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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2화 (113/1,336)

#112

쾅-

강화 철문이 닫히는 순간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편하게 둘러봐! 여기가 내 공방 겸 숙소야!"

정상적인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벗어 던지는 한경석이 보였다.

한경석은 평범한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적당히 뒤로 묶은 머리카락과 앳된 얼굴.

아담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몸.

익숙한 숙소라서 그런지,

한경석은 얼굴을 드러낸 채 평범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실 것 가져다줄게!"

한경석은 냉장고로 달려가 음료수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사이 천문석은 방안을 둘러봤다.

생각 이상으로 넓은 방.

대략 20평 정도 되는 방이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좁은 생활 공간과 넓은 공방 공간.

지금 있는 곳이 생활 공간이고,

강화 유리 벽 너머에 공방 공간이 있었다.

모루와 망치, 집게.

전동 해머와 소형 고로.

날을 세우기 위한 자동 숫돌.

벽 한쪽에는 네모난 철괴가 차곡차곡 쌓여있고.

천장에는 커다란 덕트가,

벽 곳곳에는 환풍구가 있었다.

그리고 벽에 설치된 네트 망.

이곳에는 얼핏 봐도 백여 자루가 넘는 단검이 걸려 있었다.

한경석의 무기 공방은 현대화된 대장간처럼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지금 있는 생활 공간이 텐트가 쳐진 침대와 냉장고뿐으로 살풍경한 것과는 대조됐다.

"뭐 마실래?"

한경석이 천문석에게 다가와 팔을 내밀며 외쳤다.

두 팔에 가득한 음료수.

"어떤 게 맛있나요?"

한경석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콜라랑 커피랑 섞어 마시면 맛있어!"

"..."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한경석의 기대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그게 맛있나요?"

천문석의 질문에.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경석.

“엄청 맛있어!”

"...그걸로 주세요."

"알았어!"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한 한경석은 냉장고에서 잔을 꺼내더니 콜라와 커피를 반반 섞은 음료를 만들어 천문석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뜨거운 시선으로 천문석을 봤다.

천문석은 단숨에 커피 콜라를 마시고 빈 잔을 넘겨줬다.

"괜찮네요."

"더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한경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앞장서 움직였다.

"그거 보러 온 거 맞지? 어서 보자!"

한경석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무기 공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여기 지나가야 해."

공방을 가로질러 맞은편 벽에 있는 문을 여는 한경석.

'검을 다른 곳에 보관했나?'

천문석은 내심 생각하며 한경석을 따라 문 으로 들어갔다.

"...?"

문 안쪽은 강화 유리로 된 벽 전체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넓은 공간이었다.

좌우로 문이 있고,

제습기가 돌아가는 건조한 공간.

한경석은 자랑스럽게 텅 빈 공간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외쳤다.

"여기에 있어! 친구!"

한경석이 가리키는 곳에는 화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 화분에서는 두 뼘 정도 되는 어딘지 낯익은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이거라고요?"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한경석이 즐거워하며 외쳤다.

"선인장 잘 자랐어! 조금 더 자라면 나눠줄게!"

천문석은 깨달았다.

저 선인장, 자신이 준 선인장이었다!

'아니, 뭐 저렇게 잘 자랐어?'

어이없게도 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선인장이 두 배가 넘게 자라 있었다!

게다가 선인장 곳곳이 알록달록 위험하게 물들었고,

길게 뻗은 가시에는 위험한 빛의 액체가 서려 있었다.

"..."

이게 내가 준 선인장이라고?

천문석은 멍하니 괴물같이 자란 선인장을 보다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멍하게 선인장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검을 찾으러 온 것이다!

천문석은 바로 한경석을 봤다.

한경석의 기대 어린 눈.

"..."

어쩐지 어린이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 특급 헌터를 보는 듯한 느낌에.

천문석은 한경석을 칭찬했다.

"선인장 정말 잘 자랐네요. 아주 훌륭합니다!"

"그렇지!? 엄청 노력했어!"

한경석은 신나게 외치더니 선인장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적당히 듣다가 말을 끊었다.

"그런데 검은 어디에 있나요?"

"공방에 있어."

"검 볼 수 있을까요?"

"...선인장 이야기 더 안 듣고?"

한경석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오늘 할 일이 많아서요."

한경석은 앞장서 공방으로 이동해서,

벽에 걸린 네트 망을 당겼다.

"여기에 검이 있어."

문이 열리듯 네트 망이 열리고 그 뒤에 빈 공간이 드러났다.

이곳에 롱소드 한 자루와 검집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십자가 모습의 롱소드.

검은 가죽과 황동으로 만든 검집.

롱소드와 검집 모두 별다른 장식 없이 담백한 모습이었다.

천문석은 조심스럽게 롱소드를 빼내 손에 쥐었다.

수천 번 잡아 길이 든 것처럼 손에 착 감겨드는 그립감.

천문석은 검신을 기울여 자세히 살폈다.

무게 중심은 검신의 첨단에서 한 뼘.

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도 적당하다.

곧게 뻗은 검신은 70cm 정도,

폭은 손가락 세 개 정도의 너비다.

날은 첨단에서 2/3만 세웠고,

검신의 중앙에 둥근 혈조가 파여 있다.

평범한 일자 칼받이에 둥근 폼멜,

손잡이에는 탄탄한 탄력과 까슬까슬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가죽이 감겨 있다.

십자가 형태의 평범하고 장식 없이 담백한 롱소드.

특이한 것은 하나다.

손잡이 위, 한 뼘.

검신과 하나인 것처럼 이어지는 검 조각의 흔적이 있었다.

이 흔적에 새겨진 두 글자.

창천(蒼天).

천문석은 이 두 글자에 손을 올리고 마음을 두었다.

휘잉-

문득 한 줄기 바람이 손에 머물 때,

바람이 머문 손을 첨단으로 밀어 올린다.

스르렁-

손을 따라 검신을 타고 올라가는 바람!

그리고 손이 검신의 첨단을 지나는 순간.

휘이잉-

시작된 곳 없이 불어오고,

끝나는 곳 없이 사라지는 바람이 불었다.

창천무흔.

창천에 흔적 없이 부는 바람!

휘이이이잉-

한 줄기 바람이 공방 안을 달리고,

수백 자루의 단검이 선명한 쇳소리를 내며 울었다.

차르르르릉-

깜짝 놀란 한경석이 주위를 살필 때,

천문석은 허공으로 검을 내려쳤다.

휭-

가볍게 공기를 가르고 떨어져.

훙-

묵직한 진동을 흘리며 멈춘다.

순간 보법을 밟아 전진해,

허공의 일 점에 검을 찔러넣는다!

핑-

진동이 검신을 타고 흘러,

첨단에서 터져 나왔다!

섬뜩한 예기를 뿌리며,

허공의 일 점을 꿰뚫는 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정확성!

천문석은 감탄했다.

한경석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무기 제작자였다.

훌륭한 롱소드다.

천검의 검 조각을 완벽하게 품었고,

검 본연의 기능에도 놀랍도록 충실하다.

직접 휘둘러 보니 이 롱소드가 얼마나 잘 만든 검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손에 실리는 무게감이 실제 무게보다 가볍다.

완벽한 무게 중심과 탄탄한 그립감이 만들어낸 마술!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그대로의 검이 만들어졌다.

천문석은 한경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롱소드 정말 괜찮군요. 마음에 듭니다."

"그래? 선인장이 더 좋은 건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한경석.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인장도 아주 잘 자랐네요."

"그렇지?!"

환한 얼굴로 웃는 한경석.

천문석은 롱소드를 검집에 넣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천검 이세기의 검혼을 담은 검.

이성에 달한 일기일원공의 내력.

그리고 한 번은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전생의 경지.

이 세 가지면 자신이 생각한 것을 할 수 있었다.

하늘 아래 가장 강한 기운 강기(罡氣)!

유형화된 강기야말로 초절정,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인경에 발을 들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비록 검혼이 담긴 검을 이용한 편법이지만.

강기는 강기!

초절정이면 무림 던전 안에 그 누가 있더라도 전생의 진실을 찾을 수 있으리라!

천하십절급의 고수가 튀어나올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천문석은 생각과 동시에 피식 웃었다.

전생에도 보기 힘들었던 게 천하십절급의 고수다.

우연히 간 식당에서 이태성, 허무인 길드장을 동시에 만나는 게 오히려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천문석이 내심 웃고 있을 때,

한경석이 무장 박스와 금속상자를 불쑥 내밀었다.

"이건?"

"검 넣어 다닐 무장 박스. 그 안에 롱소드 소지 허가서 있어! 그리고 이 상자는 잔류 사념 마석 보관용 상자. 여기에 완충재 넣었어."

"잔류 사념 마석···이요? 그리고 완충재면?"

한경석은 대답 없이 금속상자를 열었다.

금속상자 안에는 도토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천문석은 한눈에 도토리를 알아봤다.

개미굴 던전에서 자신이 완충재로 챙겼던 도토리였다.

탁-

한경석은 금속상자를 닫은 후, 무장 박스에 넣어 천문석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짧게 덧붙이는 한 마디.

"선물."

한경석의 짧은 한마디에 담긴 깊은 호의가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이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할 때,

한경석은 천문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럼 이제 선인장 보러 갈까? 내가 자세히 설명해줄게."

"..."

---

선인장을 다시 보러 가지는 않았다.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가 했던 말을 한경석에게 전했고,

한경석은 바로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고 앞장섰다.

한경석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다급히 물러나는 오리온 길드 직원들.

직원들은 움직이는 재앙을 보듯 두려운 눈으로 한경석을 봤다.

그리고 잠시 후 한경석이 한 사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여기야. 경리과.]

"한경석 헌터님?"

카멜레온 망토를 입은 한경석이 나타나자,

경리과 사무실의 직원 전체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한경석은 천문석을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내 친구.]

"네? 친구분을 왜 여기로···?"

"제가 용건이 있습니다."

"용건이요?"

천문석은 의아해하는 직원에게 다가가서 최후식에게 받은 메모지를 넘겼다.

"정산받으러 왔습니다."

"정산이요?"

의아한 얼굴로 메모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는 직원.

"어? 아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직원은 재빨리 컴퓨터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 이게 왜 진짜야?! 과장님! 이것 좀!"

과장에게 잰걸음으로 뛰어가는 직원.

잠시 후.

경리과장의 비명 같은 외침이 사무실을 울렸다.

"이런 미친! 이게 뭐야! 누가 이딴 대금 지급 서류에 사인했어?!"

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경석이 경리과장 앞에 나타났다.

순간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는 암살검의 위압감!

"히익-"

경리과장이 새된 비명을 지를 때,

한경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문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친구.]

그리고 다시 메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증인.]

"아니 그래도···. 이거는 항목과 액수가 너무···."

핑, 부르르르-

순간 경리과장의 책상에 박혀 부르르 떨리는 단검!

"..."

터질 것 같은 아찔한 침묵이 흐를 때,

한경석의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후식이가 사인함.]

[돈 줘.]

"...훕!"

순간 천문석은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후식이'라고 말하기 직전 움찔하며 주위를 살피던 한경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무실 안의 사람들은,

암살검의 위압감에 질려 한경석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핑, 부르르르-

이 순간 다시 한번 책상에 꽂히는 단검!

[내 친구.]

[내가 증인.]

[후식이가 사인함.]

[돈 줘.]

...

한경석은 단검을 한 자루씩 책상에 박아넣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7자루의 단검이 박혔을 때,

천문석은 정산을 받을 수 있었다.

///

[정산내역]

검치호 송곳니 정산금 3000만원.

검치호 사체 회수 정산 1000만원.

고블린 마석 정산 100만원.

열심히 싸운 격려 수당 100만원.

개미굴 광산 고블린 발견 보너스 100만원.

총괄 이사 최후식과 암살검 한경석을 구해준것에 대한 사례금 5000만원.

///

천문석이 정산받은 헌터용 수표에 찍힌 숫자는 9300만원이었다.

9300만원!

검치호 송곳니 3개 3000만원을 제외한,

6300만원은 특별 채용이 물거품이 되면서 최후식 이사가 올린 금액이었다.

여기에는 구해준 사례금이 5000만원이나 책정돼 있었다!

운이 좋았다!

오리온 길드에는 입사할 생각도 안 했는데 이런 거액의 보상이라니!

크크크-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

오늘 천문석의 건물주 게이지와 자본주의 레벨은 다시 한번 한계를 넘었다!

계좌 잔액.

[123,151,212원]

계좌 잔액이 드디어 1억원을 돌파한 것이다!

천문석은 몇 번이나 휴대폰 은행 앱을 보고 또 봤다.

은행 앱의 숫자를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당연했다!

이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빡세게 굴렀던가!?

이 숫자는 천문석이 얼마나 열심히 굴렀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천문석! 너,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천문석은 자기 자신에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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