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7화 (88/1,336)

#087

천문석의 시선이 금속상자로 향했다.

금속상자에서 흘러나오는 파동!

이 파동은 눈으로 보듯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 파동을,

천강흔을 통해 인식하기 전에는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마치 기감에 전혀 안 걸렸던 하늘 고래처럼!

이때 화물칸 앞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문석아···. 다 됐다···."

화물칸 벽 너머 운전석에 있는 철수형의 신호였다.

쿵, 쿵-

"여기도 거의 끝나가요!"

천문석은 벽을 두들겨 대답하고,

재빨리 금속상자를 다시 묶었다.

지금은 의문을 풀 때가 아니었다.

고산 마을에는 재금 보안과 재금 연구소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재금 그룹이 맡긴 이 금속상자는 재금 그룹의 직원인 그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1순위, 생명.

2순위, 화물.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금속상자를 단단히 묶고 천장에 뚫린 구멍을 확인했다.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정육면체 금속상자가 빠져나가기에는 약간 작았다.

쾅, 꽈드득-

천문석은 금속상자 위에 올라서서 천장의 구멍을 넓히고,

금속상자를 고정한 로프를 구멍 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화물차 지붕으로 나오는 순간.

후우웅-

섬뜩한 살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봤다.

재빨리 몸을 숙이는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바람!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빼 들었다.

쾅, 쾅, 쾅-

연이어 방패를 두들기는 엄청난 힘!

엄청난 힘에 방패째로 밀려나던 천문석이 재빨리 보법을 밟아 충격파를 흘릴 때.

크르르륵-

와우우우-

늪지 트롤과 마스터 급 오크의 포효가 들려왔다.

화물차 뒤 100여 미터 거리까지 다가온 두 몬스터!

어느새 마수와 몬스터의 해일이 화물차 지척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신 태백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

고산 마을에 시끄러운 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에에에에에엥-

"몬스터가 나타난 거냐!?"

다급히 마을 곳곳에서 튀어나온 헌터들이 장벽으로 달려갔지만,

장벽 밖 시계 청소된 지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실수로 울린 거야?"

"아무것도 없으면 사이렌 좀 꺼라!"

...

헌터들은 장벽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때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타다다닥-

강화 전투복과 소총, 마력 무구로 완전 무장한 재금 보안의 보안 요원들.

수십 명의 보안 요원들이 신서울 방향 장벽 위를 달리고 있었다.

5명씩 스쿼드 단위로 장벽 위에 자리를 잡는 보안 요원들.

보안 요원들은 커다란 안전 상자를 계속 날랐다.

쿵, 쿵, 쿵-

잠금 장치된 커다란 안전 상자가 장벽 곳곳에 내려지고.

위이이잉-

잠금이 풀린 안전 상자 안에서,

대형 마수용 대물 저격총과 거대한 개틀링 기관포 부품이 나왔다.

"바로 조립한다! 빨리 움직여라!"

보안 요원들은 다급히 움직여 개틀링 기관포를 조립했다.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다급히 움직이는 보안 요원들의 모습.

헌터들은 의아한 얼굴로 이들을 봤다.

곧 6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기관포가 조립됐다.

이 기관포에 다섯 명의 보안 요원이 달라붙어 장벽 위 고정 포좌에 올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미국 출신 헌터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런 미친놈들! 저거 GAU-8/H 어벤저 개틀링이잖아!"

미 공군 조종사 출신인 헌터는 한눈에 이 개틀링 기관포를 알아봤다.

A-10 선더볼트,

대지 공격기 워트 호그의 주무장인 어벤저 개틀링!

전장을 갈아버리는 대지 공격기의 개틀링 기관포가 장벽에 설치됐다.

그리고 개틀링 기관포로 연결되는 급탄 장치에 자리한 팔뚝만 한 탄환들!

갑자기 울린 사이렌에 고산 마을 곳곳에서 튀어나온 헌터들은 이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고산 마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은,

위험한 신 태백산맥 지역에서 활동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이 헌터들은 상급 마수와 대형 몬스터를 사냥했고,

당연히 값비싼 대형 마탄, 특수목적탄을 주로 사용했다.

상급 마수를 사냥하는 베테랑 헌터들조차 허리가 휠 정도로 비싼 마탄 가격!

고산 마을의 헌터들 모두가 더럽게 비싼 마탄 가격에, 재금 그룹을 몇 번이나 씹었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눈앞에 분당 수천 발을 쏟아내는 개틀링 기관포가 등장한 것이다.

팔뚝만 한 탄환이 줄줄이 이어지는 급탄 장치!

게이트 너머 이세계이니 당연히 저 급탄 장치의 탄환은 마탄이다.

누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거 도대체 얼마짜리 마탄이야?"

"그보다···. 저거 개틀링 맞지? 분당 수천 발을 쏟아내는 그거?"

"맞는 것 같은데···."

이때 자동 통역 장치를 통해 들려오는 한 헌터의 목소리.

"저거 분당 3900발 쏟아낸다. 보통은 5-10초 단위로 끊어 쏘는···."

그러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장벽 위 곳곳에서 경악한 외침이 쏟아졌다.

"분당 3900발!?"

"이런 미친! 돈이 썩어나는구나!?"

"그럼 저거 일 분 쏘면 얼마가 날아가는 거야?!"

"바렛용 대형 마탄이 100만 원이니···."

"저거 발당 100만 원 넘을 것 같은데···?"

"...!"

충격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들.

팔뚝만 한 크기의 마탄은 엄청나게 비쌀 것 같았다.

얼핏 봐도 개틀링 기관포 저 무기는,

대형 레이드에서도 동원하기 힘든 무기였다.

마탄 값이 더럽게 비싸서!

헌터들은 뭔가 든든하면서도 억울한 이중적인 감각을 느꼈다.

"재금 그룹 미친놈들···."

"마탄 가격 더럽게 비싸게 받으면서···."

"자기들은 분당 3900발을 쏟아내는 무기를 사용해!?"

...

곳곳에서 들려오는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런데 저건 왜 설치하는 거야?"

순간 헌터들의 표정에 의문이 생겼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려서 장벽으로 올라오니,

중무장한 재금 보안의 직원들이 중화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압도적 스펙의 무기에 홀려서,

정작 왜 사이렌이 울렸는지를 잊고 있었다.

헌터들은 중화기가 설치되는 신서울 방향 장벽 주위를 살폈다.

어젯밤 고산 마을과 신서울을 잇는 도로의 거점 마을들이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는 통신이 들어왔다.

헌터들은 밤새 바짝 긴장하며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신서울 방향 장벽 주위 몬스터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너머 먼 곳.

이상한 빛을 띤 구름뿐 몬스터와 마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지? 너 뭐 보이냐?"

"스카우트 없어? 뭐 보이는 것 없어?!"

"별거 없는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마력 각성자 혹시 계십니까? 뭐 이상한 거 있나요?"

...

헌터들은 서로를 보며 외쳤다.

이때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석님! 이쪽입니다!"

그리고 장벽 위에 나타나는 한 여성 헌터.

무표정한 얼굴.

권태로운 듯 천천히 걷는 발걸음.

강화 전투복 위에 걸쳐진 새하얀 로브.

한 여성 헌터가 견장을 찬 재금 보안 지휘관의 에스코트를 받아 이동하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한국 헌터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여성 헌터가 지나가는 길에 서 있던 헌터들이 다급히 몸을 피했다.

외국인 헌터가 의아한 얼굴로 한국인 동료에게 묻는다.

"...저 젊은 여자 누군데 그래? 유명한 사람이야?"

동료들이 이 헌터의 입을 막고 뒤로 끌어낼 때,

주위에 있던 헌터들은 폭발물이라도 보는듯한 표정이 되어 재빨리 몸을 피했다.

이때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

"하얀 번개, 추이린."

고개를 갸웃하는 외국인 헌터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말에 이들 또한 경악했다.

"1세대 헌터. 마력 각성자, 랭커다."

---

무표정한 얼굴로 터벅터벅 걷는 추이린.

그러나 추이린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시바, 시바. 개시바! 당장 그만둬야지! 내가 개새끼도 아니고! 뭘 이리 굴려!'

며칠 전 갑자기 그룹 본사에서 내려온 어이없는 명령들!

[신규 협력업체 선정을 위한 배송 경주, 인력 차출 명령.]

아니, 도대체 왜?

신규 협력업체를 배송 경주로 선정한단 말인가?!

본사 놈들이야 원래 이상하니까,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력 차출 명령이 재금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인 자신에게도 내려왔다는 것!

소장 바로 아래 직급인 자신에게 배송품 인수를 하라는 업무 지시서가 도착한 것이다.

마력 각성자!

그것도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랭커한테!

이세계 오지 마을로 가서 택배를 받으라는 업무 지시라니!

이런 미친놈들!

이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입니다! 수석님.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바짝 긴장한 보안팀의 지휘관이 2미터 정도 길이의 기둥이 여러 개 꽂힌 특이한 금속판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에 앉으라고?”

신서울 방향이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인 특이한 금속판,

이 금속판에는 어쩐지 낯익은 기둥들이···.

"어···?"

기둥을 본 추이린이 경악했다.

"이거!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잖아!? 이거 시제품이 언제···.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어?!"

"..."

그러나 지휘관은 말없이 서 있었다.

추이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박힌 금속판과 지휘관을 보다가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나보고 여기 앉으라고?"

"이거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잖아?!"

"연구 단계였는데···. 언제 시제품을 만든 거야?"

"아니, 그보다. 이걸 왜 여기로 가져와서 앉으라는 거야?!"

"..."

지휘관은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추이린의 말이 끝나자,

보좌관에게 건네받은 서류철을 펼쳐 두 손으로 내밀었다.

추이린은 서류철을 받아 읽었다.

[업무 지시서]

-재금 연구소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준비된 의자'에 앉아···.

추이린은 다 읽지도 않고 서류철을 집어 던졌다.

탁, 탁탁탁-

서류철이 장벽 위를 데굴데굴 굴러갈 때,

추이린은 금속판, '준비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택배 인수 임무를 주더니,

택배 인수 장소에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보냈다.

뜬금없는 상황이지만,

어렴풋이 짐작되는 게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 광화문 게이트의 이상 현상!

이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보호 블록이 해제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요동칠 때.

그룹 본사에서 보낸 특이한 파동을 뿜어내는 금속상자가 이상 현상을 막아냈다.

추이린은 그 일 이후로 금속상자가 배송된 경로를 역추적했다.

재금 연구소에서조차 본 적 없는 마력장을 지우는 파동을 뿜어내는 금속상자.

여기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이린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름!

재금 그룹 내부 이 금속상자 배송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낸 것이다.

추이린은 전율했다.

재금 그룹 오너,

베일에 싸인 그가 개입한 흔적을 찾은 것이다!

이들을 역추적하면 재금 그룹의 오너, 그의 꼬리를 찾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그때 택배 인수라는 이해 할수 없는 업무 지시가 자신에게 떨어졌다.

그래서 추이린은 분노했었다.

‘...날 배제하고 흔적을 지우려 한 건 줄 알았는데 말야···.’

추이린의 생각은 금속판과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로 만든 '준비된 의자'를 보는 순간 달라졌다.

열기마저 느껴지는 눈으로 자신이 앉은 금속판을 살피는 추이린.

쓰으윽-

추이린의 손이 '준비된 의자'를 훑었다.

손끝에서 퍼져나가는 마력 각성자의 마력장,

그러나 준비된 의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력장을 흡수해 버린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고도의 마법 물품!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빼곡히 박힌 금속판은,

모양은 달라졌지만,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폭주를 막아낸 그 '금속상자'였다.

갑자기 떨어진 택배 인수 지시,

장벽 위에 나타난 신형 게이트 안정화 장치와 마력장을 지웠던 금속상자.

감이 왔다.

재금 그룹 본사.

이 모든 어이없는 일을 꾸민 누군가가 자신에게 뭔가를 보여 주려고 하고 있었다!

추이린은 내심 기대했다.

게이트 전쟁, 서울 수복 작전, 무한 미궁, 재의 숲···.

추이린은 믿기지 않는 경이로운 일들을 겪었지만,

마력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파동은 또 다른 신비였다.

'그래. 이번에는 뭐를 보여 주려는 거냐?'

추이린은 반짝이는 눈으로 장벽 너머 신서울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봤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여명의 빛이 대지를 밝힐 때.

"아니. 시발! 저거 뭐야!?"

경악한 추이린의 외침이 장벽 위에서 터져 나왔다.

헌터 중의 귀족, 마력 각성자.

마력 각성자 중에서도 귀족인 랭커,

하얀 번개 추이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

포탈 연예면에 올라갈 법한 가십거리지만.

장벽 위 헌터 그 누구도 추이린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고산 마을의 모든 사람이 넋 나간 표정으로 추이린과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구으으으으으으응-

천지를 떨어 울리는 거대한 울음소리.

한눈에 담기조차 어려운 거대한 황금빛의 고래가 구름 속에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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