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0화 (111/1,336)

#110

1층 현관을 나와 장갑 SUV로 걸어가는 천문석과 장민.

탁-

주차된 장갑 SUV 조수석에서 제임스가 내려 문을 여는 게 보였다.

천문석은 장갑 SUV 뒷자리에 꼬맹이를 눕혔다.

꼬맹이는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웃으며 잠꼬대를 했다.

"자동차···. 앙꼬···. 조아···."

장민은 꼬맹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나긋이 말했다.

"요새 제가 일이 많아져서 집을 자주 비우는데도 매일매일 즐거워하고 있네요. 모두 문석 씨랑 세연이 덕분이에요."

장민은 클러치 백에서 봉투를 꺼내서 조심스레 내밀었다.

"매일 밥이랑 간식까지 주신다면서요? 이거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 식비 조금 넣었어요."

"괜찮습니다. 큰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가면 한동안 보지도 못할 텐데요."

천문석은 장민이 주는 봉투를 사양했다.

장민은 두 번 권유하지 않고 봉투를 백안에 넣었다.

"그럼 제가 선물을 좀 해도 될까요?"

"선물이요?"

뜻밖의 이야기에 반문하는 천문석.

"오늘 와 보니까. 알바씨에게 필요한 게 생각나네요."

장민은 옥상을 가리키며 웃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은 뜻밖의 기쁨.

천문석은 장민 대표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선물이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던전에서 돌아오시면 깜짝 놀랄 거에요.”

장민은 장난스럽게 말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오늘 초대 고마웠어요."

"저도 모임 즐거웠습니다. 대표님."

"귀찮게 해드린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 이 트레이닝복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세연이에게 말해주세요."

장민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을 가리키며 차에 탔다.

장민과 꼬맹이를 태운 장갑 SUV는 바로 출발했다.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장민 대표의 모습이 잠시 보이고.

구으으응-

두 사람이 탄 장갑 SUV 앞뒤로 네 대의 경호 차량이 따라붙었다.

장민 대표와 특급 헌터 꼬맹이.

거실에 모여 같이 과일을 먹으며 예능을 보던 소탈했던 모습.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멀어지는 모습.

어쩐지 이 간극에 웃음이 났다.

엄청난 부자라도 그 일상의 삶과 웃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입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텔레비전 속 달달한 연애 이야기에 웃음 짓는다.

삶은 순간의 연속.

오늘 하루에도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천문석은 크게 기지개를 한번 켜고 몸을 돌리며 멀어지는 꼬맹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중에 보자. 특급 헌터.'

이제 무림 던전으로 들어가면 한동안 특급 헌터와는 안녕이었다.

---

청바지에 티셔츠,

모자와 운동화.

천문석은 간편한 복장으로 광화문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지금 시간은 12시 30분.

오늘 광화문에서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장철 헌터와 오후 1시에 카페에서 만나고.

오리온 길드에서 한경석에게 완성된 검을 인수한다.

아쉽게도 최후식 이사는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 눈앞에 나타나는 막다른 골목.

"여긴가?"

천문석은 문자에 첨부된 약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막다른 골목 끝,

밖에서 보이지 않던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이 길 끝, 건물 앞에 작은 간판이 있었다.

[카페 달콩, B1]

장철과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였다.

천문석은 바로 건물로 들어가 카페로 내려갔다.

특이하게도 카페 입구의 문은 닫혀있었다.

의아해하며 입구에 서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달콩입니다. 예약자 이름과 시간을 말씀해주세요.”

“장철. 오후 1시에 약속이 돼 있습니다.”

천문석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건조한 인상이 직원이 나타나 천문석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넓게 펼쳐진 홀이 내려다보이는 긴 복도.

복도 아래 펼쳐진 넓은 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고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특이한 분위기에 천문석은 문득 물었다.

“저쪽은 카페가 아닙니까?”

“헌터 주점입니다. 회원분께서는 언제든 이용 가능하십니다.”

직원은 복도 끝 홀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그리고 도착한 방.

“음료는 어떻게 할까요?”

천문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스아메리카노 3잔을 주문했다.

“더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벨을 눌러주십시오.”

건조한 인상의 직원은 짧은 설명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12시 50분 귀에 익은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한번 보자!”

---

카페 달콩 입구.

후배를 만난 장철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됐다.

만나자마자 후배가 막무가내로 사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형! 정말 괜찮은 녀석이라니까! 제2의 암살검. 아니, 제2의 강철해머가 나올 수도 있어! 형 계승자가 생기는 거야!"

"야! 내가 살아있는데 무슨 계승자야? 그리고 강철해머 말하지 말랬지. 내가 너랑 게임을 같이했던 게 한이다. 무슨 게임 아이디를 아직도···."

"알았어. 안 할게. 그러니까 이번 회차 거기 티오는 내가 좀 쓸게! 형은 다른 곳에도 인맥이 있잖아? 형이 아는 걔는 거기로 보내면 되잖아?"

"안된다니까 그러네. 내가 봤을 때는 걔한텐 이곳이 딱 맞아. 그리고 왜 그리 우겨. 마지막으로 한번 보여주면 포기하겠다며?"

“아, 형 정말 아까워서 그렇다니까. 이 녀석 전투 감각 포텐이 정말 엄청나! 대형 레이드 커맨더. 아니 제2의 검은 폭풍이 될 수도 있다니까!”

장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검은 폭풍? 그 검은 폭풍?”

“맞아. 낙동강 전선을 지킨 역대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

“검은 폭풍은 보지도 못한 게 어디서. 검은 폭풍은 그냥 헌터가 아니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생각에 잠겨 말을 고르는 장철.

이때 둘을 안내하던 직원이 문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순간 장철을 따라가던 후배가 벌컥 문을 열며 탱커의 위압감을 일으켰다.

약한 몬스터는 단숨에 기절시킬 정도의 각성력!

“얼마나 잘난 놈인지! 한번 보자!”

“야, 뭐 하는 거야!?”

장철이 다급히 후배를 쫓아 방으로 들어갔을 때,

후배와 천문석은 멍청한 얼굴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네가 여기 왜 있냐?”

“그러는 이사님은 여기 왜?”

“나는 아는 형님한테 떼쓰려고···.”

“저는 장철 헌터님이 후배분을 소개해준다고···.”

순간 천문석과 최후식의 시선이 장철에게 향했다.

장철은 문을 닫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최후식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이 무림 던전에 넣겠다는 사람이 여기 있는 천문석이었습니까?”

“맞아.”

순간 최후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이름을 안 말했어요?! 내가 태성 길드에 로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왜 이름을 말해? 무림 던전에 누가 들어갈지는 서로 비밀로 하잖아. 너도 말 안 했잖아?”

“...”

순간 최후식은 말문이 막혔고,

천문석은 어렴풋이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했다.

“혹시 최후식 이사님이 전에 말씀하셨던 그게···?”

최후식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각성 던전. 무림 던전에 추천해주려고 했다.”

“어, 뭐야? 네가 꼭 넣어야 한다는 그 사람이 얘였어?”

“...”

말없이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최후식.

장철과 최후식, 천문석.

세 명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

“아니···. 나는 왜 그 고생을 한 거야···?”

최후식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젓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문석을 보는 최후식.

“그래도 잘됐다. 각성 스팟 중에는 무림 던전이 최고다. 우리나라 대형길드 무공 각성자 상당수가 거기 출신이야.”

최후식은 장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두 여기 장철 형님의 공이지. 거길 발견하고 기반까지 마련한 후에 그냥 넘겼다니까.”

“됐다. 무슨.”

장철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얼굴 봤으니 일어나자. 바쁜 사람 붙잡고 있지 말고.”

“난 아직 볼일이 남았는데.”

최후식이 대답했다.

“볼일이 있다고?”

의아해하는 장철에게,

천문석이 나서서 설명했다.

“아까 통화할 때 말씀드렸던 제 볼일이 여기 최후식 이사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

장철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품에서 봉투를 꺼내 천문석 앞 테이블에 놓았다.

“여기 각성 던전으로 들어갈 장갑 버스 시간이랑 장소. 내일인데 괜찮냐? 혹시 준비할 시간 더 필요하면 좀 늦추고.”

“아닙니다. 마침 타이밍이 딱 좋네요.”

“그럼 그렇게 연락해둘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몸만 오면 된다.”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질문했다.

“혹시 검 한 자루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검? 형태가 어떤데?”

“일반적인 롱소드 형태입니다.”

장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괜찮을 것 같은데. 말해둘게. 가지고 와라.”

“감사합니다.”

장철은 고개만 한번 까닥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런 장철을 최후식이 불 잡았다.

“형. 잠깐만! 그냥 가지 말고 우리 길드장 좀 보고 가.”

“길드장? 내가 너희 길드장을 왜 보러 가?”

"우리 길드장이 경욱이 형이잖아? 형, 김경욱 몰라?"

“아, 경욱이가 너랑 일하고 있었냐?”

“아니. 오리온 길드면 대형길드인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습니까?”

최후식이 어이없어하자,

장철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 오리온 길드에 있는것도 지금 알았다.”

“...하-”

깊은 한숨을 내쉬는 최후식.

“하여튼 와서 경욱이 형 좀 보고 가요.”

"됐어. 길드장 할 정도면 출세했네. 뭘 또 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와서 잔소리 좀 해줘···."

"뭐···?"

"경욱이 형 요새 헝그리정신이 좀 부족한 거 같다니까. 와서 헝그리정신 좀 주입해주고 가."

"헝그리정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길드장한테 헝그리정신을 주입해달라고? 너부터 주입해줄까?"

"아···. 또 왜 그래? 형, 나 최후식입니다."

장철은 피식 웃더니 성큼 다가왔다.

순간 최후식의 목을 휘감은 팔!

“으앗! 갑자기 뭡니까!? 초보 헌터도 보는데! 형 그만 해!?”

탱커 최후식이 각성력을 끌어올려 발버둥을 쳤지만, 장철의 강철같은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후식의 머리로 가까워지는 장철의 주먹!

순간 최후식은 경기를 일으켰다.

“형! 머리는 안됩니다! 절대 안 돼!!”

“아. 미안. 깜빡했다!”

깜짝 놀라 주먹을 멈추고 팔을 풀어주는 장철.

장철은 최후식을 일별하고 천문석을 봤다.

“그럼 일 잘 보고. 자주 연락해라. 아-”

순간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멈춘 장철.

“여기 달콩. 네 이름 여기 회원으로 올려둘 테니까. 언제든 편하게 사용해.”

“네? 회원이요?”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장철은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달콩은 회원제 헌터 카페 겸 주점. 그러니까 일종의 '헌터 클럽'이다. 정보 교류하고 일거리 알선하고 팀도 구성해주는 그런 장소다. 어제 만난 내 친구랑 장민이 지분을 가진 곳이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쓰면 된다.”

“어?! 형 나는?”

최후식이 깜짝 놀라 외치자,

장철은 어이없어하며 단호히 잘랐다.

“돈도 많이 버는 게. 넌 회원권 사라!”

피식 웃은 장철이 룸에서 나갈 때,

최후식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차별 대우라니!”

순간 밖으로 나가던 장철이 우뚝 멈춰섰다.

“...!”

천천히 몸을 돌리는 장철.

장철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어, 어! 아니 형. 그게 아니고.”

최후식이 당황할 때,

굳은 얼굴의 장철이 외쳤다.

“최후식!”

“네!”

바짝 긴장해 부동자세로 벌떡 일어나는 최후식.

장철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외쳤다.

“커피값은 네가 내라.”

“...네?”

최후식이 멍청히 반문하는 순간.

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린 장철이 번개같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아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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