.

천문석은 아쉬움을 삼키며 적당히 음식을 먹고 상을 물렸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창밖을 봤다.

지금 천문석이 있는 장주실은 중앙 전각의 3층에 있었다.

장원 주인의 거처인 만큼 탁 트인 시야.

창밖으로는 눈 내리는 장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넓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돌길이 있고.

이 돌길의 끝, 장원의 커다란 문과 높은 담이 보인다.

그리고 담 너머 눈발에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과 시가지가 있었다.

기와가 올라간 솟을지붕들.

높아야 5층 정도 높이의 건물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성곽까지.

서울과도 신서울과도 전혀 다른 형태의 건물과 시가지 형태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는 천문석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문득 이불이 깔린 침상으로 향했다.

침상 머리맡에는 검혼이 담긴 검이 세워져 있었다.

이제 검혼을 깨우고 저 도시로 나가야 한다.

전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천문석이 내심 다짐했을 때,

문밖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일 총관님이 오셨습니다."

곧 문이 열리고,

천문석과 장일은 마주 앉았다.

"수련실이 준비됐습니다."

장일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정말로 무공 비급은 필요가 없으신지?"

이미 어제 했던 말을 다시 하는 장일.

장일은 천문석을 장주실로 안내한 후 무공 비급이 담긴 상자를 통째로 천문석에게 넘겼다.

"그 철패를 가지신 분은 여기 있는 비급 중 무엇이든 골라 익히실 수 있으십니다."

천문석은 무공 비급을 꺼내 빠르게 훑어봤다.

소림, 공동, 점창, 화산···.

구하기 힘든 거대 문파의 비급부터,

저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급까지 다양한 무공 비급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비급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이 비급에 적힌 무공은 속가 제자, 외문 제자에게 전해지는 무공이었다.

본산 제자들에게 전해지는 핵심 요결이 빠진 비급들이었다.

자신이 익힐만한 무공 비급은 없었다.

천문석은 다시금 묻는 눈앞의 장일에게 대답했다.

"무공 비급은 괜찮습니다."

"혹시 언제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씀해주십시오."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장일에게 생각하던 부탁을 했다.

"그보다 제가 잠시 장원 밖으로 나갔으면 하는데···."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길 안내를 할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장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 안은 안전한 곳이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성곽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도시 안과 밖은 전혀 다릅니다. 이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천문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일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도시 안에서 움직이실 때는 철검장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단혈철검 주호가 장주로 있는 장원입니다. 사실상 이 도시의 패자입니다."

단혈철검, 주호.

인솔자에게 들은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이었다.

혹시라도 주호와 엮일까 봐 걱정하는 장일에게 천문석은 안심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철검장은 근처에도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호위 무사를 대기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지금은 수련하고 오늘 밤이나 내일쯤 나가볼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련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천문석은 검을 챙겨 들고 장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3층 전각의 1층으로 내려간 장일은 전각의 안쪽 방으로 천문석을 안내했다.

이 방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자 거의 100평에 달하는 넓은 수련실이 나타났다.

단단한 돌바닥이 깔린 지하 수련실에는 환하게 등이 밝혀져 있었다.

"이곳이 철권 대협께서 사용하시던 수련실입니다. 저 문안 쪽에 장주실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습니다. 가지고 계신 철패로 여실 수 있습니다."

장일은 수련실 안쪽 굳게 닫힌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밖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해두겠습니다."

장일이 떠나고 수련실에 홀로 남은 천문석.

천문석은 우선 철패로 문부터 열어봤다.

철컥-

문이 열리자, 무기가 가득한 석실이 드러났다.

사방의 거치대에 검과 칼, 창과 극, 철장과 륜 같은 수많은 무기가 놓여 있었다.

천문석은 두툼한 칼을 한 자루 뽑았다.

첨단에 뿔이 솟은 귀두도(鬼頭刀).

손에 실리는 묵직한 감각.

잡는 순간 뻗어 나오는 예기.

천문석은 가볍게 손을 돌려, 귀두도를 돌벽을 향해 내려쳤다!

휘잉-

임팩트 순간.

힘을 흘려 돌벽 위로 칼을 미끄러트린다.

콰르렁-

칼이 돌벽을 긁으며 섬뜩한 소리를 내고,

돌벽 위로 한줄기 불꽃의 선이 만들어졌다.

천문석은 회수한 귀두도의 첨단을 확인했다.

조금도 상하지 않은 날.

훌륭한 무기였다!

이 귀두도를 밖에서 사려면 못해도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갈 것이다.

천문석의 시선의 주위에 있는 무기들을 훑었다.

이 귀두도 급의 무기가 방 안에 가득 있었다.

슬쩍 봐도 백여 자루가 훌쩍 넘는 무기들.

여기에 있는 무기만 모조리 팔아도 수백억이다.

그러나 아이템이 아닌 이상 던전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이 훌륭한 무기들은 게임 속에서만 사용할 수 아이템처럼 이곳 무림 던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큰 아쉬움을 느꼈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천문석의 시선이 검대에 걸린 롱소드로 향했다.

자신에게는 이 롱소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롱소드에는 천하십절중 검절, 천검 이세기의 검혼이 담겨 있다!

여기 있는 수백 자루의 무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이 롱소드 한 자루가 더 비싼 것이다!

카캬카-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장원 밖으로 나가기 전에 검혼을 깨워야 했다!

---

수련실에 선 천문석은 롱소드를 뽑아 든 채 생각에 잠겼다.

검혼을 깨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대가 없이 전생의 경지를 쓸 수 있는 건 한 번뿐.

단 한 번에 성공해야 하고,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는다.

천문석이 아닌 다른 사람도 롱소드의 검혼을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이 롱소드를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 수 있으니까.'

천문석은 반짝이는 눈으로 롱소드를 봤다.

지금 눈앞의 롱소드가 검이 아니라,

수천억짜리 성채 빌딩으로 보였다.

이미 장갑 버스를 타고 오며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했다.

어떤 식으로 검혼을 깨울지 결정은 했다.

이제 실행만 남았을 뿐.

천문석은 롱소드에 마음을 놓고 번개같이 내려쳤다!

휘잉-

순간 롱소드와 하나가 된 검혼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흔적 없는 바람이 검을 타고 돌 때,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일으켰다.

이성에 달하는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기경팔맥을 흐르는 순간.

천문석은 생사팔문의 보법을 밟으며 ‘창천검의 뜻’을 담아 검을 펼쳤다!

그 내력의 운용과 초식의 세세한 운영은 모른다.

그러나 천문석은 이세기와 수많은 격전을 치르며 창천검의 뜻만큼은 뼈에 새겼다.

창천검의 뜻이 담긴 검격이 펼쳐질 때마다,

이세기의 검혼이 호응하여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휘잉, 휘잉-

곧 넓은 수련실 안을 수천 줄기의 바람이 달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노래하듯이 휘몰아치는 바람.

이 수천 줄기의 바람은 합쳐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거세고 광폭하게 몰아치지도 않는다.

조용히 휘돌다 문득 바람을 느끼는 순간,

전신을 타고 돌아 흔적없이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바람을 담은 무공, 이세기의 창천검이었다.

검혼의 힘을 빌린다고 하여도,

검에 창천검의 뜻을 담을 수 있는 천문석만이 펼칠 수 있는 검!

지금 이 상태로는 이 검을 팔 수 없었다.

천문석은 창천검에 담긴 뜻을 펼칠 수는 있어도, 이것을 타인에게 가르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고.

천문석은 창천검의 내공심법과 초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누구나 이 검혼의 힘을 끌어내 강기를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창천검의 정수를 꿰뚫어 살펴,

‘단 하나의 요결’을 검혼에 심는다!

이 요결만 익히면 검혼이 담긴 이 롱소드를 쓸 수 있는 일종의 스위치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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