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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화 (97/1,336)

#096

고산 마을 장벽 앞 비포장도로.

수많은 헌터들이 전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 흩어진 몬스터와 마수의 사체를 땅에 그려놓은 구획에 옮기는 헌터들.

수습 보안관이 이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문득 한 헌터가 수습 보안관에게 물었다.

"이거 한 300마리는 될 거 같은데?"

"그쯤 될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이는 수습 보안관.

"배분은 어떻게 될 거 같아?"

"글쎄. 마탄으로 잡으면 마석이 손상될 가능성이 커서···."

수습 보안관은 구획에 쌓이는 몬스터와 마수, 주위에 있는 헌터들과 장벽을 살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주위 헌터들의 시선이 수습 보안관에게 모였다.

"보안관님이 결정하시겠지만. 당연히 재금 보안 사람들이야 배분에 참여 안 할 테고···."

"그러면···?"

수습 보안관에게 기대 어린 눈빛이 쏟아졌다.

"300마리 중 20% 정도 마석이 나오면 60개. 개당 평균 500만원 잡으면 총 3억원. 마수가 많으니 여기에 부산물 가격 합치면······. 한 5억쯤? 그러면···."

수습 보안관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전투에 참여한 헌터들의 수는 대략 50여 명,

그럼 대충 인당 1000만원씩 돌아간다.

"한 명당 1000만원이요!?"

한 헌터의 기대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헌터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 1000만원?"

"최대로 잡아서 1000이지. 부산물 회수 작업 비용. 하루 공친 것 생각하면···."

"넌 마탄 얼마나 썼냐?"

"20발 탄창. 5개 썼더라."

"얼마짜린데?"

"발당 5만원."

"...너는?"

"난 탄창 2개."

"하- 새끼 날로 먹었네."

"발당 15만원짜리 마탄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헌터들의 탄식.

"아니 인간적으로 마탄 값은 보상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한 헌터가 크게 외치자,

수습 보안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알잖아? 마탄 값은 라이센스 때문에 어떻게 건들 수가 없어. 아마 정부에서 세금은 좀 감면해 줄 거야. 헌터 포인트도 좀 줄 테고."

"하아···."

"이번에도 이러네. 젠장."

...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헌터가 가져갈 배분액은 대략 300-1000만원.

공적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겠지만 마탄 값을 빼면, 베테랑 헌터에게는 큰 이득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마석은 면세니까. 부산품 거래세나 조금 깎아 주겠네···."

"그놈의 헌터 포인트. 내가 길드를 만들 것도 아니고 헌터 포인트 쌓아서 뭐 한다고."

“그러게 말야. 헌터 포인트로 마탄이나 살 수 있으면 좋겠네···.”

"빌어먹을 마탄 값! 더럽게 비싼 마탄 값!"

"미친놈들. 마탄 값이나 좀 깎아주지!"

...

그러나 헌터들의 한탄은 길지 않았다.

재금 보안의 보안 요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응급처치가 끝난 기절한 헌터와 전신이 타들어 간 오크 사체를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었다.

재금 그룹의 계열사 직원 앞에서 재금 그룹을 욕할 간 큰 헌터는 없었다.

시끄럽던 전장 곳곳이 재금 보안 사람이 지나가는 순간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전장,

한 헌터가 까맣게 타들어 간 오크 사체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마스터 급 오크와 한 헌터의 피가 끓는 근접 전투!

손에 땀을 쥐고 이 전투를 봤다.

오크의 엄청난 투지에 강철방패가 쪼개진 순간.

헌터는 맨주먹으로 오크와 맞섰다!

맨주먹으로 마스터 급 오크와 대등하게 싸우다니!

믿기지 않는 광경,

믿기지 않는 전투가 이어졌고.

헌터는 기어이 맨주먹으로 마스터 급 오크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장벽 위 가슴 졸이며 전투를 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 번개!

하얀 번개가 도망치던 마스터 급 오크를 숯 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

헌터는 복잡한 눈으로 기절한 헌터가 들어가는 장벽 입구를 봤다.

장벽 입구에는 마력 각성자, 하얀 번개 추이린이 있었다.

추이린이 도망치는 오크를 숯 더미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헌터는 문득 오래전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검을 쓰는 헌터와 창을 쓰는 헌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답은 ‘두 헌터가 싸우는 동안, 준비를 끝낸 마력 각성자가 이긴다.’ 였다.]

자조적인 우스갯거리지만,

이건 현실을 반영한 농담이었다.

일반인과 각성자 간의 차이보다.

각성자와 마력 각성자 간의 차이가 더 크다.

그냥 마력 각성자도 아닌 한 자릿수 랭커라면 움직이는 전술 병기나 마찬가지다.

하얀 번개, 추이린의 엄청난 힘!

마스터 급 오크와 헌터의 피 끓는 격돌은,

추이린의 하얀 번개에 오크가 숯 더미가 되면서 끝났다.

"..."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에,

각성 헌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문석아!"

장벽 입구, 김철수가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천문석을 보고 기겁했다.

천문석을 구하기 위해 보안관 사무소를 찾아 달렸던 김철수.

김철수는 대기 중이던 보안관과 장벽으로 오던 중 전투가 끝났단 소식을 듣고 재빨리 천문석을 찾았었다.

그리고 장벽 입구에서 만난 천문석.

들것에 실려 오는 천문석은 의식을 잃은 채 전신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김철수는 다급히 포션을 꺼내 천문석에게 사용하려고 했다.

이때 김철수의 손을 가로막은 하얀 막대기.

하얀 막대기가 김철수의 손을 톡- 가볍게 치는 순간 포션이 떨어졌다.

포션을 낚아채는 손.

순식간에 포션을 낚아챈 사람은 하얀 로브를 걸친 여자였다.

"이 헌터 일행이냐?"

"네? 네!"

김철수가 대답하자,

재금 보안의 보안 요원이 여자의 귀에 속삭였다.

"배송품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서류에는 김철수와 천문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여자는 김철수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속이 까발려지는 듯한 강렬한 시선!

"재금 그룹에서 배송일 맡았다고. 김철수?"

"네, 제가 김철수 맞는데 누구신지···?"

"나 추이린이다."

추이린은 가볍게 대답한 후,

들것에 실린 천문석을 가리켰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정밀 검사해야 한다. 우선 가면서 이야기하지. 사무실로 이동한다."

추이린이 명령하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보안 요원들.

인의 장막 속 기절한 천문석과 어리둥절한 김철수, 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는 추이린이 이동했다.

추이린은 기절한 천문석을 따라 걸으며 멍청한 표정의 김철수를 몰래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는 추이린이지만.

지금 추이린의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봤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고래.

파동을 뿜어내던 금속상자와 금속판.

갑자기 엄청난 안개가 쏟아지고.

이 안개를 동력으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이 게이트를 통과해 사라진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진 하늘 고래!

폭풍처럼 긴박하게 진행된 일에 홀린 듯이 이 모든 걸 봤다.

마력 각성자의 예리한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던 거대한 고래.’

이 고래가 키워드다!

이 모든 일은 이 거대한 고래를 게이트를 통해 어디론가 보내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재금 그룹에는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만들 기술력이 있었고, 이 기술로···.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숨.

하아-

추이린은 등 뒤 게이트가 생겨났던 대지를 바라봤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이트.

게이트가 사라지자, 신형 안정화 장치와 파동 생성 장치도 작동을 중지했다.

어떻게 게이트를 만들었는지,

왜 게이트가 사라졌는지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이 모든 걸 봤는데도 말이다.

추이린은 새삼 깨달았다.

재금 그룹의 기술력과 재금 그룹 '오너'가 가진 기술력의 격차를!

어이가 없었다.

한 개인이 집단 지성을 압도하다니!

재금 그룹의 '오너'.

재금 연구소에서 초창기부터 일한 연구원들은,

베일에 싸인 '오너'를 농담으로 마도 황제라고 부르곤 했다.

황제처럼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푸념을 담아 부르는 별명이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섬을 농담 반 조롱 반으로,

전능 옥좌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일어난 일을 보니 딱 맞는 별명이었다.

재금 그룹 오너는 진짜 마도 황제라도 된단 말인가?!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만들어내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 순간 추이린의 눈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알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고래.

파동을 뿜는 금속상자.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

푸른 물결이 일렁이던 게이트.

...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왜 이 자리에 오게 했고,

무엇 때문에 이것들을 보여 줬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답을 알고 있을 '오너'를 만나고 싶었다!

추이린의 불타는 눈이 기절한 천문석과 바리바리 짐을 챙겨 걷고 있는 김철수에게 향했다.

김철수는 배낭을 앞뒤로 메고 소총 두 자루를 어깨에 건 채, 손에는 뼈 도끼를 들고 자신을 힐끔거리며 걷고 있었다.

거점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초보 헌터 같은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천문석.

오러를 두른 오크와 일대일 맨주먹으로 싸워 이긴 헌터의 동료다.

천문석과 김철수 두 사람은 단둘이서 수많은 몬스터의 추적을 돌파해 금속상자, 파동 생성장치를 이곳까지 날라왔다.

게다가 하늘 고래도 이들을 따라 나타났다.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었다.

추이린의 날카로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오너’에게로 연결된 또 다른 꼬리다!

기존의 꼬리는 흔적을 지웠을 테니,

오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두 사람을 주시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추이린이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지 고심할 때,

김철수가 주저하며 손을 들었다.

“저···.”

“...?”

추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철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그 포션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 비싼 건데···."

"...비싼 거라고? 그게 무슨."

추이린이 당황한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네. 그 포션 200만 원이나 주고 산 건데···. 문석이, 쟤한테 빨리 써야 하는데."

김철수는 들것에 실려 가는 천문석을 가리켰다.

"네 친구한테는 벌써 상급 포션 썼다. 포션을 중복해서 쓰면 효과가 없어서 못쓰게 한 거다."

추이린은 김철수에게서 낚아챈 포션을 다시 던져 줬다.

김철수는 포션을 받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왜 또?"

김철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사용하셨다는 포션 값 갚아야 하나요? 문석이 완전 개털인데···. 가뜩이나 마탄 값도 비싸고···. 이번에 화물차도 아작이 나서 수리비도···."

"됐어."

순간 환해지는 김철수의 얼굴.

“역시 통이 크시군요. 과연 재금 그룹 분. 평소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부.

추이린은 순식간에 눈치챘다.

김철수라는 이 녀석.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추이린은 냉철한 시선으로 김철수를 살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김철수 얘는 꼬리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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