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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4화 (95/1,336)

#094

이때 주위를 둘러싼 자욱한 먼지구름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마수와 몬스터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

끼에에엑-

...

천문석은 다급히 피하려 했다.

그러나 마수와 몬스터들은 천문석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지나쳤다.

두드드드드드-

엄청난 속도로 달려 푸른 물결로 돌진하는 마수와 몬스터들!

이때 커다란 멧돼지 마수가 푸른 물결 속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순간 커다란 돌이 물에 빠지듯 치솟는 푸른 물결.

멧돼지 마수는 무중력 공간에 떨어진 듯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푸른 물결 너머로 사라졌다.

"...진짜 게이트였냐?"

이 뒤를 이어 마수와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푸른 물결로 뛰어들었다.

푸른 물결이 거칠게 요동치고,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가 푸른 물결 너머로 사라진다.

마수와 몬스터들이 들어갈 때마다 작아지는 타원.

10여 미터가 넘는 타원을 그려냈던 푸른 물결이 빠르게 작아지고 있었다.

크르르르륵-

이때 나무를 비비는듯한 늪지 트롤의 포효가 들려왔다!

늪지 트롤이 쿵, 쿵, 쿵- 그 거대한 몸으로 마수를 헤치고 달려와 푸른 물결로 뛰어든다.

푸른 물결이 크게 출렁이고 크기가 확 작아졌다!

천문석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마수와 몬스터들은 저 푸른 물결로 들어가려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수와 몬스터들이 넘어갈 때마다 푸른 물결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하늘 고래의 슬픈 울음소리.

구으-

구으응-

불과 2미터쯤 날아간 하늘고래.

작아진 하늘 고래는 열심히 날았지만,

푸른 물결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이들의 돌진에 영체가 영향을 받아 하늘 고래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푸른 물결이 작아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대로는 하늘 고래가 도착하기 전에 푸른 물결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천문석은 생각하기 전에 움직였다.

쿵-

단숨에 대지를 밟고 뛰어,

퐁, 퐁- 천천히 날아가는 하늘 고래를 낚아채 품에 안는다.

탁-

구으응-

하늘 고래가 의아한 듯 우는 순간,

천문석은 검을 뻗어 길을 뚫었다.

앞으로 뻗은 검에서 쏟아지는 기파!

이성에 달한 일기공과 일원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쏟아진다.

밀면서 당기고,

들어 올리면서 내리누른다!

크아앙-

끼이엑-

...

상반된 힘의 충돌에 돌진하던 마수와 몬스터가 뒤엉켜 쓰러지고 공간이 생겨났다.

쿵, 쿵, 쿵-

천문석은 이 공간을 밟고 뛰어 전진했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푸른 물결!

구으, 구으응-

천문석의 의도를 깨달은 하늘 고래가 신나게 울었다.

가슴에 전해지는 신나하는 울림에 천문석은 웃었다.

트롤러 같던 하늘 고래지만,

이 하늘 고래 덕분에 일기일원공이 이성에 달했다.

은원은 갚아야 한다.

반드시!

어느새 3미터 남짓 작아진 푸른 물결!

그러나 지금 속도면 하늘 고래가 무난히 푸른 물결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귀에 익은 포효소리!

크아아아아-

반대쪽, 먼지구름 속에서 오크가 나타났다!

쿵, 쿵, 쿵-

오러가 실린 뼈 도끼로 주위의 마수를 짓이기며 폭풍처럼 돌진하는 오크!

마스터 급 오크!

이 오크도 푸른 물결로 돌진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저놈이 더 빠르다!'

---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오크!

'저 오크 뒤로 하늘 고래를 통과시키면?'

생각과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늪지 트롤이 들어갔을 때,

푸른 물결은 확 작아졌다.

저 마스터 급 오크가 들어가면, 푸른 물결은 완전히 사라진다!

구으, 구으, 구으응-

오크를 본 하늘 고래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울릴 때,

천문석은 다급히 리볼버와 방패를 빼 들며 말했다.

"야? 너 나 믿지?!"

당연히 하늘 고래는 천문석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구응-

의아한듯한 울음소리.

그러나 어차피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천문석은 달리며 오크에게 리볼버를 겨눴다.

마탄은 5발뿐.

이 안에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탕-

핑-

첫 발사와 동시에 오크의 뼈 도끼가 가볍게 마탄을 튕겨낸다.

비웃음 가득한 표정!

그러나 천문석은 연속해서 마탄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핑, 툭, 탁-

그러나 한발도 제대로 유효타를 내지 못한 마탄!

그리고 마지막 마탄이 발사되는 순간.

휘이잉, 탕-

팅-

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탄을 튕겨냈고 굳어졌다.

다섯 번째 투사체를 발사한 순간,

던진 방패.

시간차 공격이라 생각한 방패가 엉뚱하게도 푸른 물결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방패가 푸른 물결을 통과하는 순간.

구으응-

짧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민들레 홀씨 같은 하얀 빛이 날아올랐다.

방패 뒤에 천문석이 일기일원공의 내력으로 찰싹 붙여 놨던 하늘 고래의 울음소리였다.

하늘 고래가 방패에 붙은 채 푸른 물결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 순간 2미터 남짓한 크기로 작아졌던 푸른 물결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던 곳은 이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되어.

쾅, 쾅, 쾅-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와 몬스터들이 서로 충돌해서 뒤엉키고 있었다.

크아앙-

크르르-

카아아-

...

마수와 몬스터들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스터 급 오크는 굳어진 채,

한참 동안 푸른 물결이 일렁이던 공간을 바라봤다.

오크의 머릿속은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선조의 오래 전승이 전하는,

풍요의 대지로 이어지는 문이 닫혔다.

풍요의 대지.

하늘 고래가 날고,

별이 태어나는 곳.

안개가 바다처럼 흐르는 봉우리가 끝도 없이 펼쳐진 대지.

전승에 따르면 이 대지는 위대하신 '황제'께 이어져 있다고 한다.

오크 종족의 황제.

단신으로 드래곤조차 짓이겨 버렸다는 위대한 강철의 오크!

오크의 황제, 강철의 오크에게로 이어진 길이 사라진 것이다!

트롤과 저열한 마수와 몬스터들마저 들어갔는데,

선조의 힘을 얻은 오크의 대전사인 자신은 못 들어갔다!

순간 오크는 부르르 떨었다.

가슴에서 불이 끓어오르고,

분노에 시야가 붉게 물든다.

당장이라도 폭발하려는 몬스터의 광기!

그러나 오크는 이성을 지우는 광기를 억누르며 시선을 돌렸다.

광기를 터트릴 존재는 따로 있었다.

보였다!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피하다가,

자신의 도끼마저 잽싸게 들고 도망친 놈.

투사체를 쏘고 방패를 던져 자신을 기만한 적.

그리고 황제께 이어지는 문을 닫은 인간 놈!

목표를 확인한 순간,

억누르던 오크의 광기와 분노가 폭발했다.

크아아아아-

엄청난 포효가 대기를 울리고,

오크의 전신에서 불같은 오러가 일렁였다!

더 강해진 오러!

대지에 쏟아진 엄청난 영맥을 흡수한 오크의 오러는 더 강해져 있었다.

화르륵-

오러가 일렁이는 뼈 도끼를 든 오크는 전력을 다해 달리며 결심했다.

눈앞의 인간!

저놈을 반드시 박살 내겠다!

---

크아아아아-

포효가 터진 순간, 등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투기!

천문석은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포효를 질렀는지 짐작이 갔다.

마스터 급 오크!

힐끗 돌아보니 생각대로 그놈이었다.

푸른 물결로 뛰어들려다가 자신의 기만술에 속아 물을 먹은 오크.

그런데 짐작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오크의 전신에서 불같이 일렁이는 오러.

오러가 더 강해졌다!

“...아니. 오러가 뭐 이렇게 쉽게 강해져!?”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는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하늘 고래가 쏟아낸 영맥 때문이다.

이 오크는 하늘 고래가 쏟아낸 영맥을 흡수한 것이다!

"...이 비구름 같은 녀석."

천문석은 이제는 사라진 하늘 고래를 생각하며 어이없어했다.

하늘 고래는 비구름 같은 생명체였다.

비가 사람과 동물, 나무를 가려 내리지 않듯이,

하늘 고래가 쏟아낸 엄청난 영맥은 자신과 오크, 마수와 몬스터에게 골고루 내렸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오크도 강해진 것이다.

천문석은 문득 오크가 들고 있는 뼈 도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참으로 아쉽게도 말이다.'

천문석은 아쉬움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이미 상당수의 마수와 몬스터 그리고 강적 늪지 트롤이 푸른 물결 너머로 사라진 상태.

여전히 마스터 급 오크가 자신보다 더 강했지만,

조건만 맞으면 저 오크를 상대할 방법은 있었다.

첫 번째 조건은 유리한 전장.

자욱한 흙먼지 너머,

자신에게 너무나 유리한 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산 마을 장벽 앞!

초대형 마탄을 쏟아내는 개틀링 기관포가 설치됐고,

수많은 헌터들이 마탄 총을 들고 기다리는 장벽 앞!

이곳은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장이다!

다른 조건은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싸우면 무조건 필승이다!

카카카-

천문석은 신나게 웃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쿵, 쿵, 쿵-

천문석과 마스터 급 오크는 빠르게 장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때 민들레 홀씨 같은 하얀 빛이 천문석의 목에 내려앉았다.

하늘 고래가 고향으로 가며 남기고 간 선물 하얀빛.

하늘 고래가 전해준 빛은 잠시 천문석의 목에 붙어있다가.

반짝-

천강흔이 빛나는 순간 천문석의 몸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

“어, 저거 뭐야?”

한 헌터가 장벽 앞 천천히 가라앉는 흙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가 있어?”

“...저기 먼지 속에서 헌터가 뛰어오는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마수에 몬스터가 득실득실 한곳에 무슨 헌터야?”

...

장벽 위 헌터들은 의아해하면서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 진짜 헌터네?”

“쟤 왜 저기에 있냐?”

...

곳곳에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

흙먼지 속 헌터 뒤를 쫓는 오크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어라, 오크도 있네?"

그리고 오크의 무기에 어린 오러를 본 순간 경악한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마스터!?”

“오크가 마스터라고!”

“...완전한 마스터는 아니다!”

“저놈 혹시 워로드 아냐!?”

워로드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헌터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워로드 오크가 움직이는 오크 군세,

집단으로 조직화된 오크 군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카우트! 주위 확인해줘!"

"반대쪽 장벽 확인해라! 양동 공격일 수 있어!"

...

헌터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물 저격총 준비해라!”

“마력 각성자! 저주 계열 마력 각성자 없어!?”

“사냥팀별로 모여라!”

“저놈 절대 도망치게 만들면 안 돼!?”

...

곳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지고,

헌터들이 오크에게 공격을 쏟아내려 할 때.

오크에게 쫓기던 헌터가 멈췄다.

장벽 바로 앞,

헌터는 검과 방패를 빼 들고 다가오던 오크를 가리켰다.

순간 장벽 위 헌터들은 경악했다.

무기를 뽑아 사냥감을 가리키는 행동!

헌터들 사이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선점 행동이다.

“...저 미친놈!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데!?”

“지금 선점의 권리를 주장하는 거야?”

“여기 저 헌터랑 같은 팀 있냐?”

“...”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보안관을 찾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졌다.

“보안관?!”

“보안관 어딨어!?”

“보안관 저거 어떡해야 해?”

“기다려야 하냐? 아니면 그냥 공격해?”···.

이런 경우 보안관이 결정하기 때문.

그러나 포션 쇼크로 기절한 보안관은 장벽 위에 없었다.

헌터들은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봤다.

잠시 후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내리는 헌터들.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마수를 사냥하는 헌터들은 보수적이고, 공정한 분배와 사냥의 규칙에 아주 민감했다.

먼저 싸운 이가 선점의 권리를 주장하면 다른 헌터들은 끼어들 수 없었다.

이때 한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급 오크랑. 혼자서 검으로 싸워 독식하겠다고···?”

“이런 미친놈···.”

장벽 위 헌터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는 전사가 아닌 사냥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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