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간단한 키즈 카페 나들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저녁이 다된 시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천문석이 만감이 교차함을 느끼고 한숨을 쉬려 할 때.
한발 앞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
“에휴-”
꼬맹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재밌었지만,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앞장서 계단을 오르는 꼬맹이.
“...”
꼬맹이는 천문석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뭐지. 이 녀석? 이제 사람 마음도 읽나?'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꼬맹이를 따라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옥탑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왜 이리 늦었어? 밥은 먹은 거야?"
류세연이 선풍기 앞 소파, 지정석에 누워 고개만 돌린 채 말했다.
"세연! 나왔어!"
인사를 한 꼬맹이는 구두를 벗어서 정리하고,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성실한 꼬맹이 녀석."
천문석이 감탄할 때,
류세연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그 옷 뭐야!? 면접 보고 온 거야? 어? 꼬맹이도 양복을 입었네?"
양치질을 끝내고 나오는 꼬맹이를 보고 눈을 크게 뜨는 류세연.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갈아입을 옷을 건네주며 말했다.
"특급 헌터. 우리 뭐 했는지 세연이한테 설명해줘라."
"알았어! 나한테 맡겨!"
특급 헌터가 옷을 갈아입으며 류세연에게 설명하는 동안,
천문석도 옷을 갈아입고 씻은 후 청소 도구를 꺼냈다.
잠시 후에 올 손님,
장민 대표를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이때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대화가 들려왔다.
"뭐···. 빙글빙글을 했다고?"
"맞아! 그리고 바나나 우유를 먹었어! 바나나 우유 맛있어!"
"바나나 우유?"
"바나나 우유는 목욕탕 국룰이야!"
"...키즈 카페 간다고 하지 않았어? 목욕탕 갔다 온 거야?"
"아니 모임 갔어! 키즈 카페에서 나오는데! 장민한테 딱 잡혔다니까! 장민은 내가 거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
특급 헌터는 기억에 남은 강렬한 사건 위주로 오늘 하루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간 순서가 엉망인 꼬맹이의 설명에,
류세연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청소 도구를 거실로 옮기며 말했다.
"이따가 러브 시그널 할 시간에 장민 대표님 오실 거다."
"장민 언니가? 꼬맹이 보러 오는 거야?"
"아니. 러브 시그널 보러 오시는 거야."
"뭐?"
꼬맹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외쳤다.
"오늘 이시언이 고백하잖아. 당연히 그거 보러 오는 거지!"
"...뭐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실만을 들은 류세연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됐다.
천문석은 류세연이 이해가 갔다.
때로 현실은 거짓보다 생경한 법!
"이거 받아라."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먼지떨이를 류세연에게 진공청소기를 넘겼다.
"우선 청소부터 하고 밥 먹자."
“...”
세 사람은 손님맞이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떨이로 곳곳의 먼지를 털어내는 꼬맹이.
진공청소기로 떨어진 먼지를 치우는 류세연.
천문석은 물걸레 포로 바닥과 벽을 닦아내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이 사이에 창문을 닦고 텔레비전 냉장고를 정리하는 류세연과 꼬맹이.
천문석과 류세연, 특급 헌터.
세 사람 모두 청소의 베테랑이었다.
청소는 순식간에 끝났다.
"장민 언니 저녁 식사도 같이 하신데? 미리 준비할까?"
류세연은 사용한 청소 도구를 말리기 위해 옥상에 늘어놓으며 물었다.
"아니. 미팅 후 식사 약속 있으시다던데. 아. 후식은 같이 먹자고 하시더라. 직접 준비해서 오신다던데?"
천문석이 대답하는 순간.
땅, 따땅-
무언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천문석과 류세연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씻은 양동이를 가져오다가 떨어뜨린 특급 헌터가 보였다.
특급 헌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외쳤다.
"알바! 내가 가서 수박 사 올게! 장민을 믿으면 안 돼! 분명 우리한테 건강해지는 샐러드 먹일 거라니까!"
"..."
"..."
꼬맹이는 심각한 불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식사 후,
장민 대표를 기다릴 때.
건물 밖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배송 왔습니다!"
"뭐 시킨 거 있어?"
“...”
“...”
류세연의 질문에 천문석과 꼬맹이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옥상에 나타나는 물건들.
커다란 수박과 멜론, 갖가지 과일.
휴지 세트와 세제, 치약과 칫솔, 비누 같은 생필품이 옥탑방 거실에 가득 쌓였다.
모두 장민 대표가 보낸 선물이었다.
그리고 장민 대표가 나타났다.
블랙 롱 드레스.
호텔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나타난 장민 대표.
"세연아. 오랜만이야!"
장민 대표는 성큼 걸어와 세연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 옷 너무 멋져요!"
"세연이 트레이닝복도 잘 어울리는데? 건강한 체육 소녀 같은 느낌이야."
“언니는 파티 참석하는 배우 같아요!”
두 사람은 소녀처럼 손을 잡고 좋아했다.
"제가 편한 옷 빌려드릴까요?"
"그럴까?"
류세연과 장민이 사라진 현관.
천문석과 꼬맹이만 남았다.
꼬맹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데?"
"장민이 맛있는 수박이랑 멜론을 사 왔잖아? 건강한 샐러드가 아니라!"
"그게 이상한 거냐?"
"뭔가, 뭔가···. 이상해···. 불안해···."
천문석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꼬맹이와 함께 장민 대표가 가져온 선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트레이닝복을 입고 소파에 앉은 류세연.
소파 앞 러그에는 천문석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꼬맹이가 두 손을 꼭 쥐고 서 있었다.
꼬맹이는 주방을 힐끗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주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과일 드세요."
세연의 트레이닝복을 빌려 입은 장민 대표가 가지런히 썰린 수박과 멜론, 과일이 담긴 트레이를 가져오고 있었다.
자신이 보낸 선물을 직접 다듬어 가져온 장민.
장민은 거실에 작은 상을 펼치고 그 위에 과일이 담긴 트레이를 놨다.
쏙, 쏙, 쏙-
장민은 작은 포크를 꽂으면서 미소지었다.
"먹으면서 보세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언니. 잘 먹을게요."
장민의 시선이 텔레비전을 보는 꼬맹이에게 향했다.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어?"
두 손을 꼭 쥔 꼬맹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큰일이야! 저기 지금 나오는 남자가 엄청 부자래! 엄청 좋은 자동차가 있어! 이시언은 자동차가 없어서 차일 위기야!"
"자동차가 없어서 차인다고?"
의아해하며 텔레비전을 보는 장민.
텔레비전에서는 젊은 남녀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잠시 후 텔레비전에 떠오르는 로고.
[일화 자동차.]
러브 시그널은 시작도 안 했다.
꼬맹이가 보던 장면은 자동차 광고였다.
"...?"
의아해하는 장민에게,
꼬맹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부연 설명을 했다.
"너무너무 공감돼! 나도 자동차가 없거든!"
"자동차가 없으면 여행도 못 가고 고백도 못 해."
“고백에 실패하면 엄청 슬퍼져!”
“장민 솔로 부대 알아?”
...
뒤죽박죽 엉망인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꼬맹이가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나 자동차 사주면 안 될까?”
"..."
장민이 말없이 자신을 보자,
꼬맹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문석을 봤다.
“알바 그렇지? 내 말 사실이지?”
어이없어하는 장민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맞습니다. 자동차가 없으면 솔로 부대가 돼서 슬퍼집니다!"
천문석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
장민의 시선이 류세연에게로 이동했다.
"맞아. 차가 없으면. 풉···. 미안! 나는 못하겠어. 크크큽-"
류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대답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세연!"
꼬맹이가 다급히 외쳤으나,
이미 상황을 짐작한 장민이 무섭게 미소지으며 꼬맹이와 천문석을 봤다.
"설마, 알바씨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요."
"..."
천문석이 대답을 못 하자,
꼬맹이가 당당히 외쳤다.
"알바는 잘못 없어. 내가 시킨 대로 안 하면 사슴벌레 붙인다고 했거든!"
이렇게 의리 있는 꼬맹이라니!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닙니다! 제가 자동차를 타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고,
감동적인 외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알바!"
"특급 헌터!"
짝, 짜짝, 짝, 짝-
공중에서 현란하게 마주치는 두 사람의 손바닥!
이 모습을 보던 장민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류세연은 어이없어했다.
"야! 특급 헌터! 그 손바닥 마주치는 거 나랑만 해주는 거라며!?"
꼬맹이는 재빨리 텔레비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러브 시그널 시작해!"
이 외침과 동시에 러브 시그널,
젊은 남녀의 달달한 연애 예능이 시작됐다.
천문석과 꼬맹이.
장민과 류세연.
평소 넓게 느껴지던 거실에 자리한 네 사람은,
새콤달콤 시원한 과일을 먹으며 달달한 연애 예능을 봤다.
---
러브 시그널이 끝나고 이를 닦자마자 픽 쓰러져 잠든 꼬맹이와 류세연.
꼬맹이는 키즈 카페와 모임 때문에,
류세연은 신체검사를 받느라 지친 것 같았다.
천문석은 류세연을 주인집 텐트로 옮긴 후,
잠든 꼬맹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어쩐지 세연이가 우리 집 아이랑 비슷한 것 같네요?"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하는 장민.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든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풀고 장민에게 건넸다.
"그 안에 둘이 같이 잠들었을 때 찍은 사진 있습니다. 정말 남매 같던데요?"
장민은 갤러리에서 사진을 확인하고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똑같이 대자로 팔다리를 쫙 펼치고 잠든 류세연과 꼬맹이.
나이 차이가 나는 친한 오누이 같은 모습의 사진이었다.
"이거 제 메일로 보내도 될까요? 인화해서 걸어두고 싶네요."
"네. 괜찮습니다."
장민은 휴대폰의 사진을 전송하고,
천문석의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하는 장민.
"오늘 즐거웠어요. 갑자기 찾아와서 폐가 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집이 좁아서 불편하셨던 건 아닌지···."
"아뇨. 들은 대로 아주 좋은 집이던데요?"
장민은 문득 고개를 들어 계단 위를 봤다.
"산바람도 불어오고, 적당한 크기라 청소할 곳도 적고. 옥상에는 경주장과 나무도 있고. 아주 맘에 들어요."
장민은 꼬맹이가 좋아하던 이유를 하나하나 말하며 웃었다.
“특급 헌터가 왜 집을 바꿨으면 하는지 알겠던데요.”
문득 천문석을 보며 묻는 장민.
“...어때요?”
“네?”
순간 장민은 코를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집이랑 바꾸지 않으실래요?”
장민의 타워 팰리스와 자신의 옥탑방.
농담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주택 취득세만 해도 자신의 통장 잔액을 훌쩍 넘어갈 것이다.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을 농담으로 받았다.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너무 넓어서 청소가 힘들겠더라고요.”
“저런···. 그렇긴 해요.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일이라니까요. 혹시, 생각이 바뀌면 꼭 이야기해주세요.”
장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아쉬운 듯이 말했다.
"네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천문석과 장민은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