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7화 (98/1,336)

#097

눈을 뜬 순간 보이는 낯선 천장.

이 순간 머리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뼈 도끼!"

외치는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눈앞에 튀어나오는 새하얀 뼈 도끼.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자신이 로프를 묶어 장벽 위로 던졌던 그 뼈 도끼였다!

"이게 왜?"

"나다."

말하자마자 나타나는 너무나 익숙한 얼굴.

철수형.

새하얀 뼈 도끼를 천문석에게 건네준 김철수는 씨익 웃으며 뒤를 향해 말했다.

"제가 맞았죠? 자 빨리 내기 돈 주세요."

"하아- 이런 자본주의 헌터들 같으니라고.'

어이없어하며 지갑을 꺼내는 낯익은 사람.

장갑 SUV를 타고 달려 나왔던 보안관이었다.

보안관은 목에 보호구를 차고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을 느꼈는지,

보안관은 자신의 목에 찬 보호구를 가리켰다.

"이거 규정이라서 하는 거다. 좀 뻐근하기만 하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보안관이 묻는 순간,

주위를 둘러본 천문석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고산 마을.

그리고 뒤이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

장벽 밖에 버려둔 화물차!

배송 의뢰의 화물인 금속상자!

뼈 도끼를 들고 도망치던 오크!

...

이때 천문석의 표정을 보던 김철수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화물차는 장벽 안으로 옮겼고."

"금속상자. 우리가 배송한 화물은 재금 보안 사람들이 인수해 갔다."

"그리고 이것도 내가 수거했다."

원래의 새하얗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까맣게 탄 뼈 도끼가 나타났다.

김철수는 뼈 도끼를 천문석에게 건네며 눈을 반짝였다.

"재금 보안 사람들이 이거는 깜빡했더라고. 내가 필드 샅샅이 뒤져서 챙겨왔다."

"...!"

순간 천문석과 김철수의 눈이 마주쳤다.

이심전심!

카캬카-

크크크-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

보안관도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을 때.

펄럭-

김철수는 하얀 종이를 꺼내서 흔들었다.

"그리고 여기 화물 인수증. 우리 배송 의뢰도 끝났다."

"우리 등수는 어떻게 됐나요?"

천문석이 기대를 담아 묻는 순간,

김철수가 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3등이란다."

"네!?"

천문석은 생각도 못 한 이야기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니 쉬지 않고 밤새 달렸는데! 우리가 3등이라고요!?"

깊은 한숨을 내쉬는 김철수.

"한국 사람들. 완전 경쟁에 미쳤어···. 2등 한 사람들은 대형 길드를 고용해서 장갑 버스로 밀고 달렸다더라. 우리보다 30분 일찍 들어왔대."

"아니 이거 의뢰금액이 대형 길드 고용비 5%도 안 될 텐데···. 이런 미친놈들···."

“다행히 걔네들은 실격처리됐다.”

“그럼 우리가···. 어?”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분명 우리는 3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1등은?

천문석은 바로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그럼 1등은요?"

김철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등은 3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더라."

천문석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3시간요?"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3시간."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해요?"

"3시간도 실제 이동시간은 30분이고 2시간 30분은 빈둥거리는 걸 기다린 거래."

"...네?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천문석에게 김철수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을 말했다.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가 나섰단다."

"이런 미친!"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렇지 미쳤지!”

보호구를 찬 채 고개를 끄덕이는 보안관.

천문석과 김철수, 보안관 세 사람 모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됐다.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는 알려진 것만 세 가지 초능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각성자였다.

'염동력, 공간이동, 텔레파시.'

그것도 각각의 능력이 모두 10등급을 넘어가는, 규격 외의 초능력 계통 각성자!

뽀미가 몸길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마수 23마리를 공처럼 하늘에서 굴리던 모습은 유튜브 조회 수 20억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놀라운 것은 뽀미를 움직였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뽀미를···."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짐작조차 안 됐다.

천문석의 표정을 본 김철수와 보안관이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과 똑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는 종일 국민대 곳곳에서 빈둥거리는 게 일상인.

'고양이'였으니까.

각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말 그대로 초능력 계통 각성자 중 한국 랭킹 1위,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는 '고양이'였다.

"뽀미를 어떻게 게이트 너머로 데려온 거래요? 아니 그리고 일정한 위치로 순간 이동은 어떻게···."

천문석의 질문에 김철수는 보안관에게 휴대폰을 빌려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 속에는 고양이 분장을 한 사람이 축 늘어져 하품하는 삼색 고양이 앞에 지도를 펼치고 엎드려 있었다.

축 늘어진 흔한 삼색 고양이가 뽀미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울음소리.

냐, 냐, 냐아아아옹-

"...!"

고양이 분장을 한 사람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자,

늘어져 있던 삼색 고양이, 뽀미가 귀찮은 듯이 꼬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그리고 고양이 분장을 한 사람 위에서 나타나는 뽀미.

다음 순간, 고양이 분장을 한 사람과 뽀미가 같이 사라졌다!

순간 이동!

딜레이, 전조 현상이 없기로 유명한 뽀미의 순간 이동이다!

천문석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사람 설마!?"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이 테이머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냥 동물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야. 마수 테이밍하다가 사고가 나서 헌터 라이센스 정지된 사람이다. 하- 그런데 저게 뽀미한테 통할 줄이야···."

김철수가 말을 이었다.

"이 사람 뽀미한테 츄르 100kg 바쳤다더라. 지금 국민대 인근 지역 난리다. 갑자기···."

천문석은 머리가 띵 했다.

10등급 순간 이동 초능력자,

뽀미와 배송 경쟁을 했다니!

처음부터 이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수십 년 동안 국민대에서 빈둥거리던 뽀미가!

왜!? 배송 경주에 뛰어든단 말인가?!

이런 개연성 없는 전개라니!!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릴 때,

김철수가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이 사람 구속까지 됐다."

"네, 구속이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뽀미 좋아하는 사람들 엄청 많잖아? 이번 서울 사태 때도 국민대 인근 지역은 뽀미 덕분에 몬스터 피해가 전혀 없기도 했고."

"그건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뽀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어···!?"

철수형의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예상이 됐다.

상급 헌터 한 명의 일주일 고용비가 억대에 달한다.

그런데 뽀미는 혼자서 대형 길드 3, 4개 이상의 일을 해내면서도,

원하는 것은 츄르와 개박하, 개다래 나무 약간과 가끔 꾹꾹이를 해주면 끝이다.

극한의 효율!

아마도 안정화 권역이 아닌 지역에서 더 난리가 났을 거다.

뽀미만 모셔갈 수 있으면,

마수와 몬스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안정화 권역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안정화 권역 밖이 난리가 났겠네요?”

김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안정화 권역 바깥쪽 지자체장들이 10억, 20억씩 부르고 난리가 났어. 처음에는 그 테이머도 좋았지.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서 100억엔 불렀다."

“1000억?!”

천문석이 경악한 순간,

보안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인도에서 한화 2000억 부르고. 중동 어느 국가에서 한화 1조 부르면서···. 아주 개판이 됐어."

잇달아 등장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

1조!

이 정도 숫자가 걸리면 사람들의 이성은 마비된다.

보안관의 개판이라는 말은 순화한 표현일 것이다.

아마도 엄청난 난장판이 벌어졌을 거다.

이때 구속됐다는 말이 떠올랐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혹시 그 구속 스스로 요청한 건가요?"

"맞아. 액수가 이 정도로 커지니까. 이 테이머를 납치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거든."

당연한 일이다.

규격 외의 초능력 각성자인 뽀미는 건들 수 없지만, 만만해 보이는 테이머는 달랐다.

1조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혹한 수많은 사람이 몰려갔을 거다.

"테이머는 스스로 유치장에 들어갔고, 뽀미는 여전히 국민대에서 빈둥거린다."

보안관에 이은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재금 그룹에서는 1등은 뽀미라고 발표했어."

하아-

하아-

순간 천문석과 김철수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에 터져 나왔다.

처음 생각과 달리 빡세게 진행된,

이세계 쿠팡맨의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다니!

재금 그룹 협력업체 자리를 걸고 진행된 배송 경주의 1등은.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로 결정 났다.

'아니···. 뭐 결과가 이따위야!?'

---

어이없는 결과에 천문석과 김철수가 잇달아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너희들 뭐하냐?"

고개를 들자 벽에 기대 서 있는 하얀 로브를 걸친 여자가 보였다.

기척 없이 유령처럼 나타난 여자!

천문석이 깜짝 놀라 일어서려는 순간,

김철수가 재빨리 인사를 했다.

"추이린. 재금 연구소 수석 연구원님.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닥이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추이린.

김철수의 말을 들은 천문석은 추이린의 정체를 기억해 냈다.

'하얀 번개, 추이린!'

오리온 길드 장갑 버스를 타고 광화문 게이트를 지나갈 때 얼핏 들었던 이름이었다.

순간 천문석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하얀 섬광을 맞고,

검게 타들어 간 뼈 도끼.

하얀 번개, 추이린.

천문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도망치던 오크를 직격한 하얀 섬광은 추이린이 떨어뜨린 것이다!

휙-

순간 무언가가 날아왔다.

천문석은 본능적으로 쳐내려다가 추이린이 던진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잡았다.

손안에 꽉 들어차는 돌.

순간.

두근, 두근, 두근-

심장 고동 소리가 빨라지고,

미약한 열기가 가슴속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느낌이 드는 돌,

마스터 급 오크의 마석이다!

"이건 오크의···!?"

추이린은 고개를 한번 까닥였다.

"네가 상대한 오크 마석이다. 운이 좋았어. 상급 마석이 나왔다."

오크와 격렬하게 싸웠지만, 마무리를 짓지는 못했다.

도망치는 오크를 끝장낸 것은 추이린.

'이런 경우에는 배분이 어떻게 되지?'

천문석은 그냥 직설적으로 의문을 물었다.

"이런 경우에 배분은 어떻게···."

"난 됐다. 그보다 몸은 괜찮냐?"

추이린의 됐다는 말에 기뻐하던 천문석은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오크와 근접 박투로 싸우며 몸 내부가 오러에 헤집어졌다!

그때 감각으로는 전치 3개월은 나올 것 같았는데···.

천문석은 바로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어디 한두 군데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팔, 다리, 허리, 등.

근육 곳곳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고,

뼈마디가 삐걱거리지만 부러진 곳도 금 간 곳도 없었다.

몸 상태가 전투 직후보다 많이 좋아졌다.

"네. 괜찮습니다.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나요?"

"전투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상급 포션 썼다. 너 지금 포션 쇼크 끝나고 일어난 거야. 오러에 당한 상처는 상급 포션에도 잘 안 나으니까 당분간은···."

'상급 포션!'

이 단어를 듣는 순간 ,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재금 그룹 사람이 쓴 상급 포션이면 당연히 재금 제약 제품일 거다.

포션 중 가장 비싼,

재금 제약 포션을 사용했다고!?

'아니, 이거 가격이 얼마야!?'

천문석의 표정을 살피던 김철수가 재빨리 말했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님이 상급 포션 가격 안 받기로 하셨어. 아주 그냥 통이 엄청···."

순간 추이린이 손을 들어 올렸다.

김철수가 말을 멈추고 바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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