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무기는 거리에 따라 그 활용이 달라진다.
가장 짧은 거리의 무기 권(拳)에서 시작해.
곤, 도, 검, 봉, 극, 창으로 거리가 멀어지는 무기.
한치의 장단(長短)에 모든 운용법이 변한다.
한치 길어질수록 한치만큼 유리해지고,
적에게서 멀리서 공격할수록 더 안전하다.
그렇기에 거리가 먼 창은 입문이 쉬운 무기이고,
평범한 다수와의 싸움에서의 위력이 거리가 짧은 무기를 압도한다.
지금처럼!
휭-
일 점으로 공간을 가르는 천문석의 창!
우워어어-
뛰어난 반사신경의 놀은 불쑥 튀어나오는 창을 피해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점으로 쏘아지는 창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쩡, 파르르르-
금속성 폭음과 함께 창대가 부러질 듯 요동치다가 공기를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후웅-
점이 선으로 변화하는 공격!
떨어지는 창대가 몸을 숙인 놀의 머리를 때렸다.
타다다닥-
창대를 타고 흐른 경력이 놀의 머리를 관통하고,
놀은 순간적으로 휘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천문석은 단숨에 거리를 좁혀 쓰러지는 놀에게 로우킥을 날렸다.
깨애앵-
로우킥을 맞은 놀은 단숨에 화물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주위에 가득한 적!
결정타를 넣을 시간은 없었다.
훙-
천문석은 요동치는 창대를 짧게 잡고 빙글 몸을 회전했다.
타다다다닥-
사방에서 달려드는 고블린과 놀, 여우, 늑대를 튕겨내는 창대!
크르릉-
순간 짐승 노린내가 확 올라오고,
창대를 피해 돌진한 늑대가 휙 눈앞으로 다가온다.
휘청-
천문석은 쓰러질 듯 뒤로 넘어가 늑대를 피하고,
순간적으로 길게 잡은 창으로 화물차 지붕 위를 훑었다.
탁, 타닥, 탁, 탁-
창에 걸려 사방으로 나뒹구는 소형 마수와 몬스터들!
이 순간 느껴지는 뇌를 뚫는듯한 살기!
천문석은 재빨리 뒤로 넘어갔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앗-
기합을 지르며 방패를 들어 올리는 순간.
콰아앙-
방패를 가격하는 묵직한 충격파!
천문석은 일부러 물러서며 보법을 밟아 충격파를 발아래로 흘렸다.
우드득, 꽈지직-
천문석의 매 발걸음 화물차 지붕이 움푹움푹 파이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나무를 비비는듯한 소름 돋는 포효!
크르르르르륵-
문득 시선을 두자,
늪지 트롤의 거대한 녹색 팔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거대한 녹색 팔에 잡힌 몬스터의 겁먹은 울음소리가 터지는 순간.
파아아앙-
늪지 트롤이 쏘아낸 몬스터 탄환이 바람을 가르고 다가온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건 화물차에 맞는다!'
재빨리 방패를 내리고 창을 찌르는 천문석.
휘이이잉-
일 점으로 쏘아져 허공을 찌르는 창날!
쩌어엉-
창날에서 올올히 풀려나온 내력이,
날아오는 몬스터 탄환의 경로를 비틀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늪지 트롤이 발사하는 몬스터 탄환은 계속 쏘아졌고,
천문석은 한참이나 쏟아지는 몬스터의 궤도를 비틀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소강상태가 왔을 때,
천문석은 재빨리 화물차 앞을 확인했다.
한참을 달렸으나,
아직 멀리 있는 고산 마을!
얼핏 봐도 금방 도착할 것 같지는 않았다.
쿠쾅, 크르릉-
순간 크게 요동치는 화물차!
비켜내는 몬스터 탄환 중 하나가 화물칸을 스쳐 지나갔다.
"문석아!? 괜찮냐!?"
화물차가 크게 흔들리자,
다급한 철수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괜찮아요! 계속 달려요!"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몬스터와 마수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늪지 트롤이 마구잡이로 잡아 던지는 몬스터 탄환은 위협적이지만 어찌어찌 막아낼 수 있었다.
더 큰 위협은 따로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화물차 뒤 도로 위로 향했다.
쿵, 쿵, 쿵-
땅을 박차고 일정한 속도로 가까워지는 오크!
마스터 급 오크는 새하얀 뼈 도끼를 든 채 묵묵히 거리를 좁히고 있다.
포효를 지르지도 몬스터의 광기를 보이지도 않는 오크.
이 오크는 천천히 밀려오는 압착 프레스처럼,
엄청난 투기를 안으로 갈무리한 채 천천히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오크의 전투 반경에 닿는 순간,
안으로 갈무리된 투기가 화산처럼 폭발할 것이다!
늪지 트롤과 마스터 오크.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수천에 달하는 마수와 몬스터들.
이 녀석들은 지난밤에는 화물차를 공격하기보다 하늘 고래를 따라 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구으으으으응-
이때 천지를 울리는 하늘 고래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문석의 시선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화물차 바로 위.
구름에서 나온 하늘 고래는 언젠가부터 화물차 바로 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왜 거기서 나냐···."
천문석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부우우우우-
대답하듯이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늘 고래의 숨구멍에서 엄청난 양의 안개가 쏟아졌다.
크르르륵-
카아아앙-
와우우우-
...
순간 수천 몬스터와 마수의 엄청난 울부짖음이 터지고.
쿵, 쿵, 쿵, 쿵-
도로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하늘 고래가 땅 위로 쏟아내는 안개를 들이키기 위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몬스터와 마수들!
여명이 밝아올 때부터 몇 번이나 일어난 상황.
문제는 이 안개가 화물차 뒤쪽으로 집중적으로 쏟아졌고,
이들을 이끌고 달리는 늪지 트롤과 마스터 급 오크가 어느새 눈치챘다는 것이다.
그들이 쫓는 하늘 고래가 이 화물차를 따라 날고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화물차를 향한 공격이 몇 배나 거세졌다.
천문석은 안개를 뿜어내는 머리 위 하늘 고래를 어이없어하는 시선으로 봤다.
"이런 민폐 덩어리 같으니라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늘 고래가 안개를 쏟아낼 때가 숨을 돌릴 시간이었다.
마수와 몬스터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안개로 모두 쏠렸으니까.
천문석은 몬스터들이 안개를 마시는 틈에,
재빨리 지붕 구멍 안 금속상자를 확인했다.
여전히 파동이 흘러나오는 금속상자.
금속상자에서 흘러나온 파동은 물결처럼 하늘로 퍼져나갔고,
화물차를 위를 유영하는 하늘 고래는 전신으로 파동을 맞으며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먹음직한 당근을 따라 달리는 당나귀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보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금속상자를 버리고 달려가면?'
그렇게 하면 하늘 고래는 금속상자를 따라갈 테고,
마수와 몬스터들도 하늘 고래를 쫓아가지 않을까?
그러면 안전하게 도망칠 가능성이 커질 것 같았다.
그러나 걸리는 게 있었다.
전투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적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늘 고래가 쏟아내는 안개를 흡수한 늪지 트롤과 마스터 급 오크의 기세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었다.
만약에 하늘 고래가 쏟아내는 안개를 흡수한 저 수천의 마수와 몬스터가 변이라도 한다면?
이들을 이끌고 달리는 늪지 트롤과 마스터 급 오크가 벽을 넘어 더 강해진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특히 강한 오크 개체가 나타나면 큰일이다.
몽골군과 비슷한 군제의 오크 사회.
백인장. 천인장. 만인장.
만인장 급의 오크,
워로드!
오크 워로드 급의 강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방에서 오크 부족들이 모여들어 대군을 형성한다.
오크 개체 하나하나는 중하급 몬스터지만,
오크 워로드 밑에 하나로 모여 대군을 형성한 오크는 전혀 다른 몬스터가 된다.
하나로 뭉친 수많은 오크의 군세 속에서 특성이 발화돼 툭툭 튀어나오는 주술사와 전사들.
다양한 병종으로 이뤄진 오크 대군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한 대형 괴수조차 능가하는 힘!
남중국의 한 게이트 거점 도시는 워로드가 이끄는 오크 대군에 점령당한 적도 있었다.
워로드가 이끄는 오크 대군이 신서울 주변의 거점 마을들을 휩쓸면?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위험한 금속상자는 재금 그룹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산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잡힌다.
늪지 트롤의 투척 공격은 점점 정교해지고,
마스터 오크도 착실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안개를 흡수하는 오크와 자신의 수준을 견주어 봤다.
기술적으로는 자신의 우위다.
하지만 기술을 뒷받침하는 힘,
쌓아 올린 오러와 내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 정도로 힘이 차이 나면 기술로 상대하다가 압도적인 힘에 부러져 나간다.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웃었다.
꼭 오크와 싸워 이겨야 하는것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시간을 버는 것.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시간을 벌 온갖 치사한 방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천문석이 그 치사한 방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고산 마을 방향에서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다.
-사선 확인!
---
"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느껴지는 섬뜩한 직감!
고산 마을의 장벽 위에서 거대한 마력광이 쏘아졌다.
일반 소총탄이 아닌 대포라도 쏘는 듯 거대한 마력광!
마력광은 순식간에 화물차를 지나 마수 무리 선두에 떨어졌다.
파스스슥-
순간적으로 반발 섬광이 터졌지만 거대한 마력광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콰아아앙-
10미터 반경의 땅이 뒤집히고 흙먼지가 훅- 일어났다!
흙먼지 속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의 사지!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계속 이어졌다.
연이은 초대형 마탄 사격에,
마수와 몬스터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박살 났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고산 마을에 있다는 재금 그룹의 사람들이 뭔가 하고 있었다!
"역시 재금 그룹! 이런 미친놈들! 탱크라도 가져온 거 아냐!?"
천문석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대로라면 고산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수와 몬스터들이 모조리 끝장날 것 같았다!
아주 바람직한 결과였다.
이때 천문석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마석!
너무 다급하게 일이 돌아가 '마석'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은 일기일원공으로 마수와 몬스터 체내의 마석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여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마수와 몬스터의 숨이 완전히 끊어져 체내의 마력장이 사라져야 마석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일방적으로 마탄을 얻어맞는 마수와 몬스터들에게 꽂혔다.
"...!"
지금껏 피해서 도망치던 이놈들이 모두 돈으로 보였다!
어쩌면 오늘 소원하던 건물주가 될 정도의 마석을 모을 수도 있었다!
헌터 2일 차에 건물주가 되어 은퇴하는 것이다!
천문석이 바로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철수 형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때 들려오는 울음소리.
구으으으으응-
화물차 위를 빙글빙글 날던 하늘 고래가 움직였다.
"어···?"
하늘 고래가 움직이는 방향은 초대형 마탄이 날아오는 방향이었다.
---
"야! 뭐 하는 거야!?"
기겁한 천문석이 소리쳤으나,
하늘 고래를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날아갔다.
그리고 초대형 마탄과 충돌하는 순간!
퐁-
마탄은 하늘 고래의 황금빛 안으로 삼켜졌다.
몬스터와 마수의 반발장을 태우는 마탄의 마력!
그러나 거대한 하늘 고래는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받아먹는 돌고래처럼,
거대한 지느러미를 움직여 연이어 쏟아지는 초대형 마탄을 받았다.
퐁, 퐁, 퐁-
조약돌이 냇가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초대형 마탄은 모두 하늘 고래의 거대한 지느러미를 둘러싼 황금빛 안에서 멈췄다.
그리고 하늘 고래의 황금빛 안, 초대형 마탄의 마력이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물감처럼 풀려나왔다.
순간적으로 하늘 고래의 전신에서 퍼져나오는 황금빛이 강해졌다.
깜빡, 깜빡-
오래된 백열등처럼 점멸하는 황금빛.
천문석은 기겁했다.
이 하늘 고래!
마탄에 실린 마력을 먹고 있었다!
뭐 이런 미친 생명체가 있단 말인가!?
이때 들려오는 울부짖음!
크아아아-
카아, 하악-
...
초대형 마탄 사격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마수와 몬스터 무리.
갑자기 마탄 사격이 끊기자 이들의 광기가 폭발하고,
밀려오던 마수와 몬스터의 해일이 몇 배나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