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알바! 이따가 봐!"
특급 헌터는 친구들을 찾아 달려나갔다.
천문석과 장철, 노신사 세 사람은 테라스 안쪽 파티션으로 분리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은 장철이 천문석에게 물었다.
“방금 구 씨 남매가 사과하던데···. 혹시 걔네들이랑 무슨 일 있었나?”
"이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대화를 들은 게 문제가 된 것 같네요."
"대화?"
천문석은 자신이 들은 대화를 간단히 설명했다.
“...각성 스팟. 우연히 들은 이 단어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순간 장철의 얼굴이 굳어지고,
노신사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점하라니까. 괜히 공개해서. 쯧- 날파리가 엄청 꼬이네.”
“됐어. 이미 끝난 일이야. 그보다 주위에 듣는 귀 없냐?”
장철의 질문에 노신사는 손가락으로 주위를 쓱 훑었다.
우우웅-
순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진동!
노신사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마력장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마력 각성자!'
노신사는 마력 각성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마력 각성자!
천문석의 놀람을 눈치챘는지,
노신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 엄청 센 마력 각성자야.”
"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그놈의 자랑질은."
장철이 못마땅한 듯이 말하자,
노신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야! 너랑 나랑 동갑이거든?"
"아무도 그렇게 안 보거든?"
장철과 노신사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겉모습과 달리,
진짜 친한 듯 쉴새 없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이때 주위를 훑던 노신사의 시선이 하늘에서 멈췄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소리도 차단했고, 형체도 뭉개져 보일 거야. 하늘은 한 30분 여유 있는데. 어떻게 할까? 그냥 지금 떨어뜨릴까?”
"뭘 떨어뜨려? ...인공위성?"
"어. 한 40분쯤 있다가 여기 지나가겠다. 지금 하면 눈치 못 챌 것 같은데. 슬쩍 떨어뜨릴까?"
노신사가 시계를 살피며 진지하게 말하자,
장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아! 인공위성을 왜 떨어뜨려!? 전에도 너 때문에 나까지 입국 금지 먹었잖아!”
“입국 금지? 너 미국에 갔었냐? 설마···. 아직도 1차 게이트 사태 재현하는 던전 찾아다니는 거야?”
순간 장철의 얼굴이 굳어지고,
노신사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됐어. 40분이면 충분해.”
장철은 못 들은 척 말하고 천문석을 봤다.
"우선 이 겉늙은 녀석부터 소개할게. 이 녀석. 재금 그룹 박혁이다. 너 직책이 어떻게 되지?"
노신사 박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툭- 내뱉듯이 말했다.
"이사."
"좀 성의있게 설명해라."
"본사 이사. 이사회 12인 중 1인. 재금 그룹 모체인 재금 공업사 창립 멤버···."
"...!"
테라스에 모여있던 남녀가 말하던 모임에 온다던 재금 그룹 12인회의 이사.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을 움직이는 브레인,
12인의 이사 중 한 명!
오늘 만난 모든 사람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
하하하-
박혁은 천문석의 놀란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봤냐? 저 깜짝 놀란 얼굴.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너랑 특급 헌터는 날 너무 막 대하는 경향이 있어!"
박혁이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장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 공업사 창립 멤버는 아니지 않냐? 마탄 개발한 후에 입사했잖아? 그것도 처음에는 산업 스파이···."
"야! 그만, 그만해! 재금 공업사 창립 후 입사. 됐냐?"
박혁이 정정하자,
장철은 피식 웃으며 천문석을 가리켰다.
"이쪽은 천문석. 우리집 꼬맹이 은인이다."
"천문석입니다."
천문석이 인사를 하자,
박혁이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특급 헌터 은인이면 당연히 나한테도 은인이지.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교환하는 천문석과 박혁.
천문석은 휴대폰에 찍힌 박혁의 전화번호를 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본사 이사의 개인 연락처라니···.
이런 사람과 연락처를 교환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때 장철이 컨벤션 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랑 이 녀석 봤다는 거 장민한테는 비밀로 해줘. 이 녀석이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쯧- 같이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미친놈아! 너 때문이잖아!"
장철은 항의하는 박혁을 무시하고 천문석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주겠다는 선물은 '각성'이다. 몇몇 사람만 아는 건데···. 사실 '인위적인 각성'이 가능하다.”
"인위적인···? 각성이 인위적으로 가능한 겁니까!?"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각성 스팟!?”
“맞아. 인위적인 각성을 할수 있는 장소를 그렇게 부른다. 음···.”
장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공룡 산란장, 재의 숲, 검산도림···. 인위적인 각성이 가능한 '던전'들이 있다. 이런 던전을 각성 스팟이라고 한다.”
“...”
"이 사실은 몇몇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다. 그래서 일화 그룹 구세경, 구세창이 이 비밀을 아는지 너를 시험했던 거다."
이때 박혁이 끼어들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이제는 비밀도 아니던데?"
"그러게 말야. 이걸 우연히라도 듣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장철은 심각한 얼굴로 천문석을 봤다.
"이걸 비밀로 한 이유가 있는데. 소문이 너무 많이 퍼졌어. 각성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장철은 자신과 옆에 앉은 박철을 번갈아 가리켰다.
40대로 보이는 장철.
60대로 보이는 박혁.
겉모습과 달리 두 사람은 동갑인 친구라고 했다.
"...?"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장철이 박혁을 가리켰다.
"이 녀석은 원래 겉늙었어. 20년 전에도 이 얼굴이었어."
“너도 똑같잖아!”
순간 버럭 화를 내는 박혁.
천문석은 장철이 말하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각성은 신체 노화마저 늦추고 때로 역행한다.
젊음!
인위적인 각성을 통해서,
다시 젊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일으킬 파장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젊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수백, 수천억의 재산을 쏟아부을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아니 정치인이나 재력가, 절박한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로 각성을 원할 것이다.
각성하기 위해서 마석을 삼키는 사람이 매년 수만 명이 넘지 않던가!
장철은 천문석의 표정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는 이유로, 엄격히 비밀을 유지했었다."
"이런 게 비밀 유지가 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은 비밀유지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인위적인 각성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소문이 퍼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
노화를 역행하는 고위 각성자가 나오고,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폭로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정보기관, 재벌 그룹, 대형 길드 같은 정보에 민감한 쪽에서는 이런 특급 정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장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암묵적 합의였다."
"암묵적 합의요?"
"각성 헌터는 어느 나라건 필요했거든. 혹시 동남아 쪽 신문에서 마석을 먹고 각성했다는 기사 본 적 있느냐?"
"설마···?"
"맞아. 그것도 각성 스팟의 일종이다. 아마 우리나라 공룡 산란장이란 비슷한 종류의 각성 던전일 거야."
"..."
“이 각성 던전은 처음에는 헌터로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각성시키는 용도였다. 뛰어난 헌터는 언제나 부족했으니까 말야."
천문석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각성은 랜덤으로 되는 로또라고 생각했는데···.
전 세계에 각성 스팟, 인위적인 각성이 가능한 던전이 있었다니!
이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권력자들이 이걸 그냥 놔뒀을 리 없는데?
"...정치권에서 이걸 그냥 놔뒀습니까?"
천문석의 질문에,
쓴웃음을 짓는 장철.
박혁이 고개를 까딱이더니 대답했다.
"이 각성 스팟을 이용한 각성에는 리스크가 있거든."
"리스크요?"
"아까 일화 그룹 남매 봤지? 술에 쩔어 있는 모습."
"혹시, 그 모습이?"
장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구세경, 구세창 두 사람은 각성하면서 체질이 완전히 변한 거다."
'그 정도면 괜찮은데···?'
천문석이 내심 생각할 때,
장철의 말이 이어졌다.
"저 정도는 양호한 거야. 간혹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격이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폭력성. 공황 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어···."
'아니, 그런 위험한 걸 선물이라고 주려는 거야?'
장철은 천문석의 어이없어하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내가 소개해줄 각성 던전은 그런 위험이 거의 없다."
"네? 그럼···?"
이때 박혁이 장철을 가리켰다.
"장철 이 녀석. 1차 게이트 사태 때부터, 정말 미친듯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녔거든. 그때 부작용이 없는 각성 던전을 발견한 거다."
박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 미친놈이. 그런 엄청난 '각성 던전'을 발견하고 기반까지 만들어 놓고는. 운영권을 그냥 넘겼어. 돈 받고 자리를 팔았으면! 쯧쯧쯧-"
"됐어. 난 장사꾼이 아니다. 그리고 괜찮은 헌터가 많이 생겼어. 너도 경석이 알잖아?"
"...암살검이야 쓸만한 각성 헌터지. 그렇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 봐라."
박혁은 천문석을 가리켰다.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들을 정도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봐야 한다. 이러다가 '부작용 없는 각성 던전'의 존재가 밝혀지면, 곧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올 거다.”
“...”
“네 동생이 어지간한 압박은 다 막아낼 수 있겠지만 절박한 사람들이 매달리면 어떡할래?"
천문석은 박혁이 말하려는 걸 이해했다.
부당한 압박은 버텨내도,
인정에 호소하는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한번 예외를 두면 각자의 사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 거다.
"원래 목적을 벗어나면 내 손으로 직접 폐쇄할 거다."
장철은 단호히 말하고 천문석을 봤다.
"내가 주는 선물은 이 각성 던전의 한 자리다. 여기에 들어가면 아주 높은 확률로 각성할 수 있다. 어떻게 할래? 선물 받을 거냐?"
천문석은 생각에 잠겼다.
'인위적인 각성.'
심법에 입문하기 전이라면 바로 받아들였을 거다.
그러나 이미 심법에 입문했고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게다가 기연을 만나 무공 수련에 탄력이 붙은 상황.
각성은 오러 능력, 초능력, 마력 같은 다양한 이능을 준다.
그러나 이미 무공을 익히고 있는데,
굳이 인위적인 각성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자신의 장래 희망은 건물주,
지금 익히고 있는 무공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천문석은 장철의 선물을 거절하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질문했다.
"그런데 그 각성 던전 이름이 뭔가요?"
"아···. 이런 중요한 걸 빼놨네. 너 무협지 좀 봤냐?"
"네?"
뜬금없는 질문에 반문하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이 던전 무공 계열 각성 스팟인 데, 보통 '무림 던전'이라고 부른다."
장철은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 던전 안에는 무협지처럼 무림이 있다. 구파일방과 무림맹도 있고···. 좀 특이한 게 마교는 없는데 마도 18문이라고 비슷한 단체가 있다."
”...“
"들어가면 깜짝 놀랄 거다. 이 던전, 이름 그대로 무림. 무협지 속 세상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