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천문석이 재금 빌딩에 도착했을 때는 05:30분이었다.
장갑 버스 출발 시각은 06:30분.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천문석은 자신이 가장 먼저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정된 주차 구역에는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 둘에 남자 한 명.
서로 안면이 없는 듯 거리를 두고 말없이 서 있는 세 사람.
세 사람 모두 짐 하나 없이 어쩐지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보는 순간 같은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감이 왔다.
천문석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 곁에 섰다.
잠시 후 세 사람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아무 짐이 없는 세 사람과 달리,
천문석은 무장 상자를 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짝 긴장한 세 사람은 곧 시선을 돌렸고 아무도 천문석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인위적인 각성이라는 믿기지 않은 기회를 잡은 이들은 타인을 신경 쓸만한 여유가 없었다.
조용한 새벽의 지하 주차장,
천문석과 세 사람은 대화 없이 30여 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새벽 6시가 됐을 때.
구으으으응-
주차장 입구 방향에서 마력 엔진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육중한 진동음이 바닥에서 느껴지고,
길드 마크 하나 없이 전체가 위장 무늬로 도색된 장갑 버스가 나타났다.
끼이익-
장갑 버스는 네 사람 앞에 멈춰섰다.
바짝 긴장한 네 사람의 시선이 장갑 버스로 모이고.
피슈우-
유압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장갑 버스 문이 열렸다.
장갑 전투복을 입은 여성 헌터가 태블릿을 들고 주차장에 내려섰다.
이 헌터는 주차장의 네 사람을 쓱 둘러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저는 이번 ‘게이트 투어’의 인솔을 맞은 사람입니다. ‘인솔자’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게이트 투어 신청하신 분들은 받으신 카드 가지고 제 앞으로 와주세요.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인솔자는 게이트 투어란 단어로 무림 던전 행을 말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장철이 전해준 카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인솔자 뒤로 생긴 줄에 섰다.
"이 태블릿 위에 손 올려주세요."
태블릿을 든 인솔자는 한 명씩 카드와 지문을 확인하고, 숫자가 적힌 커다란 주머니를 하나씩 건넸다.
"이 주머니에 적힌 숫자를 기억하세요. 이게 여러분의 번호입니다."
인솔자는 주머니에 쓰인 숫자를 가리킨 후 설명을 이었다.
"이미 알렸듯 '게이트 투어'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버스 안에 들어가시면 번호가 적힌 좌석에 트레이닝복과 운동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핸드폰, 지갑, 시계, 반지 등 일체의 소지품은 모두 이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이 주머니는 투어가 끝난 후에 돌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1번, 2번, 3번.
앞선 세 사람이 신원 확인을 끝내고 번호를 받은 후 천문석 차례가 왔다.
천문석은 신원 확인을 하고 4번 주머니를 받으며 질문했다.
"이 무장 상자 괜찮습니까? 미리 양해는 구했습니다."
"상자 열어주세요."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인솔자.
천문석이 무장 상자를 열자,
인솔자는 안에 담긴 롱소드를 자세히 살폈다.
"아슬아슬하긴 한데. 이미 승인이 난 거니···. 무장 상자는 주머니에 넣으시고 그 검만 챙기시면 됩니다. 무장 상자 자체는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태블릿을 살피며 말하는 인솔자.
"알겠습니다."
천문석은 마지막으로 장갑 버스에 탑승해 4번 좌석으로 이동했다.
먼저 탄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지,
파티션이 쳐진 좌석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문석의 4번 좌석은 장갑 버스 뒤쪽 샤워실 근처였다.
좌석 위에는 상표가 없는 트레이닝복과 속옷, 양말 운동화가 있었다.
천문석은 파티션을 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입고 있던 옷과 소지품, 무장 박스를 지급 받은 주머니에 넣었다.
천문석은 준비가 끝나자 파티션을 걷었다.
그러자 장갑 버스 좌석 위로 바짝 긴장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리가 보였다.
천문석은 이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이 시대 각성은 태어난 후 새로 받는 '수저'라고 불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제대로 된 각성만 하면 금수저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특히 마력 각성자라도 되면 마석 정제만으로도 평생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신도 심법에 입문하기 전 얼마나 각성하기를 바랐던가?
그런데 인위적인 각성이라니!
비각성자에게는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기회다.
1, 2, 3번. 이 세 사람은 자기들이 각성 던전이라는 기회가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 천문석은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나도 각성이 되는 건가?'
이미 심법에 입문하고 무공을 익히고 있는데도 각성이 될까?
사실 각성 과정에서 얻을 무공은 자신에게 필요가 없었다.
무공보다 더 중요한 건 각성이 되면서 영맥과 연결된다는 것 그 자체.
영맥과 연결된다면,
내력을 쌓는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건 무림 던전에 들어가는 두 번째 목표다.
첫 번째 목표는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라는 자신의 전생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다.
던전 안에서의 예상 체류 기간은 일주일.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이미 계획은 세워뒀다.
'우선 이세기의 검혼을 깨운다. 그리고 마도 18문의 비밀 분타를 찾아서. 적당한 마인으로 위장한다. 그리고···."
...
천문석이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할 때.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에 홀로 서 있던 인솔자가 장갑 버스로 올라왔다.
'출발하나?'
문득 든 생각에 정면을 보니.
정면에 선 인솔자 뒤로 6:21분을 표시하는 시계가 보였다.
인솔자는 장갑 버스 안을 쓱 한번 둘러보더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게이트 투어 버스는 10분 후, 6:31분에 출발합니다. 그때 이 버스에 탑승해 있지 않으신 분은 투어에 참가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 바로 투어가 취소 처리됩니다."
인솔자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서로 눈치를 보던 중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이···. 투어···. 각성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가장 핵심적인 질문.
인솔자는 주저 없이 바로 대답했다.
"첫 2일 동안 50%. 일주일 안에 80% 정도 됩니다."
생각 이상으로 높은 각성 확률에,
얼굴이 환해지는 질문자.
질문했던 여성은 다시 한번 질문했다.
"일주일을 넘어서도 각성이 안 되면 더 있을 수도 있는건가요? 혹시···. 각성할 때까지 체류할 수 있을까요?"
어쩐지 절박함이 느껴지는 질문에,
인솔자는 태블릿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여기 계신 분들의 최대 체류 일수는 이미 지정되어 있습니다. 입장하시면 그곳 관리인에게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자가 다시 한번 질문하려 할 때,
다른 남성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혹시 위험하지는 않습니까? 던전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각성몽에 따른 일반적인 위험은 있지만. 규칙만 지키시면 이 던전에서는 다른 위험은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리인에게 설명을 듣게 되실 겁니다."
"그 안에서 사용할······."
...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지고,
인솔자가 짧고 간결하게 대답을 했다.
어느 순간 인솔자가 손을 들어 질문을 막고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군요. 추가 질문은 차후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인솔자는 운전석을 두들기며 말했다.
툭-
"정확히 30분에 출발하고 31분에 문을 닫습니다."
인솔자는 좌석의 예비 각성자들을 돌아보며 단호히 말했다.
천문석은 의아해했다.
'굳이 저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건가?'
그리고 29분이 되었을 때,
천문석은 인솔자가 왜 저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차장 입구 방향에서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부으으으응-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차고가 낮은 스포츠카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스포츠카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잠깐! 잠깐만! 여기 사람 있어요!"
"너 때문에! 뭔 개고생이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천문석은 감탄했다.
무림 던전 입장은 고르고 고른 유망주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라고 했다.
이런 기회를 받았는데 지각이라니!
어이없음을 넘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때 스포츠카가 멈추고,
여기서 다급히 내리는 두 남자가 보였다.
무엇을 하다 왔는지,
전신이 흙으로 엉망인 모습.
그러나 흙으로 엉망이어도 얼핏 봐도 눈에 띄는 화려한 의상의 옷을 입었다.
두 남자는 버스를 향해 달리며 다급히 외쳤다.
“우리 승객입니다!”
“바로 타겠습니다!”
그러나 30분이 되는 순간.
인솔자는 칼같이 출발 지시를 했다.
"출발하세요."
구으으응-
바로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갑 버스.
"어?"
"...?"
생각지 못한 엔진음에 당황한 표정으로 장갑 버스를 보는 두 남자.
"잠시! 잠시만요!"
"여기 안 탔어요!"
그러나 장갑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두 남자는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으아악!"
"이런 젠장!"
...
괴성을 지르며 달리는 두 남자,
천천히 속도를 올리는 장갑 버스.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으나,
경사진 주차장 입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를 지나기 전에 장갑 버스에 타지 못하면 놓칠 확률이 높았다.
이때 장갑 버스 입구에서 인솔자의 무미건조한 외침이 들려왔다.
"31분이 되면 버스 문 닫습니다!"
순간 두 남자가 안간힘을 다해 전력 질주로 달렸다.
"으아, 으아악!"
"이야아악!"
구으으으응-
그리고 장갑 버스가 주차장 경사로로 올라가는 순간.
두 남자는 간신히 장갑 버스 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허억, 헉···. 이런 씨···."
"컥, 허억···. 젠장."
버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고르는 두 남자.
이때 인솔자가 태블릿을 내밀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31분까지 본인확인 안 되면 밖으로 던집니다."
"..."
욕설을 내뱉으려던 두 남자는 재빨리 본인확인을 했고, 5번과 6번을 받았다.
그리고 06:31분.
인솔자가 말했던 대로 장갑 버스 문은 닫혔다.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왜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시끄러워! 너도 운세 봤잖아.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잖아."
“어이없는 녀석 그거 한번 한다고 되겠냐?”
“사과했잖아. 그리고 어떻게든 타긴 했잖아. 그만해라.”
...
두 남자가 투덜거리며 지나가는 순간 확 올라오는 악취와 술 냄새.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냄새에 인상을 쓸 때.
천문석은 두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두 남자가 좌석 옆을 지나가는 순간 이들을 알아봤다.
장민 대표와 참가한 모임에서 본.
테라스에서 대화하던 십여 명의 남녀.
각성 스팟을 이야기했던 남자.
다급히 친구의 입을 막았던 남자.
이 두 남자가 5번과 6번을 받고,
무림 던전 행 장갑 버스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