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1화 (112/1,336)

#111

“젠장!”

최후식은 한동안 투덜거리다가 천문석을 봤다.

“너 장철 형은 어떻게 아는 거야? 저 형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원래 알던 사이인 거야?”

천문석은 간략하게 장철과 알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1차 서울 사태.

랩터 무리에게 휩쓸리기 직전 장철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던 일을 설명하는 천문석.

이야기를 듣던 최후식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악마 꼬맹이. 아니, 특급 헌터를 만났다고? 그때 장강 유통 장민 대표님도 만났고?”

최후식은 장철보다 장민을 만났다는데 더 놀라고 있었다.

“네. 그 날 인사 나눴습니다.”

천문석의 말을 들은 최후식의 표정이 허탈하게 변했다.

“아니. 내가 그 개고생을 하고 다닐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문석은 허탈해하는 최후식에게 말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헛고생이었는데 뭘···. ”

하-

“장철 형이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런 개고생을 안 했을 텐데···.”

최후식은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천문석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네? 갑자기 무슨···?”

“너 특별 채용 안건을 올렸는데 이사회에서 잘렸다.”

“특별 채용 안건이요?”

최후식 이사는 바로 설명했다.

'채용 제안 취소.'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취소는 아니었다.

최후식 이사가 주장하던 ‘경력직 특별 채용’이 안됐을 뿐 천문석은 일반 채용에는 합격했다.

그러나 최후식은 일반 채용 합격을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신입 헌터에게는 괜찮은 조건이지만 너한테는 메리트가 없어."

"그런가요?"

"당연하지. 1세대 헌터 장철. 장강 유통 장민 대표님과 친분이 있는 헌터가 신입 헌터로 입사? 웃긴 일이다."

최후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채용 제안 그냥 거절하고, 프리랜서로 뛰는 게 훨씬 낫다. 게다가 장철 저 형이 이곳 ‘헌터 클럽’ 회원으로 올려준다니까."

“헌터 클럽이라면?”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최후식은 바닥을 가리켰다.

“길드와 달리 프리랜서 헌터를 위한 느슨한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정보, 일거리알선, 팀원 수급 같은 걸 도와준다.”

‘헌터들의 사교 모임 겸 인력 사무소인 건가?’

천문석이 헌터 클럽에 대해 생각할 때,

최후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 달콩 헌터 클럽은 회원가입이 쉽지 않아. 비회원도 이용은 가능한데 제약이 많지. 장철 저 형이 회원으로 올려주면 제약 없이 모든 걸 이용할 수 있을 거다.”

최후식은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마시고 결론을 내듯 말했다.

“우리 길드에 신입 헌터로 들어오느니 그냥 여기서 일거리 받으면서 프리랜서로 뛰는 게 났다.”

하아-

최후식은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우리 길드가 이렇지 않았는데···. 길드 규모가 커지고 사방에서 인력과 자금을 끌어들이면서 조직이 경직되고 있어. 헌터 길드는 일반 기업과 다른데. 어이없게도 경력 규정을 앞세워서 특별 채용을 막았다."

최후식은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강철 와이번에서 살아남고, 검치호와 혼자서 싸웠는데···. 뭐? 경력이 없으니 특별 채용은 못 한다고? 젠장. 나도 때려치우고 프리랜서로 뛰든가 해야지···."

최후식 이사의 말에서 돌아가는 사정이 짐작됐다.

자신의 경력직 특별 채용이 경력이 없단 이유로 거부된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경력직 채용인데 경력이 없었으니.

이때 문득 고개를 드는 최후식.

최후식은 뭔가가 생각난 얼굴로 천문석을 봤다.

“이제 경석이 찾아갈 거냐? 걔 요즘 검 만든다고 엄청 예민하던데. 공방에 나도 못 들어오게 하더라”

"네. 검 완성됐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바로 가서 찾을 생각입니다."

“잘됐네. 하-”

최후식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테이블에 놓여있는 메모지를 한 장 집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대금 지급 서류 만들어 줄 테니까. 간 김에 정산도 같이 받아가라."

"정산요?"

"그때 검치호 송곳니. 그거 정산받아야지."

"...!"

깜빡하고 있었다.

현장 면접 때 잡았던 검치호의 송곳니!

강철 와이번에게서 도망칠 때도 그 송곳니는 끝까지 챙겼었다.

그런데 최후식 이사가 만드는 대금 지급 서류가 이상했다.

메모지에 펜으로 항목과 금액을 적고 있는 최후식 이사.

"...그런데 대금 지급 서류를 그렇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최후식 이사는 눈을 반짝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거 규정에 따른 정식 서류다. 길드 규정에 긴급 상황 시 현장팀 관리자의 대금 지급 권한이 명시돼 있거든. 게이트 너머 현장 상황을 고려한 별도의 결제가 필요 없는 긴급 자급 융통 규정이지.”

최후식 이사는 메모지를 들어 올려 흔들었다.

“즉 이 메모지는 ‘규정’에 따르면 정식 대금 지급 서류다!”

최후식은 메모지를 천문석에게 넘기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거 정산받을 때. 반드시 ‘경석’이랑 같이 가야 한다. 경리과 애들이 잔머리 굴릴 수 있거든. 꼭 경석이한테 말하고 데려가라. 그럼 걔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웃으며 메모지를 받은 천문석.

그러나 메모지를 보는 순간 웃음은 사라졌다.

"아니 이거? 액수랑 항목이···. 이게 맞는 건가요?"

천문석이 메모지와 최후식을 번갈아 보며 어이없어하자.

최후식 이사는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흐- 그거 전부 규정에 따른 거다. 거기 내 사인 있잖아? 오리온 길드 현장팀 총괄 이사의 확인 사인. 그리고 현장에 같이 있던 이사대우 한경석이 증인을 서 줄 거다. 즉 ‘규정’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지."

"..."

"규정으로 특별 채용 막았으니까. 나도 규정대로 대금 지급하는 거다!"

최후식 이사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

최후식과 헤어지고 오리온 길드로 향하는 길.

천문석은 상념에 빠져있었다.

특별 채용이 막힌 지금.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1. 오리온 길드, 신입 헌터 입사.

2, 김철수 사무실, 부사장으로 계속 일하기.

대형길드의 신입 헌터.

사원 두 명인 회사의 부사장.

고심할 필요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이세계 쿠팡맨 일을 하면서 이미 결심을 했다.

철수형과 같이 일하기로.

철수형은 고난과 이득을 같이 나누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재금 연구소 추이린이라는 고정 고객도 확보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직급이 부사장이다!

물론 사장과 부사장 두 명뿐인 헌터 사무실이지만 말이다.

하하-

문득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더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내일 들어갈 무림 던전!

강기공을 일깨울 천검의 검혼이 담긴 검!

이때 골목길이 끝나고 확 트인 큰길이 나타났다.

넓은 광화문 광장이 보이고,

사방에서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광장 너머 재금 빌딩이 보였다.

재금 빌딩 13층,

오리온 길드.

저곳에 천검 이세기의 검혼이 담긴 검이 있었다.

유형화된 강기를 만들어낼 검이!

---

재금 빌딩 1층 로비.

천문석은 방문증을 차고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하자,

익숙한 검은색 대리석 데스크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리온 길드 방문을 환영합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맞이하는 직원의 모습.

전에 한번 봤던 직원이었다.

이때 옆에 앉아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다가 천문석과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 일어나는 직원.

예전에 현장 면접장까지 같이 갔던 김민철 과장.

초췌해진 얼굴의 김민철 과장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환한 얼굴로 외쳤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민철 과장은 바로 옆에선 직원에게 지시했다.

"채연 씨 이분은 내가 안내하겠습니다. 보안구역에 한경석 헌터님 손님 왔다고 바로 연락해주세요!"

“한경석 헌터님 손님이요?”

놀란 얼굴로 대답하는 직원.

김민철 과장은 고개만 까닥이고 재빨리 천문석 앞으로 뛰어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초췌한 안색의 김민철 과장이 안내를 시작했다.

예전에 한번 봤던 사무구역을 지나 안쪽 깊이 들어가는 김민철 과장.

곧 검문 게이트와 보안요원이 나타났다.

"한경석 헌터님은 이 안에 계십니다."

김민철 과장은 보안요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한경석 헌터님 손님입니다."

어째선지 한경석의 이름을 듣자 움찔하는 보안요원.

보안요원은 태블릿에서 명단을 확인하고 바로 출입 게이트를 열었다.

김민철 과장은 무기고를 지나 복도 안쪽으로 천문석을 안내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경석 헌터님이 방문자님을 정말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런가요?"

천문석이 적당히 대답하자,

김민철 과장은 어째선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네. 지금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드에 계십니다. 가능하면 집에 꼭 좀 들어가시도록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경석 헌터님이 지금 굉장히 예민하셔서···. 직원들이 조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천문석은 터지려는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경석의 성격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보니 아까 보안요원도 그렇고 김민철 과장도 한경석에게 크게 시달린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천문석이 대답하자,

얼굴이 환해진 김민철 과장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복도 끝 철문에서 김민철 과장이 멈춰섰다.

"여기입니다."

김민철 과장은 ‘비품 창고’라고 적힌 문 바로 옆에 있는 강화 철문을 가리켰다.

이 강화 철문에는 A4 용지 여러 장이 붙어있었다.

[노크 살살.]

[방해 금지.]

[잡담 금지.]

[조용! 조용!]

[한경석! 공방.]

[최후식! 출입금지!]

...

김 과장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똑-

순간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문틈에서 커다란 단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눈에 익은 쿠크리 단검!

허억-

김민철 과장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 변조된 목소리!

[방해! 금지!]

[뒤질래?]

어느새 김민철 과장의 등 뒤에는,

매 순간 색이 변하는 망토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한경석이었다.

문틈으로 쿠크리 단검을 내미는 순간,

점멸로 뒤를 잡은 것.

여전히 번개 같은 솜씨였다.

김민철 과장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한경석은 천문석을 알아봤다.

[친구!?]

[친구! 왔어?]

한경석의 반가움 가득한 외침!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뵙네요."

[어서 들어와!]

한경석은 천문석을 잡고 방안으로 점멸했다.

핏-

쾅-

그와 동시에 강화 철문이 닫혔고,

김민철 과장은 재빨리 문에서 떠나갔다.

휴우-

문에서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김민철 과장

지난 일주일, 암살검 한경석은 이상하게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해졌다.

헌터들 대부분이 개미굴 광산에 동원되고,

한경석을 제어할 수 있는 최후식 이사마저 다른 대형길드들과 협의하기 위해 외부로 돌았다.

그 덕분에 한경석의 짜증이 일반 직원들에게 모두 쏟아졌다.

최후식 이사의 과중한 업무 지시에 한경석의 짜증까지.

지옥 같았던 일주일이었다.

다행히 지금 한경석의 안전장치가 돼줄 사람이 왔다.

천문석!

암살검 한경석이 몇 번이나 찾았던 사람이 마침내 온 것이다!

김민철 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문석이 조금이라도 빨리 입사하기만을 바랐다.

‘최후식 총괄 이사가 밀어붙이니 금방 입사하겠지?’

전보다 훨씬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김민철 과장.

김민철 과장은 천문석의 입사가 없던 일이 된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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