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비포장도로!
쿵-
오크가 두 발로 도로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뒤에 딱 붙어 떨어지던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숙였다.
휘잉-
목이 있는 위치를 가르는 뼈 도끼!
이미 공격의 주도권은 넘어갔다!
지금은 피해야 할 때!
뼈 도끼를 피한 천문석은 날아가던 힘 그대로 비포장도로 위를 굴렀다.
데굴, 데굴, 데굴-
하늘에서 떨어진 굴렁쇠처럼 빠른 속도로 비포장도로 위를 구르는 천문석!
천문석은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연이어 손과 발로 땅을 밀었다.
점점 구르는 속도가 빨라지는 천문석.
“...”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에 얼빠진 얼굴이 된 오크!
오크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천문석을 따라 달렸다.
크아아앙-
그러나 오크가 정신을 차리고 달렸을 때,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방향을 전환한 천문석은 오크와의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드드드드드드-
빠르게 구르는 전신을 찌르는 비포장도로의 돌과 흙!
천문석은 정신없이 구르면서도 내심 흐뭇했다.
‘역시! 구르는 건, 전 무림 통틀어 내가 최고···.’
아니 이게 아니지!
군용 장갑 SUV는 전복됐고, 도와주려던 보안관들은 전복된 장갑 SUV 옆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철수형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보안관을 구하고 화물차를 따라잡아야 했다!
천문석은 구르던 탄력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땅을 박찼다.
타아악-
단거리 경주 선수처럼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천문석!
크아아아앙-
순간 진심으로 빡친 오크의 괴성이 들려오고,
따가울 정도의 투기가 등으로 쏟아진다!
얼핏 뒤를 보니,
폭발하는 오크의 투기를 따라 불꽃처럼 일렁이는 오러가 보였다!
폭주 기관차처럼 오러의 불꽃을 휘감고 달려오는 마스터 급 오크!
“...뭐 이리 빨라!?”
천문석은 미친듯이 달렸지만,
오크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바, 시바!"
천문석은 생사팔문의 보법을 버렸다.
생사팔문의 보법은 생문과 사문,
생사의 간극을 넘나드는 보법이다.
적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농락할 수는 있지만,
경신법처럼 빠르게 달릴 수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일기일원공!
천문석은 얼마 남지 않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뽑아내 땅을 밟고 뛰었다!
쿵, 쿵, 쿵-
매 걸음 터져 나오는 충격파!
오크와의 거리가 다시 벌어졌다.
그러나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통해 달리는 건 오래 유지 할수 없었다.
힘이 빠지는 순간 오크에게 따라잡히고, 패배가 예정된 처절한 전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오크 뒤, 광기가 폭발한 마수와 몬스터 무리까지 보였다.
타다다다다-
멀리 고산 마을의 장벽에서 마탄 사격이 쏟아지지만,
광기가 폭발한 마수와 몬스터들을 저지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천문석은 뼈저린 후회를 했다.
경신법을 익혀두는 건데!
무작정 내력을 이용해 달리는 것과 경신법을 쓰는 건 천지 차이다.
어차피 차 타고 다닐 거라고 경신법을 뒤로 미루고 생사팔문의 보법에 집중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이때 철수형이 운전하던 화물차가 핸들을 돌리는 게 보였다.
구으으으응-
도로 위를 크게 회전해 뒤,
자신에게 달려오는 화물차!
“...철수형?”
화물차는 전복된 군용 장갑 SUV 앞에서 멈췄다.
다급히 운전석에서 내려, 땅에 쓰러진 보안관을 싣는 철수형이 보였다.
철수형은 축 늘어진 다른 보안관마저 운전석에서 빼내 싣더니.
자신에게 손을 한번 흔들고 다시 화물차를 타고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
천문석은 어이가 없었다.
철수형은 각성 헌터는커녕 일반 헌터도 아니다.
그냥 경영학과 화석, 인맥이 좀 넓은 일반인일 뿐이다.
그런 철수형이 기절한 보안관을 구하고,
다 부서져 가는 화물차로 자신을 구하겠다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
새삼 전생의 무림과 현생이 다르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철수형 같은 사람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위기의 순간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철수형을 보는 천문석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저렇게 달려오면 위험하다.
천문석은 바로 손을 들어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외쳤다.
"철수형! 화물차 돌려요! 내가 따라잡을게요!"
"...알···."
간신히 목소리가 들릴 거리.
그러나 김철수는 천문석의 손을 보고 바로 화물차 방향을 돌렸다.
두 사람은 몇 번이나 같이 알바를 한 사이.
김철수는 대번에 천문석이 전하려는 뜻을 이해한 것이다.
화물차는 천문석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김철수는 운전석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천문석과의 거리를 확인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이대로 화물차를 타고 빠져나가면 된다!
이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살기!
휘잉-
무언가 날아오는 걸 느낀 순간,
천문석은 몸을 돌리며 방패를 휘둘렀다.
회전력이 실린 방패로 날아오는 물체를 튕겨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날아오는 물체를 확인한 천문석은 다급히 방패에 실린 내력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척력(斥力)이 아닌 인력(引力).
엄청난 기세로 날아온 건,
마스터 급 오크가 사용하던 새하얀 뼈 도끼였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오크가 자기 무기를 던진 것이다!
이 순간 천문석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내력이 실린 방패로 날아오는 뼈 도끼를 비스듬히 받는다!
콰아앙-
충돌 순간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파!
강철 방패 위를 미끄러지며 깊은 고랑을 만들어내는 뼈 도끼!
죽죽 깊게 파인 강철이 톱밥처럼 쏟아질 때,
천문석은 강철 방패에 담기는 일기일원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콰르르르륵-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치는 강철 방패를 움직여 뼈 도끼에 실린 힘을 죽인다!
강철 방패를 세우고 눕히고, 다시 일으키고 돌려서 회전시킨다.
휭, 휭, 휭, 휭-
강철 방패는 뼈 도끼를 붙인 채, 요동치며 빙글빙글 몇 번이나 회전했다.
천문석은 뼈 도끼에 실린 힘과 오러를 누그러뜨리려 끊임없이 움직였다.
강철 방패를 타고 들어와 팔을 저릿저릿하게 올리는 충격파!
당장이라도 두꺼운 방패째로 팔을 쪼개 버릴 것 같은 강맹한 오러!
튕겨내는 게 이보다 몇 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날아온 계란을 받듯 온 정신과 힘을 쏟아 뼈 도끼의 기세를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회전이 멈췄을 때.
오크가 던진 새하얀 뼈 도끼는 천문석의 손에 들려있었다.
하하하하하-
순간 천문석의 입에서 너무나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스터 급 오크의 뼈 도끼!
오러를 견디는 무기를 득템했다!
---
하하하하하-
천문석의 웃음이 들려올 때.
"..."
멍청한 얼굴이 된 오크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쌍둥이처럼 왼손 오른손에 하나씩 들려있던 한 쌍의 뼈 도끼.
이제 뼈 도끼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오크의 시선이 웃으며 달리는 인간에게 향했다.
오러를 담아 던진 도끼를 막아낸 인간은 자신이 던진 도끼를 흔들며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
지금껏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에 당황하기도 잠시,
오크는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선조의 힘'을 얻은 후에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끓어 오른다!
오크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
깊은 빡침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앙-
엄청나게 빡친 마스터 급 오크는 미칠듯한 속도로 달렸다!
---
크아아아앙-
등 뒤에서 오크의 괴성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었다.
타악-
화물칸 문을 잡은 천문석.
천문석은 단숨에 화물칸 지붕으로 올라가서 외쳤다.
"철수형! 저 올라왔어요! 전속력으로 달려요!"
"알았어!"
구으으으응-
화물차는 속도를 높였고,
천문석은 바로 앞뒤를 확인했다.
목적지, 고산 마을의 장벽은 이제 지척이다.
화물차 뒤, 분노한 마스터 급 오크, 마수와 몬스터의 해일과의 거리는 충분하다.
보안관의 말대로라면 문을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로프를 타고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숙여 화물차 운전석을 두들겼다.
톡, 톡-
바짝 긴장한 철수형의 얼굴이 나타난다.
"철수형. 로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보안관 상태 어때요?"
운전석 옆 조수석에 눕혀진 보안관을 가리키는 천문석.
김철수는 보안관을 힐끗 보며 말했다.
"완전히 기절한 것 같아. 혹시 몰라서 준비한 포션을 먹였는데···. 잘한 걸까? 쇼크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말하는 김철수.
“...포션도 준비했어요?”
“혹시 몰라서 싼 거로 하나 준비했어.”
그 비싼 포션을 준비했다니···!
철수형의 말을 듣고 내심 감탄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천문석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기절했으니 포션 쇼크와야 달라질 건 없죠."
"역시 그렇지?"
김철수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철수형. 그보다 저 장벽 넘어갈 준비 해야 합니다. 장벽에 화물차 바짝 붙이고 제가 로프 던질게요. 처음은 철수형. 다음은 보안관. 저는 화물이랑 같이 올라갈게요. 올라가면 다른 헌터들이랑 같이 로프를 당겨 주세요."
"화물은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위험할 것 같은데."
철수형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원인이 이 화물에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상,
가능한 이 화물을 재금 그룹에 넘겨야 했다.
설명하려면 길었기에, 천문석은 간단히 대답했다.
"위험하면 화물 포기할게요."
그리고 화물칸 위 지붕으로 돌아온 천문석.
어느새 화물차에 부쩍 가까워진 오크가 보였다.
크아아아아-
천문석이 보이자,
괴성을 지르는 오크.
천문석은 오크를 향해 손을 까닥까닥하며 도발했다.
욕은 해당 언어를 몰라도 그 어감으로 욕이라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스쳐도 마찬가지다.
오크는 천문석이 자신을 도발하는 걸 알아챘다.
도발에 분노한 오크는 손에 든 뼈 도끼를 던지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 아쉬워하는 천문석
"하- 안 걸리네."
천문석은 자신의 무장 벨트에 걸린 오크가 쓰던 뼈 도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뼈 도끼는 보통 도끼가 아니다.
마스터 오크의 오러가 실렸던 도끼인 것이다!
오러를 견뎌내는 뼈 도끼!
가격이 최소 몇억은 할 것이다!
게다가 이 뼈 도끼는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다른 하나가 더 있었다.
두 개를 같이 팔면 2배 이상의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크가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천문석은 리볼버를 빼 들었다.
발당 2만원의 마탄 가격에,
가능한 몸으로 때우고 사용하지 않았던 리볼버.
그러나 그 봉인은 지금 풀렸다!
‘오러를 견디는 뼈 도끼!’
억 단위 대박 아이템을 먹은 지금!
한발 당 2만원의 마탄 가격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천문석의 건물주 게이지와 자본주의 레벨은 크게 올라간 것이다!
천문석은 비싼 마탄 값에 그동안 생각만 하던 온갖 트릭샷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타탕, 탕, 탕-
...
리볼버에는 먼 거리.
마수와 몬스터의 반발장.
오크의 몸에 흐르는 오러.
이 모든 조건 때문에,
대부분의 마탄은 큰 효과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의표를 찌르는 마탄이 오크의 무릎과 발, 얼굴을 향해 쏟아졌고.
오크는 주춤주춤 균형을 잃고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유효타가 나온 것이다!
육체는 정교하게 조율되는 기관이다.
계단의 높이가 몇 센티미터 달라져도 구르는 게 사람의 감각이다.
무인의 육체는 몇 배나 더 섬세하게 조율되고,
그건 이 마스터 급 오크도 마찬가지였다.
천문석의 의표를 찌르는 공격에,
마스터 급에 달한 오크가 균형을 잃고 주춤주춤했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어떤 식으로 리볼버를 사용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검과 리볼버.
창과 리볼버.
방패와 리볼버.
...
리볼버를 사용할 온갖 응용법.
일반적인 무인은 생각도 못 할 기술이 떠오른다.
그 어떤 무학의 대종사가 자신이 만든 창술에 구인창, 지렁이 창술이란 이름을 붙이겠는가?
천문석이라서 가능했던 일.
구인창을 만들었던 그때처럼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기괴한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순간 선두에서 화물차를 쫓던 오크는 점점 뒤처져,
어느새 마수와 몬스터의 무리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천문석은 멀어진 오크를 보며 리볼버를 꺾어 탄피를 빼냈다.
95발의 리볼버 마탄을 사용하고 남은 건 이제 다섯 발.
천문석은 마지막 다섯 발의 마탄을 리볼버에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화물차 앞을 봤다.
경사진 비포장도로 너머 100미터 앞,
거대한 장벽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고산 마을!
목적지에 마침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