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3화 (114/1,336)

#113

한경석의 공방 겸 숙소.

천문석이 단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거액의 계좌 잔액을 보고 또 볼 때.

한경석의 기대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선인장 다시 보러 갈까?"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배송 경주 중에 만났던 허술한 악당 4인조!'

그 녀석들을 처리하는 일에 제격이라고 생각한 사람, 암살검 한경석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천문석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한경석은 반색해서 대답했다.

"부탁? 뭐든지 해도 괜찮아! 친구!"

천문석은 한경석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세계 배송 경주 중에 만난 악당 4인조.

리더. 엠마 파리킨슈.

육체계열 각성 탱커, 게릭.

클릭스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명.

"...이 녀석들과 이렇게 얽혔습니다. 아마도 유치장에서 풀려나는 대로 '창천검 이세기'를 찾을 겁니다. 리더는 '엠마 파리킨슈'인데, 성격이 독한데 은근히 허술한 면이 있습니다. 인상착의는···."

천문석의 설명이 끝나자,

한경석은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무장 벨트를 두들겼다.

차르릉-

무장 벨트의 단검이 선명한 쇳소리를 내며 부딪힐 때,

한경석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친구 걱정마! 나한테 맡겨!"

바로 벽에 걸린 단검을 고르기 시작하는 한경석.

한경석은 의욕이 가득해 보였다.

천문석은 한경석의 모습에 웃으며 농담을 했다.

"혹시 잡아도 단검으로 막 찌르고 그러면 안 됩니다. 하하-"

"진짜?"

순간 침울해져서 되묻는 한경석.

"..."

뭐지? 이 진지한 분위기는···.

진짜로 찌를 생각이었던 거야!?

천문석은 몇 번이나 한경석에게 강조했다.

“단검으로 찌르면 안 됩니다!”

“알았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고문해도 안 됩니다.”

“알았어······.”

“그냥 적당히 정신 차릴 정도로만 굴리면 됩니다.”

“알았어! 나에게 맡겨줘!”

실망하던 한경석은 굴리란 말에,

가슴을 두들기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런 거 엄청 잘해! 나 술집도 하나 있어!”

“...술집이요?”

생뚱맞은 소리에 천문석이 반문하자,

한경석은 신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헌터 술집 겸 여관! 뒷골목 정보 모으는 데는 여기가 최고야! 거기 있는 애들 풀면 금방 찾을 수 있어!"

"..."

어쩐지 불안했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암살검 한경석이었다.

나사 빠진듯한 모습과 달리,

대인전에서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가 한경석이다.

예전 강철 와이번과의 전투에서는 기습공격을 받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준비된 상황에서는 자기보다 강한 상대도 이길 수 있는 게 암살검 한경석이었다.

이번 일에 한경석 이상으로 제격인 사람은 없었다.

이걸로 오늘 광화문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철수형을 보고 갈까?'

문득 철수형이 생각났지만,

지금쯤 철수형은 이세계 배송 경주의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천문석은 철수형을 만나는 것은 무림 던전 뒤로 미루고.

한경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롱소드가 담긴 무장 박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

늦은 오후의 광화문 뒷골목.

뒷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네 명의 헌터가 있었다.

무장 강도 혐의로 이세계 유치장에 갇혔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4인조 헌터들이었다.

이들은 뒷골목 깊숙한 곳,

허름한 5층 건물 앞에서 멈췄다.

"여기가 정보상을 만나기로 한 술집이라고?"

일행의 리더 엠마의 물음에 클릭스가 바로 대답했다.

"맞아. 지식인에 물어보니까. ‘현대 정보컨설팅그룹’. 여기가 사람 찾는 데는 최고라고 해서 컨설팅 비용 내고 약속 잡았어."

"지식인? 정보컨설팅그룹? 멕시코의 정보상 같은 건가?"

엠마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클릭스를 칭찬했다.

"잘했다. 클릭스! 역시 밥값 하는 건 너밖에 없구나!"

"리더! 나를 저 멍청한 놈들이랑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클릭스는 게릭과 폴리머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하하- 아주 잘했어! 클릭스!"

엠마는 클릭스의 등을 팡팡 두들기며 헌터 술집으로 들어갔다.

헌터 술집은 상당히 특이했다.

밝은 조명,

작게 흐르는 음악.

술집 안에는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조용했다···.

거친 헌터들이 소곤거리듯 조용히 말하면서 술을 마시고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

생소한 분위기에 의아해하며 서로를 보는 네 헌터들.

이들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룸으로 이동했고,

약속한 현대 정보컨설팅그룹의 직원을 만났다.

"현대 정보컨설팅 그룹. 임제원 실장입니다. 임 실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명함을 내민 임제원 실장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세를 져서 '은혜를 갚기 위해' 헌터를 찾고 계시다고요?"

만약의 사태를 위한 표면적 이유를 먼저 말하는 임 실장.

엠마는 임 실장의 의도를 알아채고 바로 대답했다.

"네.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아서. 이 헌터를 찾아서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고 싶네요!"

"네 그러시군요. 그럼 알고 계신 걸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임 실장.

엠마는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창천검 이세기'

키와 체형.

머리카락 없는 머리와 오래된 구형 장갑 전투복.

달리는 화물차 위를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했다.

게다가 상급 탱커마저 농락하던 그 실력!

임 실장은 이야기를 되짚으며 질문했다.

"설명하신 내용을 보니. 젊은데 머리카락이 전혀 없었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엠마.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어요!"

"음···. 머리 외상에 포션을 사용하고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네요. 슬프지만 간혹 있는 일이죠. 구형 장갑 전투복을 사용했다고요?"

"장갑 전투복뿐만 아니라 장비와 사용 하던 무기 모두. 낡고 오래된 구형 제품이었습니다."

"포션 부작용에 따른 머리카락 상실. 생계가 넉넉하지는 않은···. 탈모 치료 때문에 장비가 구형일 가능성도 있겠군요. 탈모 치료는 보험도 안 되니······."

음-

"20대로 보이는 남성 헌터로 이름은 창천검 이세기···."

임 실장은 단서를 쭉 나열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발 제조사, 탈모 클리닉 위주로 훑어보면 되겠네요."

임 실장은 엠마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창천검 이세기, 이 헌터 어떤 형태의 검을 사용했습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엠마와 다른 세 헌터의 시선이 마주쳤다.

"검?"

"걔 검을 썼었나?

"...창을 쓴 거 같은데?"

"나랑 싸울 때는 창만 사용했다."

"나중에 리볼버를 기막히게 쏘긴 하던데···."

"손바닥 부딪힐 때마다 섬광탄같은 빛도 터졌잖아?"

엠마는 임 실장에게 대답했다.

"검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창과 방패를 쓰고 중간에 리볼버를 능숙하게 다뤘습니다. 손바닥을 부딪쳐 섬광을 터트리는 기술도 사용했습니다."

"...네?"

임 실장은 수첩에 적은 내용을 다시 살피더니 엠마와 세 헌터를 훑어봤다.

"...이 헌터 창천검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아요. '창천검 이세기!'. 이세기 이 새끼가 창 들고 외치는 걸 분명히 들었습니다!"

엠마가 확신을 가지고 외치자,

클릭스와 폴리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부했다.

"맞아! 리더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니까. 쫄아서 대답하더라니까."

"캬! 역시 우리 리더. 그 상황에서도 복···. 은혜 갚을 생각을 하다니!"

임 실장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이들에게 꽂혔다.

"...창을 들고 창천검 이세기라고 외쳤는데. 이상하지 않으셨나요?"

"네···?"

네 명의 헌터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서로를 보다가 임 실장을 봤다.

마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의 네 헌터.

현대 정보컨설팅그룹 임제원 실장은 깨달았다.

이 의뢰인들은 자기가 속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속았다.

임 실장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이제야 자신이 속은 걸 깨달은 네 헌터는 경악했다.

"..."

리더 엠마는 침묵했고.

"이런 바보 같은···! 너희들은 이상한 거 전혀 못 느꼈어?"

기절했던 탱커 게릭은 어이없어했다.

"그게 분위기가 너무 당당해서···. 그때는 속았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어."

"맞아···. 분위기가 진짜 그랬다니까. 하- 정말 감쪽같이 속았네."

그리고 감탄하는 클릭스와 폴리머.

임 실장은 수첩을 닫고 질문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창천검 이세기'라는 가명으로 찾을까요? 그 상황에서 가명을 사용한 걸 보면, 아주 치밀한 헌터입니다.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순간 게릭과 클릭스, 폴리머의 시선이 리더인 엠마에게 모였다.

분노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엠마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찾아주세요. 이 헌터를 꼭 찾아야 합니다."

"그럼 착수금 5천에 성공보수 5천. 들어가는 경비는 별도입니다. 계약서를 만들어 드릴까요? 계약서상의 내용은 좀 다를 겁니다."

착수금만 5천만원!

일반인에게는 엄청난 돈이나 분노한 엠마에게는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었다.

엠마는 바로 착수금 5천을 헌터 수표로 지급했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눠 가진 후, 임 실장은 말했다.

"그 헌터를 찾으면 이 술집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죠. 여기가 가장 안전합니다."

"이 술집 특이하더군요? 홀에 사람이 바글거리는 데 아주 조용하던데요?"

엠마가 술집에 들어오며 가진 의문을 말하자,

임 실장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이 술집 주인 성격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술집 주인이 싫어한다고, 헌터들이 조용히 한다고?"

게릭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고,

클릭스와 폴리모도 의아한 표정이 됐다.

술을 한잔 걸친 거친 헌터들에게 조용히 하란다고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헌터들이 이런 곳에서 굳이 조용히 술을 마실 이유가 없었다.

이들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임 실장이 설명했다.

“이 술집 안에 있을 때는 이곳 술집 주인이 신변을 보호해줍니다. 아니 보호가 아니라 보복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보복이요?”

“네. 이 안에서 공격받으면 공격한 쪽을 찾아 응징해줍니다. 그래서 원한을 많이 산 헌터들이 주로 손님으로 옵니다. 위쪽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헌터들도 상당합니다. 이 건물 전체가 그 주인 소유거든요."

폴리모와 클릭스, 게릭은 서로를 봤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하네?"

"여기 주인도 '가토 네그로'같은 헌터인가?"

"그럴 리가? 동네에서나 좀 유명한 헌터겠지."

"음 누군지 궁금한데. 한 번 나가서 뒤집어 볼까?"

"닥쳐. 새끼들아! 뒤집어도 내가 뒤집을 거야!"

리더 엠마의 외침에 웃음을 터트리는 헌터들.

하하하-

크크킄-

임 실장은 ‘가토 네그로’를 검색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고양이면 남미에서 유명한 헌터군요. 대인전 세계 랭킹 30위권···."

"여기 주인도 그 정도 급이 되나?"

게릭이 피식 웃으며 묻자,

임 실장은 휴대폰을 게릭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임 실장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 했다.

빠르게 내려가는 화면.

잠시 후 화면이 멈췄을 때.

게릭의 얼굴이 굳었고.

뒤이어 화면을 본 엠마와 클릭스, 폴리모도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이 사람이···.?”

임 실장의 휴대폰 화면에는 한 헌터가 있었다.

전신을 가리는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어,

얼굴과 체형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헌터.

그러나 이 헌터의 사진 밑에 있는 글자를 보는 순간 헌터들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대인전 세계 랭킹 7위···?"

엠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임 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으로 바닥과 천장을 가리켰다.

“이 술집과 위의 호텔까지. 이 건물 전체가 암살검 한경석의 소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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