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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화 (105/1,336)

#104

“제가 소개해드릴 만한 분들은 모두 소개한 것 같네요.”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부드러운 손길이 팔에 닿는다.

장민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천문석의 팔에 손을 올리고 걷기 시작했다.

천문석과 장민 대표는 홀 안을 천천히 걸었다.

"음···. 연예계 사람들도 온 거 같은데. 소개해드릴까요?"

문득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묻는 장민 대표.

"아뇨. 괜찮습니다."

"하긴···. 세연이가 있으니 그렇죠?"

장민 대표는 반짝이는 눈으로 천문석을 보며 짓궂게 미소지었다.

“세연이는 조카 같은 아이입니다.”

“정말로요!?”

보여주듯 과장되게 깜짝 놀라는 장민 대표.

천문석은 장민 대표의 시선을 피해 주위를 살폈다.

홀 안에 가득 모인 사람들.

4, 50대, 사회에서 기반을 잡은 장년층.

10대 후반에서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까지.

여러 세대가 이 홀에 같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중장년층의 손에 이끌려 다니며 인사를 하는 20대와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감이 왔다.

이 모임은 2세 혹은 3세에게 인맥을 이어주기 위한 고위층의 사교 모임이었다.

그리고 장민 대표는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최상위층 사람을 골라 자신에게 소개해 줬다.

얼핏 지나가며 보니 자신이 소개받았던 사람들에게,

말 한번 붙여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의 장막을 뚫고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당연했다.

저 정도 위치의 사람들은 쉽게 안면을 트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보통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안면을 트고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누군가를 ‘소개’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보증한다는 의미.

장민 대표가 저 사람들에게 천문석을 소개한 것은.

천문석을 자신이 보증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같았다.

이런 소개는 자신의 이름과 안목을 걸고 하는 소개이기에 소개자에게도 부담이 있었다.

사실 미래의 적당한 건물주를 꿈꾸는 자신에게는 좀 큰 호의였다.

건물주가 법사위원장, 주한미국대사관 차석을 알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아니 부담스럽게. 뭐 이런 호의를···.'

천문석이 내심 난감해할 때,

장민 대표의 느긋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어떤 모임인지 감을 잡으셨나 보네요?"

장민 대표는 눈을 반짝이며 천문석을 보고 있었다.

"...네. 그런데 제게 왜 이런 기회를."

장민은 손을 들어 컨벤션 홀 구석을 가리켰다.

소파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눈에 잘 띄는 건 소파 등받이에 앉아 있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 꼬맹이는 신나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아이는 이런 모임보다 사슴벌레를 좋아해서요."

"네?"

천문석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자.

장민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참 아쉬웠어요. 소개를 받기만 하고 소개를 못 해서요. 그런 면에서 오늘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별로 고마워하실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천문석의 난감해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장민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소개해달라는 청탁은 많이 받았는데. 그런 시큰둥한 반응은 처음이네요."

"그게 아니라···."

천문석이 변명하려 할 때,

장민 대표의 탄성이 터졌다.

“이런···. 일화 그룹에서도 왔었네요.”

천문석의 시선이 장민의 시선을 따라 컨벤션 홀 한쪽으로 향했다.

바 형태로 꾸며진 곳,

술을 마시는 젊은 두 남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검은 정장과 붉은 드레스 차림.

그러나 두 사람은 인맥을 트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두 사람.

이때 들려오는 장민의 목소리.

“아쉽네요. 벌써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제가 소개하기는 무리겠네요. 각성몽을 이상한 걸 꿔서는···. 장철이 와서 문석 씨를 소개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오빠는 이런 모임은 워낙 질색해서···.”

장민이 크게 아쉬워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장민 대표님!"

등 뒤로 젊은 남녀를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장민에게 다급히 다가오고 있었다.

장민은 천문석에게 고개를 돌리며 낮게 속삭였다.

"이제 일할 시간이네요. 전 일을 처리할 테니. 이제 편하게 파티 즐겨주세요."

장민은 천문석의 팔을 놓고 앞으로 걸어갔다.

"김 대표님 오랜만이군요. 뒤에 청년은?"

"...제 아들입니다. 김석기라고 이번에 대형 길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소개를 받는 장민 대표.

천문석은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고 특급 헌터가 있는 소파로 재빨리 걸어갔다.

---

“야. 뭐하냐?”

"앗! 알바 왔어!?"

소파 등받이에 앉아 주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던 특급 헌터가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분이! 내가 말한 알바님이야!"

천문석을 가리키며 존칭으로 외치는 특급 헌터.

순간 사방에서 선망의 시선이 쏟아졌다.

"...너 얘들한테 뭐라고 했냐?"

왠지 모를 불안감에 천문석이 묻자,

특급 헌터는 천문석의 빡빡이 머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소림사 헌터!"

"...뭐?"

주먹을 흔들며 잇달아 외치는 특급 헌터.

"알바는 소림사 헌터야!"

"여기 빡빡이 머리 보이지?!"

"원래 소림사 헌터는!"

“이렇게 머리를 '빡빡' 밀어!”

“그게 국룰이야!”

"뭐 국룰?! 너 무슨 소리를···!"

천문석이 당황하는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꼬맹이들의 목소리.

"진짜인가 봐?!"

"맞아! 저 사람만 머리가 빡빡이잖아!"

...

주위를 휙휙 돌아보며 납득한 표정이 되어가는 꼬맹이들.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특급 헌터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외칠 때,

한 꼬맹이가 튀어나와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구라라니까! 너 저번에도 랩터 사이로 자동차 몰았다고 구라쳤잖아."

"진짜라니까! 나 그때 엉덩이 맞은 거 보여줄까!?"

말하는 순간 바지를 내리려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재빨리 바지를 잡고 말했다.

"야. 그때 멍, 지금이면 다 지워졌지!"

"아···. 그렇지."

"역시 구라쟁이라니까."

피식 웃는 얄미운 꼬맹이.

"정말이라니까! 증거도 있어!"

특급 헌터의 뜨거운 눈이 천문석을 향했다.

"알바 그거 보여줘!"

"뭘 보여줘···?"

"그거 있잖아! 자전거 다리 사이에 끼우고 개구리처럼 탁탁탁- 뛰던 거!"

특급 헌터는 주위를 살피더니 재빨리 달려가 작은 의자를 끌고 왔다.

"이걸로 하면 돼! 알바! 소림사 헌터의 무공을 보여줘!"

순간 너무나 반짝이는 시선들이 모인다.

두근, 두근-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아이들의 기대 어린 시선!

천문석은 힐끗 주위를 살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을 주시하는 어른들도 보인다.

“알바! 빨리해줘!”

“...”

특급 헌터가 다시금 외쳤지만,

차마 이곳에서 의자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개구리처럼 뛸 수가 없었다.

이때 얄미운 꼬맹이가 다시 나섰다.

"저거 봐! 못하잖아? 또 구라 친 거라니까!"

아이들 눈에 실망이 생겨날 때.

특급 헌터는 크게 외쳤다.

“그럴 리 없어! 알바 엄청 엄청 대단하다니까! 종일 선풍기 앞에서 데굴데굴하고! 목욕탕에서 어푸어푸 헤엄도 잘 치고! 앙꼬 머리에 사탕도 꽂고···.”

특급 헌터의 폭로가 이어지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움직였다.

얄밉게 말하던 꼬맹이를 내력이 담긴 손으로 슬쩍 잡아당기는 천문석.

"앗!"

꼬맹이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공중으로 번쩍 들린 얄미운 꼬맹이.

빙글, 빙글, 빙글-

얄미운 꼬맹이는 순식간에 공중에서 수십 번을 돌았다.

그리고 툭- 바닥에 내려진 순간.

"으아, 으아아아-"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픽 쓰러졌다.

순간 특급 헌터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봤지! 이게 바로 소림사 헌터의 무공이야! 이거 당하면 어지러워서 바로 쓰러져! 아까 키즈 카페에서도 애들 엄청 많이 당했어! 이 만큼이나 쓰러졌어!"

두 손을 활짝 펼치는 특급 헌터.

아이들의 존경 어린 눈빛과 환호성이 쏟아졌다.

"우와아- 진짠가 봐!"

"엄청 빨리 돌았어!"

"머리를 빡빡 깎은 게! 소림사 헌터라서구나!"

"어쩐지 처음 볼때부터 뭔가 대단하긴 했어!"

...

"..."

뭐지, 이게 뭐가 대단한 거지?

천문석이 혼란스러워할 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알바. 이제 나도 해줘."

"뭐?"

"빙글빙글- 해줘야지! 내가 1번!"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외치는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들.

“난 2번!”

“나도! 나도!”

“난 4번이야!

...

특급 헌터 뒤로 순식간에 긴 줄을 만들었다.

"..."

---

'악마 꼬맹이들!'

천문석은 분통을 터트렸다.

한번 빙글빙글을 해주면,

꼬맹이들은 맨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섰다.

줄어들지 않는 줄!

천문석은 팔이 저릴 때까지 아이들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때 멀리서 들려오는 특급 헌터와 꼬맹이들의 외침!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어딨지!?”

“여긴 없어!”

“화장실로 가보자!”

“모두 잡으러 가자!”

...

우와아-

아이들이 사라진 순간.

커튼 뒤에 숨어있던 천문석은 재빨리 커튼을 쳐서 문을 가리고 테라스로 빠져나왔다.

휘이이-

테라스 난간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숨 돌릴 때 얼핏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재금 그룹. 이사가···."

"12인회···. 헛소문···."

‘재금 그룹? 12인회?’

흥미로운 단어가 들려오자,

천문석은 내력을 운용해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집중했다.

넓은 테라스 안쪽 음식이 놓인 테이블 주위에 십여 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있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는 거 맞을걸? 장강 유통, 장민 대표도 왔잖아?"

"장강 유통이 재금 그룹 초창기 협력업체여도. 12인회 이사는 과한데?"

"장민 대표 오빠 장철이 게이트 전쟁 때 재금 그룹 핵심부랑 친분을 맺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것 때문 아닐까?"

"핵심부? 12인회?"

“설마. 그런 졸부가 재금 그룹 핵심부, 12인회 이사랑 친분이 있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쩐지 비웃음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사람들에게서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목소리 낮춰!"

"장민 대표, 여기 직접 왔어!"

"그쪽 인맥 어떤지 몰라?”

“됐어. 난 게이트 전쟁으로 운 좋게 대박 난 졸부들이랑 어울릴 생각은 없다.”

오만하게 말하고 단숨에 술을 들이켜는 남자.

"그보다 로롤로 가문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뭐 들은 거 없어? 무슨 코스틴이라는 직계가 왔다고 하던데."

"헛소문 아냐? 로롤로 가문은 미국 W.S 인더스트리 사에 공들이고 있잖아. 나이트 아머 수입 때문에."

"로롤로 가문은 라이센스 문제로 재금 그룹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

"그렇지. 미국이라면 몰라도 한국에 올 리는 없지. 당장 재금 그룹이 압력을 넣을걸."

"W.S. 인더스트리 최상부가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설마."

잠시 말이 끊기고 침묵이 자리했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재금 그룹 - 장민 대표 - W.S. 인더스트리 - 로롤로 가문.]

단편적인 사실들만 들었지만, 구도를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핵심은 재금 그룹과 W.S.인더스트리 모두와 관련이 있는 장민 대표,

한국과 미국의 두 초거대기업.

장민 대표, 로롤로 가문.

넷이 만나는 구도가 그려진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구도일 뿐.

중요한 것은 '왜?'다.

한국과 미국의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과 W.S. 인더스트리는 왜 만날까?’

순간 얼마전 일어난 ‘사건’이 떠오른다.

최초의 게이트 소멸!

서울 사태,

동대문 게이트 소멸!

이때 누군가 천문석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탄성을 터트렸다.

"...서울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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